독서

초한지의 등장인물

운학처사 2009. 3. 17. 06:25

내용은 부실하나 많은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초 한 지 등 장 인 물 차 례


초한지

 

초한지

 

초한지

번호

이 름

번호

이 름

번호

이 름

1

경포(영포)

 

16

왕릉

 

31

진승

 

2

계포

 

17

우미인

 

32

진시황

 

3

괴통

 

18

위표

 

33

진영

 

4

기신

 

19

유방

 

34

진평

 

5

난포

 

20

은통

 

35

진희

 

6

번어기

 

21

이사

 

36

팽월

 

7

번쾌

 

22

이좌차(이좌거)

 

37

하우영

 

8

범증

 

23

장량

 

38

한신

 

9

소평

 

24

장이와 진여

 

39

항량

 

10

소하

 

25

장한

 

40

항백

 

11

송의

 

26

장광

 

41

항우

 

12

수하

 

27

조고

 

42

형가

 

13

여불위

 

28

조참

 

43

호해

 

14

여후

 

29

종리매

 

44

 

 

15

역이기

 

30

주란ㆍ환초

 

45

 

 

 

 

 

 

 

 

 

 

 

 

  참고 블로그 :  - http://cafe.daum.net/jharanya/7WRW/62 -


초한지(礎漢志) 등장인물


1. 경포(영포) - 안휘성 六 출신으로 성은 영. 죄수로 진시황릉 공사장에 끌려갔다가 도망쳐 황량군에 들어가 항우의 장수가 되어 진을 무찔러 구강왕의 작위를 받지만 항우와의 갈등으로 유방 아래로 간다. 유방 편에서 많은 공을 세웠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2. 계포 - 종리매와 함께 용감한 항우의 장군으로 많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항우가 사면초가에 빠지면서 종리매와 함께 항우를 떠나 주장이라는 친구에게 몸을 의탁하다 하후영을 통해 유방에게 들어 낭중벼슬을 얻는다.


3. 괴통 - 임기응변에 능한 제나라의 모사로 한신이 제를 공략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한신을 떠받들어 유방에서 벗어나 제나라를 차지할 것을 수차 권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친사람 행세를하면서 천하를 떠돈다.


4. 기신. 주가 - 유방과 같은 패 출신으로 둘은 친구사이. 기신은 늘 욕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항우에게 형양성이 포위당해 유방이 죽을 지경에 처하자 진평이 거짓으로 항복을 하면서 기신을 유방으로 변장을 시켜 유방을 달아나게 하고 기신은 항우에게 혀가 잘리는 처참한 죽임을 당한다.


5. 난포 - 양나라의 대부로 팽월이 한제에게 죽었다는 말을 듣고 몹시 슬퍼한다. 한제가 그를 나무라자 한제의 잘못을 꼬집으며 일깨우고 팽월의 시신을 수습해 제사하고, 한제가 벼슬을 내리나 마다하고 자취를 감춘다.


6. 번어기 - 진시황이 신임했던 장군으로 한나라를 정벌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나 차츰 포악해지는 진왕 야욕을 꺾기 위해 적의 장군을 풀어주고 모반을 하려다가 번어기 수하 장수가 진왕에게 밀고해 함양으로 압송하라 했으나 연나라로 도주. 연나라의 태자 단이 그를 숨겨주고 정중히 대접받은 것을 이유로 진시황을 살해하기 위해 형가에게 자기 목을 내어놓는다.


7. 번쾌 - 중국 전한(前漢)의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공신(功臣). 패(沛;江蘇) 출신. 본디 백정이었으나 고조의 창업 때부터의 신하로서, 반진(反秦)의 거병(擧兵) 당초부터 무인으로 활동했다. 《사기(史記)》 <번쾌전> 홍문연(鴻門宴)사건에서 항우(項羽)는 유방을 연회에 초대해서 그 자리에서 죽이려고 했다. 연회장 밖에서 대기중이던 번쾌는 주군의 위험을 알아차리고, 검과 방패로 무장하고 위병을 밀어 젖히고 뛰어들어가 항우와 맞서서 유방이 두 마음이 없는 것을 설득했다. 그 동안 유방은 변소에 가는 척하고 탈출할 수 있었다.

개백정이었으나 유방을 형님으로 모시고 거사에 참여. 유방의 심복이 되어 무인으로 유방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용맹을 떨쳤을 뿐 아니라 '홍문의 회합'에서 항우로부터 유방의 목숨을 구한다. 그런 연유로 유방이 황제에 오르자 대장군을 거쳐 무양후에 봉해진다.


8. 범증 - 안휘성 거소출신. 70세에 항량을 찾아가 참모역할을 한다. 초의 왕손을 찾아 왕으로 세워 민심을 얻으라는 조언을하여 양치기 소년 왕손 心을 회왕으로 세우고, 항량이 죽자 항우의 軍師가 되어 홍문의 회합에서 유방을 없애라는 조언을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뛰어난 모사로 선견지명이 있어 계책을 내지만 항우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유방의 장량과 진평이 꾀를 내어 우자기를 통해 이간책을 씀으로 항우에게 버림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 화병으로 등창이 생겨 71세의 나이로 죽는다.


9. 소평 - 진으로부터 동릉후라는 작위를 받지만 농사일을 하다가 광릉현에서 군사를  일으킨다. 반란에 실패한 후 황량을 찾아가 진왕신승의 사신 행세를 한다.


10. 소하 - 중국 한(漢)나라 건국공신. 패(沛;지금의 江蘇省 沛縣) 출신. 법령에 밝고, 패현(沛縣)의 하급관리로서 일찍부터 한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옹호자였다. 유방이 패공(沛公)이 되자 서무(庶務)를 담당했으며, 셴양[咸陽]에 입성했을 때에는 제일 먼저 진(秦)나라의 율령도서류(律令圖書類)를 압수하였기 때문에, 유방이 지방의 험요(險要)와 호구(戶口) 수, 백성의 병고(病苦)의 원인 등 천하의 정세를 상세하게 파악할 수가 있었다. 유방이 한나라 왕이 되자 승상에 임명되었으며 한신(韓信)을 대장군으로 천거했고, 초(楚)·한(漢)의 싸움에서 관중(關中)에 머물러 병량(兵糧)과 병사의 보급에 힘썼다.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 찬후에 봉해졌으며 이어서 진희와 한신(韓信) 등의 모반을 평정한 공으로 상국(相國)에 임명되었다. 또 고조(高祖)의 법삼장(法三章)을 고쳐서 진율(秦律)을 기초로 한 구장률(九章律)을 제정하는 등 한나라의 기초를 세웠다. 시호는 문종후(文終侯).

유방과 같은 패출신으로 주리(主吏)로 유방을 도와 평민 편에서 일을 처리해 많은 사람으로부터 신임을 얻는다. 유방이 항우와 싸울 때 관중에 머물면서 군량과 군별을 조달하며, 행정에 능력을 발휘해 유방의 천하통일에 일등공신이 된다.


11. 송의 - 대대로 초나라 영윤을 지낸 명문 출신으로 예의와 의식에 밝아 회왕을 가까이 모시며 초의 기반을 다진다. 항우와의 갈등으로 제와 공모해 역모를 꾸미다  항우에게 죽는다.


12. 수하 - 유방 수하의 말단관리 유생. 경포를 끌어들이기 위한세객을 자원하여 경포를 항우로부터 유방에게로 끌어오는데 성공하여 모사로써 자리를 굳힌다.


13. 여불위 - 하남성 양책의 상인으로 수많은 재산을 가지게 되어 정치에 야심을 품고 조나라에 인질로 있던 잡혀왔던 진나라 공자를 장양왕으로 만들고 자신의 애첩을 주어 시황제 정을 출산하게 한다. 그는 장양왕 때 승상에 이어 상국이 되었으나 태후에게 노애라는 정부를 두게 되는 사건에 연루하자 자산을 하게 되는데 수많은 식객들을 통해 [여씨춘추]를 편찬하기도 한다.


14. 여후 - 여공의 딸로 유방이 건달 생활할 때 얻은 부인. 효혜제와 노원공주를 낳았으며, 유방이 어려운 고비를 당할 때 생사를 같이 했으며 욕심과 권세욕이 많아 태후가 되자 팽월과 한신을 없애는데 앞장선다. 또, 고조 유방이 죽은 뒤 실권을 잡는다.


15. 역이기 - 유생으로 유방의 수하에서 세객으로 진류성을 항복시킨다. 유방의 모사가 되어 제에 들어가 한과 합병하라는 설득으로 굴복하게 만들지만 한신이 제에 쳐들어옴으로 제왕에게 죽임을 당한다.


16. 왕릉 - 패 출신. 항우로부터 유방의 가족을 구해내고 자신의 어머니를 잃는다.


17. 우미인 - 본명은 우희. 항우의 애첩. 사면초가 상태에서 항우가 자기를 두고 떠나려하자 마지막 주연을 베풀고 항우의 칼로 항우 앞에서 자결을 한다


18. 위표 - 위나라의 왕자. 유방을 따라 팽성에서 항우와 회전에 참여하지만 유방 이 패하자 그를 배반한다. 후에 유방이 보낸 한신에게 붙들려 갔다가 다시 배반하던 중 주가에게 죽는다.


19. 유방 - (劉邦/BC 247 ?~BC 195)

중국 한(漢)나라의 제1대 황제(재위 BC 202~BC 195). 자 계(季). 묘호(廟號) 고조(高祖). 패(沛:江蘇省 豊縣) 출생. 농가에서 태어났으나, 가업을 돌보지 않고 유협(遊俠)의 무리와 교유하였다. 장년에 이르러 사수정장(泗水亭長:하급관리)이 되었으며, 당시 여산(驪山)의 황제릉(皇帝陵) 조영 공사에 부역하는 인부의 호송책임을 맡았다. 호송 도중에 도망자가 속출하여 임무수행이 어려워지자, 나머지 인부를 해산시키고 자신도 도망하여 산중에 은거하였다.

진(秦)나라 말기에 이르러 진승(陳勝)․오광(吳廣)이 반란을 일으키자 각지에서 군웅이 봉기하였으며, 유방도 향리의 지도자와 청소년층의 추대를 받아 진나라 타도의 기치를 높이 들고 군사를 일으켜 패공(沛公)이라 칭하였다(BC 209). 다음해 북상하여 항양(項梁)․항우(項羽)의 군과 만나 연합세력을 구축하였다.

그뒤 항우의 군대가 동쪽에서 진군(秦軍)의 주력부대와 결전을 벌이는 사이, 그는 남쪽으로 관중(關中)을 향해 진격을 계속하여 항우보다 앞서 수도 함양[咸陽]을 함락시키고, 진왕(秦王) 자영(子)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

또 진나라의 가혹한 법률을 폐지하고 법삼장(法三章)을 약속하여 인심을 수습하였다. 약 1개월 늦게 셴양에 도착한 항우는 그를 살해할 목적으로 홍문[鴻門]에서 대연회를 베풀었으나(鴻門의 會), 장량(張良)과 번쾌(樊) 때문에 실패하였다.

진나라가 멸망하자 항우는 서초패왕(西楚覇王)이라 칭하고, BC 206년 유방은 항우로부터 한왕(漢王)에 봉해졌다. 그뒤 4년간에 걸친 항우와의 쟁패전에서, 소하(蕭何)․조참(曹參)․장량(張良)․한신(韓信) 등의 도움으로 해하(垓下)의 결전에서 항우를 대파하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실현시켰다.

BC 202년 유방은 황제에 오르고 수도를 장안[長安]으로 정하였다. 한왕조 건설에 공이 큰 장수와 부하를 제후왕(諸侯王)과 열후(列侯)로 각지에 봉(封)하였으나, 얼마 뒤 이들이 모두 멸망하자 왕실일족(王室一族) 출신으로 대체되어, 제후왕은 한실일족(漢室一族) 출신자에 한정된다는 불문율이 성립하였다.

유방은 서민 출신이었으나 성격이 대담치밀하고 포용력이 있어, 부하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데 능숙하였으므로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강소성 패에서 40이 넘도록 건달생활을 하다 정장이라는 말단벼슬을 지낸다. 항량 밑에서 항우와 함께 진나라를 없애기 위해 전쟁을 하면서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지만 소하와 장량 등의 도움으로 항우보다 관중에 먼저 진입해 진왕의 항복을 받는다. 그러나 항우의 힘에 밀려 한왕이 되며, 한중으로 내쫓기던 중 한신을 만나 다시 관중으로 나와 항우와 일전을 벌인다.

4년의 전쟁 끝에 한신의 용병술과 장량의 외교술, 소하의 정치력 덕분에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고 한의 황제 고조가 된다. 비교적 우둔하고, 답답한 면이 있지만 남의 말을 잘 듣는 반면 의심이 많고 의심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는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


20. 은통 - 회계군을 통치한 진나라 군수. 시황제가 죽으며 반란이 일어나자 항량을 끌어들여 진나라에 모반을 한다. 그러나 이를 역이용한 항량에게 목숨을 잃게되며, 회계는 항량이 거사하는 본거지가 된다.


21. 이사 - 초나라 상채사람으로 한비자와는 동문수학을 한 친구로 여불위의 추천으로 시황제에게 발탁된다. 친구인 한비자를 모함해 자살을 하게 만들어 승상에 까지 올라 부국강병책을 추진한다. 시황제가 죽자 조고와 공모해 공자 호해를 2세 황제로 옹립하지만 조고의 모함으로 일족과 함께 죽는다.


22. 이좌차(이좌거) - 조나라의 상장군이었으나 한신에게 패해 나라가 망한 후 한신의 부하가 된다. 한신의 권유로 항우를 찾아가 계략을 써 한을 승리로 이끄는 공신자가 된다.


23. 장량 - 중국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공신.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한나라의 재상이었다. BC 230년 한나라가 진(秦)나라에게 멸망당하자 한나라를 위해 사재를 소비하면서 진시황의 암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하여 샤피[江蘇省]로 달아났다. 뒤에 패공(沛公) 유방이 군사를 일으키자 도망중에 다리 위에서 만난 노부(老父)로부터 배운 태공망(太公望)의 병법을 설하고 그 숨은 획책자로서 유방의 군사를 도왔다. 항우(項羽)와의 <홍문회(鴻門會)>싸움에서 유방을 위험으로부터 구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 뒤 유후(留侯)로 책봉되었고, 옥야천리(沃野千里)의 요해처(要害處) 관중(關中)에 도읍하도록 헌책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는 소하(蕭何)·조참(曹參)·진평(陳平)·주발(周勃) 등과 함께 개국공신으로 특별히 다루었고 제후(諸侯)의 계보를 기록한 <세가(世家)>에 전기가 수록되어 있다.

자는 자방으로 한의 명문출신으로 어려서는 노자사상에 심취하였으며 도가의 법도 익힘. 외모는 심히 병약해 보이는데다 생김새가 고운 소녀로 보일정도의 외모이나 그 기개는 매우 크다.

  동생이 죽자 발인도 하지 않은 채 많은 재산을 처분하여 자객을 모아 시황제를 시해하려다 어렵게 되자 회양으로 가서 스승에게 禮를 배워 지적 외모를 갖게 되면서 동쪽으로 가서 창해군을 만나 교류하던 중 그 수하에 있는 [장사]를 만나 박랑사에서 순행 중인 시황제를 암살을 시도하다 실패한다.

  하비 땅에 숨어살다가 노인에게 병서 세권을 전수받아 공부를 하고 유방의 아래로 들어가 뛰어난 선견지명을 통해 책사로 유방이 천하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우지만 관직을 버리고 야인으로 돌아간다.


24. 장이와 진여 - 刎頸之交(문경지교)인 장이와 진여는 하남의 대량출신으로 학문을 좋아하고, 조왕을 도와 거록성에서 진과 싸우던 중 형세가 불리해지자 진여가 장이를 배반한다. 장이는 유방수하에 들어가 조나라를 치고 진여를 죽이나 2년후 장이도 병사한다.


25. 장한 - 진의 장수로 죄수 부대를 이끌고 진승의 장초를 격파하고 항량군을 궤 멸. 거록 전투에서 항우군에 투항한 뒤 항우에 의해 제후가 되지만 유방에게 포위당하자 자결한다.


26. 장광 - 숨어사는 현자로 형가와 고점리와 함께 어울리며 지내다가 연나라 태자 단 이 진나라의 침공을 두려워하자 형가를 소개시켜준다.


27. 조고 -시황제를 모시는 환관으로 권모술수에 능한 야심가로 시황제가 죽자 승상 이사와 함께 거짓 조서를 꾸며 시황제의 아들 호해를 2세 황제로 삼고 승상에 오르고, 진나라가 위태로워지자 2세 황제 호해를 죽이고 유방에게 의지하여 권력을 유지하려 하지만 3세 황제에게 죽음.


28. 조참

  중국 한(漢)나라 공신. 패(沛;江蘇省 沛縣) 출신. 처음에는 패현의 옥리(獄吏)였으나, 유방(劉邦)이 거병하자 그를 따라 각지를 전전(轉戰)했다. 한나라 천하통일 후에는 제왕(齊王)의 재상이 되었다가 평양후(平陽侯)에 봉해졌다. 같은 공신이었던 소하(蕭何)가 죽자 한나라 상국(相國;宰相) 자리를 계승했으며, 모든 일을 소하가 정한 규약대로 따랐다. 그 정치는 도가(道家)의 정신에 따라 청정무위(淸淨無爲)를 존중했고, 언사는 정도(正道)에서 벗어남이 없었으며, 인민은 평안을 얻었으므로 현상(賢相)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29. 종리매 - 이노 출신으로 항량의 수하가 된 후 항우의 참모로 용맹한 장수로써 박식함을 가지고 화술로 적을 굴복 시키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30. 주란. 환초 - 항우의 수하 장수로 사면초가 상태에서 계포와 종리매가 항우를 버리고 달아나고, 항우의 백부 항량이 달아나지만 8백명의 군사로 끝까지 군신의 의를 지키다 죽는다.


31. 진승 - 친구 오광과 징집병을 이끌고 북방의 병영으로 가던 도중 반란을 일으켜 진나라 수도 함양으로 쳐들어가 나라이름을 장초라 한다. 늘어난 군세를 통솔하지 못한 진승은 함곡관에서 진군에게 무너진다.


32. 진시황 - 장양왕의 아들로 이름은 정(政). 실제는 여불위의 아들로 알려짐. 13세 장양왕이 서거하자 즉위하여 진왕이 되었고, 전국시대의 선왕 효공을 지표로 국가경영 바탕으로 한비자의 법가사상에 바탕을 두고 이사를 발탁하여 부국강병에 힘씀. 한비자를 흠모하였지만 이사의 간계로 한비자를 죽게 한다.

  그 후 6국을 정복하여 중국 최초로 천하통일을 이루며, 황제라는 존칭을 쓰지      만 무리한 토목공사(만리장성, 아방궁 등)와 폭정으로 백성들의 분노를 산다.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환관 조고의 득세로 수없이 반란이 일어나며, 순행하던 중 시황제 37년(BC210) 49세 나이로 객사를 한다.


33. 진영 - 동양현의 관리로 주민들의 신임을 얻은 사람으로 주민들이 현령을 죽이고 진영을 왕으로 삼으려 하지만 모친의 말을 들어 이를 마다하고 자기를 따르는 군사를 거느리고 항량군에서 종군한다.


34. 진평 - 양무현 사람으로 처음에는 항우의 책사였다. 그 후 한고조 유방(劉邦)에게 귀의, 호군중위의 직책을 맡게된다. 반간계를 써 항우의 참모였던 범증(范增,BC 277~BC 204)을 내친다. 훗날 그 공을 인정받아 호유후(戶牖侯)에 임명되었다. 그 후에 곡역후(曲逆侯)로 승진하였다. 상국(相國) 조참(曹參)서거후, 좌승상(左丞相)이 되었다. 유방의 아내인 여태후(呂太后)가 유방서거후 여씨친족과 모반을 꾀하자, 우승상(右丞相) 왕릉과 장군 주발(周勃)과 함깨 여씨의 난을 평정한 뒤 문제(文帝)유항(劉恒)을 옹립하였다.




35. 진희 - 한신의 수하 장수로 오랑캐를 섬멸하기 위해 출정했다가 한신과 모의해 모반을 일으킨다. 모반이 실패로 끝나면서 한신까지 목숨을 잃게 된다.


36. 팽월 - 산동의 창읍 출신. 한에 귀속된 후 게릴라 작전으로 초나라의 군량보급 을 차단하며, 항우를 수차례 괴롭히면서 유방에게 큰 승리를 안겨주어 산동의 양왕으로 등극하지만 유방의 군사 협조를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다.


37. 하우영 - 패현의 하급 관리로 유방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한 후 친밀해졌으며 유난히 말을 잘 다루는 재주를 가져 유방의 마부가 되어 수없이 구해준다. 유방에게 충성하여 한의 여음후에 오르게 된다.


38. 한신 - 중국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공신. 화이인[淮陰] 출생. 군략(軍略)에 뛰어난 무장이었다. 진(秦)나라 말의 혼란기에 초(楚)나라 항우(項羽)를 섬겼으나 인정받지 못하자 유방의 군에 참가하였다. 승상(丞相) 소하(蕭何)에게 발탁되어 항우 토벌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조(趙)나라·제(齋)나라의 땅을 공략해 황허강[黃河] 하류 일대를 확보하였다. 그 뒤 제나라 왕에 봉해졌으며 이어 초나라 왕이 되었다. 그러나 한나라의 통일이 완성되자 성이 다른 제왕을 폐제하려는 유방의 정책으로 BC 201년 화이인후[淮陰侯]로 격하되었다. BC 196년 진희의 난에 관련이 있다 하여 여후(呂后)의 부하에게 가족이 모두 참살되었다. 가난하고 불우하였던 젊은 시절 시정(市井) 무뢰배의 모욕을 참으면서 그들의 다리 가앙이 사이를 태연하게 기어 지나간 일화가 있다. 항우 수하에 있다가 항우에게 불만을 품고 여인의 말에 의해 유방의 아래도 들어간다. 유방이 한중으로 들어갈 때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대장군이 되어 위와 조를 항복시키고 제를 평정하여 천한의 2/3를 한이 지배하도록 한다. 괴통이 그에게 천하를 삼등분하도록 조언을 하지만 이를 듣지 않고 있다가 유방에게 버림받은 것에 불만을 품고 반역을 기도하다 일족이 몰살을 당한다.


39. 항량 - 초나라 명장 항연의 아들. 초나라가 망하자 조카 항우와 오중에서 피해 살다 진시황제의 죽음으로 천하가 혼란해지자 초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거사.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하지만 진나라의 장한군과의 싸움에서 차지했던 거록성이 함락되며 전사한다.


40. 항백 - 항우의 백부로 초나라 멸망 후 유랑생활을 하다 살인을 저질렀으나 장량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되자 후에 의협심을 발휘해 홍문의 회합에서 유방을 구하고 장량에 대한 의리를 지키지만 결국 항우를 멸망하는데 기여하는 꼴이 된다.


41. 항우 - (項羽/BC 232~BC 202)

중국 진(秦)나라 말기에 유방(劉邦)과 천하를 놓고 다툰 무장. 이름은 적(籍), 우(羽)는 자이다.

임회군 하상현(臨淮郡 下相縣:江蘇省) 출생.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는, 젊은 시절 ????문자는 제 이름을 쓸 줄 알면 충분하고, 검술이란 1인을 상대할 뿐인 하찮은 것????이라 하고, 회계산(會稽山)에 행차하는 시황제의 성대한 행렬을 보고 ????저 녀석을 대신해 줄 테다????라고 호언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BC 209년 진승(陳勝)․오광(吳廣)의 난으로 진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숙부 항량(項梁)과 함께 봉기하여 회계군 태수를 참살하고 인수(印綬)를 빼앗은 것을 비롯하여 진군을 도처에서 무찌르고, 드디어 한구관[函谷關]을 넘어 관중(關中)으로 들어갔다.

이어 앞서 들어와 있던 유방과 홍문(鴻門)에서 만나 이를 복속시켰으며, 진왕 자영(子)을 죽이고 도성 함양(咸陽)을 불사른 뒤에 팽성(彭城:徐州)에 도읍하여 서초(西楚)의 패왕(覇王)이라 칭하였다. 그러나 각지에 봉한 제후를 통솔하지 못하여 해하(垓下)에서 한왕(漢王) 유방에게 포위되어 자살하였다.

천하장사의 힘을 가지고 무용이 뛰어난 항씨족의 초나라 장군. 숙부 항량을 도와 거병을 하다가 항량이 죽자 전권을 쥐고 진군을 무찌르며 관중으로 들어가 전혀 지지기반 없이 군사를 일으킨 3년 반 만에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초패왕이 됨. 유방의 세력에 밀리면서 사면초가의 형국이 되어 여마통에게 자신을 죽이라 하지만 죽이지 않자 대한 5년(BC202) 31세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단순하고 불같은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로 안하무인 인듯하지만 정이 많고, 때론 심하게 난폭한 면을 가지고 있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성격의 소유자.


42. 형가 - 본래 위나라 사람으로 학문이 깊고 유세술과 검기를 익힌 문무겸비를 한 인물로 출세를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연나라에 와 축을 잘 타는 개백정 고점리와 어울리다 전광과 교분을 나눈다. 태자 단의 청으로 번어기의 목을 가지고 진시황 살해를 시도하지만 실패하여 진시황에게 죽음.

  

43. 호해 - 시황제의 막내아들로 2세 황제가 된다. 시황제가 죽자 조고와 이사의 음모에 의해 맏형을 뒤로하고, 황위에 오르나 조고가 조정의 실권을 장악함으로 허수아비 노릇을 하다가 자살을 한다,


참고인물

1. 삼황 - 천황씨(복희). 태황씨(여와). 지황씨(신농).

2. 오제 - 삼황이후의 성군으로 소호. 전욱. 제곡. 요. 순


3. 신릉군- 이름은 무기 전국시대 말기의 전설적인 인물로위나라 공자인 그는 진의     압박이 심한 중에도 위왕을 도와 나라를 안정시켰으며 그의 집에는 항상 3천명     이 넘는 식객이 모여들었다.


4. 신릉군과 후생노인 이야기

  후생은 위나라 도읍지 대량의 동쪽 문을 지키는 최하급 관리로 70살이 된 노인이었다.

  신릉군의 식객 중 한 사람이 그를 예사롭게 보지 않아 신릉군에게 추천을 하자

많은 선물을 준비해 초대했지만 응하지 않자 다음날 연회를 준비하여 위나라 귀족과 관리를 초대한 후 후생을 만나러 동문으로 찾아가 정중히 "상객으로 모시겠다"고 청하자 수차례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응하게 된다.


  후생은 신릉군에게 시장에서 백정노릇 하는 친구 주해를 만나러 가겠다고 하자

신릉군이 “친구를 왜 만나려 하십니까?”고 묻자

"주해는 숨어사는 천하인재로 나하곤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라 하고,

혼잡한 저잣거리 도살장 앞으로 가게 된다.


  후생은 늑장을 부리면서 마차에 있는 신릉군을 힐끗거리면서 주해와 담소만 나누고 신릉군의 됨됨이를 시험하고 있는데 신릉군은 연회장에서 기다릴 손님들 생각에 조바심이 났지만 후생의 마음을 알고 태연한 척 끈기있게 기다리자 저잣거리 상인과 신릉군의 종들이 후생의 무례함을 욕하게 된다.


한참을 신릉군을 농락하는 듯하더니 후생이 신릉군에게 "이 사람이 제 친구 주해입니다"고 큰 소리로 방자하게 떠들었음에도 신릉군은 후생의 말을 듣자마자 마차에서 내려 주해 앞으로 가서 예를 갖추면서

"오늘 제 손님이 되어주시오"하고 청했으나 주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라져버린다.


 뒤늦게 연회장에 허름한 노인과 나타난 신릉군을 보고 손님들이 눈살을 찌푸렸으나 신릉군은 후생을 윗자리에 앉히고 묻기를 "내 초대에 친구분은 응하지 않으셨는데 현사께서는 어째 응하시게 되셨습니까?" 묻자 "도망칠 수 없었습니다. 마차를 세워놓고 제가 무례를 범해도 참고 기다리셨는데 겸손한 덕이 있으신 분을 저마저 뿌리칠 수가 없어 마차를 탔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고 대답하자

"지금 이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귀빈들은 비천한 제가 윗자리에 앉은 것을 보고 비난하고 상인들은 제가 무례하다고 욕하지만 전 신릉군의 덕이 존경스러워 박차고 나갈 수 없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며 신릉군이 후생의 장수를 축원하자 후생은 "신명을 바쳐 이 은혜를 보답하겠습니다."고 주고받았다.


  그 후 조나라가 진나라 공격으로 위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자 위왕은 신릉군에게

원병을 보낼 것을 청하므로 이에 응해 원병을 보냈으나 진군의 힘에 눌려 진격을 못하자 신릉군이 자신의 식객들을 데리고 직접 전쟁에 나가면서 문지기로 있는 후생을 찾아가자

"잘 다녀오십시오. 소인은 늙어서 동행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자

'후생이 특별한 묘책을 가르쳐줄 것을 기대했는데......' 생각하다가

성문을 나서려던 신릉군은 문득 후생을 '높은 사람'으로 대접한 것이 헛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마차를 되돌리자 후생이 묘책을 귀뜸해주면서 자기는 늙어 동행하지 못하지만 신릉군이 진군과 격전을 치를 즈음에 목숨을 끊어 동행하지 못함을 사죄하고, 주해가 도움을 줄 것이니 데려가 달라고 당부를 했다.


  후생과 작별하고 전장에 나간 신릉군은 후생의 가르침에 큰 승리를 거두고

주해는 신릉군을 위기에서 구하는데 큰 몫을 하고 돌아 와보니 후생은 이미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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