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1. 아리랑

운학처사 2011. 2. 27. 20:36

 우연한 기회에 아리랑에 대해 관심이 생기어 관련 자료를 살펴보았다. 전에 내가 생각하였던 단순한 노래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아리랑에는 우리의 삶이 녹아 살아 있는 과거요, 현재이며, 미래임을 느끼게 되었다. 관심있는 분들에게 다소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자료를 올려놓습니다.

 

1. 아리랑

한국의 대표적 구전민요의 하나. 어느 시대부터 발생하였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고래로부터 조금씩 첨가ㆍ개조되면서 오늘의 노래가 이루어진 듯하며, 남녀노소 사이에 가장 널리 애창되었다. 아리랑이 넓게 퍼지고 생명이 길었던 이유는 기본 장단이 세마치로서 우리의 정서에 맞을 뿐더러 한말(韓末)에 일제의 암흑기를 통하여 겨레의 비분을 이 노래에 얹어 호소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지방에 따라 여러가지 별조(別調)아리랑이 많고 장단과 사설도 매우 다양하다. 즉 본조아리랑과 신아리랑은 현재의 곡조와 같은 것이나, 그밖에도 밀양 아리랑ㆍ강원도 아리랑ㆍ정선 아리랑ㆍ진도 아리랑ㆍ긴 아리랑ㆍ별조 아리랑ㆍ아리랑 세상 등 매우 많다.


“아리랑 뿌리는 고려말 이색의 한시”

  전국 각지 아리랑의 모태인 ‘정선아리랑’(아라리)이 고려 말 학자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1328∼1396)의 시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리랑 연구가 김연갑(사진) 씨는 곧 출간할 책 ‘아리랑 시원설 연구’에서 이색의 시에 자주 쓰인 어구인 ‘誰知’(수지·누가 알리오)가 강원 정선 지역 백성들에게 한글로 번역돼 민요로 불리는 과정에서 ‘알리→아리→아라리’로 변해갔으며 최종적으로 ‘아리랑’이 됐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김 씨는 정선 지역에서 주장돼온 ‘한시 유래설’과 ‘알리오’의 어원 변천을 연구 근거로 삼고 있다.

정선아리랑비에 적혀 있는 ‘한시 유래설’은 고려 왕조 멸망 후 새 왕조를 따르지 않고 정선 지방에 은거하던 일곱 명의 고려 선비(칠현·七賢)가 비통한 심정을 한시로 읊던 것을 백성들이 한글로 바꿔 부르면서 아리랑이 퍼졌다는 내용이다.

김 씨는 “그러나 당시 칠현이 읊었던 한시에는 아리랑을 유추할 만한 단서가 없다”며 “대신 정선 칠현과 인연이 깊었던 이색의 시에는 ‘수지(誰知)’라는 글귀가 수없이 나온다”고 밝혔다.

특히 △칠현 중 전오륜이 이색의 외종질로 교류가 많았던 점 △고려 유신의 대부 격인 이색의 시를 칠현이 많이 읊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이색 시의 ‘수지’(알리오)가 아라리를 거쳐 아리랑으로 정착됐다고 주장.

김 씨는 아리랑 전문 연구가로 ‘아리랑’(1986년), 전국의 아리랑 가사를 채보한 ‘팔도아리랑기행’(1994년) 등 10권의 책을 펴냈다.


물거품 같은 인생이 출몰하는 이속세에

사문이 점점쇠하니 눈물 자주 흐르누나

까마득한 바람 먼지는 백발에 불어오고

아득한 황천길은 푸른산을 둘러 있네

일평생이 참으로 꿈같음은 잘 알거니와

만사가 한가함이 제일임은 누가 알리오


  (誰知萬事不如閑-수지만사불여한)

   출처=목은시고 제25권, 국역7집



1-1. 정선아리랑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 정선의 구명은 무릉도원 아니더냐 무릉도원 간 데 없고 산만 총총하구나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 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정선같이 살기 좋은 곳 놀러 한번 오세요 검은 산 물밑이라도 해당화가 핍니다 아우라지 건널 때는 아우러지더니 가물재 넘어갈 땐 가물 감실하네

시냇물은 돌고 돌아 한 바다로 가는데 이 내 몸은 돌고 돌아 정선으로 왔네 육칠월 감자싹도 삼재팔란을 겪는데 우리정선 농투산이가 만고 풍상 안겪나

앞 남산 실안개는 산허리를 감고 돌고요 우리 님 두팔은 내 허리를 감싸네 정선 읍내 일백오십호 몽땅 잠들어라 임호장네 맏며느리 데리고 성마령을 넘자

왕모레 자락에 비오나 마나 어린 가장 품안에 잠자나 마나 앞 남산 딱따구리는 참나무 구멍도 뚫는데 우리집 저 멍텅구리는 뚜러진 구멍도 못 뚫네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나즈미 맛만 같다면 올 같은 볼철에도 봄 살아나지 곤드레 개미추는 내가 뜯어 줄게 참나무 뜨렁어는 날 뜯어주게

 

1-2. 정선엮음아리랑

임자 당신 나 싫다고 울치고 담치고 배추김치 소금치고 / 열부김치 초치고 칼로 물 친듯이 그냥 싹 돌아서드니 / 평청 팔십리 다 못가서는 왜 되돌아 왔나

당신은 날 마다고 갈적에 시치고 빼치고 / 행주치마 둘러치고 분홍치마 메치고 / 앞 문 치고 뒷문 치고 앞벽 치칼로 툭쳐 소금치고 / 오이김치 초치고 가장에 야단치고 날마다고 가더니 / 영월 평창 다 못가서 날 찾어왔나

영감은 할멈 치고 할멈은 아 치고 아는 개치고 개는 꼬리치고 / 꼬리는 마당 치고 마당 웃전에 쉬영 버들은 바람을 휘몰아치는데 / 우리집에 서방님은 내를 왜 안치나

우리도 살다 아차 한번 죽어지면 배 한필 돌돌 / 감아 잣나무 댓가래 전나무 연춧대 스물넷 / 상두꾼에 너화 넘차 발 맞추어 홍대 칠성판 / 깔고 덮고 송백목을 울을 삼고 두견새 벗을 / 삼아 살짝 썩을 인생아 남 듣기 싫은 소리를 / 하지를 마라

우리 집에 서방님은 잘 났던지 못 났던지 / 엃어매고 찍어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노가지 / 나무 지게 위에 엽전 열량 걸머지고 강릉 삼척에 소금 사러가셨는데 백봉령 굽이굽이 잘 다녀 오세요

 

2. 밀양아리랑

(후렴)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났네 아리아리랑 얼시구 노다가게


십오야 밝은 달에 님 업스면 단장에 상사로 눈물이 난다 / 심산구곡 깁흔 곳에 오작이 한쌍이 입에 물고 논다 / 엇던에 잡놈이 님 좃타드냐 알고나보면 원수로다 / 잊으리라 잊으리라 굳은 맹서하였건만 창외삼경 세우시(窓外三更 細雨時)엔 또 못 잊어  우네 / 세상에 핀 꽃은 울긋불긋 내 마음에 핀 꽃은 울렁울렁 / 천리를 갈거나 만리를 갈거나 임을 따라 간다면 어데던지 가요/ 내가 죽으면 누가 울어줄까 뒷동산 소나무 매아미가 울어나 줄까

 

날좀보소 날좀보소 날좀보소 동지섣달 꽃본듯이 날좀보소 / 정든님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빵긋 / 아실아실 춥거들랑 내 품에 들고 비개춤이 놀거들랑 내 팔을 비게 / 옥양목 겹저고리 연분홍 치마 열두번 죽어도 난 못 놓겠네 / 물명주 단속곳 널러야 좋고 홍당목 치마는 붉어야 좋다 / 남의 집 서방님은 가마를 타는데 우리 집 저 문뎅이는 밭고랑만 탄다 / 시어머니 죽고 나니 방 널러 좋고 보리방아 물붜농께로 생각이난다 / 산천에 요물은 머루나 다래 인간의 요물은 너와 나로구나 / 영남루 명승을 찾아가니 아랑의 애화가 전해오네 / 저 건너 대숲은 의연한데 아랑의 서른

 


3. 진도아리랑

(후렴)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났네 아리아리랑 얼시구 노다가게


문경새재는 왠 고갠가 넘어올적 넘어갈적 눈물이로구나

세월아 네월아 오고가지를 마라 아까운 이내 청춘 다 늙어간다

한국 최남단 보배섬 진도 인심이 좋아서 살기가 좋네

바람은 손 없어도 나무를 흔들고 이 몸은 팔이 있어도 님을 못 잡는구나

국화는 피어서 서릿발에 울고요 가시낸 자라서 임의 손에 우네요

갈매기넌 어디가고 물드넌 줄얼 몰우고 사공언 어디가고 배뜨넌 줄얼 몰루네

오늘 갈지 넬갈지 모루넌 시상 내가 싱긴 호박연출 단장 넘어가네

알그닥 짤그닥 짜던 베는 언제나 다 짜고 친정에럴 갈거나

청천안 하늘에넌 잔별도 많고 요내야 가심속에넌 수심도 많다

야답세 두번걸이 열두폭 치매 신작로 다 씰고 임 마중얼 가네

놀다가세 놀다나가세 저달이 떴다 지도록 놀다나 가세

십오야 밝은 달은 구름 속에 놀고요 이십안짝 큰 애기는 내 품에서 논다

저기가는 저 처녀 엎으러나 지거라 일쎄나 주는 듯이 보듬어나 보자

큰 애기 젖통은 생길락 말락 산천에 맹감은 불거질락 말락


 

4. 경기아리랑(본조아리랑)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이요 아리랑 띄여라 노다가라


아라사 아차하니 미국놈 믿지 말라 영국은 영 글렀다 일본놈이 일등이다

이씨의 사촌이 되지 말고 민씨의 팔촌이 되려므나

남산 밑에다 장충단을 짓고 군악대 장단에 받들어 총만 한다

아리랑고개다 정거장 짓고 전기차 오기만 기다린다

문전의 옥답은 다 어디로 가고 쪽박의 신세가 웬 말이냐

밭은 헐려서 신작로 되고 집은 헐려서 정차장되네

말 깨나 허는 놈 재판소 가고 일 깨나 허는 놈 공동산 가네

아 깨나 낳을 년 갈보질 가고 목도 깨나 메는 놈 부역을 간다

조선 팔도 좋다는 나무는 경복궁 짓느라 다 들어간다

마고자 실갑에 서양 총 메고 북망산 벌판에 접전가자

경성부내 불은 소방차가 끄고 요 내 가슴 불은 어느 낭군이 끄나

자동 기차는 서양식으로 놀구 우리 님 사랑은 이 내 품에서 논다

할미성 꼭대기 진(陣)을 치고 왜병정(倭兵丁)오기만 기다린다

오라배 상투가 웨 그런고 병자년(內子年) 지내고 않그런가



5. 아리랑의 노래

술을 드신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 그것은 고향의 멜로디 아리랑의 노래 그 무엇을 그리며 부르시는 걸까 그때의 현해탄 아니면 어릴적 고향 산하

과거를 말하지 않는 아버지의 청춘 드라마 그것은 큐우슈우에서 사하린까지 젊은 청춘 밤기차 유리창 너머 보이는 이국 거리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고개로 넘어가네


교포2세 가수 백룡 노래 김경원 번역


1995년 일본 고베 지진 후원금 모금 행사 현장에서 많이 불린 노래이다. 백룡은 배우 겸 가수로 활동하는 재일 교포 2세다.

 

① 오로롱 오로롱바이(이츠키 자장가)

(후렴)

오로롱 오로롱 오로롱바이 오로롱 오로롱 바바노마고


내가 죽거든 길가에 묻어주오 지나는 비가 꽃을 던져 줄거야

꽃은 무슨 꽃 동동 동백꽃 물은 하늘에서 절로 뿌려주지

내가 죽으면 누가 울어 줄까 뒷산 소나무 매미가 울어 줄거야 매미가 아니고 여동생이요 귀여운 여동생 매미소리

애기 업고 자장가 부르기가 싫어 그러나 부모에게 야단 맞기도 무서워 왜 이애는 이리 보채기만 하나 젖을 줄래도 내게는 젖이 없어

나는야 추석을 기다린다 나는야 추석이 와야 집으로 간다 나는야 간진 간진 저들은 신분이 있는 사람들 좋은 허리띠에 좋은 옷을 입었네 나는야 간진간진

 

② 신나이 아리랑

(나레이션)

나는 1940년 16세 때에 조선학교에서 담임인 일본인 교사와 함께 경찰서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헌병에게 ‘위로부터의 명령이다. 명령에 거역하면 죽을 줄 알라’고 협박을 받으며 몸이 더렵혀진 위안부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셀 수도 없는 수 많은 일본 병사들에게 몸과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어 저의 인생은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저는 결혼할 수 없고 아이도 낳을 수 없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그 누구 때문에 저는 이렇게 비참하게 되어 버렸단 말입니까?? 밉습니다! 분합니다! 밉습니다! 분합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노래)

아리랑 고개 한가운데에서 나아 갈까 되돌아 갈까 망설이며 울었습니다 / 고개를 넘으면 바로 고향 땅입니다 /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이시여 / 귀여운 남동생이 그곳에 있소 / 사랑스런 여동생도 기다리고 있소 / 만나고픈 심정은 산과 같으나 이런 비참한 몸으로 / 어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요

한밤의 별이 밝게 빛나건만, / 이 내 가슴 고통은 가실 길 모르오 / 밤하늘의 기러기는 어디로 가나 / 나의 님은 어디에 / 우리들만 남아 있는 타국 땅

남쪽 나라까지 손을 뻗어 / 처녀 여인 분별도 없이 붙들리고 붙잡혀서 얼굴도 모를

 

③ 아리랑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일본 땅 좋다고 누가 말했나 일본 땅 와 보니 배고파 못 살겠네

배고파요 어머니 보고 싶어요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내었오

어머니한테 쌀가루가 왔네 쌀가루 받아들고 눈물만 흘렸네

보따리 풀어서 쌀가루 집어먹고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 불러봤네

어머니 소리도 크게 못 부르고 감독이 무서워서 가만히 불러봤네


월간 <태백> 1995년 10월호 김경원의 글 <일본 속 아리랑> 중에서


나가사키현 후루가와 오오미네 탄광의 조선인 광부들이 부른 아리랑으로 전해진다. 이 탄광은 "아리랑탄광"으로 불려진다. 이런 연유로 일본의 여러 곳에 '아리랑고개', '아리랑마을', '아리랑탄광'과 같은 지명이 있게 되었다. 1992년 일본에서 발행된 <지도에 없는 아리랑고개>라는 책 속에는 이런 상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④ 아리랑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쉬며 가세 쉬며 가세 하늘의 달님 질 때까지

건너 편 산은 백두산 소중히 소중히 넘어가세


일본「조선신보」1994년 6월 11일자에서

 

⑤ 아리랑 모정

모국을 떠나온지 몇해이던가 / 그리운 노래여 불러보는 아리랑 / 오늘도 저하늘가 뜬 구름만 흐르고 / 어머님 자장가가 가슴속에

꽃피는 아침이나 달뜨는 저녁 / 못 잊어 못잊어서 불러보는 아리랑 / 사나이 성공하여 고향가는 그날엔 / 어머님 등에 업고 이 효도를


강영철 모국 방문 기념음반 <지구레코드 LMS 120091>에서


음반에는 "한국이 낳은 동양제일의 크루너 가수! 강영철"로 되어있다. 음반 타이틀은<이별의 밤차>

 

⑥ 아리랑 제주도

북제주 남제주에 돌도 많고 물도 많아 / 삼성혈 고양부가 탐라국을 세웠다네 / 서귀포 비바리도 모슬포에 사공님도 / 아리랑 가락에 미역 따고 노를 젓네 / 아리랑 제주도가 아리랑 제주도가 / 나는 좋더라

한라산 백록담도 천지연에 폭포수도 / 일출봉 기암절벽 해가 뜰 때 장관일세 / 성산포 쌍돛대가 풍어기를 날리면은 / 아리랑 세월 따라 임이 가고 임이 오네 / 아리랑 제주도가 아리랑 제주도가 / 나는 좋더라

주로 조총련 동포들이 부르는 가요 아리랑이다. 요코하마와 오사카 지역에서 카세트 테잎으로 제작되어 유통되고 있다. 김연갑의 <팔도아리랑기행>을 참고할 수 있다.

 

⑦ 아리랑 부산항구

연락선 오고가는 아리랑항구 / 여기가 부산이다 아리랑항구 / 자야도 아짐매도 신바람나면 / 구성진 아리랑을 합창한다네 응 / 아리랑 내 고향은 부산이라네

무역선 오고가는 아리랑항구 / 남쪽에 관문이다 아리랑부두 / 남포동 광복동에 꽃등불피면 / 오륙도 등대불도 눈짓을 하네 응 / 아리랑 내고향은 심심도 좋다


앞의 '아리랑제주도' 상황과 같다

 

⑧ 나의 아리랑

나라 잃고 살길 찾아 헤메던 이 몸은 / 이국 살이 사십년에 설움도 많았네 / 청춘시절 떠나온 고향이건만 / 어이하여 이다지도 그립습니까 / 아 - 그리운 고향 / 언제나 돌아가리

다시 오마 기약하고 떠나온 내 조국 / 그리워서 긴긴 세월 이 가슴 저미네 / 가고파도 못 가는 고향을 위해 / 이 몸은 이 어데서 살아갑니다 / 아 - 그리운 고향 / 언제나 돌아가리


재일 조총련 민족학교 음악 교과서에 오른 작품으로 일본 내에서 널리 불려지는 노래다. 이철우 작곡이다.

 

⑨ 청하아리랑(淸河로 가는길)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아리랑 고개를 나는간다.


제1장 - 여행길

아시아의 넓은 땅 보고 싶어 홀로 길을 떠났소 / 배로 건넌 현해탄, 부산항구 / 아침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부두에서 버스 타고 해운대 바다를 보았소 / 여기가 아버지의 고향이라 생각하니 / 길가는 사람들 얼굴 어쩐지 낯이 익네

우리말도 모르는 슬픔인가 손짓발짓으로 대화를 했소 / 나는 이곳을 가고 싶다고 한반도 지도를 펴놓고 / 경상남도를 가르켰네

버스를 몇번인가 갈아타고 겨우 경주로 가 / 리쿠사쿠 질머지고 인파속을 걸었다 / 마음은 머나먼 노스탤지어

배가 고파 들어간 식당에서 / 옆사람이 맛있게 먹고 있는 지걸 달라고 / 어설픈 가슴으로 주문을 했네

아버지의 고향 청하는 한참을 더 가야 하는 곳 / 다시 버스로 산을 넘고 넘으니 / 운전수가 말하네 여기가 청하하고

아득히 머나먼 길 그 끝에 산이 있소 / 그 옛날 아버지가 걸었던 이 길 / 점점 달아오르는 이 내 마음

이제사 왔느냐며 고향이 팔벌려 반겨주네 / 대지는 날 안으려 바람을 일으키네 / 홀로 걷는 청하로 가는 길


제2장 - 고향

동사무소로 달려가 호적을 뒤졌소 / 아저씨 한 분이 친절히 통역해 줘 / 아버지의 호적을 찾았소

거기엔 내 이름도 들어있어 기쁘고도 흐뭇한 아득한 느낌 / 아버지가 태어난 곳 가보고 싶다고 / 아주머니께 부탁해 함께 가 보았소

마을에서 떨어진 강가 집 한채 / 거기 사는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 여기가 박씨네 집이었다 하네

아버지가 태어난 곳으로 난 드디어 온거지 / 하룻밤이라도 거기 홀로 있고 싶었소 / 산 위엔 잔설이 남아있었네

친절한 마을사람들에게 인사말을 하며 / 왔던 길을 다시 홀로 걸어나왔소 / 몇번이나 몇번이나 그길을 뒤돌아 봤네

마을을 나오니 펼쳐지는 푸르른 바다 / 내 이름은 '영일'인데 그 바다는 '영일만'이라네 / 그 이름을 나는 처음 알았네

아버지와 아들 사이 국경이 있을손가 / 희미한 기억들 하늘처럼 맑아져 / 마음구석 까지 맑게 개이네

슬픈시대가 있었음을 잊을 수야 없지만 / 과거보다는 내일을 향해 사는 것이 / 사랑의 길이라는 걸 깨달았다오


제3장 - 추억

포항에서 부산가는 열차를 탔소 / 그들과 똑같은 도시락을 먹으며 / 밤기차의 창밖을 내다보았소

돌이켜보니 난 아버지의 인생을 몰랐다오 / 고생 많은 홀어머니 밑에서 난 / 걱정근심만 끼쳤다오

우리집은 폐품수집으로 먹고살았소 / 나도 학교오갈때는 자석에 끈을 달아 / 철못을 주우며 걸어다녔다

소학생 무렵 슬픈일이 있었네 / 어느날 경찰이 어머닐 끌고가 / 일년동안이나 되돌려 보내질 않았네

잘라온 전선줄을 샀기 때문에 / 장물취득이라는 죄명으로 우리고장 신문에도 났었다오 / 어머닌 형무소로 끌려갔다오

그때부터 학교에선 따돌림 뿐 / 놀자고 졸라도 언제나 외톨이 / 내가 그때 처음 들은 '조쎈징'

내 마음은 점점 삐둘어져만 갔소 / 복수를 맘먹으니 싸움의 나날들 / 어느새 난 불량배가 되어 있었네

어머니가 보석되던 날 형님과 형무소를 갔소 / 철문 저편 어머니의 모습이 보일 때 / 난 소릴 지르며 형무소벽을 기어올랐네


제4장 - 청춘

15살 때 학교가 싫어 집을 나왔소 /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어 / 홀로 흔들리는 야간 열차를 탔소

고베 역에 내려 산노미야 거리를 걸었소 / 눈에 띈 다방 구인광고 / 나이를 속여서 접시 닦기를 했소

처음으로 남의 밥 먹는 서러움 사무쳐 / 돌아가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 되돌아갈수는 없어 더부살이 일로 반-년

아무래도 이런 일이 내겐 안맞아 / 이번엔 미군기지 거리로 가 / 이와구니(岩國)외인 빠 일을 얻었소

65년 그때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다오 / 전장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술과 여자에 취해 / 매일 밤 축제 분위기였다네

그곳엔 흑백의 병사들이 뒤범벅되어 / 째즈와 부르스와 칸트리음악이 있는 곳 / 난 아메리카를 동경했다네

그러던 어느날 전보 한통을 받았소 /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결핵으로 입원한 / 그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젊었을 적 심한 고생이 아버지를 병들게 했소 / 죽은 아버지의 얼굴 앞에서 난 울지 않았다오 / 아버지와 함께 살아 본 적 없었기 때문에


제5장 - 아메리카

21살 때 난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떠났소 / 브라질 행 '히노마루'를 타고 일본을 떠났소 / 편도 티켓의 여행길

로스앤젤래스와 샌프란시스코를 가보았다 / 엄지손가락 올려보이며 낯선 나라를 방황했었다 / 오른쪽 왼쪽도 어딘지 모른채

넌 누구냐고 물으면 '코리안 저팬니즈' / 일본에 태어나 자랐지만 조선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라오 / 이국 땅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렇게 말을 했다

인종의 도가니 뉴욕은 별의별 놈들이 다 살고 있었오 / 나라와 말은 달라도 그들은 함께 살아가지 / 난 그들의 접시를 닦았네

일을 마치면 싼 술집 카운터에서 / 한 잔에 25센트 드래프트 맥주를 마시며 / 쥬크박스를 들었네

통기타 어깨에 걸머지고 돌아온 건 25살 때 / 난 결심하고 도쿄로 나섰다 / 난 가수의 꿈을 버릴 수 없었네

아오야마(靑山) 아카사카제(赤坂) 록봉기(六本木)나이트클럽 / 매일밤 노래를 부르겠다고 나서봤지만 / 그 어느 가게에서도 웃음거리가 될 뿐

그래도 나는 꿈을 버리지 않았네 / 시부야의 도겐쟈카(道玄坂)인덕의 작은 술집 / 그곳에서 겨우 발견한 나의 무대


제6장 - 가족

외톨이 총각인 내게 어느날 나타난 여인 / 내게 따스함을 가르쳐 주었지 / 난 다정한 그녀와 살기 시작했네


아버지 어머니가 안계시는 이 세상 / 허나 내 몸에 흐르는 어쩔 수 없는 뜨거운 피 / 그것이 날 청하로 달려가게 했다오 / 몇 번인가 나라문제로 아내와 싸움을 해야만 했소 그녀는 우리들 사이에 국적 따윈 없다고 / 슬픈 얼굴을 하며 울고 울었다오

고집부리며 사는 것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 자유롭게 살 결심을 했소

흔들리는 부산행 밤기차에서 / 나의 인생을 생각해보니 / 내가 이제부터 돌아갈 곳은 옆나라 일본이란 나라 / 내가 태어나 자라난 나라 / 부산항에 서서 배를 기다리고 있었네 / 배에 올라서 멀어지는 부산항을 보니 / 아버지 나라가 이윽고 멀어 지네

나는 다시 내 집으로 돌아와 / 아이와 아이들을 보듬어 안았소 / 가족이 나의 나라였었소

나의 뿌리는 대륙반도 조선이란 땅 / 내 아버지는 그 옛날 바다를 건너왔던 사람이라고 / 자자손손 대대로 전해주리라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를 나는 간다


(나레이션)

아버지의 혼은 산을 넘고 바다건너 사랑하는 고향의 대지로 어릴 적 보았던 풍경, 환희와 함께 되살아나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들 그 노래소리에 영원한 잠으로 아버지로부터 아버지에게 어머니로부터 어머니에게 아리랑

 

������������ 상항(桑港)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뽕따러 가려거든 산으로나 갈 것이지 수만리 갯가로 와 봉변을 당하나


상항은 샌프란시스코를 말하는 것으로 초기 이민 간 교민들이 지어 부른 것으로 전해진다. 뽕나무 '桑' 字를 쓰는 지명과 배를 타고 내린 항구 도시임을 빗대어 쓴 것이다. 한편, 하와이 교민들의 아리랑 상황은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 제1권 마지막 부분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 님 사랑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오다가다 만난 님이지만 살아서나 죽어서나 못 잊겠네


1930년대 말 이승만 박사가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주었다는 아리랑이다. 1988년에 이화장이 발간한 문건에는 이에 대해 '이승만 박사가 독립운동 시 아내 프란체스카 여사를 위해 지은 가사'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 인연인지 프란체스카 여사는 유언에서 아리랑을 장송곡으로 해달라고 했고, 실제 1992년 3월 24일 장례식에서 아리랑이 연주되었다. 여사는 더불어 "이승만대통령이 '남북통일'이라 쓴 친필 휘호를 덮고 태극기와 성경책을 넣어달라" 해서 그대로 시행했다. 이 아리랑 역시 단순한 연정의 노래가 아니라 망명객의 외로움을 달래 주었던 힘의 노래로 불렸던 것이다.

 

������������ 아리랑 고개(ARIRANG HILL)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면 소원에 성취를 하리로다.

높은 하늘에 별도 많고 나에 인간엔 말도 많다


1935년 안익태가 필라델피아 'Elcan Vogel'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편곡한 아리랑의 노랫말이다. 이 악보의 표제는 The first manifestation of the Korean Music by EAKTAI AHN from Korean Life for Voice and Piano이다.

 


������������ 아리랑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아리랑 고개는 열 두 구비 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 / 청천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 아리랑 고개는 탄식의 고개 한번 가면 못 오는 고개 / 이천만 동포야 어데 있느냐 삼천리 강산만 살아있네 / 지금은 압록강 건너는 유량객 삼천리 강산도 잃었구나


<Song of Ariran>(뉴욕 존데이 출판사 1941 김산 님웨일즈)에서


위의 책은 국내에서 1984년 조우화 번역「아리랑」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는 13 곳에서 아리랑을 언급했다. 그 중 2편이 '아리랑'과 '아리랑옥중가'이다. 한편 공동저자인 님 웨일즈 여사는 1994년 인터뷰에서 "아리랑은 세계적인 그랜드오페라와 영화의 소재"임에도 작품화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애석해 한 바 있다. 특히 직접 시놉시스를 만들어 놓았다고 까지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97년 작고했다. 이분의 뜻은 우리에게 남긴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는 겨우 나이 서른두 살의 / 멋진 젊은이었지 /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려 노력했고 /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네

그는 아리랑 열두고개를 넘었지 / 마지막 고개는 그의 운명 / 그는 1938년에 / 사형당했다고 했네

장엄한 오페라의 비극과도 같은 / 선과 악의 싸움 / 중세시대와도 같은 어둠에 의해 / 새로운 사상이 파괴되였네

그는 아리랑 열두고개를 넘었지 / 고개마다 대패했지만 / 스스로에게만은 승리를 얻었네 / 그곳에서만은 후퇴하지 않았네 / 그는 자신에게 명령했지 / 고문과 고통을 알았지만 / 죽음은 두렵지 않다고 / 자신에게 명령하고, 또 명령했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다면 / 새로운 종교가 생기지는 않았을 것, / 우리에겐 신성함을 기릴수 있는 / 순교자가 필요하지   (님 웨일즈가 김산을 기억하며 최근에 지은 시)


다음은 김산이 중국에서 즐겨 부르던 아리랑연가이다.


������������ 아리랑연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구비 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

떠나는 님은 잡지를 마라 못보다 다시 보면 달콤하거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에 물새는 못사네

나를 버리고 가시는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청천하늘에 별들도 많은데 구름 뒤에 날보고 웃는 이 누구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아리랑옥중가

운명의 선고를 기다리며 나 이제 생사 갈림길에 섰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마지막 고개로 넘어가련다

아리랑 고개에 간이역 하나 짓고 집행인 기차를 기다려야하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마지막 고개를 넘어가련다

동지여 동지여 나의 동지여 그대 열두 구비에 멈추지 마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열세 구비를 넘으련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 두 구비 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

청천하늘에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탄식의 고개 한번가면 다시는 못 오는 고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천만 동포야 어데 있느냐 삼천리 강산만 살아 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지금은 압록강 건너는 유랑객이요 삼천리 강산도 잃었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사탕수수아리랑

우리가는 곳 어디나 사탕수수밭 우리 숨쉬는 곳 어디나 사탕수수 밭, 차가운 밭고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아리 아리랑이요오 아리랑 파도를 넘어나 간다 원수의 아리랑 사탕수수 아리랑 양키들 속에서 우리네 삶은... 꿈꾸는 나라 행랑채 그 어는 변두리 쯤에서 세종대왕 영어에 배인 아, 김치냄새를 어쩔거나 어쩔거나 에라! 불러라 아리랑이나 불러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파도를 넘어나 간다 어쩔거나 어쩔거나 모두 깡그리 잊어 버렸으니 노래마저 잊어 버렸으니 어쩔거나... 우리 가는 곳 어디나 사탕수수밭 아리랑 가락마저 없는 사탕수수밭, 그 팍팍한...

조심하세요 사탕수수 날카로운 잎새에 손이라도 베이면 베이면 붉은 피 가슴에서 철철... 눈물처럼 철철철... 아세요, 고향에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나 하시냐구요? 끝내 미국사람은 될 수 없어 김치 목청으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끝끝내 끝끝내 피는 어쩔수 없어 단군 가락으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안타까운 사탕수수 아리랑...

문득, 태평양 갈매기 되어 한 마리 서러운 갈매기 되어 아리랑 아리아리랑... 날며 울며 끄여 끄여 아리랑 아리랑... 그 아우성 모두 차거운 파도에 갈아앉아 버리고 긴 그림자만...

핏빛 노을 깊이 패인 사탕수수밭 그림자 깊고 긴, 그 사이를 우리 오늘도 헤매 서성인다 온 몸 한가득 시리던 반도의 햇살 그리며 그 따스하던 어머니 손길 같던 그 햇살 그리며 멍든 맨발로 오늘도 헤매 서성인다 사탕수수밭 빌딩 사이사이 아스팔트 위에도 오만히 뻗은 프리웨이 바닥에도 사탕수수밭, 그 팍팍한 밭고랑 나성바닥 뉴욕 저 알라스카 땅에도 빽빽히 사탕수수밭, 한서린 사탕수수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이 작품은 '서울 말뚝이'의 재미 극작가 장소현 선생의 서사시 '사탕수수아리랑'의 앞 부분으로 미국 이민사를 작품화한 것이다.

 

������������ 민들레아리랑

민들레 샛노란 꽃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더욱 곱게 빛나네 뜨거운 불길에도 타지 않는 민들레 샛노란 아리랑 민들레 아리랑 아리랑 민들레 아리랑


LA 지역 한흑 갈등을 소재로 한 연극 <민들레아리랑>에서 불려진 것이다. 재미 극작가 장소현 작시다.

 

������������ FRAGRANCE OF SPRING / THE STORY OF CHOON HYANG

Arirang, Arirang, Arariyo, We now go over the Arirang hill. Like so many stars in the sky Human life has troubles, this and that. Where the coal burns smoke arises, But where my heart burns, Nothing! Nothing! He who deserts me and goes away Will have sore feet Within a mile. Arirang, Arirang, Arariyo, We now go over the Arirang hill.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하늘엔 많은 별들이 있고요 우리네 인생 길 어려움이 많도 마. 연기처럼 타오르는 곳, 그곳은, 이내 가슴이 타는 곳, 아니요! 아니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十)리도 못 가서 발병나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러시아아리랑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내가 왜 왔나 내가 왜 왔나 / 우리 님 따라서 내 여기 왔지

사할린이 좋다고 내 여기 왔나 / 일본놈들무숩어 내 여기왔지

우리 조선은 따뜻한데 / 그땅에 못살고 내 여기왔나

우리 영감님은 왜 왔다던가 / 나만 혼자두고 자기만 갔네


유즈노 사할린스크 거주 정성애 할머니가 부른 아리랑. 할머니는 경남 삼천포시가 고향인데 18세 때 사할린 도로샤 흐조로스끄 탄광에 징용으로 끌려온 남편을 따라왔다 정착케 되었다고 한다. (신나라레코드 1995 '해외동포아리랑' 해설 중에서)


������������ 치르치크아리랑

수십 년 전 이 고장에 와 우리 심은 백양나무 자라 치르치크 풍년벌을 지키는데 우거진 녹음 농부들의 쉼터되었네 오늘도 쉴참에 거기 모였구나 목화 따는 꽃나이 처녀들아 풍년벌 탐스러워 흥겨워하누나. 조선처녀 우즈벡 처녀들이 여러 태머리 우즈벡 처녀들이 넘짓 않더니 쥐는구나 돔브라를 어쩌면 그리도 잘타느냐 조선민요 아리랑 곡조를.

목화송이 만지는 손이 그리도 날쌘줄 뉘가 알랴 돔브라 줄 퉁길제 그손이 나비처럼 춤을 추는구려! 일처럼 노래즐기는 처녀들 돔브라 가락에 맞춰 부르네 청아한 아리랑 노래를 흥겹게 흥겹게 부르네

노래처럼 춤도 즐기는 처녀들이 아리랑 곡조에 성수나니 서로서로 손잡고 춤을 춘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온 아리랑아 해마다 만풍년드는 치르치크 벌에 네오늘 친선의 멜로디가 되었구나!


1986년 4월 1일자 <동아일보>를 통해 국내에 알려진 러시아 알마하타에 사는 김세일씨의 詩이다. 만일 이를 음악 작품화한다면 재러 교포가수 루드밀라남이 부르면 제격이라고 생각된다.

 

������������ 중국아리랑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넘어간다


조선의 조선은 어데를 가고 북조선 남조선에 가슴만 저민다 / 아리랑 아리랑이 얼마나 좋은지 밥푸다 말고서 어깨춤 춘다 / 생치쌈 먹을제는 고추장이 좋구요 전국장 담을제는 묵은콩이라네 / 백두산이 높다고한들 시아비처리사 높으리 고초후초 맵다한들 시어미처리사 매우리

압록강 뗏목은 물 따라만 가는데 없는 살림 이 내 몸은 품팔이 간다 / 압록강 뗏목에 몸실은 낭군 키잡고 가는 곳은 신의주란다 / 철모르는 이 몸을 간도 땅에 두고 아버지 어머니 어데를 가셨나 / 밥달라 야단치며 내가 울고 울어도 꿰진 자루 옆에 낀 엄마 한숨만 쉬네


정선아라리연구소소장 진용선씨가 1992 중국 길림요녕흑룡강성의 동포사회에서 취재, 기록한「정선아라리」(1995집문당)에서 선별,인용한 것이다.

 

������������ 아이령가

(후렴)

아이령 아이령 아라리령이요


아이령 고개로 넘어나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님은 十里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네

아이령 고개로 너머간다 나를 데리고 가시는님은 百里라도 날라서 꿈 같이 가네

너머가 봐라 울고 가 봐라 눈물만 하염없이 쏘다질거다

임이 없는 이 세상은 달 없는 저 하늘도 같은 신세


강원도 정선 <아리랑박물관>준비 사무국 소장(1928년 필사) 자료에서


아이령의 한자표기는 俄夷嶺이고, 아라리령의 한자표기는 俄羅里嶺이다.

俄夷嶺峙은 북간도와 러시아 국경에 있는 고개라고 전해진다.

 

������������ 장백의 새 아리랑

장백산 마루에 두둥실 해 뜨니 푸르른 림해는 록파만경 자랑하며 설레이누나 칠색단을 곱게 펼친 천지의 폭포수는 이 나라 강산을 아름답게 단장하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가 났네 장백산은 랄라랄라랄라라 라라라라라라라 우리네 자랑일세

장백산 밀림에 보물도 많아 탐스런 인삼꽃 노을 처럼 붉게 붉게 타누나 숲속에는 노루사슴 껑충껑충 뛰놀고요 미인송요 두손 들어 너울 너울 춤을 추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가 났네 장백산은 랄라랄라 랄랄라 라라라라라 우리네 자랑일세

그 옛날 천지엔 선녀 내렸고 오늘은 세월 좋아 벗님네들 이 고장에 찾아오누나 친선의 꽃 활짝 피는 우리네 장백산은 조국의 명산이요 연변의 자랑일세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가 났네 장백산은 랄라랄라랄라라 라라라라라라라 우리네 자랑일세 장백산은 랄라랄라랄라라 라라라라라라라 음 우리네 자랑일세


박창묵교수의 논문 <중국 조선족과 아리랑>(1999(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편 <아리랑의 세계화방안> 중에서)


연변대학 박창묵교수(민속학)에 의하면 이 노래는 우리 동포들은 물론 주변 소수민족인 백족의 가수들에게도 널리 불려진다고 한다. 1997년 길림민족 록음록화출판사가 발행한 4장의 CD로 발매된 '장백의 새 아리랑'에 수록되어 있다.

 

������������ 아리랑망향가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만주벌 묵밭에 무엇보고 우리 옥토를 떠났거나 언제나 언제나 돌아가리 내나라 내고향 언제가리

압록강 건널 때 지은 눈물 아직도 그칠줄 모르노라 언제나 언제나 돌아가리 내나라 내고향 언제가리

밤마다 그리운 코 고무신은 백두산 마루를 넘나드네 언제나 언제나 돌아가리 내나라 내고향 언제가리


<아리랑> (김연갑 편1986 현대문예사)에서


������������ 아리랑연곡

(후렴)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봄바람 춘풍에 곱게 핀 앵두꽃을 머리다 곱게곱게 꽂아를 주니 내 사랑 깊은 정 출렁 파도를 치네 저 건너 저 처녀 눈매를 보소 겉눈을 감고서 속 눈만 떳네 저 건너 저 총각 날 보고 웃네 웃기는 왜 웃어 말이나 걸지


������������ 광복군아리랑

(후렴)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요 광복군 아라랑 불러나보세


이조왕 말년에 왜 난리 나서 이천만 동포들 살길이 없네

일어나 싸우자 총칼을 메고 일제 놈 처부셔 조국을 찾자

내고향 산천아 너 잘 있거라 이네 몸 독립군을 따라가노라

부모님 처자를 리별하고서 왜놈을 짓부셔 승리한 후에

태극기 휘날려 만세 만만세 승전고 울리며 돌아오리라

우리네 부모가 날 찾으시던 광복군 갔다고 말 전해 주소

광풍이 불어요 광풍이 불어요 삼천만 가심에 광풍이 불어요

바다에 두둥실 떠오는 배는 광복군 싣고서 오시는 배래요

동실령고개서 북소리 둥둥나더니 한양성 복판에 태극기 펄펄 날려요


밀양아리랑 곡조이다. 광복군 '제3지대가'를 작사한 장호강 장군의 증언에 의하면 1940년 광복군 성립과 동시에 본토 상륙작전을 준비하며 군가로 부른 것이라고 한다. 현재 이 노래의 전승지역은 중국 동포사회와 충남 예산지역이다. 위의 노랫말은 박창묵교수의 논문 <중국 조선족과 아리랑> ('99 한민족아리랑연합회 학술세미나 자료집〉에서 보완, 정리한 것이다.

'동실령고개'는 황해도와 경기도 사이에 있는 고개다.

 

 ������������ 기쁨의 아리랑

(후렴)

어서 넘어라 어서 넘어라 에헤에요 기쁨 싣고 돌아오는 아리랑 고개


울며 넘든 피눈물의 아리랑 고개 한번 가면 소식 없는 탄식의 고개 엎어지고 쫓겨서 흘러가더니 기쁨 싣고 떼를 지어 뛰 넘어 오네

꽃도 피고 잎도 피는 아리랑 고개 우리 부모 뼈를 묻은 아리랑 고개 막대 끌고 돌아보며 흘러갔더니 원수 갚고 떼를 지어 뛰 넘어 오네

붉게 붉게 무궁화 핀 아리랑 고개 웃음 소리 넘쳐나는 승리의 고개 원수 피로 삼천리에 땅을 걸구고 보금자리 터 세우며 뛰 넘어 오네


������������ 새 아리랑(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새로운 이 마을에 봄이 왔네 보슬비 내리여 땅이 녹고 풍기는 흙 냄새 구수하다 뻐국뻐국 뻐국뻐국 뻐국뻐국 뻐국새 밭가리 재촉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뻗어가는 이 마을에 봄이 왔네 희망이 넘치는 넓은 들에 거름내는 우마차 오가누나 음매음매 으음매 음매음매 어미소 송아지 부른다


채택룡 작사, 허세록 작곡의 창작민요이다. 이 노래는 1940년 5월 21일 서안에서 공연된 연극에서 불렸던 것으로 "서안에서 김구선생 령도하에 있던 <한국청년전지 공작대>가 대형 가극 '아리랑'에서 부른 것이다. 여기서 아리랑은 겨레의 울분을 담은 비장한 노래”라고 전해진다. (연변 김진균선생의 논문 <중국의 새 아리랑>에서)

 

������������ 새 아리랑(2)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거라


쪽배기 차고 넘던 고개 기쁨의 웃음띠고 돌아들 오네

숨 잘 쉬는 백두산 줄기 피여서 만발한 무궁화 지네

삼천리에 나팔 소리 이 강산 땅덩이 꽃밭이 되네


<계간 북소리> 봄호 (1995) 고태우의 글 <대륙으로 가는 길>과 연변 김진균 선생의 논문 <중국의 새 아리랑>에서


이 아리랑은 중국 동포사회에서 1940년대 초부터 불려온 것으로 동포사회에서는 "삼천리에 나팔 소리를 울려 이 강산을 꽃밭으로 만들 수 있다는 승리의 신심이 가득한 낭만의 아리랑"이라고 전해진다.

 

������������ 새 아리랑(3)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열두고개 넘어를 왔소 비바람 사납던 인생의 고개 구슬픈 아리랑에 청춘이 저물었소

시집살이 석삼년에 옷고름 썩고 물레바퀴 빙빙 비운만 감겼으니 가야금만 열세 못 가슴에 박고 줄줄아 열세가락 애를 뜯었소

당의 밝은 빛발 밀림에 비치여 희망의 고개길에 무지개 섰소 해발빌어 천만가락 금줄을 메워 오리오리 열세오리 한을 풀었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새 고개 넘어를 가오 넘을수록 높아가는 행복의 고개 황금의 메부리에 노을 피였소


연변대 조성일 선생이 월간지 <진달래>에 발표한 논문 <시의 화원에 피어난 진달래>(1984) 중에서

 

������������ 쪽박의 아리랑

(후렴)

아라린가 쓰라린가 한숨인가 아라리 쪽박차고 넘든 고개


삼천리 강토를 등뒤에 두고 쓸쓸한 북만주 뭣하러 왔나

원수로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쪽발이 왜놈이 원수로다

어머니 아버지 내말 듣소 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일년 열두달 지은 농사 북간도 갈 차비 부족이라네

산 넘고 강 건느면 내 고향이건만 어이하여 내 못가고 한숨만 짓나

내 고향 옥토는 어찌 되고 쪽박 신세가 왠 말인가

날 버리고 가시는 님 가고 싶어 가나 북간도 벌판으로 돈벌러 가지

북망아 산천아 말 물어보자 고향 그려 죽은 무덤 몇몇이라더냐


<빼앗긴 조국 끌려간 사람들>(1995아세아문화사편)에서

 

������������ 아리랑 나의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나의 아리랑 아리랑 그대는 어데 갔댔소 운명이 이끄는 고개 너머로 천근 무게 발걸음 억지로 떼던 날 버리고 가셨던 아리랑

황혼 깃든 적막한 산비탈에서 엉클어진 가시덤불 헤치며 열두고개 넘나들던 십년 그 십년 허송세월 아쉬워 여명의 서광 찾아왔소

통분으로 몇 년이런가 침묵으로 흘러온 십여성상 치솟는 그 원한 씻으려 쌓였던 노래 화산마냥 터치려 백화가 다퉈 피는 꽃동산에 찾아 왔소

왔으니 우리 진한 댕기마냥 희망의 노래 시로 엮으며 문예화원속에 향기되어 풍겨가기요 고향 찾아온 아리랑

은빛 담뿍 담은 들판 아침이 밝아오오 얼음에 얽매였던 대지 고요한 꿈에서 깨여났소 아리랑도 찾아 왔소

발병도 수심도 없이 살 날 돌아 청청 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새살림엔 웃음꽃도 많다오 고목에도 꽃피는 새봄에 목청껏 부르기요 아리랑 아리랑 나의 아리랑


연변 동포 계간지 <아리랑>(1984)에서

 

������������ 내 고향 아리랑 총각

(후렴)

아리아리아리 얼싸 좋네 스리스리스리 절싸 좋네 휘파람도 아리랑 코 노래도 아리랑 아리랑만 흥얼대는 총각 되었소


살림살이 쪼들리여 웃음도 없던 뒤 마을 덜목총각 노래들으소 둥굴소 사 놓고 아리아리랑 팔간집 지어놓고 아리아리랑

잘 벌어서 잘 살라는 이 좋은 세상 기쁨 절로 웃음 절로 흥타령 절로 텔레비 사 놓고 아리아리랑 녹음기 띄워 놓고 아리아리랑

백양나무 가지에서 까치만 우니 그 총각께 하루건너 경사 있다오 오토바이 사 놓고 아리아리랑 시내 처녀 마중간다 아리아리랑


<새노래> 제4집 (연변1986)에서

 

������������ 사과배 따는 처녀

연분홍 진달래야 춤 추어다오 우리마을 과수나무 꽃 피여 난다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사과배는요 소문이 높아서 손님도 많소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사과배는요 삼복철 스리슬슬 녹는 꿀맛이라네

종다리 꾀꼴새야 노래해다오 처녀솜씨 하도 좋아서 범나비 난다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사과배는요 내 고향 좋아서 그 맛도 좋소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사과배는요 늙은이들 잡수시면 젊어진다네

해당패 자동차야 빨리 와다오 우리마음 담뿍 싣고 북경에 간다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사과배는요 연변의 특산이라 자랑도 많소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사과배는요 목마른 갈증이 뚝 떨어진다네


<독창가요집>과 자치주 성립 40돌 기념 출판 <연변가요무대> (고창모 편집)에서


연변의 유행가로 방초선 여사의 노래로 우리에게도 알려진 노래다. 장동훈 작사 최삼명 작곡으로 곡명이 '아리랑'은 아니나 후렴에서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이 고정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아리랑의 범주로 넣었다. '사과배'는 사과에 배를 접합시킨 연변의 특산품이다.

 

������������ 아리랑 불고개 넘어넘어

아리랑 고개는 열두나 고개/ 아리랑 불고개 가시밭 고개/ 넘느니 설음이요 내리느니 피눈물 /피눈물 다 말라 인생도 말랐소

아리랑 고개는 싸움의 고개/ 아리랑 고개에 피어린 자국/ 찾은 건 나라요, 잃은건 혈친/ 되돌아 보면은 꿈길만 같소


1996년 연변 민족출판사발행 <도문강>제5호 소재 류성작 단편소설 <아리랑 불고개 넘어넘어>에서 


도움받는 자료

○ 한민족 아리랑 연합회(arirangs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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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정선아리랑  (0) 2011.03.09
Ⅲ. 밀양아리랑 가사와 의미   (0) 2011.03.04
Ⅱ. 아리랑 해설  (0) 2011.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