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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이라는 인물을 생각하여 본다.(남연군의 묘 탐사)

운학처사 2011. 6. 22. 20:39

대원군이라는 인물을 생각하여 본다.(남연군의 묘 탐사)

 

남원군 묘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이구(?∼1822)의 묘이다. 대원군 이하응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라는 말을 듣고 원래 경기도 연천에 있던 남연군의 묘를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이곳에는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절을 불태우고 탑을 부순 후 이장했으며, 이장한지 7년 후에 차남 명복이 태어났는데 그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그 후 1866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으며, 이 일로 대원군이 서양에 대한 배척을 강화하는 쇄국정책을 실시하고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석으로 길을 만들었다. 질은 떨어진다고 하여도 매우 인상적이다. 참으로 보기 좋다. 비오는 날에는 더욱 더 좋으리라.

마을 입구에 남연군 신도비가 있다. '숭정기원후4을축5월 일립'이라는 기록을 통해 1865년 5월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전체 4면비로 비의 상단 전면과 후면에 전서로 '남연군충정공신도비명'이라고 쓰여 있다. 이 글씨는 남연군의 맏손자인 이조참판 이재원이 쓴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전면 오른쪽에는 위에서 아래로 '유명조선국 현록대부 남연군 시충정공 신도비명 병서'라고 쓰고, '성상이 즉위한 원년인 갑자년에 영의정 조두순이 건의해서'로 시작하는 비문이 이어진다.


이 비문은 좌의정 김병학이 찬하고 남연군의 셋째 이들인 흥인군 이최응이 글씨를 썼다. 내용을 보면 김병학은 먼저 시호를 충정(忠正)으로 고쳐 내리게 된 연유를 쓰고 있다. 충은 염방공정(廉方公正)을 의미하고 정은 이정복지(以正服之)를 의미한다. 여기서 염방공정은 '청렴하고 방정하며 공정하고 바르다'는 뜻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우등상에 '품행이 방정하다'는 말을 썼는데 이 방정이 염방공정의 준말이다. 이정복지란 '바른 것으로 다른 사람을 복종시킨다'는 뜻이다.


그리고 비문에는 남연군의 가계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인조대왕까지 그 혈통이이어지는데 그 처음을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에게서 찾고 있다. 그리고 1788년 8월22일 태어나 은신군의 양자가 되었고 1836년 3월19일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을 밝히고 있다. 묘는 처음 마전 백자동에 있다가 연천 남송정으로 이장하였다. 그리고 1845년 다시 덕산 가야산 북록(北麓: 북쪽 기슭)으로 옮겼다가 1846년 3월18일 중록(中麓) 건좌(乾坐)에 안장한 것으로 되어 있다.


슬하에는 자식이 4남1녀가 있는데 장남이 흥녕군 창응이고, 차남이 흥완군 정응이며, 삼남이 흥인군 최응이고, 사남이 흥선대원군 하응이다. 그리고 손자들이 있는데 맏이가 비문의 글씨를 쓴 재원이다. 흥선대원군의 맏아들은 재면이며 둘째 아들이 나중에 고종이 된 재황이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명(銘)을 지었는데 마지막 문장이 '큰 기틀을 영원히 보살펴서 억만년 이어지소서(永佑鴻基時萬時億)'이다. 그러나 1910년 조선이 망했으니 그 바람은 겨우 45년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비이다. 남연군( ? ∼1822)은 조선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의 6대손 이병원의 아들로, 정조의 이복 동생인 은신군의 양자가 되어 남연군에 봉하여졌다. 죽은 뒤에는 충청도 예산의 덕산지역에 묻혔는데, 고종 5년(1868) 독일인 오페르트에 의해 도굴당하여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묘 앞에 자리하고 있는 비는 높직한 사각받침 위로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으로, 비 앞면에는 ‘남연군충정’이라는 비의 명칭을 가로로 새겨 놓았다. 흥선대원군의 아들이 철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고종이 된 후 이 비를 세워 두었으며, 영의정 조두순이 비문을 지었다고 함.

 

 

 

 

망주석, 장명등, 상석, 비석, 양석 등이 있다.

 

아래 사진들은 묘에서 볼 때 장명등의 네 구멍은 동서남북을 가르키는 데, 오른쪽구멍을 통하여 보이는 곳은 원효봉서해중계안테나 등이 있는 사진이며 가야봉, 북쪽 구멍으로 보이는 흰 바위가 보이는 산은 옥양봉, 동쪽구멍으로 보이는 산은 서원산이며 남쪽 구멍으로 보이는 곳은 옥계저수지를 통하는 넓은 들판이라고 보아야 하나? 촤청룡, 우백호, 북현무, 남주작이라 일컫는 풍수상의 명도 있다는데 머리속이 비어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