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송곡사(서산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의 눈물

운학처사 2010. 9. 10. 22:38

  ◇ 서산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http://www.ryubangtaek.or.kr/)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 151-8번지에 위치한 ‘서산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은 일반 시민들을 위한 공개 관측장소, 국보 제 228호로 지정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서산 출신의 고려 말 천문학자 ‘금헌 류방택’선생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그 정신은 과학문화 및 교육 확산에 기여하고자 하는 서산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 또한 천문과 기상을 테마로 한 옛 유물 전시 관람과 더불어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실감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 설립목적

- 충남 서북부 지역의 과학 인프라 확충 및 과학기술문화 확산
- 교육기관과의 네트워크를 구축을 통한 청소년 과학교육에 기여
- 과학테마 관광단지 개발로 지역 소득 증대 및 지역경제 활성화

 
서산시에 따르면 총사업비 44억원이 투입돼 인지면 애정리 일대 부지 3천770㎡에 지상 2층, 지하 1층, 건물면적 964㎡ 규모로 문을 연 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은 주관측실과 보조관측실, 천체투영실, 전시교육실, 시청각실 등을 갖췄다.
  ◈주관측실은 원형돔에 직경 600㎜ 반사망원경과 132㎜ 가이드망원경, 보조관측실은 235㎜ 반사굴절망원경과 150㎜ 태양망원경 등을 보유하고 있다.
  ◈천체투영실은 움직이는 의자와 3D 입체영상을 통해 30분간 실감나는 우주여행을 안내하며 교육전시실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 등 류방택 관련 각종 유물이 전시돼 있다.
  ◈또 우주체중계와 플라즈마 방전판 체험, 우주공간 무한반사 체험, 토네이도체험, 베르누이 공놀이 등 다양한 체험거리도 마련됐다.
  ◈과학관은 동절기(9월~4월)에는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하절기(5월~8월)는 오후 3시부터 밤 11시까지 개관하고 월요일은 휴관하며 관람료는 앞으로 1년간 무료다.
  ◈류방택 선생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천문도인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地圖)를 제작했으며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만원권 지폐의 뒷면 배경으로 사용되고 있다.

 

 

 

 

 

 

 

 송곡사연혁비가 태풍 곤파스에 의해 부러진 노송가지에 가리워 제대로 읽을 수가 없게 되었다. 바람과 폭우에 유실될 것을 염려하는 노송의 마지막 바램이 이곳에 넘어져 끌어 안고 있는 것이 아닐런지?

 

 

◇ 송곡사(송곡서원)

송곡서원은 서산시 인지면 소재지에서 부석면 방향으로 약 3km정도 떨어진 애정리 울창한 송림 가운데 위치해 있다. 송곡서원은 문화재 지정 명칭에 따라 송곡서원이라 부르는데 사실상 서산배출 향현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음력 2월~ 8월의 종정일(終丁日)에 지방 유림들이 제향을 올리며 유덕을 기리는 곳이다.

송곡서원은『서원가고(書院可攷)』,『열읍원우사적(列邑院宇事蹟)』,『문헌비고(文獻 備考)』등 서원관련 기록에 숙종 20년(1694)에 건립된 서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후 고종 8년(1871)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전국에 있는 서원과 향현사가 훼철되었다가 고 종 19년(1882)에 내려진 조정의 복설계에 의해 복원을 추진하였으나 뜻을 즉시 이루지 못하고 28년이 지난 1910년에 복원되었다.

그리고 서원의 명칭을『조두록(俎豆錄)』에는 송곡향사로『서원가고(書院可攷)에는 송곡사로『문헌비고(文獻備考)』는 송곡사우로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원우롤(東國院宇 錄)』에만 인정서원(仁政書院)으로 기록되어 있어 조선후기 한때 서원으로도 불려졌던 모양이다.

이곳에 봉안된 9면의 향현들의 배향 년대는 모두 일치한 것이 아니지만 배양된 9명의 인물 중 후송 윤황(後松 尹璜)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산 출신이거나 서산지방에 살 던 명현들이다. 현재 송곡서원에는 서산정씨(瑞産鄭氏)인 원외랑 정신보(員外郞 鄭臣保), 양렬공 정인경(襄烈公 鄭仁卿), 금헌 유방택(琴軒 柳方澤), 후송 윤황(後松 尹璜), 저정 유백유(樗亭 柳伯濡), 위촌 유백순(葦村 柳白淳), 무동처사 유윤(楙洞處 事 柳潤), 단구 자김적(丹丘子 金積), 미암 김위재(迷庵 金偉材) 등 9명이 배향되었으나

1957년 춘계배향(春季配享)까지 위의 아홉 분을 모신 위패순서가 瑞鄭 원, 시조인 원외 랑공, 양렬고의 순서가 아니라 타 문중의 인물이 앞서 있어 당시 대종회 초대회장인 松 隱 東九 회장을 비롯한 종친들이 이를 바로잡고 왜곡 각인된 비석을 파기하여 동년 10월 추향제부터 위패 봉안순위를 1위 원외랑공 2위 양렬공으로 정립하여 오늘에 이르 게 됨

출처-http://cafe.daum.net/sanandlove/

 

 

 

 

 

 

600년에 가까운 길고 긴 세월을 살아온 신과 같은 저 향나무도 곤파스에는 불가항력이었던가! 악마와 같은 곤파스와 싸워 저정도의 상처로 끝난 것만 해도 천년노구의 몸에서 어떻게 그런 위대한 힘이 나왔는지 외경스러울 따름이다. 아마도 정신력이었으리라.

 

 

 

 

 

 

 

 

 

 

 

 

 

 

 

보기만 해도 가슴 아프다. 마치 노송들의 시체가 누워있는 것 같아, 찢어지고 꺽여지고 뽑혀지고 하기까지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시련과 역경, 노송들의 비명과 통곡이 들리는 것 같다. 아 세상에 이렇게 참흑한 일도 다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