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밤이 깊어 잠이 오면 송곳으로 자기 넓적다리를 찔렀다.』- 소진

운학처사 2009. 9. 17. 22:33

『밤이 깊어 잠이 오면 송곳으로 자기 넓적다리를 찔렀다.』

 

우리는 흔히“말 잘하기는 소진장의 같다”라고 한다. 소진과 장의는 어떠한 사람인가 일부나마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일화를 읽어봄이 어떤가 한다. 사람이 어느 한 분야에 통달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나타내어 주는 고사이다. 고난을 극복하지 못하는 자는 자기의 뜻을 이루기 어렵다. 인내의 덕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가장 으뜸가는 덕목인지도 모른다.


소진과 장의는 귀곡선생에게 하직하고 산을 내려와 장의는 위나라로 가고 소진은 주나라 낙약으로 돌아갔다.

소진이 집으로 돌아와 본즉 늙은 어머니는 아직 살아 계셨다. 그에겐 형님 한 분과 동생 둘이 있었다. 그동안에 형은 죽고 과부가 된 형수와 소대, 소여 두 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집을 떠난 지 여러 해 만에 돌아온 소진을 온 집안이 반기고 기뻐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소진이 집에 돌아온지 며칠 되지 않아 늙은 어머니에게 청한다.

“소자는 다시 집을 떠나 천하 열국을 두루 돌아다녀야겠습니다. 이 집과 살림살이를 모두 팔아서 노자를 만들어야겠으니 허락해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어머니와 형수는 물론 소진의 아내까지도 필사적으로 말린다.

“힘껏 농사를 짓든지 아니면 장사를 하든지. 그것도 못하겠으면 하다못해 노동이라도 해서 입에 풀칠이나 할 생각은 않고 그게 무슨 말이냐? 공연히 몇 해 동안 유세술을 배웠느니 외교술을 공부했느니 하고 돌아와서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농사도 짓지 않겠다. 하고, 이제 와서는 세 치 혀를 놀려 부귀공명을 바라다가 나중엔 집안 식구들까지 다 굶겨 죽일 작정이냐? 안 될 말이다.”

소대, 소려 두 동생도 말린다.

“형님이 유세술과 외교술에 통달했다면 왜 우리 주나라에서 출세할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하필이면 머나먼 타국에 가서 입신양명하려 합니까?

온 집안사람이 반대하고 말리는 데야 소진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 마침내 주현왕에게 가서 부국강병 하는 법을 일장 연설했다.

주현왕은 반은 졸면서 소진의 말을 다 듣고 난 후,

“우선 관사에 가서 있으오. 내 기회를 봐서 다시 그대를 부르겠소.”

하고 힘없이 말했다.

그 후 소진은 관사에 거처하면서 주현왕이 불러주기만을 고대했다. 그러나 주현왕을 모시는 좌우 신하들은 소진이 원래 미천한 농가 출신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소진이 고담준론만 일삼을 뿐이지 아무 쓸모도 없는 자라 단정하고, 누구 하나 그를 주현왕에게 추천하지 않았다.

어느덧 소진이 관사에 머무른 지도 1년이 지났다.

소진은 암만 생각해도 주현왕이 자기를 등용해줄 것 같지가 않았다. 이에 소진은 격분하여 관사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마침내 온 집안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과 살림살이를 몽땅 팔아 황금 100일을 장만했다. 그 돈으로 우선 가장 좋은 흑초구 한 벌을 사서 입고, 좋은 수레 한 대를 사서 마부까지 거느리고는 식구들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홀로 유유히 고국산천을 떠났다.

그 후 소진은 천하 모든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그 나라의 산천과 지형과 인정 풍토를 낱낱이 조사했다. 수년 간 돌아다니는 동안에 소진은 천하대세와 그 이해관계까지 소상히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겐 부귀공명을 누릴 팔자가 없었던지 입신양명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소진은 위앙이 진나라에서 상군의 칭호를 누리며 진효공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에 소진은 진효공을 만나보려고 진나라로 같다.

그러나 소진이 진나라 도읍 함양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진효공이 죽고, 상앙(전날 위앙이 위나라를 쳐서 이긴 공로로 상어 등 열다섯 고을을 식읍으로 받고 상군이란 칭호를 받아 그 후로 상앙이라 불렀다)도 죽음을 당한 후였다.

소진은 기왕 진나라까지 온 김에 궁문에 가서 진혜문왕을 뵙겠다고 청했다.

진혜문왕이 소진을 정전으로 들게 하고 묻는다.

“선생이 천리를 멀다 않고 오셨으니 장차 과인에게 무슨 좋은 가르침을 주시려오?”

소진이 진혜문왕에게 아뢴다.

“신이 듣건대 대왕께서는 모든 나라 제후에게 땅을 바치라고 요구하셨다지요? 그렇다면 대왕께선 편안히 앉아서 천하를 합병하실 작정이십니까?”

진혜문왕이 대답한다.

“그러하오”

소진이 다시 아뢴다.

“진나라 동쪽엔 관하가 있고, 서쪽엔 한중이 있고, 남쪽엔 파촉이 있고, 북쪽엔 호학이있으니 이것이 바로 진나라가 외국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천연 요새입니다. 또 안으론 천리의 비옥한 평원이 있고, 용감무쌍한 백만 군사가 있습니다. 만일 현명하신 대왕께서 모든 어진 선비와 백성들을 거느리시고 신의 계책을 받아들이셔서 효과 있게 실행만 하신다면 천하에 두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모든 나라 제후를 무찌르고, 주 왕실을 없애버리고, 천하를 통일하여 제왕이 되시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편안히 앉아서 그런 큰일을 성취할 순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큰 뜻을 위해 분발하실 수 있습니까?”또 이 소진에게 모든 계책을 물으시고 실행하실 수 있습니까?“

상앙을 죽인 진혜문왕은 애초에 유세하는 선비를 좋아하지 않았다.

“과인이 듣건대 날개가 나지 않으면 능히 높이 날지 못한다고 하오. 선생의 말은 너무나 그 뜻이 높아서 과인으로선 따르기 어렵구려, 우리의 병력이 충분해질 때까지 몇 해 기다렸다가 다시 의논합시다.”

그리하여 소진은 궁에서 물러나온 후로 곧 옛 삼왕(하나라 우왕, 은나라 탕왕, 주나라 문왕)과 오패(춘추시대의 다섯 패자, 곧 제환공-진문공-진목공-송양공-초장왕)가 강적을 무찌르고 천하를 얻게 된 그 요점만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10여만 글자에 달하는 당당한 저서였다.

소진은 그 저서를 가지고 다시 궁에 들어가서 진혜문왕에게 바쳤다. 진혜문왕은 여가를 이용해서 소진의 저서를 통독했으나 그를 등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에 소진은 진나라 정승인 공손연을 찾아가서 자기를 이끌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소진의 재주를 시기하고 있어 방해하면 했지 소진을 천거해줄 리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소진은 진나라에서 근 2년이란 세월을 허송했다. 물론 벼슬길은 열리지 않았고, 결국엔 그럭저럭 황금 100일만 다 쓰고 말았다.

어느덧 입고 있던 흑초구도 형편없이 낡아빠졌으나 새로 사 입을 돈마저 없었다. 그는 유일하게 남은 수례와 마부를 팔아 겨우 노자를 장만했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진나라를 떠나는 소진의 행색은 너무나 초라했다.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터덕터덕 걸어서 주나라 낙양으로 돌아왔다.

고향이라고 돌아왔으나 누구 하나 반기는 사람이 벗었다. 온 집안사람들은 거지꼴이 되어서 돌아온 소진에게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집까지 팔아먹고 가더니 꼴 잘되어 돌아왔네!”

하고 형수까지 빈정거렸다.

소진의 아내는 남편이 돌아왔건만 베틀에 앉아서 베만 짤 뿐 내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저러나 소진은 우선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형수님! 몹시 시장하니 밥 좀 지어주오!”

“땔나무가 없어서 못 짓겠네!”

형수는 싸느랗게 외면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옛 시로써 이 일을 증명할 수 있다.


「부귀하면 남도 형제처럼 나를 따르고

가난하면 형제도 나를 남처럼 대하는구나.

그대는 그 좋은 일례로서 저 떨어진 흑초구를 입고 있는 소진을 보아라」


소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소진이 길이 탄식한다.

“이 한 몸이 가난하고 천해지니 아내도 남편을 남편으로서 섬기지 않고, 형수도 시동생을 시동생으로서 대하지 않고, 어머니도 자식을 자식으로서 보지 않는구나! 누구를 원망하리오. 다 내 잘못이다!”

그 후 소진은 집에서 눈칫밥을 얻어먹으며 그날그날을 지냈다.

어느 날 소진은 하도 심심해서 지난날에 책을 넣어뒀던 상자를 꺼내어 이것저것 뒤지다가 
『태공음부편(太公陰符篇)』을 발견했다. 소진의 눈은 이상한 광채를 띠었다. 그것은 지난날 산을 떠날 때 귀곡선생이 친히 내준 책이었다.

소진은 이때,

“이미 다 배운 책을 가지고 가서 무얼 합니까?”

하고 말했었다.

이에 귀곡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유세하고 돌아다니다가 그래도 뜻을 이루지 못하거든 이 책을 다시 연구하여라. 반드시 얻는 바가 클 것이다.”

그제야 소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께서는 오늘날 나의 처지가 이리 될 것을 미리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셨구나!”

소진은 그날부터 문을 닫고 방 안에 틀어박혀 지난날에 배운 『태공음부편(太公陰符篇)』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 오묘한 이치를 터득하려고 노력했다. 밤이 깊어 잠이 오면 송곳으로 자기 넓적다리를 찔렀다. 그래서 흘러내린 피가 그의 다리와 발을 물들였다.

소진은 마침내 『태공음부편(太公陰符篇)』의 무궁무진한 이치를 터득한 후에 천하 열국의 형세를 일일이 그 이치에 맞추어 세세히 고찰했다.

다시 1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소진은 드디어 자기 손바닥 안에 천하대세를 쥐고 있기나 한 것처럼 황홀했다.

소진이 혼잣말로 자신을 위로했다.

“내가 이만한 공부로써 실력을 발휘한다면 어느 임금이고 간에 금옥과 비단과 상경자리와 정승 자리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소진이 소대 소려 두 동생을 불러놓고 청한다.

“나는 이제야 공부를 성취했다. 앞으로는 부귀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은 이 형을 도와다오. 너희들이 나에게 노자를 대주기만 한다면 나는 다시 천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닐 작정이다. 내가 출세하는 날이면 반드시 너희들도 이끌어주마, 그리고 너희들을 위해서 이 『태공음부편(太公陰符篇)』도 가르쳐 주겠다.”

소대와 소여는 소진의 간곡한 말에 감동하여 각기 가지고 있던 황금을 내주었다. 이에 소진은 또다시 집안 식구와 작별하고 고향을 떠났다.

그는 다시 진나라로 가려다가 생각을 고쳤다.

“지금 칠국 중에 진나라가 가장 강하다. 내가 진나라를 돕기만 하면 제업을 성취시킬 수 있으나, 제왕이 나를 써주려 하지 않으니 어찌하리오. 내가 이번에 또 진나라에 가서 전처럼 거절을 당한다면 그때엔 고향으로 돌아갈 면목조차 없다. 그러니 진나라를 돕느니 차라리 진나라를 배척시키자! 곧 천하 모든 나라를 단결시켜 진나를 배척하게 하면 자연 진나라의 형세는 고립되고 말 것이다.”

이에 소진은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조나라로 갔다.

이때 조나라 임금은 조숙하였고 그 동생인 공자 성이 조나라 정승이었다. 공자 성은 봉양군이란 칭호를 받고 있었다.

조나라에 당도한 소진은 우선 조나라 정승 봉양군을 찾아가서 여러모로 자기 뜻을 말했다. 그러나 봉양군은 소진을 냉정히 대했다.

소진은 결국 뜻을 얻지 못하고 조나라를 떠나 이번엔 방향을 북쪽으로 바꾸어 연나라로 갔다.

연나라에 당도한 소진은 연문공을 뵈오려고 여러 방면으로 교섭을 했으나 연나라 신하들은 아무도 알선해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소진은 여점에서 1년 이상이란 세월을 허비하며 두 동생에게서 받아온 황금도 다 써버렸다. 그는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여점 방에서 신음했다. 여점 주인이 그 참혹한 꼴을 보다 못해 소진에게 돈 100전을 꿔주었다. 덕분에 소진은 굶어죽는 것만은 면했다.

어느 날 소진은 연문공이 사냥하러 간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미리 길가에 숨어 있다가 연문공의 행차가 다가오자 그 앞으로 뛰어나가서 뵈옵기를 청했다.

연문공이 묻는다.

“그대는 누구인고?”

소진이 대답한다.

“이 몸의 성은 소이며 이름은 진이라 합니다.”

연문공은 전부터 소진의 이름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연문공이 반색을 하면서 소진에게 청한다.

“선생은 지난날 10여만언이나 되는 저서를 써서 진나라 왕에게 바쳤다는 분이 아니오? 과인은 그 소문을 들은 이후로 선생을 여간 사모하지 않았소. 이제 선생이 이처럼 우리나라에 오셨으니 앞으로 과인을 잘 지도해주오. 그렇게만 해준다면 이는 과인의 복일뿐만 아니라 실로 연나라의 복이겠소.”

이에 연문공은 사냥도 그만두고 즉시 수레를 돌려 궁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정식으로 신하를 보내어 소진을 궁으로 초청했다.

이에 소진은 연나라 궁에 들어가서 연문공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를 했다.

이후 연문공의 신임을 받아 천하를 하나로 묶어 진나라를 고립시키는 합종책을 실현하기 위해서 고위사절이 되어 천하 열국을 방문하게 된다. 첫 번째로 방문한 나라가 조나라의 조숙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