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Ⅳ. 정선아리랑

운학처사 2011. 3. 9. 09:50

 

Ⅳ. 정선아리랑



정선아리랑의 구성지고 애절한 소리로 널리 알려진

정선아리랑 소리꾼 김남기 선생님과 배귀연 선생님의 소리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물결은 출러덩 뱃머리는 울러덩

         그대 당신은 어데로 갈라고 이 배에 올렀나


         앞 남산의 청송아리가 변하이면 변했지

         우리 둘이 들었던 정이야 변할 리 있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앞남산 살구꽃으는 필락 말락 하는데

         우리 둘에 정이야 들락 말락 하네


         이밥에 고기반찬은 맛을 몰라서 못먹나

         사절치기 강냉이 밥으는 마음만 편하면 되쟎소


         육칠월 감자싹도 삼재팔난을 젺는데

         대한 청년 남아도 망고풍상을 다 져네


         우릿님 말씨는 얼마나 고운지

         뒷동산 몸푸레 회초리 착착 휘네


         신발 벗고 못 가실 데는 참밤나무 밑이요

         금전 없이 못 갈데는 술집 문전이라


         갈 적에 보니는 젖 먹던 아기가

         올 적에 보니는 술장사를 하네


         술집에 큰 애기는 정을 두니

         냉수만 달라고 했는데 청주만 주네


         왕모래 자락에 비 오나 마나

         어린 가장 품 안에 잠드나 마나


         개고장 가이 포롬포롬에 날가자고 하더니

         온 산천이 다 어우레져도야 종문소식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개고장 가에 고무노리는 무슨 죄를 짓고서

         다 큰 아기 손질에 칼침을 맞는가


         싫으면 말어라 너만이 여자더냐

         산 넘고 물을 건너이면 또 사랑 있으리


         싫으면 말어라 너만이 남자더냐

         산 넘고 강을 건너이면 또 남자 있겠지


         산지당 까마구는 까왁까왁 짖는데

         낭군님 병세는 날로 깊어가네


         앞 남산 실안개는 산허리를 돌고요

         우릿님 양팔은 내 허리를 감네


         오양목 중외 적삼은 첫물이나 좋지

         처녀 색시는 첫날밤이 좋더라


         니 팔자나 내팔자나 이불 담요 깔곗나

         엉틀멍틀 장석자리에 깊은 정 두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


         꼬치밭 한 골을 못 매는 그 자가

         이마 눈썹 매라고 하니는 여덟 팔자로 매더라


         네 발 색경에 가지네 종지깨는 내가 담당할꺼니

         이마 눈썹 여드레 팔자를 잘 가꿔주게


         사고지 못 할 것은 금정꾼 아저씨

         노다지만 나오이면은 간 곳이 없네


         금전을 따를라거던 제멋대로 가구요

         사랑을 할라거던 날만 따라 오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 녹음한 날 : 1994년 3월 15일

        * 녹음 장소 : 정선군 북면 여량1리 녹고마니 김남기씨 댁

        * 노       래 : 김남기(남, 당시 58세), 배귀연(여, 당시 53세)

        * 음원 제공 : 신나라레코드                  



※ 가려뽑은 정선아리랑 가사  


      정선아리랑 가운데 즐겨 부르는 긴 아리랑과 엮음 아리랑 가사입니다.

      이 가사들은 정선아리랑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는 <함께하는 아리랑>

      (1999, 정선아리랑학교)에 실려있는 내용입니다. 파일을 다운받아 사용

      할 때는 출전을 꼭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정선아리랑


1. 긴 아라리                                              

☞  1. 정선의 산세를 그리며 소리를 길게 끌어가며 구성지게 부른다.

     2. 가사의 음절과 어절 끝소리에 흔들림의 변화를 주어 부르는 연습을 한다.

     3. 다양한 가사의 내용을 이해하고 익혀 부르는 연습을 한다.

     4. 가사를 이어서 부르다가 막힐 때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를 부른다.

       서양 음악의 후렴(refrain)과는 달리 정선아리랑에서 ‘아리랑~’은 덧붙임

       (addition) 소리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


간다지 못간다지 얼마나 울었나

송정암 나루터가 한강수 되었오


개구장가에 포름포름에 날 가자구 하더니

온 산천이 어우러져도 날 가자구 안하네


그대 당신을 사모하다가 골수에 든 병

화타 편작이 치료한들 일어날 수 있나


금도 싫고 은도 싫고 문전옥답(門前沃畓) 내 다 싫어

만주벌판 신경(新京) 뜰을 우리 조선(朝鮮)주게


꼬치밭 한 골을 못 매는 저 여자가

이마 눈썹은 여덟 팔(八)자로 잘 가꾸네


꽃 본 나비야 물본 기러기 탐화봉접(探花蜂蝶) 아니냐

나비가 꽃을 보고서 그냥 갈 수 있나


나비 없는 강산에 꽃은 피여 멋하며

당신 없는 요 세상 단장하여 멋하나


날 따라오게 날 따라오게 날만 따라오게

잔솔밭 한중허리로 날 따라오게


내가야 왔다가 간 뒤에 도랑에 물이 뿔거든

내가야 왔다가 간 뒤에 울고 간줄 알아요


네 팔자나 내 팔자나 이불 담요 깔겠나

마틀마틀 장석자리에 깊은 정 들자


노랑 저고리 진분홍 치마를 받고 싶어 받았나

우리 집 부모님에야 말한 마디에 울며 불며 받았네


노랑두 머리에 파뿌리 상투를

언제나 길러서 내 낭군 삼나


눈물로 사귄 정은 오래도록 가지만

금전으로 사귄 정은 잠시 잠간이라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萬壽山)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담배불이야 반짝반짝에 님 오시나 했더니

저 몹쓸놈의 반딧불이가 나를 또 속이네


당신은 거기에 있고서 나는야 여기에 있어도

말한 마디 못 전하니 수천리로구나


당신은 나를 알기를 흙싸리 껍질로 알아도

나는야 당신을 알기를 공산명월로 알아요


당신이 날만치만 생각을 한다면

오동지 섯달에도 진달래가 피지요


당신은 왔다가 그저 간 듯 하여도

삼혼칠백(三魂七魄)의 맑은 정신은 뒤따라간다


명사십리(明沙十里)가 아니라면은 해당화(海棠花)는 왜 피며

모춘삼월(暮春三月)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울어


멀구다래를 딸려거든 청서듥으로 들고요

이내 몸을 만날라거든 후원별당으로 들게


무정한 기차야 소리말구 가거라

산란한 이내 마음이 더 산란하구나


물결은 출러덩 뱃머리는 울러덩

그대 당신은 어데로 갈라고 이 배에 올랐나


물한동이를 여다 놓고서 물그림자를 보니는

촌살림 하기는 정말 원통하구나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토담이 붉어 좋고요

앞 남산 철쭉꽃은 강산(江山)이 붉어 좋다


밥 한 냄비를 달달 볶아서 간난이 아버지 드리고

간난이하고 나하고는 저녁 굶어자자


배달의 동포야 굶주리지 말고서

힘대 힘대로 일하여 자수성가 합시다


변북이 산등에 이밥취 곤드래 내 연설을 들어라

총각 낭군을 만날라거든 해 연년이 나거라


봄철인지 갈철인지 나는 몰랐더니

뒷 동산 행화춘절(杏花春節)이 날 알려주네


사발그릇이 깨어지면은 두 세 쪽이 나는데

삼팔선이 깨어지면은 한 덩어리로 뭉친다


살개바우 노랑차조밭 어느 누가 매느냐

비 오고 날 개는 날에 단둘이 매러 갑시다


삼신산(三神山)의 불로초도 풀은 풀이 아니냐

하루밤을 자고 가도 임은 임일세


삼십육년간 피지 못하던 무궁화 꽃은

을유년(乙酉年) 팔월십오일 다시 만발하였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나

정들이고 가시는 님은 가고 싶어 가나


서울에 종로 네거리 솥 때우는 아저씨

우리들의 정 떨어진 것은 왜 못때워주나


석새배 곰방치마를 둘렀을 망정

네까짓 하이칼라는 내 눈 밑으로 돈다


수수밭 삼밭을 다지내 놓고서

빤빤한 잔디밭에서 왜 이렇게 졸라


술으는 술술술 잘도 넘어 가는데

찬물에 냉수는 중치에 미인다


시누야 올캐야 말내지 말게

삼밭 속의 보금자리는 내가 쳐 놓았네


시어머니 산소를 까투리 봉에다 썼더니

아들딸 낳는 쪽쪽 콩밭골로 가네


시어머니 산소를 깨구리 봉에다 썼더니

옆구리만 찔러도 해딱 자빠지네


시집간지 삼일만에 부뚜막 장단을 쳤더니

시어머니 눈은 까재미 눈이 된다네


시집온지 사흘만에 바가지 장단을 쳤더니

시아버지가 나오시더니 엉덩이 춤만 추네


신발 벗고 못가실 데는 참밤나무 밑이요

금전 없이 못갈 때는 술집 문전이라


싫으면 말어라 너만이 남자더냐

산 넘구 물 건너면 또 남자 있겠지


싫으면 말어라 너만이 여자더냐

산 넘구 물 건너면 또 여자 있겠지


아우라지 강물이 소주 약주 같다면

오고 가는 친구가 모두 내 친굴세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너 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 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아질아질 성마령(星摩嶺) 야속하다 관음베루

지옥같은 정선읍내 십년간들 어이가리


앞 남산 살구 꽃은 필락말락 하는데

우리 둘이 정이야 들락말락 하네


앞 남산 실안개는 산허리를 돌구요

우리 님 양팔은 내 허리를 감네


앞남산에 황국단풍은 구시월에나 들구요

이내 몸에 속단풍은 시시때때로 든다


앞 남산의 호랑나비는 왕거미줄이 원수요

시방시체 청년들은 삼팔선(三八線)이 원수라


영감아 홍감아 집잘보고 있거라

잠자리 팔아서 엿사다 줌세


오늘 갈는지 내일 갈는지 정수정망(定數定望)이 없는데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왜 심어놨나


오늘 갔다가 내일 온다면 나는 안따라가지만

오늘 갔다가 모레 온다면 나는 따라가요


오라버니 장가는 명년에나 가시고

검둥 송아지 툭툭 팔아서 날 시집 보내주


우리 님 말씨는 얼마나 고운지

뒷동산 물푸레 회초리 착착 휘네


우리 어머니 나를 길러서 한양 서울 준댔죠

한양 서울 못 줄 망정 골라골라 주세요


원앙금침에 잣비개는 저녁마다 비련만

대장부 긴긴 팔은 언제나 비나


월미봉(月尾峯) 살구나무도 고목이 덜컥 된다면

오던새 그나비도 되돌아 간다


유전자(有錢者) 무전자(無錢者) 사람 괄세 말어라

인간세계 부귀영화는 돌고도 돈다


육칠월 감자 싹으는 삼재팔난(三災八難)을 적는데

대한 청년 남아는 만고풍상을 다 겪네


이밥에 고기 반찬은 맛을 몰라 못먹나

사절치기 강낭밥도 마음만 편하면 되잖소


이삼사월 긴긴 해는 점심 굶어 살아도

동지섣달 긴긴 밤이야 임 그리워 못 살겠네


저건너 저 묵밭은 작년에도 묵더니

올해도 날과 같이 또 한해 묵네


정선같이 살기 좋은 곳 놀러 한 번 오세요

검은 산 물 밑 이라도 해당화가 핍니다


정선 사십리 발구럭 십리에 삼산(蔘山) 한치인데

의병난리가 났을때도 피난지로다


정선앞 한강수(漢江水)는 소리없이 흐르고

옛 조상 옛 시(詩)는 변함이 없다


정선의 구명(舊名)은 무릉도원(武陵桃源) 아니냐

무릉도원 어데가고서 산(山)만 충충하네


정선읍내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도는데

우리집에 서방님은 날 안고 돌줄 왜 몰라


정선읍내야 백모래 자락에 비오나 마나

어린 가장 품안에 잠자나 마나


정선읍내 일백오십호 몽땅 잠드려 놓고

임호장네 맏며느리 데리고 성마령을 넘자


창밖에 오는 비는 구성지게 오잔나

비 끝에 돕는 달은 유정(有情)도나 하구나


천기운기(天氣運氣)로 눈 비 올라면 땅이 누기가 있드시

눈도 비도 다 오는데 당신은 왜 못 오시나


하루밤 맺은 정을 끊지 못해서 우느냐

능나도 수풀 속에서 봄비가 온다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님의 맛만 같다면

올같은 흉년에도 봄살아 나지요


허공중천에 뜬 달은 임 계신 곳을 알건만

나는야 어이해서 임 계신 곳을 모르나


황새여울 된꼬까리 떼 무사히 지냈으니

만지산(滿池山) 전산옥(全山玉)이야 술판 차려놓아라



2. 엮음 아라리                                            

 ☞ 1. 엮음 아라리는 서양음악의 랩과 같이 빠르게 부른다.

     2. 가급적 호흡을 멈추지 않고 한번에 계속 이어 부른다.

     3. 굵은 글씨로 쓰여진 곳에 와서는 긴 아라리 가락으로 부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


네칠자나 내팔자나 네모반듯 왕골방에

샛별같은 놋요강을 발치만치 던져놓고

원앙금침 잣벼개에 앵두같은 젖을빨며 잠자보기는

오초강산에 일글렀으니

엉틀멍틀 장석자리에 깊은 정만 두자


네칠자나 내팔자나 한번여차 죽어지면

겉매끼 일곱매끼 속매끼 일곱매끼 이칠에십사 열네매끼

참나무 댓가래 전나무 연춧대 스물두 상두꾼에

너호넘차 발맞추어 시방시체 개명말로

공동묘지 석자석치 홍대칠성 깔고덮고

척 늘어지면은

어느 동기 어느 친지가 날 찾아 오나



당신이 날마다고 울치고 담치고

열무김치 소금치 오이김치 초치고

칼로 물치듯이 뚝떠나가더니

평창 팔십리 다 못가고서 왜 또 돌아왔나


산진매 수진매야 휘휘 칭칭 보라매야

절끈 밑에 풍경달고 풍경 밑에 방울달아

앞남산에 불까토리 한 마리를 툭 차가지고

저 공중에 높이 떠서

빙글뱅글 도는데

우리집 저 멍텅구리는 날 안고 돌줄 왜 몰라


숙암(숙암) 단임 봉두군(봉두군)이

세모재비 메밀쌀 사절치기 강낭콩

주먹같은 통로구에

오글박작 끊는데

시어머니 잔소리는 부시돌 치듯하네


앞으로 보니 옥이백이 뒤로보니 반꼬두머리

번들번들 숫돌이며 박죽 잘글 툭툭 차던 우리 시어머니여

공동묘지 오시라고 호출장이 왔네


영감은 할멈치고 할멈은 아치고 아는 개치고

개는 꼬리치고 꼬리는 마당치고 마당가역에 수양버들은

바람을 휘몰아 치는데

우리집에 저 멍텅구리는 낮잠만 자네


우리집에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얽어매고 찍어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노가지나무 지게위에 옆전석냥 걸머지고

강릉 삼척에 소금 사러 가셨는데

백복령 굽이굽이 부디 잘다녀 오세요


우리집의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씨구씨구 모재씨구 깍구깍구 머리깍구

밑맨미투리 딱거머신구 메물볶음떡 세반제기

한짐 잔뜩 걸머지구 웃짐지구 덧짐지구

대화방임 원주대벌루

삼촌에 도부갔는데

백복령 구비구비 부디 잘 다녀오세요


우리집 시어머니 날 삼베 질삼 못 한다고

앞 남산 관솔괭에 놓고서

날만 꽝꽝치더니

한오백년 못 살고서 북망산천 가셨네


동네 어른들 들어보세요

우리집에 시어머니 뒤로보면 왕대골 앞으로보면 숫돌님

구리눈에 옥니배기 주걱턱에 자래목에 곱세등에 배불때기

수중다리 밥자루지고야

날만 때리더니

강림도령 모셔 가더니 여태 소식이 없어요



3. 중국에서의 정선아리랑

 조선족에게 〈정선아리랑〉은 정든 고향을 등지고 이주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는 소리였다. ‘눈’과 ‘비’, ‘억수장마’를 통해 그리는 현실은 청천 하늘에 드리우는 ‘먹구름’과도 같을 만큼 순탄치 않은 삶 그 자체였다. 정든 고향을 떠나면서 뒤돌아보고 또 본 고향은   잊혀질만 하지만 ‘정들은 곳’으로 가슴에 자리해 고향을 그리면서 살아가게 한다.


 조선족 사회에서 〈정선아리랑〉을 듣기란 매우 어렵다. 이는 강원도 출신의 조선족이 그리 많지 않고, 그나마 〈정선아리랑〉을 알고 있는 이주 1세대와 2세대가 사라지는데 이유가 있다. 특히 〈정선아리랑〉의 느린 가락은 조선족 사회에서 다른 민요에 묻혀 자리잡기가 어려웠던 것이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전통민요로서의 〈정선아리랑〉은 조선족 사회에서 그리 알려진 소리는 아니다. 비록 『민요곡집』에 5수, 『민요집성』에 7수가 각각 실려 있기는 하지만 모두 엮음 아리랑의 느린 변주곡과 같은 느낌을 주는 곡들이다.

 

  강원도 금강산 일만 이천봉 팔만구암자에

  석달 열흘 아들생겨 달라고 백일불공말고

  타관객리에 나선 사람 부디 괄세를 말아라

  아리랑 아리라랑 아라리가 났소

  아리랑 고개고개 넘어넘어 간다


 〈중략〉


  정선 읍내 물레방아는 사구삼십륙 서른여섯개인데

  사시장철 쉬지않고 물을안고 핑글팽글 도는데

  우리 랑군 어데로 가고 날안고 돌줄 몰라

  아리랑 아리라랑 아라리가 났소

  아리랑 고개고개 나를 넘겨주소


 그러나  조선족의 심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정선 아리랑>은 이념과 체재가 다른 토양에서 생활 곳곳에 또다른 형태로 싹트기 시작했다. 전통민요로서의 정선아리랑도 사회주의 음악적 특징을 겻들이고  각색되어 가극 등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또한 조선족의 기상을 담  아 만들어진 아리랑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 정선아리랑을 토대로 해서 만들어진 아리랑이 〈장백의 새아리랑〉과 <아리랑련곡>이다  


  장백산 마루에 둥실 해뜨니 푸르른 임해는

  록파만경 자랑하며 설레이누나

  칠색단을 곱게 펼친 천지의 폭포수는

  이나라 강산을 아름답게 단장하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리아리쓰리쓰리 아라리가 났네

  장백산은 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라 우리네 자랑일세


  장백산 임해엔 보물도 많아 탐스런 인삼꽃

  노을처럼 붉게 피어나누나

  숲숙에는 노루사슴 껑충껑충 뛰놀고요

  미인송은 두손들어 너울너울 춤을 추네


  그 옛날 천지엔 선녀 내렸고

  오늘은 세월 좋아 벗님들이 이 고장에 찾아오누나

  신선의 꽃 활짝 피는 우리네 장백산은

  중국의 명산이요 연변의 자랑일세

  

    * 정선아리랑연구소 음원자료 DT-8, 1996.

      가창자, 전화자(여, 54세, 중국 길림성 연길시 인민로 84)



1982년 창작된 〈장백의 새아리랑〉최현이 노랫말을 짓고 연변 조선족 예술단 전문 작사가인 안계린이 곡을 붙였다. 우리 겨레의 영혼이 담겨있는 산인 장백산(백두산)을 조선민족의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노래다.


 앞머리의 가락이 〈정선 엮음아리랑〉의 촘촘히 엮어가는 부분과 같은 〈장백의 새 아리랑〉은 〈강원도아리랑〉의 설화적 특징을 이용해 8분의 12박자를 4분의 4박자로 바꿔  빠른 가락으로 이어지게 해 전통적인 민요를 새로운 가요 형태로 바꿔 계승 발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장백의 새 아리랑〉은 1983년 전국민족단결현상모집에서 2등 창작상을, 길림성에서도 2등 창작상을 받았고 1984년에는 안계린이 작곡한 80여 곡의 가요와 함께 『장백의 아리랑』(연변인민출판사)이 출판되기도 했다.


〈장백의 새 아리랑〉의 2절은 장백산 숲 속에서 뛰어 노는 동물들과 미인송을 노래했고 3절에서는 천지에 선녀가 내려온 전설을 통해 장백산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


〈장백의 새 아리랑〉은 무용과 함께 연길시 가무단이 무대에 올리기도 했는데, 연변 등지의 조선족들이 즐겨 부르고 조선족 민요 CD에도 약방의 감초 격으로 등장하는 노래 중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장백의 새아리랑〉과 비슷한 시기에 불려지기 시작한 아리랑이 바로 정선아리랑의 느린 가락과 진도아리랑의 빠른 가락을 조화시켜 만든 〈아리랑 련곡〉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나주소

   봄바람 순풍에 곱게 핀 앵두꽃을

   머리에나 곱게곱게 꽃아를 주니

   내 사랑 깊은 정 출렁 파도를 치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저건너 저 처녀 눈매를 보소

   겉눈을 감고서 속 눈만 떳네

   저 건너 저 총각 날보고 웃네

   웃기는 왜웃어 말이나 걸지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 전화자 편, 『민족성악교재』(제2집), 연변예술학원 민족음악학부, 1995.


〈아리랑 련곡〉의 전반부는 정선 아리랑 가락을 바탕에 깔고 후반부는 진도 아리랑의 변주로 이어가는 노래다. 가락이 많이 변하고 장식음이 발달해 전통 민요로서의 정선아리랑과 진도아리랑의 맛을 느끼기가 힘든 노래지만, 연변예술대학 등에서도 가르칠 만큼 널리 알려졌다.

 정선아리랑은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 찾아보기가 쉽지는 않으나, 〈장백의 새아리랑〉,<아리랑련곡>과 같은 다른 종의 아리랑에 영향을 주면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조선족 〈정선아리랑〉자료


 정선아리랑 1


  눈이 올러나 비가 올러나 억수장마 질러나

  높은 청천 저 산밑에 먹구름만 지네

 

  산천이 고와서 뒤돌어다 봤소

  정들은 곳이어서 뒤돌어다 봤지


  * 1996. 6. 12 / 최옥녀 (여, 81세, 중국 길림성 연길시 인민로)



  정선아리랑 2



   조선의 조선은 어데를 가고

   북조선 남조선에 가슴만 저민다


   아리랑 아리랑이 얼마나 좋은지

   밥푸다 말고서 어깨춤 춘다


   요렇게 왔다가 요렇게 갈길을

   애시당초 처음에 왜 왔는가


   생치쌈 먹을제는 고추장이 좋구요

   전국장 담을제는 묵은콩이라네


   백두산이 높다고한들 시아비처리사 높으리

   고초후초 맵다한들 시어미처리사 매우리


   압록강 뗏목은 물 따라만 가는데

   없는 살림 이 내 몸은 품팔이 간다


   압록강 뗏목에 몸실은 낭군

   키잡고 가는 곳은 신의주란다


   철 모르는 이 몸을 간도땅에 두고

   아버지 어머니 어데를 가셨나


   밥달라 야단치며 내가 울고 울어도

   꿰진 자루 옆에 낀 엄마 한숨만 푹푹 쉐네


  * 진용선, 『정선아라리, 그 삶의 소리 사랑의 소리』, 집문당, 1993



  정선아리랑 3


   아리용  아리용 아라리요

   아리용 고개로 넘어간다

   여주 이천 물레방아 쌈지방아

   허풍선이 궁굴대는 백두산물줄기 안고

   주야장천 사시장철 떠드럭 쿵덕쿵

   빙글뱅글 뱅글빙글 도는데

   우리나 정든님은 어델가서

   나를 안고 못도나


   아리용  아리용 아라리요

   아리용 고개로 넘어간다

   심심산천에 썩 들어가서

   쓸데없는 바위밑에다

   초지 한장 걸어놓구서

   아들딸 낳아달라 산제불공 말구서

   돈없는 요내 일신 괄세를 말아.


   아리용  아리용 아라리요

   아리용 고개로 넘어간다

   백두산이 털썩 주저앉아서

   오간데 없어져도 너와 나

   맺은 정만은 변치를 말라

   열길 절벽바위 벽상에다가

   달걀을 붙였다 잡아떼듯이

   너와 나 맺은 정분 변할소냐.

   

  

  * 리상각 수집, 『조선족 구전민요집』, 료녕인민출판사, 1980

  * 조선족 시인인 리상각 선생이 1960년대 수집한 조선족 민요집에 수록된 내용이다. 이 책은 내용을 노동가요 서정가요 애정가요 서사가요 혁명가요 편으로 구분했고 아리랑도 내용에 따라 임의로 제목을 달기도 했다.




  정선아리랑 4-(중국길림성)


   세월이 갈라면 니 혼자나 가지

   알뜰한 요 청춘을 왜 데리구 갔나


   우리두 언제나 돈불아 가지구

   님과 같이 근심없이 살다가 세상 뜨겠소


   너는 죽어서 자동차 되고

   나는 죽어서 운전수 되지


   금전을 주어서 세월을 못사나니

   알뜰한 세월을 허송치 맙시다

 

   배달의 동포야 굶주리지 말고

   힘대힘대 일하여 자수성가 합시다


    먹고살 재산이 없다고 탄식을 말고서

    힘대힘대 일하며 오붓하게 삽시다


    부처님만 믿으면 극락가나

    제마음 곧아야 극락가지


    노노자 한나이 젊어노자

    나이많고 백숙이 되며는 다 허사로구나


    예수나 믿었다며는 천당이나가지

    이웃 색시 믿다보니는 림시 랑패 아닌가


    강원도 금강산 일만 이천봉 구함사절

    부처님전에 량연에 초를 밝히고

    아들딸 날라고 산제불공 말고

    내 문전에 들은 손님 괄세를 마오


    소복단장 곱게하고 무지공산 썩 들어가서

    명색없는 바윗돌에 백지 한장 깔고

    두 무릎 꿇고 초불켜고 신령님께 앋르딸 낳게 해달라고

    두손모아 싹싹 빌지 말고

    야밤중에 오신 손님네들 괄세 마라


    너나 내나 죽어지면 석새배 한필에 돌돌감아

    노가지나무 열두대 서른두명 우데군에

    북망산천 찾아갈세 어호 넘차 올라가서

    발락자빠져 폭폭 썩어질 인생을

    이후 맘일랑 도척같이 먹지마시오


     * 『문학과 예술』, 중국연변문학예술연구소 , 1993. 7,8월호



    저근네 묵은 밭은 작년에도 묵더니

    금년에도 날과같이 또 한해를 묵는다


    정선의 구명(旧名)은 무릉도원 아니냐

    무릉도원은 어데가고 산만 충충하네


    눈이오려나 비가오려나 억수장마 지려나

    만수산 검은구름이 막 모여든다.


    바람아 불어라 구름아 모여라

    부평초 이몸은 함께나 갑시다


    바람이 불어서 씰어진 나무가

    눈비가 오신다구야 일어날수가 있나


    산천초목에 물과 요지도 임자가 있는데

    우리는 뭘루생겨서 임자가 없나


    앞남산 송백에 저 두견새는

    고국을 찾으려고서 구성지게 우나


    울어서 될일 겉으면 울어래도 보지

    울어도 안될 일이면 웃어나보자


    산천이 고와서 뒤돌어다 봤소?

    정들은 곳이어서 뒤돌어다 봤지


    인생이 일장춘몽인데

    아니 놀고서 무엇하나

 

    삼십륙년 묵던 무궁화도 피였는데

    삼천만 동포야 태극기를 찾어라


     *『예술세계』, 중국연변문학예술계련합회, 1993. 2



    정선아리랑 5-(중국 흑룡강성)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눈이 올레나 비가 올레나 억수장마 질레나

    구보산 검은 구름이  모여든다


    산차지 땅차지는 왜놈 차지요

    일차지 고생차지는 우리조선 동포라


    무심한 기차는 날실어다 놓고

    환고향 시킬줄을 내가 왜 모르나


     * 1995. 3. 12 / 차병걸(남, 71세, 중국 흑룡강성 로가기향 신승촌)


4. 북한에서의 정선아리랑 

  

      정선아리랑 1


      강원도 금강산 일만 이천봉 팔만 구암자

      유점사 법당뒤에 칠성단 돋우모고 팔자에 없는

      아들딸 낳으라고 백일정성 석달열흘 기도 노구매

      적성을 말고 타관객리 외로운 사람 괄시를 말라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봉우리마다 해금강 밑으로

      히끗히끗비는데 우리님 신관은 어데가고 아니 보이나


      임자당신 날 싫다고 울치고 담치고 열무김치 소금치고

      배추김치 소금치고 칼로 물빈듯 삭돌아 서드니

      이천 팔백리 다 못가서 날 찾노라


       * 『조선고전문학선집』(제2권), 평양문예출판사 , 1983.

 


      정선아리랑 2


      꽃본나비 물본 기러기 탐화봉접인데

      님자 보고서 그저 갈소냐


      송죽같은 이내 몸이

      님자로 하여금 단풍이 들었네


      앞남산 적설이 다진토록

      뒤동산 행화춘절아 왜 모르나


      출문망 출문망하니

      원쑤오동 상상지라


       * 『조선고전문학선집』(제2권), 평양문예출판사 , 1983.



      정선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오-


      강원도금강산일만이천봉팔만구암자법당우에다가

      네가 불공-말고-타관객지 난- 사람 네가 괄세를 말아-


      임자당신이날버리고가실적에앞벽치고뒤벽치고

      열무김치소금치고배추김치초치고칼로물벤듯이 그냥 싹돌아서더-니

      춘천 팔십리 다못가고 왜또 날찾아왔-소-


       * 『조선민요 1000곡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 2000



5. 떼꾼들이 부른 정선아리랑  

 태어나서부터 정선 산골에서 뼈가 굵어온 떼꾼들에게 '아라리'라고 하는 정선아리랑은 노동요이자 생활요로 자리 잡았다.

 떼꾼들이 거친 여울을 지나 물살이 완만한 곳에 이르면 따분함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정선아리랑을 부르게 된다. 험난한 물길에서 겪는 갖가지 위험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 무사함을 빌며 적막함을 달래기 위해 아라리를 불렀다. 떼꾼들이 즐겨 부르는 정선아리랑에는 위험한 고비에서 벗어나 그들을 억눌러온 현상을 해소하려는 몸부림과 신명이 그대로 표출되어 있다.

    

     황새여울 된꼬까리에 떼를 지어 놓았네

     만지산 전산옥(全山玉)이야 술상 차려놓게


     황새여울 된꼬까리 떼 무사히 지냈으니

     영월 덕포 공지갈보 술판을 닦아놓게


     오늘 갈지 내일 갈지 뜬구름만 흘러도

     팔당주막 들병장수야 술판 벌여 놓아라


 떼꾼들이 부르는 아리랑 가락은 강가에 빨래하러 나온 아낙네들이나 밭일을 하는 여자들에게 귀익은 소리가 되었다.

 떼꾼들이 떼를 타고 지나가면 주막의 여자들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술을 팔기 위해 큰 소리로 아라리를 불러댔다.


    지작년 봄철에 되돌아 왔는지

    뗏사공 아제들이 또 니려 오네


    놀다가세요 자다가세요

    그믐 초성달이 뜨도록 놀다가 가세요


 그러면 다시 떼꾼들은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받아 불렀다. 머물고 싶은 아쉬움 속에 갈길이 바쁜 떼꾼들은 보다 적극적이고 원색적인 표현의 아리랑으로 화답을 했다.


    제남문 제적은 앞사공이 하고요

    아가씨 중등 제적은 거 누가 하는가


    갈보야 질보야 몸걸레질 말어라

    돈없는 백수야 건달이 애가 말러 죽는다


 영월 삼옥의 제남문이라고 하는 험한 물길은 앞사공이 겨우겨우 지나가는데 아가씨와 몸을 섞는 일은 누가 하냐고 반문을 한다.

 사실 서울까지 힘겨운 여정을 가야하는 떼꾼들에게 강변의 술집과 밥집들은 안식처였다. 떼꾼들이 떼를 강가 나루에 대고 버렛줄로 묶은 후 든 술집에서는 여자들과 어울려 한바탕 아라리를 불렀다. 이 때 부르는 아라리는 집을 떠나 객지로 향하는 쓸쓸함을 원색적으로 불러 맺힌 응어리를 시원하게 풀어놓았다. 또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난봉 기질'이 농익게 배어 외설에 가까운 내용도 많았다. 


    산에 올라 옥을 캐니 이름이 좋아 산옥이냐

    술상머리에서 부르기 좋아서 산옥이로구나


    산옥이의 팔은야 객주집의 벼개요

    붉은에 입술은야 놀이터의 술잔일세


    ㄱ에 ㄴ ㄷ ㄹ은 국문(國文)의 토바침이요

    술집갈보 열 손가락은 술잔 바침일세


    술은야 안먹자고 맹세를 했더니

    술잔보고 주모보니는 또 한 잔 먹네


    못먹는 막걸리 한 잔을 내가 마셌더니만

    아니나던 색시 생각만 저절로 난다


 그러나 떼꾼들이 뗏목을 운송하는 댓가로 받는 떼돈은 "보는 게 임자"라고 했다. 그만큼 셈이 견실하지 못한 떼꾼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작부들과 술집이 많았다. 술과 노름과 여자에 돈이 떨어져버리면 떼꾼들은 넉두리로 아리랑을 불렀다. 이 때 부르는 아리랑은 원망과 후회가 뒤섞여 곧바로 신세타령이 되었다.


    천질에 만질에 떼품을 팔아서

    술집 갈보 치마 밑으로 다들어가구 말았네


    돈 쓰던 남아가 돈 떨어지니

    구시월 막바지에 서리맞은 국화라


    술 잘 먹구 돈 잘 쓸 때는 금수강산 일러니

    술 안 먹구 돈 떨어지니 적막강산 일세


    금수강산이 그렇게 두야 살기나 좋다더니

    돈씨다가 똑덜어지니는 적막강산일세


    국화꽃 매화꽃은 몽중에도 피잔나

    사람의 신세가 요렇게되기는 천만 의외로다


 정선 떼꾼이 오고가던 곳에 심어진 정선아리랑은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구성진 가락으로 인해 입에서 입으로 곳곳에 전해지게 되었고, 그곳의 가락과 문화적인 특징이 더해지고 용해되면서 또 다른 아리랑을 싹틔워 놓았다.

 동강 물길은 물론 남한강, 한강 유역과 그 내륙에 이르기까지 '아라리' 또는 '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선아리랑 가락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영월 단양 충주 여주 등지의 강마을에서는 떼꾼들이 즐겨 부르던 정선아리랑이 보편화된 소리로 자리잡아 지금도 널리 불려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아리랑은 후렴이 변형되거나 생략되면서 유사한 소리로 바뀌어 불려지기도 했다. 단양 지방에서 불리는 '띠뱃노래'는 정선아리랑 가락을 바탕으로 해서 새롭게 생겨난 노래로, 아리랑은 마치 풀씨처럼 그 가락이 머문 곳에서 그 땅의 토양에 맞게 또 다른 소리로 태어나기도 했다.

 정선 뗏목이 당도하던 서울의 나루터 주변까지 아라리나 아라리 가락과 유사한 소리가 많다는 사실은 떼꾼들이 정선아리랑을 전파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음을 증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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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굿판에서 불리는 정선아리랑  

 

  아리랑 덩더쿵 씨발이 잡년아 돈돈만 아지

  생사람 내 죽은줄 니 모르나


  아리랑 당다쿵 시리렁 덩더쿵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소


  어머님요 아버님여 내 보지 보소

  아들새끼 날 나고 내 구리새미 났네요


  아랑 아랑 아랑 아랑 아라리가 벗연

  아리랑 죽도록 안구지구 노자


  정선읍내야 물레방아는 사시장철 물을 안구

  빙글빙글 싱글싱글 잘도 돌건마는

  우리집 서방님은 어디를 가시구 날 안구 돌줄 모르나


  아리랑 당다쿵작 시리랑 홍따닥따 아라리가 벗연

  아리랑 죽도록 안구지구 노자


  남의 집 서방님은 통양갓을 씨는데

  우리집에 저 멍텅구리는 떡치는 체반을 씻는다


  남의 집 서방님은 나가오리를 시는데

  우리집이 저 도덕놈 질요강 뒤깨를 씬다


  남으집 서방님은 군대칼을 차는데

  우리집에 저 멍텅구리는 정지 식도를 찬다


  남으집 서방님으는 하이야 택시 지뿌타는데

  오드바이 싸이클 까정 다 타는데

 


* 1990. 4. 17 / 송동숙(남, 68세,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송동숙씨(宋東淑)는 동해안 일대의 세습무 집단 가운데 익히 이름이 널리 알려진 무당패를 이끌고 있다. 동해안의 풍어제인 별신굿을 할 때는 처음부터 각 도의 민요에 욕지껄이가 섞이고 끝까지 질탕한 성(性)과 관련된 얘기로 이어지는데, 골매기 할매거리에 이르면 외설과 해학이 뒤섞인 밀양아라리가 처음 등장해 시작되다가 나중에는 "어머님요 아버님요~~"로 시작되는 외설적인  정선아라리가 계속 이어져 좌중들을 놀라게 한다. 그러나 곧 그 소리는 외설을 벗어나 해학스러운 가사로 이어져 좌중들의 배꼽을 움켜잡게 한다. 송씨는 이를 두고 <영해 별신굿 아리랑>이라 했다.



7. 일제강점기 때의 정선아리랑  

     구정선 아라리


    동백나무열매야 다담북열어라

    이웃집 처녀다리고 열매따러갈게


    아주가리농사를 힘쓰고보니

    십이명식구가 저녁을굼네


    술은 술술 잘넘어가고

    밥은 중지가 맥혀서 못먹겟네


    물동우(水甕)여다노코 물그럼자보니

    村색시노릇하기 제안이원통한가


    울타리밋헤다 님세워노코

    호박입이 넘줌넌줌하야 님못뵈네


    호박입이 넌줌넌줌 님못보거던

    洞內樵軍더러다 호박줄것네


    *『別乾坤』, 1933년 5월, 開闢社



     정선어러리


    동백나무 열매는 가매감실

    아니나든 정든님 생각이 간절하네


    물명주 단속곳은 허리유통에다만 걸고

    장부의 일천간장을 다 녹여내네


    인삼녹용 패독산도 나는 실허이

    후원별당 잠든아기를 깨워나주게


    삼사월 긴긴해에 점심을 굶어 살면 살엇지

    동지섯달 긴긴밤에는 나는 혼자 못자겟네


    타따봉접아 네자랑 마라

    꼿도 늙어 낙화하면 접불레라


    *『東亞日報』 1937년 11월 21일자



강원도 아리랑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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