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열국지에서 생각나는 내용

운학처사 2009. 4. 2. 15:22

  열국지에서 생각하고 싶은 내용


  중국고전소설을 읽다 보면 삼국지, 초한지, 열국지 등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대단히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양서라고 생각된다. 이는 본인의 생각만이 아니고 독서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동양인이 아니 남성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양식이 될 수 있는 내용이 충분히 담겨있다고 확신한다.

  본인이 적지 않은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는 데 이중에서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상기 세권의 책을 추천하고 싶다. 여성들도 필수교양서적으로 보아야 할 것으로 본다.

  혹시 참고가 될 가해서 전에 요약하여 놓았던 것을 게시합니다.




목     차

내      용

쪽수

비고

1

2권-관포지교

2

 

2

3권-개자추 허벅지 살을 떼어 주인을 먹이다.

6

 

3

4권-영웅이 때를 만나니

10

 

4

5권-동호의 매서운 붓

20

 

5

6권-노래가 왕을 쫓아내다.

29

 

6

7권-사관의 붓

38

 

7

8권-대성공자

42

 

8

9권-와신상담

48

 

9

10권-상앙의 살을 다투어 씹다.

    -협객남매의 죽음.

63

 

열국지주요내용.hwp




 東周 列國志 요약본


2권 - 관포지교

관이오의 자는 중이니 그는 나면서부터 용모가 걸출하고 총명하기 이를 데 없었다. 널리 고금을 통달하고 경천위지의 재능과 세상을 바로잡고 시대를 구제할만한 실력이 있었다.

그는 일찍 포숙아와 함께 시장에서 생선장사를 하였다. 장사가 끝나면 관이오는 언제나 그날 수입에서 포숙아보다 배 이상의 돈을 가지고 돌아갔다. 포속아를 따르는 사람들이 항상 이를 불평했다.

“같이 번 돈에서 반씩 나눠 갖지 않고 관이오는 배나 더 가지고 가는구려. 그런데도 당신은 가만있소?”

그럴 때마다 포숙아는 관중을 변명했다.

“관중은 구구한 돈을 탐해서 나보다 배나 더 돈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집안이 가난하고 식구가 많다. 내가 그에게 더 가지고 가도록 사양한 것이다. 그대들은 오해하지 마라.”

또 그들은 일찍이 전쟁에 나간 일이 있었다. 싸움터에 서면 언제나 관중은 후대로 숨었다. 그리고 싸움이 끝나고 돌아갈 때엔 그는 항상 맨 앞에 서서 걸었다 사람들은 모두 용기없고 비겁한 자라고 비웃었다. 그럴 때마다 포숙아는 그를 두둔했다.

“관중은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에겐 늙은 어머니가 계신다. 자기몸을 아껴 길이길이 늙은 어머니에게 효도하려는 것이다. 어찌 관중이 싸움을 겁내리오.”

그래서 관중은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며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포숙아다”

마침내 그들은 생사를 함께 하자는 교우의 의를 맺었다. 이를 후세에서 관포지교라 한다.


후일에 그들은 제양공의 아들 규와 소백이 있었는데 관중은 소홀과 함께 규의 스승이 되고 포숙아는 소백의 스승이 되었다.


소백이 군위에 오르고 공자 노나라로 피신을 하였으나 공자 언에게 죽음을 당하고 소홀은 기둥에 머리를 지찧고 죽었다.

관중은 “자고로 임금을 위해 죽는 신하도 있으며 임금을 위해 살아야 할 신하도 있다. 나는 살아서 제나라로 돌아가 죽은 공자 규의 원수를 갚으리라.”하며 노나라의 함거에 실려 제나라로 돌아갔다. 그 때 포숙아는 지극한 보물이나 얻은 것처럼 기뻐하고 관중을 모셨다.

포숙아는 “조금도 근심마오. 내 또한 그대를 주공께 천거하리라.”

관이오는 “내 원래 소홀과 함께 규를 섬겼으나 능히 규를 받들어 임금자리에 올리지 못했고, 능히 절개를 지켜 죽었어야 할텐데 그렇지도 못했으니 참으로 보잘것없는 몸이라. 그런데 내가 이제 지난날을 배반하고 앞으로 원수를 섬긴다면 소홀이 지하에서 나를 웃을 것이오.”

포숙아가 타이른다. “큰일을 하는 자는 조그만 일에 신경을 쓰지 않으며, 큰 공을 세우는 자는 조그만 절개 때문에 목숨을 버리지 않소. 그대는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인재라. 다만 지금까지 때를 만나지 못한 것뿐이오. 이번 주공은 뜻이 크고 식견이 높으니 만일 그대를 얻어 도움을 받는다면 장차 우리 제나라를 경영해서 천하 패업을 성취할 것이오. 공을 천하에 높이고 이름을 제후들 사이에 드날리는 것과 필부의 절개를 지켜 소용없는 죽음을 취하는 것이 어찌 같으리오.”

포숙아는 제환공에게 “관중은 천하의 기이한 인재입니다. 신이 그를 죽이지 않고 데려오는데 성공했습니다. 주공께서는 이제야 어진 재상을 얻었으니 어찌 치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제환공은 마땅찮았다.

“관이오는 과인에게 활을 쏜 자라. 그 화살이 지금도 있소. 그의 살을 씹어도 오히려 쾌치 않거늘 어찌 그자를 정승으로 등용하란 말이오.”

포숙아가 대답한다.

신하된 자로서 누가 자기 주공을 위하지 않겠습니까? 그가 주공을 쏜 것은 공자 규만 알고 주공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공께서 그를 등용하시면 그는 마땅히 주공을 위해 활로 천하를 쏠 것입니다. 주공은 그까짓 갈고리 쏜 것을 논하려하십니까?

제 환공이 그제야 머리를 끄덕인다.

“과인은 그대 말을 잠시 듣기로 하겠소. 관중을 죽이지 말고 그냥 두어두오.”

그 후 제환공은 모든 신하의 공로를 표창하기 위해 벼슬과 토지를 제수했다.

 “포숙아는 상경이 되어 앞으로 나라 정사를 도맡아 보오.”

포숙아는 사양한다.

“주공께서 신에게 베풀고자 하실진대 신으로 하여금 헐벗고 배고프지 않게만 해주시면 그것만으로 족합니다. 그러나 나라정사를 다스리는 데는 신이 적임자가 아닙니다.”

제환공이 머리를 흔들며 분부한다.

“과인은 경을 안다. 경은 사양 마오.”

포숙아가 차근차근 대답한다.

“주공께선 신을 아신다지만 신은 매사에 삼가고 조심하는 것 뿐입니다. 그저 예에 따라 법을 지키는데 불과합니다. 이는 누구나 신하된 자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일이니 국가를 다스릴만한 인재라 하겠습니까? 대저 국가를 다스릴 수 있는 자는 , 안으론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밖으론 사이(四夷)를 무마하고, 공훈을 주왕실에 세우고 모든 나라 제후에게 덕을 펴고, 국가를 태산처럼 튼튼하게 하고 주공께 한량없는 복을 누리도록 하고, 공을 금석에 드리우고 이름을 천추에 드날리는 자라야만 비로소 천자의 신하라 하겠으며, 왕을 돕는 소임자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저같은 신하가 어찌 이 대임을 감당하겠습니까?”

이 말을 듣자, 제환공은 자기도 모르는 중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포숙아에게 몸을 숙이며 묻는다.

“경이 지금 말한 그런 인재가 오늘날 세상에 있소?”

포숙아가 아뢴다.

“주공께서 그런 인재를 구하지 않으시면 어쩔 수 없지만 꼭 그런 사람을 구하신다면 어찌 없겠습니까? 그러한 인재는 딴 곳에 있지 않고 바로 관이오가 그런 인물입니다. 이 말을 믿지 않으시면 신이 일일이 그 이유를 들겠습니다. 신이 관이오만 못한 것이 다섯가지 있습니다. 그 하나는 너그럽고 부드러이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그만 못하며, 둘째는 국가를 다스리되 그 근본을 잃지 않는 것이 그만 못하며, 셋째는 충성과 믿음으로써 백성과 단결할 수 있는 것이 그만 못하며, 다섯째는 부고를 잡고 군문에 서서 군사로 하여금 싸우게 하며 물러서지 않게 하는 것이 그만 못합니다.”

제환공이 거듭 머리를 끄덕인다.

“경은 그를 불러오라. 과인이 직접 그의 식견을 시험해보겠다.”

그러나 포숙아가 일어나지 않는다.

“신이 일찍이 듣건대 천한 몸으론 능히 貴에 나아갈 수 없으며, 가난한자는 부자를 부릴 수 없으며, 疏遠하면 능히 부모도 간할 수 없다 하더이다. 그러니 주공께서 관이오를 등용하시려면 재상의 직위를 내리시고, 그 국록을 높이시고, 부형에 대한 예로써 영접하십시오. 대저 재상이란 것은 임금의 다음가는 자리라 이런 일을 가벼이 하여 서로 가벼이 대하면 임금 또한 가벼워 지나니, 대저 비상한 사람에겐 반드시 비상한 예로써 대우해야 합니다. 그러니 주공께서는 우선 택일부터 하시고 교외까지 나가서 그를 영접하십시오. 이리하여 주공께서 비록 원수일지라도 어진 사람이면 존경하고 높은 선비면 예의로써 대한다는 소문이 사방에 널리 퍼지면 , 천하에 뜻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우리 제나라에 등용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마침내 제환공이 대답한다. “과인은 그대가 시키는대로 하겠소.”

제환공은 태복에게 명하여 길일을 택하고 관중을 교외까지 나가서 영접하기로 했다. 이에 포숙아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관이오를 교외공관으로 안내했다.

드디어 제환공이 관중을 영접하는 길일이 됐다. 관중은 세 번 목욕하고 향수를 세 번 몸에 발랐다. 관중에게 내려진 의복과 포홀(袍笏)은 상대부와 비길만한 것이었다. 제환공은 친히 교외까지 나가서 관중을 영접하고 함께 나란히 수레를 타고 궁으로 향했다. 길 양편에 가득히 모여 구경하던 백성들은 이 성대한 영접을 보고 놀라지 않는 자 없었다.

제환공은

“앞으로 나라 정사를 다스리고 기강을 바로 잡으려면 장차 무엇을 먼저 해야겠소?”

관이오가 아뢴다.

“예(禮), 의(義), 염(廉), 치(恥)는 국가의 근본입니다.

이 네가지 근본이 뚜렷하지 않으면 나라는 망합니다. 오늘날 주공께서 국가의 기강을 세우고자 하실진대 반드시 이 네가지 근본부터 펴고 백성을 부리시면 기강은 저절로 서고 국가 위세를 저절로 떨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능히 백성을 부릴 수 있소?”

“백성을 부리고자 할진대 반드시 먼저 백성을 사랑해야 합니다. 연후에 백성이 처할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백성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국가는 공사(公事)를 위해 힘쓰고, 가장은 가족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항상 백성과 함께 손잡고 일하며 그 이익을 나눠주면 백성과 서로 친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미 지나간 죄를 용서해 주고 옛 법을 닦게 하고 자손이 없거나 혼자 사는 사람에겐 적극 부부의 짝을 짓도록 주선해 주면 백성은 늘고, 형벌은 줄고, 세금은 감소되고 백성은 부자가 됩니다. 그리고 어진 선비를 등용하여 대신으로 삼고 그들로 하여금 국가의 잘못을 바로 잡도록 책임을 맡기면 자연 백성들도 예의를 배우게 됩니다. 이상 말한 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제환공이 머리를 끄덕이며 또 묻는다.

“백성을 사랑할 줄 알면 백성이 처할 길을 열어줘야 한다 하니 그것은 무슨 뜻이오?”

“士 農 工 商을 四民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선비의 아들은 선비가 되고, 농군의 아들은 농사짓고, 工人과 장사하는 사람의 아들은 공․상을 오로지 하되, 요는 늘 익히고 안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자기 직업을 바꾸지 않고 변경하지 않도록 해줘야만 백성은 스스로 안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처할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

제환공이 또 묻는다.

“백성이 안정이 되었을지라도 무기가 부족하면 어찌하오?”

“무기와 군사를 충족하려면 마땅히 속형(贖刑)하는 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중죄를 범한 자로서 형벌을 면하려면 서피(犀皮)갑옷과 창 한 벌을 바치게 하고, 죄가 가벼운 자에게는 질긴 가죽 방패와 창 한 벌을 바치게 하고, 소소한 죄인에겐 따로 벌금을 물게 하고, 그 죄가 분명치 못하는 자는 용서하고, 소송을 거는 자에겐 쌍방마다 화살 1속(일속-12시)을 바치게 하고, 採鑛을 허가 하고, 鐵物을 모으되 좋은 것은 칼과 창을 만들어 개와 말에 시험하고, 품질이 좋지 못한 호미와 괭이를 만들어 농사를 짓게 하면 됩니다.”

제환공이 또 묻는다.

“무기는 이미 정해졌을지라도 財用이 부족하면 어찌하오?”

“산을 녹이어 돈을 만들고, 바다를 이용해서 소금을 구우면 그 이익이 천하에 유통합니다. 그리고 천하의 모든 물품을 거두어 두고 때맞추어 무역하게 하는 동시 창기(唱妓) 300명을 두오 행상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면 장사하는 나그네들이 모여들 것이며, 모든 제화도 아울러 모입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적당한 세금을 징수해서 軍用을 돕는다면 어찌 재용을 걱정할 것 있습니까?”

제환공이 또 묻는다.

“제용은 충분할지라도 군사가 많지 못해서 위세를 떨칠 수 없을 땐 어찌하오?”

관이오가 대답한다.

“원래 군사란 것은 그 精銳한 것을 중시할 뿐 수효 많은 것을 목적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군사는 힘보다 마음이 강해야 합니다. 만일 주공께서 군사를 기르고 무기를 준비하시면 천하 모든 제후도 다 군사를 기르고 무기를 준비하리니, 신은 그렇게 해서 승리하는 예를 보지 못했습니다. 주공께서 만일 군사를 강하게 하고자 하실진대 우선 그 명목을 숨기고, 그 실속을 튼튼히 하십시오. 신은 청컨대 內政을 지어 이에 기여하되 군령으로써 하겠습니다.”

“내정이란 뭣이오?”

관이오가 평소의 포부를 말한다.

“내정의 법이란 나라는 21鄕으로 나누되, 工․商의 鄕 여섯을 두며 선비의 향 열다섯을 두어 공․상으로 재물을 충족케 하고, 선비로 병력을 충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노장공은 제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큰 공을 세운 조귀(曹劌)에게 묻는다.

“경은 한번 북을 울려 세 번이나 북을 울린 적군을 단번에 이겼으니 이 어찌된 까닭이오?”

조귀가 대답한다.

“대저 싸움은 기운을 주로 삼습니다. 기운이 씩씩한즉 이기며, 기운이 쇠하면 집니다. 북을 울리는 것은 기운을 돋우기 위한 것입니다. 한번 울리면 기운이 일어나고, 두 번 울리면 기운이 쇠하고, 세 번 울리면 기운이 끝납니다. 신은 애초부터 북을 울리지 않고 삼군의 기운을 길렀습니다. 적이 세 번 북을 울려서 기운이 끝났기에 신은 한번 북을 울려 기운을 일으켰습니다. 곧 가득한 기운으로 쇠진한 기운을 막은 셈입니다. 그러니 어찌 이기지 않을 수 있습니까?”


초나라 사람은 젖을 곡이라고 하며 범을 오도(오도)라고 한다. 그래서 투백비는 범이 젖을 먹였다는 뜻에서 그 아들 이름을 투곡 鬪穀오도라고 지었다. 그리고 자를 자문(子文)이라고 했다.

지금도 운몽현에 오도향이란 곳이 있다. 곧 자문이 출생한 곳이다.

투곡오도는 점점 자라면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다스릴 만한 재질과 종(縱)으로 文과 횡(橫)으로 무(武)를 겸전했다. 그의 아버지 투백비가. 초나라 대부로 있다가 죽자, 투곡오도는 그 뒤를 이어 역시 대부가 되었다.

그런데 자원이 죽자 영윤자리가 비었고 모든 백관들의 간언으로 투곡오도는 영윤이 되었다.

초성왕은 모든 신하에게 하명한다.

“제나라에선 관중을 중부라 부르듯이 투곡오도는 우리 초나라의 주석지신(柱石之臣)인즉 앞으로 이름을 부르지 말고 자로써 불러라.”

그런 뒤로 초나라 사람은 투곡오도를 子文이라 불렀다.

자문은 영윤이 되자 모든 문무백관에게 선포했다.

“자고로 국가의 재앙은 임금이 약하고 신하가 강한데서 시작하였다. 그러니 모든 문무백관은 녹으로 받는 토지의 반을 국가에 환납하도록 하여라.”

이렇게 선포한 뒤 자문은 누구보다도 먼저 투씨들로 하여금 이를 실행하게 했다. 그러니 다른 문무백관들이 쫓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자문은 남으론 상당까지 뻗고, 북으론 한강을 끼고 있는 形勝之地인 영성을 두루 시찰했다. 드디어 그는 단양땅에서 영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리고 영성의 명칭을 영도로 고쳤다.

다시 자문은 군대를 다스리고 병사를 훈련시키는 동시 어진 사람을 추천하고 유능한 사람에겐 직책을 맡겼다. 이리하여 공족(公族)이요, 어질기로 유명한 굴완(屈完)에겐 대부의 위를 주고, 그와 동족이며 재주와 지혜를 겸전한 투장(鬪章)에겐 다른 투씨들과 함께 군사를 다스리도록 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 투반으로 신공(申公)을 삼았다. 이에 초나라는 크게 다스려졌다.


3권 -  개자추 허벅지 살을 떼어 주인을 먹이다.

백리해는 원래 우(虞)나라 태생으로 자는 佰年이라 했다.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나이 30에 두씨라는 아내를 얻었다. 아내의 간청을 듣고 정성껏 마련해준 음식을 먹고 괴나리봇짐을 등에 지고 집을 떠났다.

제나라로 가서 제양공 밑에서 벼슬을 하려고 했으나 아무도 천거해주지 않아서 곤궁과 탄식 속과 슬픔 속에서 오랜 세월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질 땅에서 문전걸식을 하는 거지신세가 되었다. 그때  건숙이란 사람을 만났다. 그는 자기집 문 앞에 와서 밥을 비는 거지가 비범함을 알고 얘기를 나눠보았다.

백리해의 말은 청산에 흐르는 물처럼 거침이 없고 조리가 정연했다. 건숙은 마침내 백리해의 지견(知見)이 출중함을 알아보고 의형제를 맺었다. 그리고 동네 소를 길러주며 약간의 식량을 얻어 살도록 해줬다.

백리해가 도성으로 가서 인재공모에 응해 보려고 하였으나 건숙이 주공을 죽이고 군위를 빼앗은 고약한 사람 밑에서 벼슬을 살면 안 된다고 타일러서 주나라로 가려고 하였다

또 건숙은 마땅찮다는 듯이 말한다.

“대장부는 경솔히 사람에게 몸을 맡기면 못쓰오. 벼슬을 살다가 그 임금을 버리면 불충한자가 되고, 못난 임금과 함께 고생을 끝까지 한다면 이는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라. 아우는 이번에 갈지라도 조심하고 조심하오. 집안일을 대충 처리하고 나도 아우를 따라 주에 가겠으니, 그 때 우리가 함께 왕자의 인품을 보고서 앞일을 결정하기로 합시다.”

왕자 퇴를 만나보고 건숙이 말했다.

“퇴는 뜻은 크지만 재주가 없는 사람이오. 그는 아첨하는 무리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쓸데없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성격인지라 내가 보기에는 그의 앞날이 좋을 것 같지 않소 그러니 주나라를 떠납시다.”

백리해가 말한다.

“집을 떠난지도 하 오래되어 아내와 자식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우나라로 돌아갈까 합니다. 형님은 어디로 가시렵니까?”

건숙이 대답한다.

지금 우나라에 어진 신하가 있는데 이름을 궁지기라 하오. 나와는 전부터 잘 아는 사이지. 서로 못본지 오래되었으나 동생이 만일 우나라로 돌아가겠다면 나도 동생과 함께 가서 오랜만에 그사람을 만나보고 싶소.“

그래서 백리해는 궁지기의 추천으로 중대부 벼슬을 하게 되었고 건숙은 송나라의 명록촌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 후 우나라는 晉나라에게 망하자 秦나라로 시집가는 신부의 남자종이 되어 가게 되었다. 가는 도중 도망쳐 楚나라로 가게 되었다. 거기에서 소를 기르며 지내다가 소문이 나 초왕까지 알게 되었다.

秦목공은 晋나라에서 시집온 백희의 수행 남자종 명단에 있는 백리해가 없어 찾던중 공손지란 신하의 설명을 듣고 백리해를 찾아올 방법을 궁리하였다.

초나라에 있는 백리해를 찾기 위해 많은 폐백을 주면 백리해가 훌륭한 인물인 줄 알고 내주지 않을 테니 도망간 종놈을 처벌하기 위해 잡아 가겠다고 하며 데려오기로 하였다.

이에 秦나라의 사자는 염소가죽 다섯장을 초왕에게 바치고

“우리 주공께서 천한 백리해란 종놈이 귀국에 도망쳐서 숨어있다고 하니 그놈을 잡아다가 벌을 줌으로써 앞으로 도망치려는 자들을 경계하고져 합니다. 염소가죽 다섯장을 드리오니 군후께선 죄인을 잡아 보내주십시오.”

초왕은 秦나라의 환심을 잃을까 두려워 백리해를 잡아다가 진나라 사자에게 넘겨주라고 하였다.

공손지는 백리해를 영접하여 秦목공에 안내하였다.  이 때 백리해의 나이가 70이었다. 秦목공이 탄식하였다.

“아깝구나. 너무 늙었도다.”

“이 백리해에게 나는 새를 쫓아다니라든지 맹수를 잡아오라면 신은 이미 늙어서 쓸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신에게 앉아서 나랏일을 맡아보게 한다면 신은 아직 젊습니다. 옛날에 강태공은 나이 여든에 渭水가에서 곧은 낚시질을 했건만 그 때 문왕은 그를 수레에 싣고  돌아가서 상부(尙父)로 삼고 마침내 주나라를 세웠습니다. 신이 오늘 군후를 뵈온 것과 그 때 강태공이 문왕을 만났을 때를 비교하면 신은 아직도 열 살이나 젊습니다.”

진목공은 그 말이 장함을 알고 다시 정색했다.

“우리나라가 융적사이에 있어 아직 중국과 함께 동맹을 맺지 못하고 있으니 이점 노인은 어떻게 과인을 지도하시려오?”

“주공께선 다만 덕을 베푸시고 한편 힘으로써 쳐 무찔러 서쪽을 완전히 우리의 것을 만든 연후에 험난한 산천으로 방패를 삼아 중국을 굽어보며 기회를 놓치지 말고 나아간다면, 은덕과 위엄을 원하시는 대로 부릴 수 있습니다. 그러고도 패업을 성취하지 못할 리 있겠습니까?”

진목공이 부지중에 벌떡 일어서서 감탄한다.

“과인에게 백리해가 있다는 것은 마치 제환공에게 관중이 있는 것과 같도다.

진목공은 백리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서 사흘동안 흉금을 터놓고 천하를 논했다. 진목공은 백리해의 탁월한 식견에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백리해에게 상경의 벼슬을 주고 나라일을 맡겼다.

이런 뒤로 진나라 사람은 백리해를 오고대부라고도 불렀다. 곧 염소가죽 다섯장으로 그를 얻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백리해는 상경벼슬을 사양하고 자기대신 다른 사람(건숙)을 천거했다.

송나라 명록촌에 있는 건숙을 찾아 궁으로 모신 뒤 진목공과 지리를 함께 하였다.

“백리해가 여러번이나 선생의 현명함을 말하였소. 선생은 무엇으로써 과인을 지도하려오?”

건숙이 정중히 대답한다.

“진나라는 중국과 떨어진 서쪽에 위치하고 융적과 이웃간에 있습니다. 땅은 험하고 군사는 강하여 나아가면 족히 싸울 수 있고 물러서면 족히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원에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공의 위엄과 덕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위엄이 없으면 어찌 그들로 하여금 진을 따르게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패업을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진목공이 묻는다.

“위엄과 덕, 이 둘 중에서 어떤 걸 먼저 해야 하오?”

“덕으로 근본을 삼고 위엄으로 그들을 지도해야 합니다. 덕만 있고 위엄이 없으면 나라를 타국에 뺏깁니다. 또 위엄만 있고 덕이 없으면 그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나라를 혼란하게 합니다.”

“과인이 덕을 펴고 위엄을 세우려면 어찌해야 하오?”

“진에는 오랑캐의 풍속이 섞여 있어서 백성들 중에 예법을 모르는 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계급과 위엄이 분명하지 못하고 귀천이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청컨대 신은 주공을 위해서 먼저 교화(敎化)하고 뒤에 형벌 할 것을 주장합니다. 교화가 실시되면 백성은 그 윗사람을 존경할 줄 아나니, 그런 뒤에 은혜를 베풀어야만 백성들이 감사할 줄 알게 되며, 또한 형벌을 써도 그들이 두려워할 줄 알게 됩니다. 이렇듯 상하가 손발처럼 서로 맞아 들어가면 무슨 일이든 어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제나라 관중은 능히 상하를 절제하며 천하를 호령하기 때문에, 그를 당적할 자가 없는 것도 다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건숙의 말을 듣고 진목공이 다시 묻는다.

“진실로 선생의 말처럼 하면 마침내 천하의 패권을 잡을 수 있겠소?”

건숙이 옷깃을 여미고 대답한다.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대저 천하를 제패하려면 세가지 것을 지켜야 합니다. 첫째는 욕심을 버려야 하며, 둘째는 분노하지 않아야 하며, 셋째는 무엇이든 조급히 서둘지 말아야 합니다. 욕심이 많으면 그만큼 잃는 것이 많으며, 분노하면 할 수록 일은 어려워지며, 조급히 서둘면 그만큼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대저 일이란 크고 작은 걸 잘 살펴서 추진해야 하나니, 어찌 욕심을 부릴 수 있습니까? 상대와 자기를 저울질해서 베풀어야 하나니, 어찌 분노할 수 있습니까? 천천히 할 것과 급히 할 것을 짐작해서 펴야 하나니, 어찌 조급할 수 있겠습니까? 주공께서 이 세가지를 잘 지키시면 그제야 패업을 성취하기에 가깝다고 하리이다.”

“참 훌륭한 말씀이오. 선생이여. 청컨대 과인을 위해 오늘날 뭣이 급한 일이며 ,뭣이 천천히 해야 할 일인지 지시하오.”

“우리 진은 나라를 서융까지 확대시키느냐 못하느냐가 장차 행복과 불행의 판가름이 됩니다. 이제 제후는 늙었고, 장차 그의 패업도 시들어갑니다. 이 때를 당하여 주공께선 진실로 옹(雍), 위(渭) 의 백성에게 덕을 베풀고 나아가서는 오랑캐들까지도 감화시킨 뒤에 그들을 거느리고서 복종하지 않는 오랑캐를 치십시오. 모든 오랑캐가 복종하게 되거든 병사를 거두고 중원에 변동이 있기를 기다려 제나라가 남긴 것을 줍고 덕과 의를 펴십시오. 그러면 주공께서 비록 패업을 원하지 않으시더라도 사양하지 못할 것입니다. ”

진목공이 감탄한다.

“과인이 얻은 두 노인은 참으로 庶民의 長이로다.”

드디어 진목공은 건숙을 右庶長으로 삼고 백리해를 좌서장으로 삼았다. 이리하여 두 노인의 位는 다 上卿에 올랐다. 그 뒤로 진나라에선 그들을 二相이라고 불렀다. 진목공은 건숙의 아들 건병에게도 대부 벼슬을 주었다.

二相은 정사를 함께 보며 법을 세워 백성을 가르치고 나라를 일으키면서 일체 재난을 극력 막았다. 그 뒤로 진나라는 크게 발전했다.


전력을 다해 주인을 섬기는 것을 충이라 하며, 죽을지언정 약속을 어기지 않는 것을 신이라 한다.  --秦나라 순식--


어진 사람은 상대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이익을 취하지 않으며, 지혜있는 사람은 요행수를 믿고 성공을 노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晋에 곡식을 꾸어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秦나라 요여--


남의 불행을 다행으로 아는 사람은 어질지 못하고 남의 은혜를 배반하는 사람은 의롭지 못함이라. 의롭지 못하고 어질지 않으면 어떻게 나라를 지키겠소 --晋나라 경정--


晋후가 秦나라에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목희는 상복을 입고 세자와 궁을 나와 초막에서지냄에 대하여 내시 한 사람이 묻는다.

“晋후는 욕심만 많고 의리가 없어 우리 주공을 거듭 배신했고 또 부인의 간곡한 부탁을 여러번 저버렸으나 오늘날 그는 스스로 곤욕을 취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어찌하사 이번에 그렇듯 상심하셨나이까?”

목희가 조용히 대답한다.

“어진 사람은 비록 원한이 있을지라도 부모형제를 잊지 않으며, 비록 노할 지라도 예의를 버리지 않는다. 만일 晋후가 우리 진나라에 잡혀와 죽는다면 어찌 나에게도 죄가 없겠느냐?”

이 말을 듣고 군부인의 어진 덕을 칭송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秦나라 관리들은 晋나라 하서지방 다섯성에 각각 관청을 설치하고 경계를 정한 뒤 晋혜공을 공관으로 불러 국빈으로 대하는 예의로써 칠뢰(七牢)로 晋혜공을 대접했다. 한바탕 크게 晋혜공을 대접한 뒤 공손지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진혜공과 여이생 일행을 국경까지 전송하게 해주었다.

대저 소와 염소와 돼지 한 마리씩을 일뢰(一牢)라 하고 칠뢰란 것은 융숭한 대접을 했다는 뜻이다. 이는 오로지 진목공이 진혜공과 새로이 우호를 맺고자 한 때문이었다.

이로써 진혜공은 9월에 패전하여 진나라에 수감되었다가 동짓달에야 석방되어 귀국했다.


공자 중이 일행이  피신을 하는 도중 배가 고프고 먹을 것이 없음에 개자추가 어디서 생겼는지 고깃국 한 그릇을 중이에게 바쳤다.

중이가 단숨에 고깃국을 맛있게 먹고 묻는다.

“어디서 고기가 생겼소?”

개자추가 웃으며 대답한다.

“그것은 신의 허벅다리 살입니다. 신이 듣건대 효자는 제 몸을 죽여서까지 부모를 섬기고 충신은 제 몸을 죽여서까지 임금을 섬긴다 하옵니다. 이제 공자가 너무나 시장하신 터이기에 신이 허벅다리의 살점을 도려내어 국을 끓였습니다.”

중이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도망다니는 사람이 그대에게 너무나 폐를 끼치는구나. 장차 무엇으로써 그대에게 이 은혜를 갚을까!”

개자추는 그저 웃으면서,

“신은 공자께서 귀국하실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비는 마음 뿐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공자의 고굉지신(股肱之臣)이 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외에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고굉지신(股肱之臣) - 임금의 팔과 다리같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하 즉 임금이 가장 믿고 중하게 여기는 신하라는 뜻


4권 - 영웅이 때를 만나니

제환공은 원래 영특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칼도 오래되면 날이 무디고 사람도 늙으면 기력이 줄어드는 법이다. 더구나 그는 평생 소원이던 패업을 성취하고 천하 모든 나라 제후의 장이 되었으므로 항상 만족이 있을 뿐  불만이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다가 그는 술과 여자를 몹시 좋아 했다. 그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맑게 하지 못한 사람이어서 늙을수록 형편없이 찌부러졌다. 사람은 앞날을 근심치 않으면 가까운 근심이 없는 법이다. 그러더니 제환공은 불시에 병이 나서 침실에 눕고 말았다.

역아는 편작이 제환공을 면대하고서 그냥 가버린 걸 보고 제환공의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역아는 초와 함께 밀실에서 하룻밤 동안 상의하고 한가지 계책을 세웠다. 이튿날 역아는 패를 써서 궁문에 내다 걸었다.

그 패엔 다음과 같은 제환공의 전지가 적혀 있었다.


과인이 이제 심한 병으로 자리에 누웠으니 일체 모든 일을 듣고자 하지 않노라. 모든 신하든 백성이든 간에 아무도 궁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금하노라. 초는 궁문을 굳게 지켜 일체 출입을 금하고, 역아는 궁중 병사들을 거느리고 위반하는 자가 없도록 순시하여라. 나라 정사에 관한 것은 일체 과인의 병이 완쾌될 때를 기다려서 아뢰어라.


그 패의 글은 물론 역아와 초가 조작한 것이었다. 그들은 공자 무휴만을 장위희의 내궁에 머물게 하고, 다른 공자들은 일체 궁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사흘이 지났다. 제환공은 죽은 듯이 누워 있을 뿐 아직 숨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역아와 초는 제환공 좌우에서 시위하는 사람들까지 남녀 할 것 없이 다 궁문 밖으로 내쫓았다. 궁문은 철통처럼 막히고 인적이 끊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제환공의 침실 주위에다 높이 3장이나 되는 담을 둘러쌓았다. 바람 한 점 통하지 않을 만큼 담 안과 밖은 딴 세상이 됐다. 다만 담 밑에 개구멍 같은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어린 내시 하나가 아침저녁으로 그 구멍으로 들어가서 제환공이 죽었는지 아직 살아있는지를 보고 나왔을 따름이다.

그러는 한편 역아와 초는 궁중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다른 공자들이 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삼엄한 경계를 폈다.

침상에 누워 있는 제환공은 일어나려 해도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거 아무도 없느냐?”

“......”

좌우 시위들을 불러도 대답하는 놈 하나 없었다. 제환공의 눈은 얼빠진 사람처럼 빛이 없었다.

그때 바깥에서 털썩 하고 무슨 소리가 났다. 무엇이 높은데서 떨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창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제환공은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쳐다봤다. 앞에 서있는 것은 그의 천첩 안아아였다. 제환공이 입을 다시며 말한다.

“몹시 시장하다. 죽이 먹고 싶구나. 좀 갖다다오.”

안아아가 대답했다.

“어디 가서 죽을 가져오란 말씀이옵니까? 죽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더운 물 한 모금만 다오. 목이 탄다.”

“더운 물도 구할 수 없습니다.”

“왜 없다고만 하느냐?”

“역아와 초가 변란을 일으켜 누구에게나 일체 궁문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 침실 주변엔 높이 3장이나 되는 담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이곳과 바깥은 드나들지 못합니다. 그러니 어디가서 음식을 가져오겠습니까?”

“그럼 너는 어떻게 이 곳에 들어 왔느냐?”

“첩은 지난날 주공께서 한 번 사랑해 주신 은혜를 입었으므로 목숨을 돌보지 않고 담을 넘어왔습니다. 주공께서 세상을 떠나시는 것을 지켜드리고자 왔습니다.”

“공자 소는 어디 있느냐?”

“소인놈들이 막고 있어 궁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환공이 흐느껴 울면서

“중부는 성인이었구나! 성인이 본 바가 어찌 틀리리오. 과인이 총명치 못했음이라. 이 꼴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지. 마땅해!”

다시 눈을 부릅뜨고 부르짖는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소백은 이렇게 죽어야 합니까?”

제환공이 원통해서 연거푸 부르짖더니 마침내 입으로 피를 줄줄 쏟았다.

“내가 사랑하던 계집이 여섯이며, 자식이 여남은 명이나 되건만, 지금 내 눈앞에 하나도 없구나. 다만 네가 혼자 나의 죽음을 전송하니, 내 평소에 너를 후대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

안아아가 조용히 대답한다.

“청컨대 주공께서는 천만자애하소서. 주공께서 불행하시면 원컨대 첩도 목숨을 버리고 떠나시는 길을 따라가겠습니다.”

제환공은 

“내 죽어 만일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만이로되 죽어서도 아는 것이 있다면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 가서 중부를 대할까?”

이렇듯 탄식하고 옷소매로 자기 얼굴을 가렸다. 제환공은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쓰러진 그대로 거듭 탄식하다가 마침내 운명했다. 주양왕 9년 10월, 재위 43년, 壽는 73세였다.


남쪽으론 초나라를 눌러 연공을 바치게 했고

북쪽으론 어리석은 오랑캐를 깨우쳐 사막지대의 경계를 바로잡고

위나라를 튼튼하게 하고 형나라를 도와 어진 덕을 나타냈고

혼란을 진압하고 법을 밝혀 정의를 드날렸도다.

춘추시대에 바르고 거짓이 없던 걸로 말하자면

제환공이 다섯 영웅 중에서 그 공로가 가장 컸도다.

안아아는 제환공이 운명하는 것을 보고 나가려 했으나 담이 높아 나갈 수가 없고 소리도 전해지지 않아 바깥에 알리지도 못하고 웃옷을 벗어 시체를 덮어주고 창가에 있는 대선(大扇)으로 앞을 가렸다. 그리고 기둥에 머리를 짓찧고 고꾸라져 숨을 거두었다.

그날밤 내시가 들어와 침실 기둥 밑에 쓰러진 모습을 보고 기절초풍하여 역아에게 이르니 초와 함께 가서 확인하였다.

그 후 발상도 하지 않고 동궁의 세자를 죽이려고 하였다. 한편 세자에게는 안아아의 선몽으로 상경 고호의 도움을 받아 최요와 함께 송나라에 몸을 피하게 되었다. 

그리고 장위희의 아들 무휴를 군위에 세우려고 군사를 이용하여 역아는 대갈 일성, 초는 칼을 휘두르며 문무백관들을 사살하고 내쫓았다. 궁중이 전장터로 변했다.

무휴는 챙피하고 화가 났지만 역아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한편 한 궁성에 여러 적국들이 겨루는 것처럼 다른 공자들도 군위를 쟁탈하기 위해 서둘렀다. 

고호와 국의중 노대부, 문무백관들이 궁으로 들어간다.

“공자들이 서로 겨루며 양보하지 않으니 이러다간 한이 없겠다. 우리는 공자 무휴에게 청하여 주상이 되어달라고 왔을 뿐 다른 뜻이 없노라.”

이리하여 시초는 그들을 안내하고 조당에 있는 무휴 앞으로 갔다.

“신들이 듣건대 부모의 은혜는 하늘과 땅과 같다고 합디다. 그러므로 사람의 자식된 자는 그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는 정성껏 공경하고 그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빈(頻)하여 장사지내는 법이다. 신들은 이 세상에서 아버지가 죽었건만 염도 하지 않고 부귀만 다투는 아들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습니다. 더구나 임금은 신하의 근본입니다. 임금이 불효하거늘 신하가 어찌 충성을 다하겠습니까? 선군이 세상을 떠나신 지도 두 달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아직 입관도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러고도 공자는 정전에만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합니까?”

모든 신하는 땅바닥에 엎드려 통곡했다. 무휴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대답한다.

이에 시초가 먼저 제환공의 침궁에 가서 주선했다.

한편 제환공의 시체는 침상 위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비록 추운 겨울이지만 침상위의 시체는 피와 살이 다 흐무러져 있었다. 썩는 시즙냄새에 코를 들 수 없었다. 시체에서 생겨난 개미만큼씩한 벌레들이 높은 담장 바깥까지 나와서 기어다니고 있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어디서 이런 벌레가 생겨나왔을까 하고 의심했다. 문을 열고 침실로 들어가서야 시체의 썩어문드러진 오장육부 사이로 벌레들이 바글바글 들끓는 걸 보고는 그 처참한 광경에 모두가 크게 놀랐다.

무휴가 방성대곡하자 모든 신하도 일제히 통곡했다. 그 날로 널을 짜고 성대히 시체를 염했다. 비록 성대하게 염을 했으나 워낙 시체가 상한 터라 겨우 수의로 쌌을 정도였다.

그러나 안아아의 얼굴은 산 사람과 같았고 몸도 상한 곳이 없었다. 고호 등은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충성과 매운 절개를 짐작할 수 있어서 차탄하여 마지 않았다. 동시에 안아아의 널도 짜고 염도 했다.

고호는 모든 신하와 함께 무휴를 주상으로 받들고 각기 지위에 따라 늘어서서 애곡했다. 그날 밤에 그들은 다 함께 영구 곁에서 밤을 밝혔다.

한편 공자 원, 공자 반, 공자 상인 등은 각기 다른 전각에서 옹거하고 있다가 고호 국의중 두 대신이 문무백관과 함께 상복으로 차려입고 입궁하는 걸 보고서 무슨 일인지 몰라 궁금했다. 나중에야 세 공자는 그들이 선군을 이미 수렴하고 무휴를 주상으로 삼고 임금으로 추대했다는 소문을 듣고서 각기 군사를 거두었다.


한편 제환공의 세자 소는 구사일생으로 송나라에 피신을 갔다. 그는 울면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송양공에게 역아와 초가 변란을 일으킨 사실을 호소했다.

송양공은 모든 신하를 불러 묻는다.

“과인은 모든 나라 제후들과 대회를 열고 제나라를 쳐서 세자 소를 군위에 세울까 하오. 만일 이 일을 성취하면 우리 송나라는 모든 나라 제후들 사이에 크게 이름을 떨칠 것이며 동시에 우리 송나라가 다시 대회를 열고 모든 제후를 불러 동맹을 맺는다면 죽은 환공의 패업 역시 계승할 수 잇을 것이오. 이러한 즉 경들은 과인의 뜻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경 벼슬에 있는 목이가 아뢴다.

“우리 송은 제나라만 못한 점이 세가지나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모든 나라 제후를 부릴 수 있겠습니까?”

“목이는 어째서 우리나라가 제나라보다 세가지나 못하다고 하오.”

공자 목이가 대답한다.

“제나라엔 태산과 발해라는 천연적 성벽이 있고 또 낭야, 즉묵 땅의 곡창지대가 있지만, 우리는 나라가 작고 토질이 박해서 군대도 수효가 적고 곡식도 넉넉지 못하니, 이것이 제나라만 못한 그 한가지 이유입니다. 또 제나라에는 고호 등이 있어 나라를 보살피고, 또 관중 영척 습붕 포숙아 등이 있어 모든 일을 상의해서 했으나, 우리는 문무가 갖추어져 있질 못하고, 또 어진 사람이 등용되지 않았으니, 이것이 제나라만 못한 두가지 이유입니다. 또 제환공은 북으로 산융을 쳤을 때 兪兒가 나타나 길을 지시했고, 교외에서 사냥했을 때 위사(委蛇)가 자태를 나타냈으나, 우리나라에선 금년 정월에 다섯 개의 별이 하늘에서 떨어졌건만 다 돌로 化했으며, 2월엔 큰 바람이 불어 여섯 마리의 큰 백로가 달아났으니, 이는 다 진취성보다도 후퇴하는 징조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제나라만 못한 세가지 이유입니다. 지금 우리는 나라를 보전하기에도 급급하온데 어느 여가에 다른 사람까지 돌볼 수 있겠습니까?”

송양공이 의젓이 대답한다.

“과인은 늘 인의를 근본으로 삼는 사람이오. 의로운 사람을 돕지 않으면 이는 인이 아니며, 사람의 부탁을 받고도 이행하지 않으면 이는 의가 아니라.”

마침내 송양공은 세자 소를 위해 모든 나라로 격문을 보냈으나 위, 노 모두 달가워하지 않았다.

제환공의 정례를 마치고 고호, 국의중 대신의 힘을 얻어 세자 소는 군위에 오르게 된다. 이 분이 바로 제효공이다.



 공자 중이가 조나라를 곤궁한 모습으로 지나게 되었다. 희부기는 조공공에게 후대하라고 간한다. 하지만 조공공은 비용이 과중하여 나라를 지탱하기 어렵다고 반대한다. 이에 희부기는 다시 권한다.

  “진나라 공자 중이가 어질고 덕이 있다는 것은 천하에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더구나 그는 중동(重瞳), 변협(변脇)이어서 크게 귀한 상이라고 하더이다. 그러니 보통사람처럼 대해서는 안 됩니다.”

  조공공과 간신배들에게 매우 어질다느니 큰 덕이 있다느니 하는 말이 먹힐 리가 없었다. 그러나 중동, 변협이란 말을 듣고선 머리를 갸웃거렸다. 조공공이 묻는다.

  “중동은 눈 하나에 눈동자가 두 개씩 있다는 건 과인도 들어서 알지만, 변협이란 무엇인고?”

 “변협은 늑골이 여러개로 되어있지 아니하고 단 한 개의 넓은 뼈로 이루어져 있는 이상한 상입니다.”

  “과인은 그 가슴뼈가 얼마나 넓은진 모르겠으나 단 하나로 되어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어떻든 그를 공관에 머물게 하고 그가 목욕하는 거나 한번 보리라.”


  진목공의 도움으로 공자 중이는 고국에 돌아가 임금이 되게 되었다.

  공자 중이는 지난날 배고프고 갈아입을 옷조차 없던 시절에 사용했던 구멍 난 옹기솥, 깨진 질그릇, 구멍 난 돗자리, 먹다 남은 술찌꺼기 등을 챙기는 호숙에게 말한다.

  “내 이제 고국에 돌아가면 임금이 될 것이며 진수성찬만 해도 다 먹질 못할 터인데 저런 구질구질하고 쓸데없는 것들을 기지고 가서 무엇에 쓰리오. 호숙아! 그것을 백사장에 내다 버려라.”

이를 듣고 호숙은 공자를 바라만 보며 혼자 탄식한다.

“공자가 아직 부귀를 얻기도 전에 빈천했던 지난 날을 잊었구나. 다음날엔 새것을 사랑하고 옛것을 버릴 것이다. 그 때엔 지금까지 고생해온 우리를 저 옹기솥이나 질그릇처럼 대하겠지? 그렇지만 19년동안이나 고생한 지난 날을 헛되이 버릴 수는 없다. 이제 황하를 건너기 전에 공자와 모든 인연을 끊으리라. 그렇게라도 해야 다음날에 서로 잊지 않고 생각날 때가 있겠지.”

  호언은 공자 중이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진목공으로부터 받은 흰구슬 한 쌍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바쳤다.

“공자는 이 황하만 건너시면 바로 진나라 경계에 들어서십니다. 지금 국내에선 공자를 기다리는 신하가 많고 밖으론 진나라 장수와 군대가 공자를 돕고 있으니 이젠 공자께서 진나라를 얻지 못할까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신은 이 이상 공자를 모신대야 공자에게 아무 도움도 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바라건대 신은 이 곳 진나라에 머물러 있으면서 국외의 신하가 되겠습니다. 신이 가지고 있는 이 구슬 한 쌍을 바치고 공자와 작별하는 뜻을 표합니다.”

공자 중이는 크게 놀라 외친다.

“나와 그대는 고생 끝에 이제야 함께 부귀를 누리게 됐는데 이게 무슨 말이오.”

호언이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신은 지금까지 공자에게 세가지 죄를 지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신은 공자를 더 모실 수 없습니다.”

“세가지 죄라니 그게 다 무슨 소리요?”

“신이 듣건대 성스러운 신하는 능히 그 임금을 높이며(尊), 어진 신하는 능히 그 임금을 편안하게 한다 하옵니다. 지난날 불초 신은 공자로 하여금 오록 땅에서 갖은 곤란을 겪게 했으니 그 죄 하나이며, 또 조나라와 위나라 두 임금으로부터 갖은 천대를 받게 했으니 그 죄 둘이며, 취한 공자를 수레에 싣고 제나라를 빠져나와 공자를 진노케 했으니 그 죄 셋입니다. 오늘날까지는 공자께서 두루 열국을 방황하시며 망명중이셨기 때문에 신이 감히 곁을 떠날 수 없어 모시고 다녔습니다만 이젠 고국산천으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신은 장구한 세월동안 분주히 돌아다닌 때문에 그간 여러 번 놀라 넋이 이젠 거의 꺼질 것만 같고 몸도 마음도 다 소모되어서 마치 저 구멍 난 옹기솥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부서진 그릇은 다시 상 위에 놓을 수 없으며, 찢어진 돗자리는 다시 펼 수 없습니다. 신이 있대서 이익도 될 것 없으며 신이 떠난대서 손해 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은 이제 공자 곁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듣고 공자 중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대가 나를 이렇게 심히 꾸짖는 것이 마땅하고 마땅하다. 이는 나의 잘못이었소. 호숙아, 저 백사장에 내버린 물건들을 도로 일일이 들여놓아라.”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백사장에 내다버린 그 폐물들을 다시 배안으로 옮겨놓았다.

공자 중이는 넓은 황하를 굽어보며.

“내 고국에 돌아가서 그대의 그간 고생을 잊는다든지 그대가 나와 함께 한마음으로 나랏일을 돌보지 않는다면, 어느 쪽이든 그 자손들이여 불행하라! 그 자손들이여 불행하라!“

맹세하고 다시 흰 구슬을 들어 흐르는 강물에 던졌다.

이 때 개자추도 그 배안에 있었다. 개자추는 공자와 호언이 서로 맹세하는 걸 보고 웃으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공자가 이제 고국에 돌아가게 된 것은 누구의 공인가? 다만 하늘의 뜻이거늘 호언은 자기의 공이라고 생각하는가 저렇듯 부귀를 탐하고 도모하는 자들과 함께 벼슬을 산다는 것은 나의 수치로다.”

이때부터 개자추는 은퇴할 생각이 있었다.


진문공이 군위에 오른 뒤 널리 인재를 등용하고 선군의 신하를 용서하려고 하였으나 여이생, 극예 등은 발제와 함께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임금을 죽이려고 모의를 하였다. 하지만 발제는 모든 실정을 고해바치고 그 공로로 부귀를 누리고 싶었다.

그리하여 발제는 호언의 집을 찾아 진문공께 비밀을 아뢸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처음엔 자기를 죽이려고 하였던 발제를 진문공이 만나주지 않았다.

발제는 소리 높여 웃으며 대답한다.

“주공은 19년이나 타국을 방황했으면서도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시나이까? 선군 헌공은 주공의 아버지 이시며, 혜공은 주공의 동생이십니다. 아버지가 그 자식을 원수로 삼고, 동생이 그 형을 원수로 생각하는 것은 꾸짖지 않으시고 이 보잘것 없는 신하 발제만을 책망하십니까? 소신 발제는 그 당시 헌공 혜공만이 임금인 줄 알았지 어찌 또 임금이 있을 줄 생각인 들 했겠습니까? 옛날에 관중은 공자 규를 위해 활로 제환공을 쏴서 그 혁대 고리를 맞혔건만 그후 제환공은 관중을 등용해서 마침내 천하의 패권을 잡았습니다. 만일 주공께서 그런 꼴을 당하셨다면 화살에 맞은 원한이야 갚겠지만 천하 맹주의 대업 만은 성취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을 만나주지 않아도 신에겐 아무 손해가 없습니다. 다만 신이 떠나고 나면 머지 않아 주공에게 불행이 닥쳐올 것이니 참으로 걱정입니다.”

그리하여 진문공은 미복으로 갈아입고 진나라로 떠나고  며칠 뒤 여이생, 극예등은 궁에 불을 지르고 임금을 찾았으나 이미 피신하여 화를 면하고 반란을 일으킨 여이생 극예등은 참형을 당하였다.

秦나라 궁에선 값진 물품을 수레에 싣고 진목공의 딸인 회영이 晋나라에 타고 갈 아름다운 수레를 새로 꾸몄다. 회영은 수레를 타고서 몸종 다섯을 데리고 떠났다. 진목공도 딸을 전송하려고 황하까지 따라갔다.

진나라 정병 3,000명이 호화찬란한 행렬로 앞뒤를 호위했다. 그 군사들을 紀綱之僕이라고 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집안이나 나라 다스리는 것을 기강이라고 하는데 이 기강이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진문공은 공로있는 자만을 위주로 전혀 사람 차별을 하지 않고 첫째는 덕에 대해서, 둘째는 재주에 대해서, 셋째는 공로에 대해서 1등, 2등, 3등 공신의 논공행상을 하였다. 이 때 빠진 사람으로 개자추(介子推)가 있었다.

개자추는 진문공과 함께 모든 나라를 돌아다니며 망명한 신하들 중 하나이다. 그는 원래 청렴결백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지난날 모두가 고국을 향하여 황하를 건너던 때에, 개자추는 호언이 큰 공이라도 세운 체하며 공자 중이를 간하는 말을 듣고서 웃었던 사람이다. 그는 그러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궁정에서 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개자추는 귀국한 뒤에 반열에 끼어 서서, 한번 진문공에게 조하를 드린 뒤로 병들었다고 핑계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는 맑고 가난한 것을 즐겁게 지켰다.

그는 손수 신을 짜서 단 한 분인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며 생계를 꾸렸다.

진문공은 총망중에 개자추를 잊어버린 채 물어보지도 않고 버려두었다.

이 때 성벽에 걸린 조서(공로가 있는 사람 중에 이번 행상에 빠진 사람이 있거든 자진해서 신고할 것을 허락한다.)를 보고  개자추의 이웃에 사는 해장이 개자추에게 알린다. 그러나 개자추는 웃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이 때 늙은 어머니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서 이들 개자추에게 말한다.

“한번 가보아라. 너는 19년동안이나 주공을 모시고 방랑하지 않았느냐? 더구나 지난날에 너는 넓적다리 살점까지 도려내어서 임금께 잡숫게 하지 않았는가? 너의 고생도 적지 않았는데, 왜 가서 말하지 않으려고만 하느냐? 그래도 다소나마 곡식을 받게 되면 우리 모자의 조석 끼니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도 짚신을 삼아서 파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느냐?”

개자추가 대답한다..

“돌아가신 전 임금 진헌공은 아들 아홉 분을 두셨습니다. 그 아들 아홉 사람 중에서 오직 우리 주공께서 가장 어지셨습니다. 진혜공과 진회공은 덕이 없으셔서 하늘이 그 자리를 뺏어 우리 주공께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신하들은 하늘의 뜻을 모르고서 각기 자기의 공인 줄만 알고 서로 벼슬을 다투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다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일생동안 짚신을 삼을지언정 하늘의 공을 자기의 공인 것처럼 탐하기는 싫습니다.”

늙은 어머니가 말한다.

“네 뜻은 잘 알겠다. 비록 국록을 바랄 건 없다만 그래도 한번 궁에 들어가서 네가 살을 베어 주공께 잡숫게 했던 일을 잊지나 않게 하려무나.”

개자추가 대답한다.

“제가 이젠 임금께 요구할 것이 없는데, 무슨 일로 궁에 가겠습니까?”

“너는 참으로 청렴결백한 선비다. 네가 그럴바에야 난들 어찌 청렴결백한 선비의 어미가 못되란 법이 있느냐. 우리 모자는 마땅히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이 혼잡한 市井에서 더러워짐이 없게 하자.”

개자추는 매우 기뻤다.

“저는 원래 면산을 좋아합니다. 산은 높고 골은 깊어 참으로 좋은 곳입니다. 이제 어머니를 모시고 면산으로 가서 살겠습니다.”

개자추는 그날로 어머니를 등에 업고 면산으로 갔다. 면산에 당도한 개자추는 깊은 산골에다 초려를 지었다. 그는 풀로 옷을 해입고 나무열매를 따먹으면서 일생을 마칠 작정이었다.

한편 이웃사람들 중에는 개자추와 그 어머니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해장만이 그들 모자의 행방을 알고 있었다. 해장은 글을 지어 한밤중에 朝門 위에다 걸었다.

이튿날 아침 진문공은 조회에 나갔다. 입궁하던 신하들이 조문 위에 붙어 있던 그 글을 떼어 진문공에게 바쳤다.

그 詞에 하였으되


용맹한 용이 있었는데

그 있던 곳을 쫓거나 슬퍼했도다.

그래서 여러 마리 뱀이 그를 따라

두루 천하를 돌아다녔도다.

그 용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매

한 뱀이 제 살을 베어 먹였도다.

그 뒤 용은 못으로 돌아가

그의 국토를 안정시켰도다.

몇 마리의 뱀도 구멍으로 들어가 다 거쳐할 집을 가졌도다.

그런데 한 뱀만이 들어갈 구멍이 없어

저 벌판에서 울부짖는도다.


진문공은 다 읽고서 크게 놀랐다.

“이는 개자추가 과인을 원망한 글이다. 지난날 과인이 위나라를 지날 때 몹시 시장했는데, 개자추는 자기 넓적다리 살점을 베어 과인에게 먹였다. 이번에 과인이 공신들에게 크게 상을 내렸는데 개자추만 홀로 빠졌으니 과인의 잘못을 어찌할꼬?”

진문공은 즉시 사람을 개자추에게 보냈다. 그러나 개자추는 없고 빈 집뿐이었다. 진문공이 개자추의 집 이웃 사람들을 불러들여 묻는다.

“개자추는 어디를 갔느냐? 간 곳을 아는 사람에겐 즉시 벼슬을 주리라.”

해장이 앞으로 나아가 아뢴다.

“그 글은 자추가 지은 것이 아니라 소인이 지은 것입니다. 개자추는 상을 구하는 것이 부끄럽다 하고 그 어머니를 등에 업고 면산으로 들어가서 숨었습니다. 소인은 그의 공로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까 염려하고 그런 글을 지어서 조문에 붙였습니다.”

“만일 네가 그런 글이라도 지어서 걸지 않았다면 과인은 개자추의 공로를 깜박 잊을 뻔했구나.”

진문공은 즉시 해장에게 하대부의 벼슬을 주었다. 그리고 그날로 수레를 타고 해장의 안내를 받아 친히 면산으로 갔다. 면산에 이르러 보니 산봉우리는 첩첩하고 풀과 나무는 가득 들어찼고 흐르는 물은 잔잔하고 구름은 조각조각 흘러가고 숲 속에서 새들만 재재거렸다. 사방으로 사람을 펴서 불러보아도 산울림만 대답할 뿐, 개자추의 종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이야말로 다만 이 산 속에 있되 구름이 깊어서 있는 곳을 알지 못하겠더라는 것이었다.

이때 아랫사람들이 진문공 앞에 농부 몇사람을 데리고 왔다. 진문공이 친히 농부들에게 묻는다.

“수일 전에 늙은 어머니와 함께 이 산 속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지 못했느냐?”

“예. 며칠 전에 본 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늙은 노파를 업고 이 산 아래서 쉬며 물을 마시고, 다시 노파를 업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오나 며칠전 일이어서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진문공은 산 아래에다 수레를 멈추게 한 뒤,

“이 산을 두루 찾아보아라.”

하고 따라온 사람들에게 분부했다. 따라온 군사들은 흩어져 산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지 며칠이 지났다. 그러나 군사들은 결국 개자추를 찾아내지 못했다.

진문공이 노기를 띠고 해장에게 말한다.

“개자추는 어찌하여 이렇듯 과인을 원망하는가! 내 듣건대 개자추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라 하니, 만일 불을 놓아 숲을 태우면 그는 필시 그 어머니를 업고 숨어 있는 곳에서 나올 것이다.”

이윽고 군사들은 면산 전후좌우에 불을 질렀다. 불은 맹렬히 타오르고 바람은 강하게 불었다. 불길은 수 마장을 태웠다. 사흘 후에야 불은 꺼졌다.

그러나 개자추는 나오지 않았다. 아들과 어머니는 서로 안고 버드나무 밑에 타죽어 있었다. 군사들은 그 해골만을 찾아서 산에서 내려왔다. 그 해골을 보고 진문공은 하염없이 울었다.

진문공은 면산 아래에다 개자추와 그 어미의 뼈를 묻게 했다. 그리고 개자추의 사당을 지어 해마다 제사를 지내게 했다. 이리하여 면산 주위에 있는 밭은 다 개자추의 사당을 위한 사전(祀田)이 되었다. 그곳 농부들은 진문공의 명을 받고 해마다 개자추의 사당에 제사를 지냈다.

진문공은 그 면산이란 이름을 介山이라고 고쳤다. 그것은 자기의 잘못을 숨기지 않으려는 심정이었다.

후세 사람들은 그 지방을 고을로 승격시키고 이름 또한 개휴(介休)라고 고쳐 불렀다. 곧 개자추의 영혼이 이곳에 쉬고 있다는 뜻이다.

그 때 산에다 불을 지른 것이 바로 3월 닷새날이며 절기로는 청명이었다. 그래서 진나라 사람들은 개자추를 사모하는 뜻에서, 또 그가 불에 타 죽은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해마다 3월이 되면 일체 불을 피우지 않고 한달 동안 찬 음식을 먹었다. 그 뒤 점점 줄어들어서 한달동안 찬 음식을 먹던 것이 사흘로 단축됐다. 지금도 태원과 상당, 서하, 안문 등 각처에서는 매년 동지 후 105일째인 그 날이 되면 미리 마른 음식을 준비했다가 냉수로 먹는다. 이 풍속을 禁火 또는 禁煙이라고 한다. 그래서 청명 하루 전날이 바로 한식날인 것이다.

한식날엔 집집마다 문에다 버들을 꽂는다. 그것은 버드나무 밑에서 타죽은 개자추의 영혼을 초혼(招魂-혼을 부름)한다는 뜻이다. 또 들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지전(紙錢)을 태우기도 한다. 이것 또한 개자추를 사모하는 뜻이다.

호증선생의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초라한 행색으로 열국을 방랑한지 19년

하늘 끝까지 돌아다니면서 임금을 모셨도다.

살을 베어 임금을 먹였으니 그 마음 참으로 지극하며

벼슬을 사양하고 불 속에서 타죽었으니 그 뜻 심히 견고했도다.

면산 높이 오르는 저 연기는 그의 기상과 절개를 보여주는 듯

개산의 장엄한 사당은 그의 충성과 어짊을 나타냈도다.

오늘날도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으며 슬퍼하나니

해마다 지전을 태워 복을 비는 것보다 훌륭한 일이다.

진문공은 신하들에게 상을 내린 후로 나라를 다스리는데 더욱 힘썼다. 우선 어진 사람이 있으면 천거하게 하고, 능력있는 자에겐 일을 맡기고, 형벌을 가볍게 하고, 부세(賦稅)를 줄이고 통상을 권하고 외빈을 예의로써 대접하고, 외로운 사람에겐 배필을 구해주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했다. 이리하여 진나라는 크게 다스려졌다.

주양왕은 태재 주공 공과 내사 숙흥을 진나라로 보내어 진문공에게 후백의 벼슬을 내렸다.

진문공은 천자가 보낸 사신들에게 더욱 예로써 대접했다. 사명을 마치고 주로 돌아간 숙흥이 주양왕에게 아뢴다.

“진후는 반드시 천하 제후를 통솔하는 백주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왕께선 그를 잘 대우하셔야 할 줄로 압니다.”

그 뒤부터 주양왕은 지금까지 제나라에 대해서 베푼 친선을 진나라에 베풀었다.


제5권 - 동호의 매서운 붓

p72 진문공은 서신이 시키는 대로 어진 사람을 대하는 예의를 갖추기 위해 내시를 불렀다. 내시는 진문공의 분부를 받고 잠영포복 簪纓袍服을 가지고 극결을 모시러 갔다. 그러나 극결이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양한다.

내시가 거듭거듭 분부를 전하니 수레에 올라 盛裝하고 궁으로 갔다.

키가 아홉척에다 코는 준수하고 얼굴이 두툼하게 생기고 목소리는 큰 종소리와 같았다. 임금은 크게 환대하고 장수로 임명하였다.


秦나라와 晉나라의 공격을 받고 있던 정나라의 대부 촉무는 秦나라의 영내에 가서 큰소리로 통곡을 했다.

秦목공이 우는 이유를 물었다.

“노신은 정나라가 망하는 동시에 진나라를 생각하고 통곡했습니다. 정나라가 망하는 것은 아깝지 않지만 장차 진나라가 망할 것을 생각하니 아깝습니다.”

진목공이 격분한다.

“우리나라가 아깝다니 뭣이 아깝다는 거냐? 저 늙은놈 말이 뒤죽박죽이구나. 당장 끌어내어목을 참하여라.”

그러나 촉무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제야 촉무는 실력을 발휘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다음과 같은 옛시가 있다.


그의 구변엔 돌로 만든 사람도 눈을 뜨고

그가 말하면 진흙으로 만든 사람도 머리를 끄덕이더라.

아침에 솟는 해를 밤에도 떠오르게 하고

동쪽으로 흐르는 황하 물도 서쪽으로 흐르게 하더라.


이처럼 구변이 좋아 말로써 진나라의 포위를 풀고 동맹까지 맺도록 하였다.


p144 사신이 진목공을 논평한 것이 있다.

  천군을 얻기는 쉽지만 위대한 장수 하나를 얻기는 어렵다. 진목공은 끝까지 맹명을 신임하고 제반사를 맡겼기 때문에 드디어 백업을 이루었다.


p148 진목공의 딸 농옥은 생황을 잘 불었다. 어느날 꿈속에서 문이 열리더니 영롱한 오색빛이 대낮처럼 빛나고 아름다운 장부가 우관 羽冠을 쓰고 학창의 (鶴氅衣)를 입고 봉황을 타고 하늘에서 봉대위로 내려왔다. 아름다운 장부가 농옥에게 말을 건다.

“나는 태화산 주인인데 上帝의 분부로 장차 그대와 백년가약을 맺게 됐습니다. 금년 中秋에 그대와 서로 만나 전생에 미진했던 인연을 다시 맺을까 합니다.”

아름다운 장부는 이렇게 말하고서 붉은 옥으로 만든 퉁소를 꺼내어 난간을 의지하고 불었다. 그가 타고 온 봉황이 퉁소 소리에 맞추어 날개를 펴고 너울너울 춤을 춘다. 춤추며 우는 봉황 소리와 옥퉁소 소리가 혼연히 일치하여 참으로 황홀했다.

다음날 농옥의 말을 들은 진목공은 맹명을 불러 태화산의 장부를 찾아오도록 하였다.

맹명은 물어물어 명성암이란 바위아래 초막을 짓고 자작자음하며 밤이면 퉁소를 불며 사는 한 이인을 찾았다. 그 사나이는 우관을 쓰고 학창의를 입었는데 얼굴은 백옥같고 입술은 산호같았다.

성명을 물어보고 궁으로 가자고 했더니 성명은 소사 簫史라고 하며 음악을 약간 아는 정도이므로 따라갈 수 없다고 하였다.

맹명의 간곡한 권유로 진목공에게 알현을 시키게 되었다.

소사는 붉은 옥으로 만든 퉁소를 꺼내어 제1곡부터 불기 시작하였다. 어디선가 맑은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제2곡에 이르러서는 사방에서 채색구름이 모여들었다. 제3곡에 이르러서는 백학 한 쌍이 날아와 서로 마주보고 공중을 날면서 춤을 추고 공작이 쌍쌍이 숲에 모여들고 모든 새가 평화롭게 지저귀고 있었다.

이모습을 주렴 뒤에서 지켜보던 농옥은 기쁨을 참지 못했다.

‘저 사람은 나의 배필이로다.’

이어서 진목공이 묻는 말에 소사는 퉁소의 역사와 종류(아소, 송소, 퉁소), 음률, 날짐승을 불러모으는 방법에 대해 흐르는 물과 같이 조용한 음성으로 자세히 설명하였다.

진목공은 더욱 기뻐서 소사에게 부탁한다.

“과인에게 농옥이란 딸이 있다. 음악에 매우 정통하고 특히 생황을 잘 분다. 그래서 음악에 정통한 사람을 배필로 구하던 중이라 바라건대 그대는 내 딸의 배필이 되어라.”

소사가 단정히 재배하고 사양한다.

“사는 본디 궁벽한 산골 사람입니다. 어찌 궁중 부귀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소사는 진목공의 간곡한 분부를 받고 태사로 하여금 중추일로 택일하여 농옥과 成禮했다. 그들 부부는 참으로 평화롭고 은근했다.

이튿날 진목공은 소사에게 중대부의 벼슬을 줬다. 그 후로 소사는 조반에 참석은 하지만 나라 정치에는 간섭하지 않았다.

그는 날마다 봉루에 머물며 일체 火食을 하지 않고 간혹 술을 몇잔씩 마실 뿐이었다. 농옥도 화식을 버리고 생식을 배웠다. 그리고 퉁소 부는 법, 봉새 부르는 법을 익혔다.

그후 부부생활을 반년쯤 됐을 때 달빛아래 퉁소를 불고 있는데 자줏빛 봉새가 봉대 왼편에 모여들고 오른편엔 붉은 용이 나타나 똬리를 틀고 앉았다. 소사가 말한다.

“나는 본디 하늘의 신선이오. 하늘의 옥황상제께서 ‘인간세상에 史籍이 흩어지고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됐으니 네가 내려가서 인간 역사를 정리하여라’ 하시기에 그 분부를 받고 온 것이오. 나는 주선왕 17년 5월 5일에 주나라 소씨 집에서 태어났소. 내 본명은 소삼랑인데 주선완 말년에 나는 史官이 되어 이 세상의 역사를 모아 순서있게 정리하고 사적에 빠진 것을 조사해서 보충했소. 주나라 사람들은 내가 역사를 완벽하게 편찬한 공이 있다고 해서 마침내 나를 소사라고 불렀소. 그러니 내가 이 세상에 내려온지도 이미 110여 년이나 지났구려. 그 뒤 옥황상제께서는 나를 태화산 주인으로 명하셨소. 그대와는 전생 인연이 있기 때문에 퉁소로써 부부가 되게 하신 것이오. 그러나 더 이상 인간 세상에 머물지 못할지라. 이제 용과 봉새가 우리를 영접하러 왔구려. 자 우리는 인간 세상을 떠납시다.”

농옥이 말한다.

“아버지께 작별인사를 하고 오리이다.”

소사가 말한다.

“우리는 이미 신선이 되었음이라. 그러니 마땅히 초연하여 잡념을 없애야 하오. 어찌 권속 眷屬을 생각하며 애착을 가져서야 쓰겠소.”

이에 소사는 붉은 용을 타고 농옥은 자줏빛 봉새를 탔다. 그들은 용과 봉새를 타고 봉대에서 날아올라 어느덧 구름 속으로 사라져갔다.

오늘날도 훌륭한 사위를 얻는 일을 승룡 乘龍이라고 한다. 곧 용을 탄다는 뜻이다. 이는 소사의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그날 밤이었다. 어떤 사람이 태화산에서 봉새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봉루의 시녀들은 진목공이 기침하기를 기다려 지난밤 일을 고했다. 진목공은 사위와 딸이 용과 봉새를 타고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다는 말을 듣고서 한동안 넋을 잃었다. 이윽고 진목공이 길이 탄식한다.

“신선이라 것이 과연 있구나. 만일 지금이라도 용과 봉이 과인을 데리러 온다면 과인은 이나라 강산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리라. 사람을 태화산으로 보내라. 혹 그곳에 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자는 분부를 받고 태화산으로 갔으나 결국 그들의 종적을 찾지 못했다.

秦나라에선 태화산 명성암 위에다 사당을 지었다. 그 사당에다 소사와 농옥을 모셨다. 그리고 봄가을로 술과 과실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냈다.

지금도 그 사당을 蕭女祠라고 한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가끔 가다 그 사당 안에서 봉황소리가 난다고 한다.


p171 

晉나라의 조돈이 말한다.

“호사고는 우리 선인과 함께 진문공을 모시고 19년동안이나 망명생활을 한 사람이다. 또 임금을 2대나 섬긴 공로가 적지 않다. 내가 그 아우 호국거를 죽인 것은 호사고 만은 안전하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는 제 죄가 무서워서 달아났다. 그가 조그만 노나라에서 외로이 있는 걸 어찌 차마 버려둘 수 있으리오.”

조돈이 유병 臾騈을 돌아보며 분부한다.

“그대는 호사고의 처자를 노나라에 데려다주고 오시오.”

유병은 자기집 장정들을 불러 함께 길을 떠날 것을 분부했다. 장정들이 아뢴다.

“지난날 주인께선 호사고가 元帥가 되던 날 진심으로 충고했건만 도리어 호사고는 주인께 욕설을 퍼붓고 곤장까지 쳤습니다. 그 당시에 당한 모욕을 분풀이 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 조돈 원수가 주인께 그자의 처자를 데려다 주라고 부탁했으니 이야말로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주인은 이번에 노나라로 가다가 도중에 호사고의 처자를 다 죽여 버리십시오.”

유병이 황망히 대답한다.

“안될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 원수가 이 일을 나에게 부탁한 것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조돈 원수가 보내는 사람을 내가 죽여 버린다면 원수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남의 불행을 이용하는 것은 어진 사람이 할 짓이 아니며, 남의 분노를 이용하는 것은 지혜있는 사람의 할 짓이 아니다.”

마침내 유병은 호사고의 처자를 수레에 태우고 또 호사고의 집안 재산을 다 수레에 싣고 그 물품 목록까지 만들어서 주고는 친히 국경까지 전송해 보냈다.

호사고가 그립던 처자와 세간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받고서 길이 탄식한다.

“유병은 참으로 어진 사람이건만 나는 그를 몰라봤다. 내가 이 모양이니 이제 타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원수 조돈도 그 뒤 이 사실을 듣고서 유병의 인품에 감탄했다.

조돈은 장차 유병의 벼슬을 올려줄 생각이었다.


p230송소공의 신하인 탕의제는 굳게 칼을 짚고 송소공 곁에 서 있었다.

화우가 탕의제에게 왕희의 분부를 전한다.

“왕희의 분부요. 탕의제는 곧 궁으로 돌아가시오.”

탕의제는 길이 탄식한다.

“임금의 신하 된자가 그 어려운 고비를 당하여 몸을 피한다면 비록 살았다 할지라도 죽은 거나 다름없다.”

화우는 칼을 뽑아 즉시 송소공의 목을 치려고 덤벼들었다. 탕의제는 송소공의 앞을 가로막고 화우와 싸웠다. 이에 군사들이 벌떼처럼 덤벼들어 우선 탕의제부터 죽였다. 그리고 송소공을 어지러이 찔러 죽였다.

송소공을 따라온 시종들로 달아나지 아니한 자는 다 도륙을 당했다. 참으로 애달픈 일이었다.

사신이 시로써 이 일을 읊은 것이 있다.


지난 날에 화독이 송상공을 죽이더니

이젠 그 자손 화우가 송소공 죽이는 걸 도왔도다.

난신적자란 원래부터 씨가 있나니

장미와 도리와가 어찌 같을 수 있으리오.


p285 

晉나라 승상 조돈은 임금의 충신으로 ‘어진 임금은 백성을 즐겁게 하고 무도한 임금은 자기만 즐긴다’고 하며 궁녀와 즐기기, 사람 죽이는 사냥하기, 등 거칠고 잘못된 행동을 멈추라고 간언을 하여 진영공의 노여움을 샀다.

그리하여 진영공은 도안가의 추천으로 서예라는 사람을 시켜 조돈을 죽이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나라를 위한 진정한 충신임을 알고 임금이 죽이려고 하니 몸조심하라고 일러주고 자기는 기둥에 머리를 짓찧어 스스로 죽었다.

그다음에는 술대접을 한다고 하며 무사들과 사나운 개를 잠복시켜 조돈을 죽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제미명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서 도망갈 수 있었다. 제미명은 조돈을 피신하게 하고 사나운 개 영오를 주먹으로 쳐 목이 부러져 죽게 하고 자기 자신은 무사들과 싸우다가 전신에 상처를 입고 죽었다.

사신이 제미명을 찬한 시가 있다.


임금에게도 신하에게도 개가 있었다.

임금의 개는 신하의 개만 못하다.

임금의 개는 사람을 해치지만

신하의 개는 주인을 지켰다.

슬프다. 어느 쪽 개가 더 훌륭한가는 묻지 않아도 알 일이다.


晉영공은 조돈은 죽이려다 성공하지 못했으나 엄한 스승 곁을 떠난 것처럼 가슴이 후련하게 생각하며 도원에서 많은 시간을 즐기며 지냈다.

한편 조천은 조돈이 쫓기는 자초지종을 듣고 조돈이 수양산에 머물도록 한 다음 진영공의 비위를 맞추고 도안가를 추천하여 성안, 교외 할 것없이 자색이 아름답고 시집 안간 스물미만의 여자를 관가에 등록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도안가를 임금에게서 떼어놓고 도원을 지키는 군사가 약하다고 하며 날쌔고 용기있는 군사 200명을 뽑아 지키도록 허락을 받았다.

상감이 나라일은 돌보지 않고 도원에서 즐기고만 있는 것에 불만을 갖는 군대로 하여금 임금을 죽이는 일에 합세하도록 유도하였다.

어느날 임금을 위한 술잔치를 벌이게 한 다음 군대로 하여금 밤참을 좀 달라고 하며 도원의 임금 곁으로 접근하게 한 다음 팔을 휘젓는 신호에 맞추어 임금을 죽이게 하였다.

갑자기 대드는 군대로 인해 좌우 사람들은 일시에 달아나고 진영공은 창에 찔려 죽음을 당하였다.

진영공은 평소에 사람죽이기를 좋아했고 오랫동안 고통을 받았던 백성들이 원한에 사무쳐 진영공의 죽음에 오히려 통쾌해 했다. 조천을 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때 도안가는 교외에서 아름다운 처녀를 추렴하다가 임금의 피살 소식을 듣고 조천이 한 짓이라 것을 알았지만 감히 말도 못하고 숨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리하여 조돈은 다시 수양산에서 수레를 타고 성으로 돌아와 임금을 장례하고 새임금을 모시는 일을 의논하였다.

진양공의 참변에 따라 새 임금은 신중하게 추대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조돈의 요청에 따라 주나라에서 벼슬을 사는 공자 흑둔을 임금으로 모셔 진성공이 되었다.

진성공은 나랏일을 모두 조돈에게 맡겼다. 그리고 자기 딸을 조돈의 아들 조삭과 결혼을 시켰다.

그리고 조돈의 이복동생 조동, 조괄, 조영을 추대하여 대부를 시키고 조천은 중군을 보좌하는 벼슬에 머물렀다.

한편 조천은 늘 조씨를 원수로 여기고 전 임금에게 아첨했던 도안가가 반항하는 마음을 품을 것을 염려하여 그자를 없애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조돈은 좋은 말로 타일렀다.

“남이 너를 벌하지 않는데 너는 도리어 남을 벌하려 드느냐. 지금 우리 조씨 종족은 다 귀하고 세도를 누리고 있으니, 도안가와도 마땅히 친목해야 한다. 굳이 남과 원수를 맺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도안가는 모든 일에 조심하며 조씨 일족을 섬김으로써 미움을 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조돈은 도원에서 진영공이 피살됐다는 사실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하루는 史館으로 갔다.  그는 史實을 맡아서 기록하는 동호에게 청했다.

“선군에 관한 기록을 보여주오.”

太史 벼슬에 있는 동호는 史簡을 조돈에게 내보였다.

조돈은 그 기록을 보고 몹시 놀랐다.

“가을 7월 을축일 조돈이 도원에서 그 임금 이고(진영공)를 죽였다.”


조돈이 항의한다.

“태사는 이 기록을 잘못 적었소. 그 때 나는 이곳 강성에서 200리나 떨어져 있는 하동 땅에 몸을 피하고 있었소. 그런 내가 그때 임금이 피살된 걸 어찌 알리 있었으리오. 그런데 그대는 인금을 죽였다는 끔찍스런 허물을 나에게 뒤집어씌웠구려. 이것은 멀쩡한 생사람을 잡는 게 아니고 무엇이오. 후세 사람이 이 기록을 보면 나를 뭐라고 하겠소?”

동호가 대답한다.

“그대는 승상의 몸으로서 그때 비록 달아났다고 하지만 국경을 넘지 않고 이 나라 안에 있었소. 뿐만 아니라 그대는 그 후 도성으로 돌아왔으나 임금을 죽인 자를 찾아내어 그 죄를 벌하지 않았소. 그렇다면 승상이 그 일을 꾸민 것이 아니라고 극구 변명할지라도 누가 곧이듣겠소?”

조돈이 얼굴을 찌푸리며 사정한다.

“이 기록을 고칠 수 없겠소?“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는 것이 사관의 직책이오. 그러기에 임금도 사관의 기록에 대해선 일체 간섭을 못하는 법입니다. 승상이 내 머리를 끊을 순 있지만, 이 기록만은 고치지 못하오.”

조돈이 탄식한다.

“슬프다! 사관의 권력이 정승보다 더하구나. 내 그 때에 국경을 넘어가지 않았다가 천추만세에 누명을 쓰게 됐으니 한이로다. 내 지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그 뒤로 조돈은 진성공을 섬기되 더욱 공경하고 매사에 더욱 조심했다.

그런데 조천은 임금을 죽인 것을 자기 공로라고 자랑했다. 그는 자기에게 정경벼슬을 달라고 조돈에게 청했다. 그러나 조돈은 세상 공론이 두려워서 조천의 청을 거절했다.

이에 조천은 분노를 참지 못해 병석에 드러눕게 됐고, 마침내 등창이 나서 죽었다.

그 후 조천의 아들 조전이 조돈에게

“죽은 아버지의 벼슬을 제가 이어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하고 간청했다.

이에 조돈은

“네가 앞으로 큰 공만 세운다면 정경벼슬이라도 안 줄리 있겠느냐?”

하고 조전의 천 역시 거절했다.

후세 사신을 이 일을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조돈이 조천 부자에게 조금도 사적인 정을 두지 않은 것은 다 동호의 直筆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로써 동호의 엄격한 筆鋒을 칭송한 것이 있다.

보통 史官은 사실을 기록하고

훌륭한 사관은 붓으로 不正을 죽이는도다.

조천이 그 임금을 죽였지만

조돈은 그 죄를 벗지 못했도다.

‘비록 그대가 내 머리를 끊을 순 있지만

내 어찌 붓대로써 그대에게 아첨하리오‘했으니

참으로 장하도다. 동호여

세상에 두려운 것은 是非 黑白인가 하노라.


p297

주정왕 원년 초장왕이 군사를 일으켜 육혼땅의 오랑캐 융을 치고, 마침내 낙수를 건너 주나라 경계에 군사를 상륙시켰다. 초장왕은 장차 天子를 나누어 가질 심산이었다. 참으로 대역무도한 생각이었다.

주정왕은 초장왕이 괘씸했으나 대적할 힘이 없엇다. 그래서 왕손 만을 보내어 초장왕이 온 뜻을 알아오게 했다.

왕손 만은 초군에게 가서 초장왕에게 물었다.

“이렇듯 대군을 거느리고 온 뜻이 무엇이오?”

초장왕이 대답한다.

“과인이 듣건대, 옛적에 하나라 우왕이 만든 가마솥 아홉 개가 상나라를 거쳐 지금 주나라에까지 세 왕조를 전해내려왔다더군요. 그 아홉 개의 가마솥은 천자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세상에 으뜸가는 보물이라고 합디다. 과인은 지금 그 보물이 낙양의 주왕실에 있다는 말만 들었지, 그 가마솥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느정도로 큰지 작은지, 가벼운지 무거운지 한번도 보지를 못했소. 그래서 한번 구경하려고 왔소.”

이건 그야말로 천자의 자리를 넘보는 수작이며, 중원 전체를 삼키려는 언사였다.

왕손 만이 정색하고 대답한다.

“세 왕조가 덕으로써 천하를 전했을 뿐 어찌 가마솥 따위로 전했겠소. 고대에 우왕이 천하를 다스렸던 전국을 아홉고을로 나누었는데, 그 고을을 다스리던 아홉 지방관이 우왕께 각기 황금을 진상했소. 우왕은 그 황금으로 아홉 개의 가마솥을 만드신 것이오. 그 후 夏나라 폭군 걸 桀이 無德無道했기 때문에 그 가마솥은 商나라로 옮겨졌고, 그 후 상나라 폭군 주 紂 또한 흉악무도했기 때문에 그 가마솥은 다시 우리 주나라로 옮겨진 것이오. 만일 천자가 有德하시면 그 가마솥이 비록 작을지라도 무겁기가 태산 같을 것이며, 만일 덕이 없으면 그 가마솥이 클지라도 오히려 가볍기가 티끌 같은 것이오. 우리 聖君 周武王께선 그 아홉 개의 가마솥을 가지고 천하의 도읍을 정하시고 만대의 창업을 열었다고 하지만, 실은 다 天命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오. 그러므로 그 아홉 개의 가마솥이 천하를 좌우한 것은 아니니 그걸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왕손 만의 답변에 초장왕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갔다.

그 뒤로 초장왕은 주왕실을 넘보려던 불측한 생각을 버렸다.


한편 초나라 영윤 벼슬에 있는 투월초는 초장왕이 왕위에 오른 뒤 자기의 세도가 줄어든 것을 생각하며 오래전부터 모반할 뜻을 품고 있었다.

투월초는 항상 말하기를

“초나라에 인재가 있다면 다만 사마 벼슬에 있는 위가 한사람뿐이다. 그 나머지는 말할 것이 못된다.”고 했다.


초장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육혼땅을 치러 가는 걸 보고 마침내 난을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그는 투씨 일족에게 이 뜻을 말하고 단결하여 거사할 것을 청했다. 투씨 일족은 다 응낙했으나 투극 한 사람 만이 반대했다. 마침내 투월초는 투극을 죽이고 그길로 사마부를 엄습하여 위가까지 잡아죽였다.

초장왕이 본국으로 돌아오는데 투월초의 군사는 기다렸다가 왕을 향하여 공격하려고 하였다.

초장왕이 강화를 청하기 위해 소종을 보내어 타일렀으나 비웃으면서 듣지 않고 군대를 전진시켰다. 그래서 초장왕은

“너희들 중에 누가 투월초를 쳐 물리치겠느냐?”

대장 악백이 앞으로 나아가

“신이 투월초를 물리치겠습니다.”

하고 말을 타고 나는 듯이 달려가 쉽사리 누르지 못하니 보고 있던 반왕이 나갔고 저편에서 투기가 나와 싸웠다. 그리고 투월초는 화살을 초장왕에게 쏘았다. 화살이 보통화살보다 길이가 반이나 더 길었고 화살에는 학의 깃이 달려 있고, 표범 이빨로 만들어진 활촉은 그 끝이 몹시 날카로왔다.

초장왕은 군대를 후퇴시키고 계략을 썼다. 투월초의 군대와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투월초의 군대가 다리를 지나간 뒤 곧 다리를 끊어 다시는 건너오지 못하게 하였다.

이 때 초장왕의 군대가 일렬로 나타났다.

투월초가 분기충천하여 즉시 군사들에게 활을 쏘게 명하였다.

투월초의 군대가 쏜 화살이 일제히 저편 언덕을 향해 날았다.

이 때 초장왕의 군대 중 악백이 거느린 군사들 속에 양유기라는 小校가 있었다. 그는 활을 잘 쏘아 신궁 神弓이라고까지 했다.

양유기가 악백에게 청한다.

“원컨대 투월초와 활로 맞대결을 해보겠습니다.”

악백은 쾌히 승낙했다. 양유기가 강물 앞으로 나아가서 저편반군 쪽을 향해 큰소리로 외친다.

“강이 이렇게 넓은데, 그 곳에서 자꾸 쏴봤자 화살만 버릴 뿐이다. 내 듣건대 영윤은 화살을 잘 쏜다 하니 나와 우열을 견줘보지 않겠는가? 서로 다리를 사이에 두고 양쪽 언덕에 올라서서 각기 화살 세 대를 쏘되, 누가 죽고 누가 사느냐 하는 것은 다 천명에 맡기자!”

저편 언덕에사 투월초가 묻는다.

“너는 누구냐?”

양유기가 대답합니다.

“나는 악백 장군 휘하의 소장으로 양유기라 하노라.“

투월초로선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는 양유기가 이름 없는 군사인줄 알고서 응낙했다.

“네가 만일 활 쏘는 솜씨를 나와 겨루려 할진대, 내가 먼저 화살 세 대를 쏠 때까지 너는 양보하여라.”

양유기가 소리 높여 대답한다.

“그대가 먼저 쏘아도 좋다. 설사 세 대가 아니라 백 대를 쏘아도 내 어찌 두려워 하리오. 그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비록 화살이 날아올지라도 몸을 피하지 않기로 하자!”

이에 양편 군사는 뒤로 물러서고, 두 사람만이 각기 다리가 끊어진 낭떠러지 끝으로 나아가서 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마주섰다.

투월초가 먼저 활을 잔뜩 잡아당겨 첫 번째 화살을 쐈다.

그는 화살 한대로 양유기의 머리를 꿰뚫어 강물로 떨어뜨리려고 조급하게 쐈다. 그러나 조급히 서두르는 자는 실력이 모자라는 자며, 자신이 있을수록 급히 서두르지 않는 법이다.

양유기는 활을 들어 정면으로 날아드는 화살을 쳐냈다. 날아오던 화살은 양유기의 활에 맞아 강물로 떨어졌다.

양유기가 외친다.

“좀더 힘있게 쏘아라!”

투월초는 두 번째 화살을 시위에 메기고 힘껏 잡아당겨 신중히 가늠한 다음에 손을 뗐다. 화살은 정통으로 양유기를 향해 날아갔다.

순간 양유기는 무릎을 굽히고 몸을 숙였다. 화살은 곧장 양유기의 머리위로 지나가버렸다.

동시에 저편에서 투월초가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

“네가 먼저 몸을 피하지 않기로 조건을 내세우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째서 몸을 숙여 화살을 피하느냐? 네놈은 사내대장부가 아니다.”

양유기가 역시 큰 소리로 대답한다.

“네게 아직 화살 한 대가 남아있다. 내 이젠 몸을 숙이지 않으리라. 그러나 이번에 네가 나를 맞히지 못하면 그때는 내가 너를 쏠 차례란 걸 잊지 말아라.”

투월초는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피하지만 않는다면 넌 내 화살에 죽은 목숨이다.’

투월초는 세 번째 화살을 뽑아 시위에 얹고는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똑바로 겨냥한 다음 전력을 기울여 활을 잡아당긴 후,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오른 팔을 뒤로 젖혔다.

양유기는 두 다리를 딱 버티고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화살은 흐르는 별처럼 날아가 양유기의 얼굴에 꽂혔다.

얀편 군사들은 동시에 악!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얼굴에 화살을 맞고도 양유기는 쓰러지지 않았다. 아니 유유히 움직이고 있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그는 입에 화살촉을 물고 있었다. 화살이 날아오는 순간 입을 벌려 날아온 화살 끝을 물어서 막았던 것이다.

이를 보고 왕군은 경탄하는 환호성을 질렀다.

한편 투월초는 당황했다. 약속한 화살 세 대를 다 쐈건만 상대를 거꾸러뜨리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체면상 태연한 체 했다.

“이젠 네가 쏠 차례다. 만일 화살 세 대로 나를 맞히지 못할 때엔 내가 다시 너를 쏘기로 하자.”

양유기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너를 맞히는데 어찌 화살 세 대까지 허비할 것 있으리오. 단 한 대로 너의 목숨을 뺏으리라.”

“이놈!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지 말아라.”

하고 투월초는 짐짓 큰 소리로 웃으며 응수했다.

그러나 양유기의 활솜씨가 백발백중일 줄이야 어찌 알았으리오.

양유기는 화살 한 대를 뽑아 손에 쥐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투월초를 향해 쐈다. 그런데 그는 활시위만 잡아당겼다가 놓았을 뿐 정작 화살은 쏘지 않았다.

그러나 저편에 선 투월초는 활시위 소리만 듣고서도 날아오는 줄 알고, 순간 몸을 돌려 왼편으로 비켜섰다.

이를 보고 양유기가 소리를 지른다.

‘화살이 내 손에 있거늘 몸을 피하다니 비굴한 자다. 네 이번에도 몸을 돌려 내 화살을 피하겠느냐?“

투월초가 대답한다.

“내가 몸을 피할까 염려하고 화살을 쏘지 않았다는 것은 활 쏘는 법을 전혀 모르는 자의 소행이다.”

양유기는 다시 활시위를 팽팽히 잡아당겼다가 화살은 쏘지 않고 손을 놓았다.

투월초는 또 시위소리만 듣고서 이번엔 몸을 돌려 오른편으로 비켜섰다.

그 순간이었다. 양유기는 번개감이 활을 쐈다. 너무나 순식간이어서 투월초는 이번엔 진짜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몰랐다. 그는 몸을 비킬 여가도 없었다.

화살은 정통으로 투월초의 머리를 꿰뚫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여러해 동안 초나라 영윤 벼슬을 누린 투월초는 이제 소장 양유기가 쏜 화살 한 대에 죽었다.

염옹이 시로써 이 일을 차탄 嗟歎한 것이 있다.


사람은 만족할 줄 알아야 하나니

그는 영윤 벼슬이 부족해서 왕까지 되려 했다.

신궁 양유기는 그저 솜씨를 시험해 본 데 불과했건만

투월초는 이미 끊어진 다리 저편에서 숨을 거두었도다.

굶주리고 피곤한 반군은 주장인 투월초가 허무하게 죽자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달아났다. 이에 왕군의 장수 공자 측과 공자 연제는 달아나는 반군과 투씨 일족을 뒤쫓으며 닥치는대로 쳐 죽였다.

시체는 쌓이고 쌓여 산 같고, 피는 흘러서 강물을 물들였다.

이에 투월초의 아들 투분황은 晉나라로 달아났다. 진후는 투분황을 대부로 삼고, 묘 苗땅을 식읍으로 줬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鬪賁皇을 묘분황이라고 했다.

초장왕은 완전 한 승리를 거두고 회군하여 사로잡힌 자는 모두 軍前에서 목이 달아나고 투씨 일족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몽땅 잡아다가 도륙을 냈다. 이리하여 투씨 일족은 씨도 손도 없이 멸족을 당했다.


6권 -  노래가 왕을 쫓아내다

p101 결초보은 結草報恩

초장왕은 진나라를 물리치기 위해 제나라로 사신을 보냈다. 이 때 신무외를 보내려고 했으나 신무외가 거절하려 하자 이름을 신주로 바꾸라고 하며 죽는다면 아들 신서를 부탁한다고 하며 떠났으나 송나라 신하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이 일로 인해 초장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송나라를 공격하였다. 송나라는 晉나라에 구원을 요청했으나 晉경공은 해양을 보내서 대군을 일으켜 가는 중이니 그동안만 굳게 지키라고 하여 그 소문만 듣고 항복하길 기다리도록 하였다.

해양은 초군에게 붙잡혀 죽음을 당할 뻔 했으나 죽음을 각오하고 信을 지키는 모습에 감탄하여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싸움이 1년이 넘게 계속되다보니 먹을 것이 떨어지고 자식을 바꿔서 먹고 해골을 주워다 불을 때는 등 지친 군사들을 어찌할 수 없어 송나라의 화원이 공자 측에게 화평을 요청하고 볼모가 되어 초나라는 회군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신무외를 크게 장사하였다.

이 때 진경공은 군사를 일으켜 송나라를 구원하려 하다가 억울하게 죽은(노 진의 우호끊으려고 중상모략 교수) 누이(노나라 임금인 영아의 아내 백희)의 원수를 갚으려고 노나라를 치기로 하였다. 순림보가 대장이고 위과가 부장이 되어 진군 결과 노나라 정승 풍서를 사로잡아 압송하고 참형, 노나라 임금 영아는 결박당하여 자결하였다.

순림보는 黎나라 자손과 여후의 자손을 찾아 500가를 할당해주고 성도 쌓아주었다.

노나라에 주둔하고 있던 부장인 위과가 오랑캐 적적赤狄의 땅을 안정시키고 군사를 거느리고 輔씨의 못에 이르렀을 때, 문득 하늘을 뒤흔들 것 같은 함성과 함께 秦나라 대장 杜回의 군사를 만나게 되었다.

두회는 이가 강철 같고 눈동자에서는 빛이 났으며 주먹은 구리쇠로 만든 망치 같고, 뺨은 쇠로 만든 바리때 같았으며, 수염은 머리털까지 감겨 올랐고, 키가 1장(3m)이 넘었다. 그는 능히 1,000균의 무게를 들고 평소 개산대부 開山大斧 한자루를 쓰는데 그 무게가 120근이나 되었다. 그리고 청미산이란 데서 하루 5마리의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아 그 가죽을 벗겨온 일이 있었다.

두회는 말도 병거도 타지 않고 평소 부리던 용기있는 군사 300명만 거느리고 뚜벅뚜벅 걸어서 120근이나 되는 개산대부를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콩타작 하듯 말다리와 갑옷 입은 진군을 후려갈겼다. 도저히 감당할 길이 없는 晉군 1진이 대패하였고 위과는 영루를 굳게 닫고 나가서 싸우지 못하게 하였다.

두회는 영채 밖에서 갖은 욕설을 퍼붓고 펄펄 뛰었다. 이러기를 사흘이나 계속되는 가운데 동생 위기의 응원군이 도착하였다.

위기는 

“형님 과히 염려 마십시오. 제깐놈이 용맹하면 얼마나 용맹하겠습니까? 내일 제가 그놈을 쳐서 무찌르겠습니다.”

하고 이튿날 군사를 거느리고 병거를 달려 싸우러 나갔다.

하지만 또 두회가 휘두르는 개산대부로 말과 군사들이 찍히고 대패하여 위과가 겨우 구출하었다.

그날밤 위과는 군영안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잠이 들었는데 그 때 누가 귓전에서 속삭인다.

“靑草坡! 청초파! 청초파!?

위과는 깜짝 놀라 깬 뒤 동생과 상의를 하였다. 동생은

“보씨의 못에 청초파라는 둑이 있는데 혹시 그곳에서 秦군이 대패할 것이라는 신의 계시인 듯하다고 하여 일지군을 청초파에 매복시키고 秦군을 청초파로 유인하자”고 하였다.

다음날 晉군은 두회를 겹겹이 에워싸며 한편으론 싸우고 한편으론 점점 秦군을 청초파로 유인하였다. 계속 두회의 공격으로 사상자를 내긴 하였으나 청초파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두회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기름칠을 한 신발을 신고 얼음판을 건너는 듯한 모습으로...

이 때 위과의 눈 앞에 이상한 광경이 나타났다.

저편에 삼베 도포를 입고 짚신을 신은 한 노인이 마치 농군처럼 둑 위의 풀을 한 묶음씩 잡고 두회가 움직일 때마다 그 발을 묶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두회의 눈엔 그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이리하여 두회의 걸음걸이는 더욱 비틀거렸다.

이 모습을 본 매복해있던 진군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면서 급히 두회를 공격하고 위과, 위기 두 형제가 쏜살같이 병거를 달려가 두회를 창으로 찔렀다. 두회는 겨우 몸을 피했으나 묶어놓은 풀에 두 발이 걸려서 벌렁 나자빠졌다.

진군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가 쓰러진 두회를 산 채로 결박하였다. 

秦나라 도부수 300여명은 대장이 잡히는 것을 보자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晉군은 도부수를 닥치는대로 쳐 죽이어 무사히 달아난 자는 4,50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위기 형제는 두회를 그냥 두었다가는 큰 변이 일어날까 염려하여 참하고 진경공에게 승전을 고하였다.

그날밤 위과는 오랜만에 편안히 잠을 잤다. 꿈속에서 두회의 발을 풀로 묶던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정중히 읍하며 말했다.

“장군은 두회가 사로잡힌 까닭을 아시오? 이 늙은 몸이 풀로 발을 묶어 그의 자유를 뺏었기 때문이고 두회는 풀에 걸려 쓰러진 것입니다. 그래서 장군은 그를 사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위과는 꿈속에서도 황급히 일어났다.

“나는 원래 노인이 누구신지 전혀 모르오. 이런 큰 도움을 받았으니 장차 무엇으로 그 은혜를 갚아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조희의 아비 되는 사람이오. 장군은 생전에 부친께서 말씀하신 것을 잘 지켜서 내 딸을 좋은 곳으로 改嫁시켜 줬으므로 이 늙은이는 구천에서도 여간 감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장군은 내 딸을 살려준 은인입니다. 도리어 내가 장군에게 은혜를 갚고자 미미한 힘이나마 기울여 도운데 불과합니다. 장군은 앞으로 더욱 힘쓰십시오. 반드시 대대로 榮貴하시고 자손은 王侯가 될 것이오. 결코 내말을 잊지마시오.”

노인은 문득 사라졌다. 동시에 위과도 꿈에서 깨어났다.


조희는 누구인가?

위과와 위기는 晉문공때 유명한 장수 위주의 아들들이다.

위주가 살았을 때 위주에겐 사랑하는 첩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이 조희였다. 위주는 전쟁에 나갈 때마다 내가 이번 싸움에 나가서 죽거든 좋은 사람에게 개가 시켜서 조희가 적막한 인생을 보내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러던 위주가 정작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는 태도가 변하여 내가 죽거든 조희를 나와 함께 묻어서 殉死시켜 내가 외롭지 않게 하라고 하였다.

위주는 말을 마치자 이내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위과는 아버지를 장사지낼 때 조희를 함께 묻지 않고 좋은 선비에게 개가시켜주었다.

동생 위기가 묻는다.

“형님은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분부하신 말씀을 잊었습니까?”

위과가 조용히 대답한다.

“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평소 말씀하시기를 ‘내가 죽거든 조희를 좋은 곳으로 개가시켜주어라.’고 하셨다. 임종때 하신 말씀은 정신없이 하신 것이다. 효자는 부모께서 평소에 하시던 말씀을 따르는 법이다. 숨을 거두실 때 정신없이 하신 말씀을 어찌 따를 수 있으리오.”

이러한 음덕이 있었기에 조희의 친정아버지의 혼령이 나타나 풀을 묶어 그 은혜를 갚은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은 結草報恩 하겠다는 말을 곧잘 쓴다.

이튿날 위과는 동생 위기에게 꿈이야기를 했다.

“내가 아버지께서 평소 하신 말씀을 지켜 조희를 살려줬으나, 지하에 있는 그 친정아버지가 이렇듯 나를 도와줄 줄이야 어찌 알았으리오.”

위기는 형으로부터 그 꿈이야기를 듣고서 거듭 감탄해 마지않았다.

염옹이 시로써 이 일을 찬탄한 것이 있다.


어떤사람이 풀을 묶어 두회를 잡게 했는가

꿈에 노인이 나타나 은혜를 갚은 것이라고 말하였도다.

사람들에게 권하노니 부디 음덕을 많이 쌓으라

이치에 순종하며 마음도 편안하려니와 또한 복을 받느니라.


이리하여 秦군은 참패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 진나라는 두회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임금과 신하가 하나같이 기운을 잃었다.

한편 晉나라 晉경공은 위과의 공훈을 찬양하고 그에게 영호 令狐 땅을 하사했다. 다시 진경공은 큰 종을 만들게 하고 그 종에 위과가 승전한 연월일을 새기게 했다. 진경공시대에 만들어진 이 종을 후세 사람들은 景鍾이라 불렀다.


p198

얼마후 진경공은 봉두난발을 한 귀신에게 구리 쇠망치를 얻어맞고 피를 쏟고 쓰러졌다. 병석에서 일어나질 못하게되자 상문의 무당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봉두난발을 한 8척되는 귀신 때문에 병이 나고 그 귀신은 先世때 나라의 많은 공로가 있었던 신하인데 그 자손들이 참혹한 화를 당했기에 그렇듯 노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진경공은 매우 놀랐다. 왜냐하면 자기가 본 귀신에 대한 이야기와 조씨 일문을 죽인일이 딱 맞았기 때문이다.

진경공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다시 묻는다.

“그 귀신을 쫓아버릴 수 없겠느냐?”

“귀신이 매우 노하고 있습니다. 굿을 한대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럼 과인의 천명은 어떠하냐?”

“소인은 죽음을 무릅쓰고 말씀드립니다. 아마 상감께선 새로나오는 햇보리를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곁에서 도안가가 눈을 부릅뜨고 꾸짖는다.

“너는 이달 안에 새 보리쌀이 나오는 걸 아느냐? 지금 상감께선 이렇듯 정신이 말짱하시다. 만일 상감께서 새 보리쌀을 잡숫게 되시는 날엔 네 목숨이 없어질 줄 알아라.”

도안가의 꾸중을 듣고 무당이 쫓겨난 후로 진경공의 병은 더욱 악화되었다. 고명한 의생들이 수없이 와서 봤으나 그 증세를 알 수 없어서 약을 쓰지 못했다.

그래서 대부 위기의 아들 위상이 秦나라 유명한 명의 편작의 제자인 고화 高和 고완 高緩 이란 두 의원을 데려오게 되었다.

秦환공이 처음엔 우리를 여러번 치려고 했던 晉나라 임금이 아프다고 해도 명의를 보낼 수 없다고 했으나 위상의 설득을 듣고 진환공은 위상에게 공경하는 뜻을 표하며 명의를 보내주었다.

晉경공은 밤낮 秦나라 명의가 오기만을 고대하던 어느날이었다.

꿈속에서 자기 콧구멍에서 조그만 아이들이 뛰어나왔다. 그중 한 아기가 친구아이에게 속삭인다.

“秦나라 고완은 당세의 명의다 만일 그가 와서 약을 쓰면 우린 배겨날 수 없다. 어찌하면 우리가 안전할 수 있을까?”

다른 아이가 대답한다.

“그럼 우리는 황 肓(심장과 비장사이)으로 가서 고 膏(지방)밑에 숨자. 제아무리 명의라 할지라도 우리를 침범하지는 못할거야.”

그러더니 두아이는 다시 진경공의 콧구멍으로 뛰어들어가 버렷다.  진경공은 큰 소릴 지르면서 눈을 떴다.

그는 가슴이 쑤시고 아파서 쩔쩔맸다.

이 때 마침 위상이 秦나라 명의 고완을 제리고 돌아왔다. 고완이 즉시 궁으로 가서 진경공을 진맥하고 아뢴다.

“이 병은 어찌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진경공이 묻는다.

“어째서 그러느냐?”

“병이 바로 황과 고 사이에 들어있습니다. 쑥으로도 뜸을 뜰 수 없고, 침을 놓을 수도 없으며, 약으로도 다스릴 수 없습니다. 거의 천명이라 하겠습니다.”

진경공은 탄식하고 내꿈과 딱 맞고 정말 명의라고 하며 예물을 주고 돌려보냈다.

이 때 내시 중 강충이란 자가 있었는데 진경공을 간호하기 위해 매우 피로한 가운데 깜빡 잠이 들었을 때 진경공을 업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꾸었다.

꿈이야기를 도안가가 듣고 이는 병이 나을 징조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날은 진경공의 가슴이 쑤시지도 않았다. 그 때 내시 한사람이 새로난 보리쌀을 진상해왔다.

진경공은 구미가 당겨 절구에 잘 찧어서 죽을 쑤어오도록 했다.

도안가는 조씨의 원귀가 상감에게 붙었다고 말했던 상문의 무당을 잔뜩 벼르고 있던차에 무당을 불러 새로난 보리쌀을 보이며 버럭 소리 지르고 꾸짖었다.

“네 똑똑히 보아라. 여기에 새로난 보리쌀이 있다. 이래도 상감께서  잡숫지 못하실까?”

“그러나 아직 두고 볼 일입니다.”

진경공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도안가가 대신 호령한다.

“네 이놈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냉큼 이 놈을 끌어내어 참하여라.”

무당이 무사들에게 끌려나가면서 길이 탄식한다.

“내 아는 것 때문에 이제 죽는구나!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얼마후 밖에서 무사들은 무당의 목을 끊어 쟁반에 받쳐 들어왔다.

동시에 옹인 饔人(음식을 만드는 일을 맡은 벼슬)이 보리죽을 쒀서 들고 왔다. 이 때가 바로 오시였다.

진경공이 막 보리죽을 먹으려는데 갑자기 배가 죄어 당기고 설사가 날 듯 했다. 이에 강충이 황급히 진경공을 들쳐 업고 측간으로 갔다.

강충이 측간에 내려놓았을 때 진경공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가 정신이 아찔하면서 기운이 쭉 빠졌다. 진경공은 고통과 현기증 때문에 몸을 휘청거리다가 발을 헛디뎌 측간 밑으로 떨어졌다.

깜짝 놀란 강충은 더럽고 구린 것을 돌볼 계제가 아니었다. 강충은 측간 밑으로 들어가서 진경공을 안아 올라왔다. 그러나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진경공은 결국 햇보리를 먹지 못하고 죽었다, 공연히 죄없는 무당만 죽인 셈이다. 이것은 도안가가 저질러놓은 잘못이었다.


p213

초나라의 장수중 반당이라는 활 잘 쏘는 장수가 있었다.  그가 시험 삼아 쏘는 화살은 모두 과녁에 맞혔다. 이에 모든 장수들의 갈채를 보냈다.

이 때 마침 양유기가 왔다. 모든 장수들이 말한다.

“귀신같은 활솜씨가 오는구려.”

이 말을 듣고 반당이 화를 발끈 낸다.

“내 활솜씨가 어찌 양유기만 못하리오!”

양유기가 웃으며 대답한다.

“그대는 과녁만 잘 맞히니 딱히 기이할 것이 없소. 나는 100보밖에서 버들잎을 쏘아 맞힌 일이 있소.”

장수들이 청한다.

“그럼 저기 버드나무가 있오. 한번 시험삼아 다시 쏴보구려.”

“그거야 못할 것이 없지요.”

모든 장수가 좋아한다.

“이제 양유기의 귀신같은 활솜씨를 보겠구나.”

그들은 먹으로 버들 잎사귀 하나를 까맣게 칠했다. 양유기는 곧 100보 밖으로 물러서서 그 버들 잎사귀를 향해 활을 쐈다. 화살은 분명히 날아갔는데 떨어지는 걸 볼 수 없었다. 모든 장수가 달려들어 살펴보니, 활촉은 바로 그 먹칠한 잎사귀의 한복판을 뚫고 버드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

반당이 말한다.

“이것은 우연에 불과하다. 만일 화살 세 대로 버들 잎사귀 세 개를 차례로 다 맞힌다면 내 그대의 솜씨를 인정하겠소.”

양유기가 대답한다.

“글쎄올시다. 그렇게 쏘아 맞힐 수 있을지요. 그러나 시험 삼아 한 번 해 보겠소.”

반당은 높고 낮은 버들가지의 잎사귀 셋에다 먹칠을 하고 다시 각기 1,2,3이란 번호를 적었다. 양유기는 버드나무 앞에 가서 高低의 순서없이 먹칠을 해놓고 번호까지 적어놓은 세 잎사귀를 바라봤다. 그리고서 100걸음 물러섰다.

그는 화살 세대에다 1,2,3,이란 번호를 써넣은 후 잎사귀를 향해 잇달아 쐈다.

모든 장수가 버드나무로 달려갔다. 첫번째 버들잎이 첫 번째 화살에 뚫려 있었다. 그다음 두 번째 세 번째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수들은 양유기 앞에 가서 두손을 끼고 공경하는 뜻을 표했다.

“그대는 참으로 神人이시오.”

그러나 반당은 속으론 감탄하면서도 양유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의 솜씨는 그저 교묘할 따름이오. 그러나 사람을 죽이는 데는 내가 그대보다 셀 것이오. 나는 몇 겹이나 되는 갑옷을 뚫을 수 있소. 나와 함께 재주를 겨루어 볼 생각은 없는지?”

모든 장수가 양유기에게 권한다.

“우리도 이 참에 한번 구경이나 합시다. 훌륭한 재주를 좀 보여주시오.”

이에 반당은 군사들에게 갑옷을 벗어 쌓게 했다. 군사들은 갑옷을 다섯 벌을 쌓았다. 군사들은 갑옷 다섯 벌을 쌓았다. 모든 장수가 말한다.

“그만 하라. 다섯벌이면 족하다.”

그러나 반당은 두벌을 더 쌓아 일곱 벌로 하라고 했다. 장수들은 저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갑옷 일곱 벌을 포개어 쌓으면 거의 1척의 부피가 된다. 저 부피를 어떻게 화살로 뚫는단 말인가?“

반당은 다시 그 일곱 벌의 갑옷을 사곡(활의 과녁) 위에다 비끄러매게 하였다. 그리고 100보 밖으로 물러섰다.

그는 조각을 한 검은 활에다 늑대 어금니로 활촉을 만든 화살을 끼운 후, 왼팔을 태산처럼 버티고 오른 손으로 갓난아기를 안듯 잡아당겨 단단히 겨냥한 뒤에 쐈다.

순간 ‘타악!’하며 무엇이 터지는 듯, 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화살이 빗나간 것도 뚫어진 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장수와 군사들은 갑옷이 매어달려 있는 사곡 앞으로 달려갔다. 모든 군사들의 박수갈채와 함께

“참으로 놀라운 솜씨다!”

하는 찬사가 일제히 여기저기에서 일어났다.

원래 반당의 힘도 대단했지만 활도 튼튼했다. 화살이 일곱 벌이나 되는 갑옷을 뚫고 꽉 박혔는데, 그것은 마치 큰 못을 박아놓은 것과 같았다. 군사들이 아무리 흔들어도 일곱 벌의 갑옷에  박힌 화살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반당의 얼굴에 만족감과 자부심이 가득 떠올랐다.

“군사들은 사곡판을 쪼개고 화살이 꽂힌 그대로 갑옷 일곱 벌을 잘 내려가지고 오너라.”

이렇게 말한 반당은 그것을 진영에 가지고 가서 널리 자랑할 작정이었다.

양유기가 분부한다.

“군사들은 거기에 손대지 마라. 내 시험삼아 한대 쏘아보고 싶은데 어떨지?”

모든 장수가 서로 말한다.

“우린 또 양유기의 神力을 보겠구려. 자 조용합시다.”

그러나 양유기는 활을 잡고 쏘려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만두었다. 모든 장수가 아우성을 친다.

“왜 쏘려다가 그만두오?”

“그저 갑옷 일곱 벌에 구멍 뚫는 것만으론 희한할 것이 없지 않소? 내 다른 방법으로 활을 쏠까 하오.”

양유기는 다시 화살을 집어들며 번개처럼 쏘았다.

화살은 높지도 낮지도 않고, 좌우로 기울지도 않고 정통으로 반당이 쏘아꽂은 그 화살을 들어맞혔다. 순간, 반당의 화살은 양유기의 화살에 맞아 사곡판 뒤로 빠져 떨어졌다. 그리고 양유기의 화살이 그 일곱벌의 갑옷을 여전히 사곡판 위에다 매달아놓았다. 모든 장수와 군사들은 박수를 치는 것마저 잊고 그저 경이의 눈을 부릅떴다. 그제야 반당도 양유기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탄했다.

“나는 양유기의 묘한 솜씨를 따를 수 없구나!”


『史記』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언젠가 초왕이 형산에서 사냥을 한 일이 있었다. 이 때 형산 위에 통비원 通臂猿이란 원숭이가 있었다. 사람들이 활로 쏘면 그 원숭이는 날아오는 화살을 잡아 꺾어버렸다. 그래서 초왕은 그 원숭이를 몇겹으로 포위했다. 좌우 모든 신하들이 일제히 원숭이를 향해 활을 쐈다. 그러나 원숭이는 날아오는 화살을 낱낱이 잡아서는 꺾어버렸다. 이에 초왕은 양유기를 불러오라고 했다. 원숭이는 양유기란 이름을 듣자 슬피 울었다. 이윽고 양유기가 와서 화살 한대로 원숭이의 심장을 맞혀 죽였다. 양유기는 춘추시대 제일의 射手로 자타가 공인한 바다.


p221

 晉나라 장군 난서는 사로잡은 초공왕의 아들 웅발을 진여공에게 바쳤다. 진여공은 웅발을 죽여버리려고 했다.

묘분황은 아뢴다.

“초왕은 그 아들이 우리에게 사로잡혔기 때문에 내일 틀림없이 친히 나와 싸울 것입니다. 그러니 내일 웅발을 수거 囚車에 태워 싸움터로 끌고 다니면서 초왕을 유인하십시오.”

진여공이 머리를 끄덕인다.

“그것이 좋겟다.!”

그날밤 아무일 없이 지났다. 난서는 새벽부터 영문을 열게 하고 싸울 준비를 시켰다.

대장 위기가 난서에게 말한다.

“어젯밤 꿈에 보름달을 봤습니다. 내가 활로 그 둥근 달 한복판을 쐈지요. 그랬더니 화살에 맞은 달 한복판에서 한줄기 금빛이 쏟아져 내려오더군요. 나는 황망히 뒷걸음질 쳐서 물러서다가 실족을 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영문 앞 진흙구덩이에 자빠져 있지 않겠습니까. 깜짝 놀라 깨고 보니 꿈이더군요. 이게 무슨 징조일까요?”

난서가 그 꿈풀이를 한다.

“대저 주왕실과 동성인 제후를 해로써 비유하고 성이 다른 임금을 달로써 비유하지요. 활을 T쏴서 달을 맞혔다하니 그 달은 아마 초왕일 것이오. 그러나 진흙 속에 빠졌다는 것은 암만 생각해도 좋은 징조가 아닌 것 같소. 오늘 장군은 적과 싸울 때 특히 조심하오.”

위기가 대답한다.

“진실로 초군을 쳐서 없애버릴 수만 있다면야 비록 죽는들 무슨 한이 있겠소. 내가 선두로 나가서 초군을 치겠소.”

“매사를 조심해서 하오.”

하고 난서는 승낙했다.

이에 위기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서 초진을 쳤다. 초진에선 장군 양이 나와서 싸움에 응했다. 위기와 양이 수합을 싸웠을 때였다. 진군은 웅발을 잡아넣은 수거를 몰고 나와서 초진 앞을 왔다갔다 했다.

초공왕은 자기 아들 웅발이 수거 속에 갇혀 있는 걸 보자 속에서 울화가 치솟았다.

“팽명아, 속히 수레를 몰아라!”

초공왕은 어자에게 분부하고 즉시 병거에 올라탔다. 초공왕은 아들이 갇혀있는 수거 쪽으로 달려갔다. 이에 위기는 장군 양과 싸우다 말고 달려오는 초공왕의 병거를 앞질러 가면서 번개같이 활을 뽑아 초공왕을 쐈다. 화살은 초공왕의 왼쪽 눈에 들어맞았다.

반당이 위기에게 덤벼들어 싸우는 틈을 타사 초공왕은 병거를 돌렸다. 초공왕은 이를 악물고 왼쪽 눈에 박힌 화살을 뽑았다. 그와 동시에 왼쪽 눈동자가 화살과 함께 빠져나왔다. 초공왕은 눈동자가 꽂혀있는 화살을 그대로 땅바닥에 내던졌다.

小卒이 황급히 그 화살을 집어올려 병거 위의 초공왕에게 바치며 아뢴다.

“이 龍眼을 어찌 함부로 버리시나이까.”

초공왕은 아무말 않고 자기 눈알이 꽂혀있는 화살을 받아 전통 葥筒에 넣었다.

진군은 자기네 장수 위기가 우세한 걸 보자 일제히 초군을 무찔럿다. 이에 초나라 장수 공자 측은 죽을 힘을 다해 진군을 막았다. 그래서 초공완은 겨우 위기에서 벗어낫다.

한편 晉나라 장수 극지는 정성공을 포위했다. 그러나 정성공의 어자 將大는 이미 병거위에 꽂혀있던 정성공의 기를 끌어내려 자기 弓衣속에 감춰버린 후였다. 그래서 진군의 정성공은 찾는 동안에 정성공의 병거는 다른 병거 속에 휩쓸려 들어가서 겨우 포위를 뚫고 나와 위기를 모면했다.

눈 한짝만 잃고 위기를 면한 초공왕은 분기충천했다.

“神葥將軍 양유기는 어디 있느냐? 속히 와서 나를 호위하여라!”

양유기는 부름을 받고 초공왕에게로 황급히 달려갔다. 그러나 그에겐 화살이 한대도 없었다.(모든 장수들이 양유기의 신과 같은 활솜씨를 칭찬하자 밉살스럽게 생각하고 힘껏 싸울 생각은 않고 요행수만 바란다고 하며 화살을 모두 몰수했기 때문) 초공왕은 자기 전통에서 화살 두 대를 뽑아주며 분부한다.

“과인의 눈을 쏜 적장은 綠袍를 입고 구렛나룻이 텁수룩한 놈이었다. 장군은 과인의 원수를 갚아다오! 장군의 뛰어난 솜씨로는 그다지 많은 화살이 필요 없을 것이다.”

양유기는 화살 두 대를 받고 나는 듯이 병거를 달려 晉陳으로 향했다. 달리던 양유기는 갑자기 병거를 세웠다. 그는 바로 정면에서 녹포를 입고 구렛나룻이 많이 난 적장이 싸우고 있는 걸 봤다. 양유기가 위기를 향해 호통 치듯 꾸짖는다.

“너 이놈! 너는 어이하여 활을 쏘아 우리 임금을 상하게 했느냐?”

위기가 대답하려는 찰라, 화살이 먼저 날아와 그의 목에 꽂혔다. 위기는 병거 위에 엎어져 즉사했다.

난서는 군사를 거느리고 급히 달려와서 위기의 시체를 초군에게 뺏기지 않고 찾아서 돌아갔다.

양유기가 진영으로 돌아가 남은 화살 한 대를 초공왕에게 바치며 보고한다.

“대왕이 위엄에 힘입어 녹포 입고 구렛나룻이 많이 난 적장을 이미 쏴 죽였습니다.”

초공왕은 칭찬을 거듭하며 입고 있던 錦袍와 낭아전 狼牙葥 100대를 친히 양유기에게 하사했다. 그래서 초나라 군중에선 ‘양유기는 화살 한 대면 그만이다. 두 대가 필요없다.’는 말이 생겨났다.

진군은 더욱 급히 초군을 추격했다. 양유기는 활을 들고 초진 앞에 서서 쫓아오는 진군을 쏘아 죽였다. 맨 앞으로 나서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화살에 맞아 죽기 때문에, 진군은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를 못했다.

초장 공자 영제와 임부는 초공왕이 화살에 부상당했다는 말을 듣고 각기 달려와서 진군과 일대 혼전을 벌였다. 그제야 진군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7권 - 史官의 붓

p23 晉나라에 사광(師曠)이란 선비가 있었다.

진평공이 초군에 대한 걱정 때문에 모든 나라 제후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도 우울해 했다.

사광이 아뢴다.

“청컨대 신이 음악과 노래로써 앞날을 짐작해보겠습니다.”

사광은 악기를 탄주하며 남풍의 노래를 부르고 또 북풍의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북풍의 노래는 평화롭게 울려퍼졌으나, 남풍의 노래는 부드럽지 못하고 살기가 등등했다.

사광이 노래를 마치고 아뢴다.

“남풍의 곡을 불러본즉 그 소리가 쓸쓸하여 죽음에 가깝고 살기가 가득했습니다. 이는 남쪽 초군이 불행을 자초할 징조입니다. 주공께서는 근심 마소서. 반드시 사흘 안에 반가운 소식이 올 것입니다.”

사광의 자는 자야 子野로 진나라에서도 가장 총명한 선비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매우 좋아했다. 그러나 늘 음악에 전심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 고민했다.

어느 날 사광은 길이 탄식했다. 기법이 정밀하지 못한 것은 생각이 여러곳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 마음을 하나로 통일하지 못하는 것은 눈으로 너무 많은 것을 보기 때문이다.“

이에 사광은 쑥에 불을 붙여 자기 두 눈을 태웠다. 그는 마음을 통일하고 오로지 음악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이기 위해 스스로 소경이 되었다.  그리고 음악에만 몸과 마음을 바쳤다.

드디어 사광은 음악으로써 기후의 영허 盈虛와 음양의 소장 消長을 통달하기에 이르렀다. 사광은 하늘의 변화와 인간의 일을 음악으로써 알아맞히되 추호도 틀리지 않았다. 심지어 물건 놓는 소리와 새나 짐승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그 길흉을 짐작했다.

그리하여 사광은 진나라 太師가 되어 장악관 掌樂官으로 있었다. 진나라 역대 임금은 다 사광을 깊이 신입했다. 그래서 행군할 때는 반드시 장님인 사광을 데리고 다녔다.


p98

제장공은 거나라의 싸움에서 많은 황금과 비단을 받고 심하게 중상을 입은 화주와 기양의 시체를 온거와 연에 태우고 돌아왔다. 제장공은 제성 교외에 기양의 시체를 안치시키고 성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기양의 아내 맹강이 남편의 시체를 영접하러 나왔다. 이를 보고 제장공은 수레를 멈추고 사람을 시켜 슬픔을 조상했다.

맹강이 제장공에게 재배하고 아뢴다.

“만일 세상을 떠난 첩의 남편에게 죄가 있다면 상감의 조문을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러나 첩의 남편에게 죄가 없다면 비록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지체지만 그래도 고인의 집이 성안에 있는데 어찌 교외에 안치할 수 있습니까? 자고로 상주는 교외에서 문상을 받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제장공은 심히 부끄러워했다.

“이는 과인의 잘못이다. 기양의 위패를 그의 집으로 옮기고 다시 사람을 보내어 문상하게 하여라.”

맹강은 장차 성 밖에서 장사를 지내기로 했다. 그녀는 노숙 露宿하면서 사흘 동안  밤낮없이 남편의 관을 어루만지며 통곡했다.

마침내 맹강은 눈물이 말라버렸다. 대신 두 눈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렷다. 그녀의 통곡소리는 애간장을 끊는 듯했다.

맹강이 울기 시작한 지 사흘 째 되는 날이었다.

문득 제나라 성이 크게 진동하면서 무너져내렷다.

제나라 사람들은 성이 무너진 것이 맹강의 기막힌 슬픔과 정성과 한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후세 사람들은 秦나라 사람인 범기량이 진시황 때 만리장성을 쌓다가 죽었는데, 그 아내 맹강이 겨울 옷을 가지고 찾아갔다가 남편이 이미 죽은 것을 알고서 하도 슬퍼 울었기 때문에 성이 무너졌다고들 전한다.

그러나 만리장성의 애화는 사실 제나라 장수 기양의 故事를 잘못 전한 것이다.

제나라에 돌아온 화주는 워낙 중상을 입었기 때문에 그 후 몇 달 만에 죽었다. 화주의 아내 또한 보통 부녀자들이 과부가 됐을 때보다 몇배나 슬피 통곡했다.

후세에 맹자가 ‘화주와 기양의 아내는 그 남편의 죽음을 너무나 슬피 통곡했기 때문에 마침내 음탕무도한 제나라 풍속까지 고쳐놓았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 일을 두고 칭찬한 것이다.


p114

제장공을 불러들여 난을 일으키고 제장공을 죽인 최저는 스스로 우상이 되고 경봉에게 좌상을 시켰다. 나이 어린 공자 저구를 제경공으로 세워 태묘에 가서 짐승을 잡아 그 희생의 피를 입술에 바르고 모든 대신들과 함께 선서했다.

최저는 당무구에게 분부한다.

“주작, 가거 등의 시체와 제장공의 시체를 다 함께 북곽에 끌어다 묻되, 그 장례를 예법대로 하지말고 무덤에 칼이나 창 같은 무기를 묻지마라. 그들이 지하에 가서도 용맹을 좋아할까 두렵다.”

최저가 다시 太史 백에게 분부한다.

“실록에다 제장공이 학질로 죽었다고 쓰오.”

그러나 태사 백은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기록에다. ‘여름 5월 을해일에 최저가 그 임금 광(제장공의 이름)을 죽였다.’고 썼다.

그 후 최저는 그 기록을 보고서 격분하여 태사 백을 죽였다.

이 때 태사 백에게는 仲, 叔, 季 라는 세 동생이 있었다. 바로 아래 동생 중 역시 형 백이 쓴 것과 똑같이 기록했다. 이에 최저는 태사 중도 죽였다. 그런데 그 다음 동생 숙도 죽은 두 형이 쓴 것과 똑같이 기록했다. 최저는 태사 숙까지 죽였다. 그러나 그 아래 동생 게도 죽은 형들이 쓴 것과 똑같이 기록했다.

최저가 그 기록을 보고 기가 막혀서 태사 게에게 말한다.

“너희 형 셋이 다 죽었는데 너도 생명이 아깝지 않느냐? 내가 시키는대로 쓰면 너는 살려주마.”

태사 계가 대답한다.

“사실 事實을 바른대로 쓰는 것이 역사 歷史를 맡은 사람의 직분입니다. 자기 직분을 잃고 사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습니다. 옛날에 진영공이 죽음을 당했을 때, 태사 동호는 조돈이 정경 벼슬에 있었기 때문에 능히 그를 치지 못하고 붓으로 실록에다 ‘조돈이 그 임금 이고(진영공의 이름)를 죽였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조돈은 그 실록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권력으로도 사직 史職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내가 쓰지 않더라도 반드시 천하에 이 사실을 알릴 사람이 있을 것이니, 아무리 해도 최우상이 저지른 일을 감출순 없습니다. 자꾸 감추려 들면 도리어 식자 識者간의 웃음거리만 됩니다. 내가 죽으면 최우상은 더욱 불리해집니다. 그러니 나른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최저가 태사 계에게 기록을 던져주며 탄식한다.

“나는 우리나라 사직을 바로잡기 위해서 부득이 임금을 죽였다. 그대가 사실대로 기록한다 해도 사람들은 틀림없이 나를 이해하겠지!”

태사 계는 그 기록을 집어들고 사관 史館으로 돌아가다가 저편에서 오는 南史氏와 만났다.

태사 계가 묻는다.

“무슨 일로 이렇게 바삐 오시오?”

남사씨가 대답한다.

“그대 형제가 다 죽음을 당했다는 소문을 듣고서, 혹 이번 오월 을해사건이 후세에 전해지지 못할까 염려하여 죽간 竹簡(종이가 발명되기 전 글을 적던 댓조각)을 가지고 오는 길이오.”

태사 계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록을 남사씨에게 보였다. 그제야 남사씨는 안심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p162

초나라 양유기가 계책을 말한다.

“오나라 사람은 강변에서 자란만큼 水戰에 능속하오. 그런데 지금 그들은 모두 배를 버리고 뭍으로 왔소. 그러므로 그들은 활쏘기와 병거를 몰고 달리는 것이 배를 타고 싸우는 것보다. 서투르오. 저들의 후속 부대가 다 당도하기 전에 우리 쪽에서 급히 무찌르는 것이 상책이오.“

드디어 양유기는 전통 葥筒을 메고 활을 잡고 다른 군사들보다. 먼저 가서 오군을 향해 쏘았다. 양유기는 비록 늙었으나 그의 화살은 역시 백발백중이었다.

차차 오군이 물러가기 시작하자, 양유기는 오나라 정승 굴호용이 병거에 타고 있는 걸 바로 보고서 큰 소리로 꾸짖는다.

“반국 叛國한 역적놈아! 네 무슨 면목으로 감히 나를 대하겠느냐?”

굴호용은 양유기를 흘끗 돌아보더니 어자 御者에게 분부하여 쏜살같이 병거를 몰게 하고 달아났다.

그 모습을 보고 양유기는 깜짝 놀랐다.

“오나라 사람도 병거를 잘 모는구나!”

그는 즉시 굴호용을 쏘아죽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이 때 땅이 진동하기 시작하며 오나라 철엽거 鐵葉車가 사방에서 나타나 양유기를 에워쌌다. 더구나 철엽거를 타고 있는 군사들은 다 강남 땅 射手들이었다. 일시에 수천개의 화살이 노장군 양유기를 향해 날아왔다. 마침내 천하명궁 양유기는 빗발치듯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쓰러져 죽었다.

지난날에 초공왕은 ‘재주를 믿는 자는 반드시 그 재주 때문에 죽는다고 말한 일이 있다.’ 우리는 양유기의 죽음에서 이 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식환은 싸움에서 패한 초나라 군사를 수습해서 거느리고 돌아가 굴건에게 양유기의 죽음을 보고했다.

굴건이 길이 탄식한다.

“양유기는 오군에게 죽은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 소원대로 죽은 것이다.”


p269

초영왕은 동문을 지키는 군사들에게 분부했다.

“제나라 사신이 오거든 성문을 열어주지 말아라. 그리고 저 뚫어놓은 구멍으로 들어오라고 하여라.”

이튿날 새벽이었다. 제나라 안영은 떨어진 갖옷을 입고 털이 벗어진 당나귀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영성 동문에 당도했다. 안영은 성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어자에게

“네가 성문을 열어달라고 큰소리로 외쳐보아라.”

하고 분부했다. 어자가 큰소리로 문을 열라고 외쳤다. 그제야 성문 위로 초나라 수문군이 나타나 안영을 굽어보면서 말한다.

“제나라 대부는 성문 옆에 뚫어놓은 저 구멍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런 조그만 몸으론 넉넉히 들어오고도 남습니다,. 굳이 이런 성문까지 열 필요는 없습니다.”

안영이 태연히 대답한다.

“저것은 개구멍이지 사람이 출입할 곳은 못된다. 개의 나라에서 왔다면야 개구멍으로 들어가야 하겠지만, 사람이 사는 나라에서 왔다면 사람이 드나드는 문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수문군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들은 초영왕에게 가서 안영이 하던 말을 보고했다. 초영왕이 분부한다.

“그늘 희롱하려다가 도리어 희롱을 당했구나. 곧 문을 열어주고 성안으로 들게 하여라.”

이에 안영은 영도성으로 들어가서 큰 거리를 따라가며 초나라 장안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성곽은 높고 튼튼하며 시정은 빽빽이 들어차서 터가 좋으면 인걸이 난다는 격으로, 방위가 강남의 勝地였다.


p311

제경공은 晉소공의 초청으로 모든 채비를 다 하고 떠났다. 그들 일행중엔 고야자 古冶子라고 하는 장사가 있었다.

그들 일행은 황하에 이르러 배를 탔다. 제경공이 타고 온 좌참이란 말은 가장 사랑을 받는 명마였다. 그래서 御人은 말을 뱃머리에 맸다. 제경공은 어인이 말에게 사료를 주는 것까지도 친히 감독했다.

문득 비가 쏟아지면서 큰 파도가 일어났다. 금세 배가 뒤집힐 듯 요동했다.

바로 이 때였다. 강물위로 이상한 괴물이 머리를 쳐들고 나타났다. 적어도 수천년 묵은 듯한 큰 자라였다. 그 큰 자라는 물위로 떠올라 목을 길게 뽑더니 제경공이 사랑하는 말인 좌참을 한 입에 덥석 물고 강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깜짜 놀란 제경공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고야자가 곁에서 아뢴다.

“상감께선 무서워 마십시오. 신이 상감을 위해 말을 찾아오겠습니다.”

고야자는 옷을 벗고 칼을 뽑아들고 강물로 뛰어들어 파도 속으로 사라졌다.

고야자는 한참 만에 물위로 떠올랐다가 다시 물밑으로 사라지곤 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디론지 가는 것이었다. 배는 고야자를 따라 10리쯤 갔다. 물 속으로 사라진 고야자는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사방을 봐도 흔적조차 없었다.

제경공이 탄식한다.

“고야자가 죽었구나!”

조금 지나서다. 갑자기 풍랑이 멈추고 시퍼런 강물 위로 끊임없이 피가 솟아올랐다. 이윽고 물 속에서 고야자가 왼 손으로 말꼬리를 잡아당기며, 오른 손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자라 목을 들고서 물결을 뒤집어쓴 채 올라왔다.

제경공이 다시 대경실색한다.

“참으로 고야자는 신용 神勇하도다! 지난날 선군은 공연히 용작 勇爵이라는 벼슬까지 줬지만 어찌 그들 중에 고야자만한 용사가 있었으리오.”

제경공은 그를 격찬하고 많은 상을 하사했다.


8권 - 大聖 孔子

제경공은 정승 안영의 말을 듣고 형벌을 줄이고 창고를 열어 가난한 백성에게 싼 이자로 곡식을 꾸어주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나라의 은혜에 깊이 감격했다. 그 후 제경공은 동방 일대의 모든 나라 제후를 초청했으나 서나라 임금만 오지 않았다. 이에 격분하여 전개강을 대장으로 삼아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서나라를 쳤다. 제나라 군사는 포수땅에서 한바탕 싸워 장수 영상을 죽이고 군사 500여명을 사로잡았다. 

이에 제경공은 장수 전개강에게 서나라를 평정한 공로를 기특히 여겨 지난날의 고야자와 함께 五乘 之貧으로 대우했다.

그 후 전개강은 다시 제경공에게 공손첩을 천거했다. 공손첩은 나면서부터 얼굴빛이 검푸르고 눈알이 붉었으며 키가 컸다. 그는 능히 천근의 무게를 들어올리는 장사였다.

어느날 제경공은 공손첩과 함께 사냥을 하러 동산에 갔다. 사냥을 하는 중에 갑자기 백액대호 한 마리가 사납게 으르렁거리면서 뛰어나왔다. 그 범은 나는 듯이 제경공이 티고 있는 말에게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제경공은 어쩔줄을 몰라 했다.

이 때 공손첩이 수레에서 뛰어내려가 맨손으로 맹호의 턱밑을 움켜 잡았다. 그리고 주먹으로 맹호를 한번에 때려죽였다.

이리하여 공손첩은 전개강, 고야자와 함께 결의형제를 맺고, 그 후부터 그들은 제나라의 3걸 三傑이라고 자칭했다.

그들 세사람은 모두 자신들의 공로와 용기만을 믿어 항상 호언장담을 일삼고, 시정과 여염 간을 횡행하며 못된 짓만 하고, 공경대부를 깔보고, 심지어 제경공 앞에서도 반말지꺼리를 하며 버릇없이 굴었다.

또 궁중에 양구거라는 간신이 제경공의 비위를 잘 맞추고 총애를 받았으며, 진무우는 사재를 뿌려 민심을 얻는 동시에 제나라를 손아귀에 넣으려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정승 안영의 근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晉나라와 뜻이 맞지 않았던 노나라의 노소공이 친교를 맺으려고 제나라에 왔다. 이에 제경공은 큰 잔치를 벌이고 노소공을 환영했다. 잔치자리에서 두나라를 대표하여 노나라의 숙손착과 제나라의 안영이 나와 인사를 교환했다.

계단 아래엔 삼걸이 칼을 차고 오만스레 늘어서 있었다.

두나라 임금이 얼근히 취했을 때였다.

안영이 아뢴다.

“바야흐로 후원에 금도 金桃가 익었을 것입니다. 두 임금께선 그걸 맛보시고 상수上壽 하십시오.”

제경공은 정원 돌보는 관리를 불러 금도를 따오라고 분부했다.

안영이,

“금도는 참으로 구하기 어려운 과일입니다. 신이 친히 가서 따오겠습니다.”

하고 잔치 자리를 나갔다.

제경공이 노소공에게 설명한다.

“그 금도는 先公때에 동해 사람이 큰 씨를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이것은 萬壽金桃 라는 복숭아씨로 해외의 산속에서 구했습니다.’ 하고 진상한 것입니다. 그 이름을 반도 蟠桃라고도 합니다. 그 후로 30년이 지났건만, 그동안에 가지와 잎은 비록 무성하고 꽃은 해마다 피었지만 한번도 열매를 맺지 않았지요. 그러던 것이 금년에야 열매 몇 개가 열렸습니다그려. 그래 과인은 그걸 몹시 아끼는 생각에서 후원 문을 봉쇄했지요. 이제 군후께서 이렇게 왕림하셨으니 과인이 감히 혼자 먹을 수 없는지라, 특별히 군후와 함께 처음으로 맛보고자 합니다.”

노소공은 소매 긴 두 손을 들어 검사하다는 뜻을 표했다.

이윽고 안영은 정원의 관리를 데리고 돌아와 조반 彫盤에다 금도 여섯 개를 놓아서 바쳤다.

그 복숭아는 크기가 주발만하고 빛은 숯불같고 향기가 코를 찔렀다. 참으로 진기한 과일이었다.

제경공이 묻는다.

“그래, 겨우 여섯 개 뿐이던가?”

안영이 대답한다.

“서너 개 더 있었으나 아직 덜 익어서 익은 걸로 여섯 개만 따왔습니다.”

제경공은 안영더러 노소공에게 술잔을 바치도록 분부했다.

이에 안영은 노소공 앞에 나아가서 공손히 玉杯를 바쳤다. 동시에 좌우 사람이 각기 두 임금에게 금도를 바쳤다.

안영이 치사한다.

“복숭아가 이렇듯 크니 참으로 천하에 드문바라. 두 임금께선 이걸 잡수시고 다함께 천수 天壽하십시오.

노소공은 술을 마신 후 금도 한개를 먹었다. 그 맛이 과연 비상하여 찬탄해 마지않았다.

다음에 제경공이 술을 마시고 금도 한개를 먹고 나서,

“이 복숭아는 참으로 희귀한 과일이라. 숙손대부는 어질기로 그 명망이 사방에 널리 알려졌고, 또 이번에 먼 길을 오느라고 수고가 많았을 것이니 이 복숭아를 하나 맛보오.”

하고 권했다.

노나라에서 온 숙손착이 꿇어앉아 대답한다.

“신이 어찌 승상 안영의 만분지일인들 따를 수 있겠습니까? 승상 안영은 안으로 제나라 정사를 다스리고 밖으로 모든 나라 제후를 복종케 했으니 그 공로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복숭아는 승상 안영께서 잡수셔야 합니다. 신이 그걸 어찌 먹을 수 있겠습니까?”

“숙손대부가 안영에게 사양하니 그럴 것 없이 둘이서 각기 하나씩 맛보오.”

하고 제경공은 술과 복숭아를 각기 두사람에게 하사했다.

이에 노나라 신하 숙손착과 제나라 승상 안영은 꿇어앉아 복숭아를 받아먹고 사은했다.

안영이 다시 아뢴다.

“아직 금도가 두개 남았으니 상감께선 공로가 많은 신하에게 하사하시어 스 그 공로를 표창하십시오.”

제경공이 분부한다.

모든 신하에게 영을 내려 공로가 많은 자는 스스로 자기 공적을 아뢰게 하여라. 그리고 안영이 그 공로를 평가하고 복숭아를 주도록 하오.“

이에 공손첩이 앞으로 썩 나서면서 아뢴다.

“지난날 주공께서 동산땅에서 사냥할 때 신이 맹호를 때려눕혔으니 그 공로가 어떠합니까?”

안영이 그공로를 평해.

“하늘을 받들다시피 어가를 보호했으니 그 공로가 크고 크도다.”

하고 공손첩에게 금도를 줬다.

이번엔 고야자가 분연히 앞으로 나서며 아뢴다.

“범을 죽인 것은 별로 기이할 것이 없습니다. 신이 지난날 황하에서 천년 묵은 자라를 참하여 상감을 보호하였으니 그 공로는 어떠합니까?”

이번엔 제경공이 대답한다.

“그때 파도가 매우 흉악했다. 장군이 고 요사스런 자라를 참하지 않았던들 내 목숨을 어찌 부지하였으리오. 그대의 공은 세상에 보기드문 바라. 어찌 금도를 머기 않을 수 있으리오.”

안영은 황망히 고야자에게 술과 복숭아를 줬다.

이에 전개강이 옷자락을 걷어붙이고 성큼성큼 걸어와 아뢴다.

“신은 일찍이 상감의 명을 받들어 서나라를 치고 그 대장을 잡아죽이고 적군 500여명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서나라 임금은 겁을 먹고 뇌물을 바치고 화평을 청했습니다. 그래서 담․거 두나라도 겁을 먹고 일시에 다 모여서 상감을 맹주로 모셨습니다. 신의 공로가 이만하니 가히 금도를 먹을 수 있겠지요?”

안영이 제경공에게 아뢴다.

“전개강의 공적은 두 장수보다도 10배나 더 큽니다. 그런데 이제 복숭아가 없으니 어찌하오리까? 술이나 한잔 하사하시고 북숭아는 내년에 하사하도록 하십시오.”

제경공이 전개강에게 말한다.

“경의 공이 가장 크건만 가히 아깝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는가? 이제 복숭아가 없으니 공로를 표창할 수가 없구나!”

전개강이 칼자루를 잡고서,

“자라나 범을 죽인 것은 실로 작은 일입니다. 나는 천리 먼 곳까지 가서 피를 뿌리고 싸워 큰 공을 세웠건만, 도리어 복숭아를 받지 못하고 두나라 임금과 모든 신하 앞에서 부끄러움과 비웃음을 당했습니다. 내 이제 무슨 면목으로 조정에 서리오.”

하고 그자링[서 칼을 뽑아 자기 목을 찌르고 죽었다.

공손첩이 깜짝놀라면서,

“우리는 보잘것없는 공로를 세우고 복숭아를 먹었는데, 전개강은 큰 공로를 세웠건만 먹지 못했다. 내가 그에게 복숭아를 사양하지 못한 것은 몰염치한 일이었다.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서 따라 죽지 않는다면 이는 용기가 없다는 증거다.”

하고 역시 칼로 자기 목을 찌르고 죽었다.

고야자가 논을 부릅뜨고 큰소리로 외친다.

“우리 세 사람은 일찍이 결의형제를 맺고 생사를 함께하기로 맹세했다. 두 사람이 이미 죽었는데 내 어찌 혼자서 이 세상을 살리오.”

그러더니 고야자 역시 칼로 자기 목을 찌르고 죽었다.

제경공이 황망히 사람을 시켜 말렸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노소공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한다.

“과인이 듣건대 제나라 삼걸은 천하에 보기 드문 용사라 하던데 일시에 세상을 떠났으니 참으로 아깝소이다.”

“……”

제경공은 묵연 黙然할 뿐 매우 언짢은 기색이었다.

안영이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서 아뢴다.

“그들은 그저 용기가 있었을 뿐입니다. 비록 약간의 공로는 있었으나 족히 화제에 올릴만한 인물들이 못됩니다.”

노소공이 의아하다는 듯이 묻는다.

“그럼 귀국엔 이런 용기 있는 장수가 몇이나 있소?”

안영이 대답한다.

“묘당 廟堂깊이 앉아 정책을 세워서 국위를 만리 밖에 떨치게 하는 장상 將相급만 수십명이나 있습니다. 저런 혈기방장한 용사 따위는 우리 상감께서 매질이나 해서 부리는 축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저들의 죽음이 우리 제나라에 무슨 영향이 있겠습니까?

그제야 제경공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표정을 고쳤다.

안영은 다시 두나라 임금에게 잔을 올리고 술을 권했다. 두 나라 임금은 서로 술을 마시다가 각기 취한 뒤에 잔치를 파했다.

그 삼걸의 무덤은 제나라 탕음리에 있다.


삼걸이 일시에 죽고 나서 제경공은 안영에게 훌륭한 인물을 천거하라고 했다. 이에 안영은 비록 신분은 서출이나 문장이 뛰어나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고 적을 위압할 수 있는 무력의 소유자로 보기드문 명장으로 전양저를 천거하였다.

그러나 제경공은 이미 죽은 전개강과 성이 같고 陣나라와 동족이라고 하며 결정을 짓지 못하고 주저하였다. 그러던 중 晉나라에서 삼걸이 다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군사를 일으켜 동아경계를 침범하고 연나라도 북방에서 침범을 해온다는 소식을 받았다.

제경공은 즉시 안영을 불러 전양저를 초빙해오도록 하였다. 인영은 비단과 예물을 기지고 동해로 달려가 전양저를 모셔왔다.

전양저는 공에 들어와 병법에 대해 제경공에게 설명하였다. 이를 듣고 그의 탁월한 경륜을 인정하여 병거 500승을 거느리고 북쪽의 연나라와 陣나라를 물리치도록 하였다.

이에 전양저는 신분이 미천함으로 갑자기 병권을 맡기는 했으나 명령에 잘 복종하지 걱정이 되어 상감의 총애를 받고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장군을 함께 동행하도록 요청하였다.

제경공은 대부 장가를 불러 모든 군대를 감독하게 하였다. 장가는 전양저와 궁에서 나오며 출발은 언제 하느냐고 물었다.

전양저가 답한다.

“내일 오시에 일제히 출발합니다. 군문에서 기다리겠으니 대감은 나와 함께 떠나셔야 합니다. 시각을 어기지 마십시오.”

이튿날 오시가 되기전 전양저는 군중에 이르렀다. 전양저는 군리를 불러

“뜰에 장대를 세우고 시간이 틀리지 않도록 그림자를 재어라. 장가는 어찌하여 아직 안 오셨느냐? 속히 사람을 모내어 곧 오시라고 하여라.”

하고 분부하였다.

원래 연소한 장가는 천성이 교만하고 제경공의 총애를 받는지라 전양저를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전군 군대를 감독할 권리를 받았기 때문에 세도가 부쩍 늘어난 셈이었다.

어느덧 정오가 지나 미시(오후 2시)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장가는 오지 않았다.

“장대를 치우고 누수 漏水를 쏟아버려라! 더 이상 시간을 잴 필요가 없다.”

전양저는 친히 단 위에 올라가서 모든 군사에게 출발하기 전에 여러 가지 주의 사항을 지시했다. 이 땐 이미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다. 그제야 저 멀리서 장가가 네 필의 말이 이끄는 좋은 수레를 타고 천천히 온다.

얼굴에 취기가 기득한 장가가 군문에 이르렀다. 좌우 군사들은 장가를 부축해서 장대로 모셨다.

장대 위엔 전양저가 양연히 앉아 있었다. 장가가 올라와도 전양저는 일어나지 않았다.

“어째서 이제야 오는 거요?”

장가가 공수하고 대답한다.

“오늘 멀리 출정하기 때문에 친척과 친구들이 잔치를 차려줘서 늦었소이다.”

“대저 장수 된 자는 명령을 받는 그날로  자기 집을 생각하지 않고, 군중에서 약속하면 바로 자기 가족을 잊고, 북채를 잡으면 시석 矢石을 무릅쓰고 자기 일신을 돌보지 않는 법이라. 지금 적군의 침범으로 변경이 소란하여 상감께선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시고 음식을 잡숴도 그 맛을 모르시는 중이다. 그래서 우리 두 사람에게 삼군을 내주시고 속히 공을 세워 이 나라 백성의 위급을 구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하거늘 어느 여가에 친척과 함께 술을 마시며 즐길 수 있느냐?”

장가가 웃음을 머금고 대답한다.

“출발할 시간이 좀 늦었기로서니 원수 元帥는 너무 과도하게 책망하지 마시라.”

순간 전양저가 안상 案床을 치며,

“네가 상감의 총애만 믿고 이렇듯 태만하니 장차 적군과 싸울 때에 어찌 큰 일을 그르치지 않겠느냐!”

크게 꾸짖고 군정사 軍政司를 불러 물었다.

“장수가 시간을 어기고 늦게 왔을 때 군법은 그 죄를 어떻게 다스리도록 되어 있느냐?”

군정사가 대답한다.

“군법에 의하면 사형입니다.”

장가는 사형이라는 말만 듣고야 정신이 번쩍 나서 슬금슬금 대 밑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전양저가 즉시 추상같은 호령을 내리자 수하 군사들이 달아나는 장가를 결박지었다. 전양저가 큰소리로 호령한다.

“저놈을 원문 밖으로 끌어내고 목을 참하여라!”

장가는 일시에 술이 깼다. 그는 그저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했다.

장가를 따라왔던 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 즉시 궁으로 달려가서 제경공에게 장가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청하였다.

매우 놀란 제경공은 양구거를 부른다.

“너는 이 부절 符節을 가지고 급히 가서 과인의 명령이니 장가를 살려주라고 전양저에게 전하여라!”

양구거는 곧 초거 軺車를 타고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 땐 원문 밖에서 장가의 목이 굴러떨어진 후였다.

양구거는 장가가 이미 죽은 줄 모르고 부절을 높이 쳐들고 군중 속으로 수레를 몰고 들어갔다.

전양저가 큰소리로,

“저 수레를 멈추게 하여라.”

호령하고 다시 군정사에게 묻는다.

“군중에선 누구를 막론하고 수레를 달리지 못하는 법이다. 그런데 저렇듯 법을 어긴 자가 있으니 저런 자에겐 어떤 벌을 내려야 하느냐?”

군정사가 아뢴다.

“군법대로 한다면 사형입니다.”

이 말을 듣고 양구거는 얼굴빛이 흙빛으로 변했다. 양구거가 황급히 변명한다.

“제맘대로 법을 어긴 것이 아닙니다! 실은 상감의 분부를 받고 왔습니다.”

전양저가 말한다.

“상감의 분부로 왔다고 하니 죽일 수 없구나. 그렇다고 군법을 굽힐 수는 없다. 그 대신 저 수레를 부숴버리고 수레를 끌고 온 말을 죽여라!”

자기가 타고 온 수레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자기 대산 말이 죽는 걸 본 양구거는 혼비백산해서 머리를 움켜쥐고 쥐새끼처럼 달아났다.

이에 대소삼군 大小三軍의 군사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격으로 이 소문은 널리 퍼졌다.

전양저의 군사가 접경에 이르기도 전이었다. 진나라 군사는 이 소문을 듣고 다 본 국으로 달아났다. 연나라 군사도 이 소문을 듣고 다시 강을 건너 북쪽으로 달아났다.

전양저는 진․연 두나라 군사를 추격하고 그들의 목 1만여를 참했다.

이에 참패한 연나라는 제나라 군사에게 뇌물을 바치고 화평을 청했다.

제나라 군사가 개선해서 돌아온 날이었다. 제경공은 친히 교외까지 나가서 전양저를 영접하고 그 자리에서 사마 司馬벼슬을 내렸다. 이리하여 사마 전양저는 제나라 병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이 때부터 모든 나라 제후는 사마 전양저에 관한 소문만 듣고도 다 제나라를 두려워했다. 제경공은 국내일은 안영에게 맡겼다. 이리하여 제나라는 날로 부강하고 사방이 무사했다.

 

p168

오왕 합려는 오자서가 천거하려는 사람이 오나라 출신이란 말을 듣자 희색이 만면해졌다.

오자서가 계속 아뢴다.

“그는 육도삼략 六韜三略에 정통한데다 귀신도 측량 못할 전략가이며 천지의 비밀과 그 묘리 妙理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스스로 병법 13편을 저술했으나 세상이 그의 재주를 알아주지 않으므로 지금 나부산 동쪽에 은거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이 사람을 얻어 군사 軍師로 삼는다면 비록 천하를 대적한다 해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초나라 하나쯤이야 더 말 할 것 있겠습니까?”

오왕 합려가 간곡히 부탁한다.

“경은 과인을 위해 곧 그 사람을 불러주오!”

오자서가 대답한다.

“그사람은 경솔히 벼슬을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과는 다르니 반드시 예로써 초빙해야 합니다.”

오왕 합려는 머리를 끄덕이고 황금 10일과 백옥 한쌍을 내놓았다.

오자서는 네필의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나부산에 가서 손무에게 오왕 합려의 예물을 바치고,

“오왕이 선생을 매우 사모하고 있으니 같이 가십시다.”

하고 간청했다.

이에 손무는 오자서를 따라 나부산을 떠나 도성으로 향했다.

손무가 오자서의 안내를 받고 왕궁으로 들어가는데 오왕 합려는 섬돌 밑까지 내려와서 영접했다.

오왕 합려는 손무에게 앉을 자리를 주고 병법을 물엇다. 손무는 자기가 지은 병법 13편을 차례로 바쳤다. 오왕 합려는 오자서에게 그 하나하나를 낭독하게 했다. 오자서가 한 편씩 읽어 마칠 때마다 오왕 합려는 진심으로 격찬해 마지않았다.

그 13편이란 1은 始計篇이며, 2는 作戰篇이며, 3은 謀功篇이며, 4는 軍形篇이며, 5는 兵勢篇이며, 6은 虛實篇이며, 7은 軍爭篇이며, 8은 九變篇이며, 9는 行軍篇이며, 10은 地形篇이며, 11은 就地篇이며, 12는 火攻篇이며, 13은 用間篇이었다.(이 13편이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병서 손자병법이다)

오왕 합려가 오자서를 돌아보고 말한다.

‘이 병법은 참으로 하늘과 땅을 꿰뚫는 재주라 하겠소. 그러나 과인의 나라는 크지도 못하고 군사 또한 많지 않으니 어찌할꼬?’

이 말을 듣고 손무는 병법이 병졸에게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군령만 지키면 부녀자라도 나아가 싸울 수 있다고 하며 궁녀 300명을 달라고 하여 호된 군사훈련을 시켰다.

훈련과정에서 오왕 합려가 사랑하는 궁녀 좌희와 우희를 죽였다고 하면서 손무를 등용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이에 오자서는 아름다운 여자를 얻기는 쉽지만 진실로 훌륭한 장수를 얻기 어려우니 궁녀 두명 때문에 좋은 장수를 버린다면 잡초를 사랑한 나머지 좋은 벼를 버리는 거나 다름없다고 하여 손무를 상장으로 삼아 초나라 칠 일을 맡겼다.


9권 - 와신상담

월왕 구천이 더 깊이 머리를 조아린다.

“신의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 오직 바라건대 대왕께선 신을 불쌍히 여기소서.”

이 때 오자서는 오왕 부차 곁에 서있다. 오자서가 우레같은 소리로 오왕 부차에게 아뢴다.

“하늘을 나는 새를 봐도 오히려 활을 당겨 잡으려 하거늘, 하물며 지금 바로 뜰 밑에 적이 와 있는데 어찌 그냥 버려두십니까? 구천은 원래 교활하고 음험한 놈입니다. 그는 지금 가마솥에 든 고기 같은 신세이기 때문에 갖은 아첨을 떨며 그저 살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목숨을 유지하고 한번 뜻을 얻기만 하면 마치 산으로 놓여나간 범처럼, 바다로 들어간 고래처럼 다시 붙들기 힘듭니다. 속히 구천을 참하십시오.”

오왕 부차가 대답한다.

“내 듣건대 항복한 자를 죽이면 그 재앙이 3대에 미친다고 하오. 월나라를 사랑해서 구천을 살려두는 것이 아니오. 우리에게 불행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다만 하늘을 두려워하는 바라.”

태재 백비가 곁에서 돕는다.

“오자서는 눈앞의 일에는 밝을지 모르나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법을 모르는 소리입니다. 우리 주상의 말씀은 참으로 어지십니다.”

오왕 부차는 백비의 망령된 말만 믿고 오자서가 간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이에 오자서는 분연히 집으로 돌아갔다.

오왕 부차는 월왕 구천이 바친 많은 보물과 여자를 받고 왕손 웅에게 분부한다.

“선왕 합려의 무덤 곁에 석실을 만들고 그 곳에서 구천 부부를 살게 하여라.”

이리하여 선왕 합려의 무덤 곁에 석실이 만들어졌다. 월왕 구천 부부는 석실 속에서 기거하며, 때묻은 옷을 입고 낮이면 말을 기르는 신세가 되었다.

태재 백비가 뒤로 양식을 대주어서 월왕 구천 부부는 겨우 굶지 않을 정도로 살았다.

오왕 부차가 수레를 타고 행차할 때면 언제나 월왕 구천은 말고삐를 잡고 걸었다.


월왕 구천은 지난날 오왕 부차의 변을 핥은 후부터 늘 입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면서 불쾌해 했다. 범려는 성 북쪽 산에 즙(蕺)이라는 산나물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산나물을 먹으면 다른 냄새를 막을 수 있으므로, 범려는 사람을 시켜 그 즙이라는 산나물을 캐다가 월왕 구천의 식상에 놓게 했다.

월왕 구천은 식사때마다 그 산나물을 먹고 입에서 나는 냄새를 잊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회계성 북쪽 산을 즙산이라고 했다.

월왕 구천은 오나라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자기 자신부터 가혹하게 다루었다. 그는 밤에도 잠을 자지 않았다. 잠이 오면 송곳으로 무릎을 찔렀다.

겨울에 발이 시려서 오므리게 되면 도리어 찬물에다 발을 담그고 자신을 꾸짖었다. 겨울이면 방에 얼음을 갖다놓고 여름이면 화로를 끼고 있었다.

그리고 의자나 침상을 쓰지 않고 장작을 깔고 그 위에서 기거했다. 또 쓰디쓴 쓸개를 매달아놓고 수시로 그것을 핥으면서 자신을 격려했다. 그는 밤중이면 소리없이 흐느껴 울었다. 울다가는 다시 한숨을 모아 쉬었다.

그리고 주문을 외듯 혼자서

“구천아 지난날 회계에서 오나라에 항복했던 그 당시 수치를 잊었느냐?”

중얼거리곤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래서 구천은 이가 모두 으스러졌다.

월왕 구천은 오나라 원수를 갚고자 자기 자신에게 그처럼 엄격했던 만큼 백성에 대한 법령도 보통이 아니었다.

젊은 남자는 늙은 여자를 아내로 삼지 못하며, 늙은 남자는 젊은 여자를 아내로 삼지 못하게 했다. 이는 튼튼하고 씩씩한 아들을 낳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 여자가 열일곱 살이 되어도 결혼하지 않는다든지, 남자가 스무살이 지나도록 결혼하지 않으면 당자는 물론이거니와 그 부모까지 처벌했다.

여자가 애를 낳으면 관가에 고해야 했다. 관가에선 즉시 의원을 보내어 해산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산모를 돌봐주었다.

이리하여 사내아이를 낳으면 관가에선 그 산모에게 술 한 병과 개 한 마리를 잡아 주고, 여자아이를 낳으면 술 한 병에 돼지 한 마리를 주어 산모를 보해야 했다.

아들 셋을 낳으면 아들 둘을 길러주고, 아들 둘을 낳으면 그 하나를 길러 주었다.

이렇게 법령을 폈을 뿐 아니라 월왕 구천 자신도 어디까지나 철저했다.

백성이 죽으면 월왕 구천은 친히 그 집에 행차해서 조문하고 슬퍼했다. 또 궁성 밖으로 행차를 할 때는 반드시 수레 뒤에다 음식을 싣고 나갔다. 그는 어린 아이를 만나면 음식을 나눠 주고 일일이 그 이름을 묻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농사 때가 되면 월왕 구천은 친히 들에 나가 밭을 갈았다. 따라서 월부인도 항상 베틀에 앉아 베를 짰다. 월왕 구천은 어디까지나 백성들과 노고를 함께 했다.

이리하여 그는 7년동안 백성들로 하여금 세금을 걷지 않았고, 고기를 먹지 않았고, 비단 옷을 입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달에 한번씩 오나라로 사자를 보내어 오왕 부차에게 문안을 드렸다.

또 남녀를 보내어 칡을 캐오게 하여 그 칡으로 황사세포를 짜게 했다. 오왕 부차에게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오왕 부차는 월왕 구천의 지극한 충성에 감복하고 월나라에 많은 땅을 하사했다.

이리하여 월나라는 동쪽으론 구용땅에 이르고, 서쪽으론 취리땅에 이르고, 남쪽으론 고멸땅에 이르고, 북쪽으론 평원땅에 이르러 종횡으로 800여리의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월왕 구천은 대나무로 만든 배 10척에다가 갈포 10만 필과 꿀 100병과 호피 5쌍을 실어서 오왕 부차에게 보냈다. 이는 땅을 받은 데 대한 답례였다.

답례를 받고 오왕 부차는 너무 기뻐하여 월왕 구천에게 의관을 우모로 장식해도 좋다는 전지를 보냈다.

이런 소문을 들을 때마다 오자서는 연방 탄식하며 병들었다 핑계하고 궁에 들어가지 않았다.

오왕 부차는 태평성대라고 생각하며 즐기려고 100리를 바라볼 수 있는 높이에 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궁실(고소대)을 짓기 위해 온 나라에 큰 재목을 구한다는 현상을 내걸었다.

이 때 월나라 문종이 이 소식을 듣고 월왕 구천에게 아뢴다.

“높이 나는 새는 맛있는 과일을 탐하다가 죽는 법이며, 못 속에 있는 고기는 좋은 미끼를 욕심내다가 죽는 법입니다. 왕께선 오나라에 원수를 갚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니 오나라가 좋아하는 물건을 보내주고 후에 오왕의 목숨을 취하는 것이 상책일까 합니다.”

월왕 구천이 묻는다.

“비록 오나라가 좋아할 물건을 보내준다 해도 어찌 부차의 목숨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으리오.”

문종이 아뢴다.

“장차 오나라를 격파하려면 일곱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재물을 써서 오나라 임금과 신하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며, 둘째는 곡식을 꾸어달라 해서 오나라의 창고를 비우는 것이며, 셋째는 미인을 보내어 오왕 부차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것이며, 넷째는 훌륭한 목공과 좋은 재목을 보내어 궁실을 짓게 함으로써 오나라 재물을 탕진하게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지혜있는 신하를 보내어 오나라에 난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며, 여섯째는 어떻게든 오나라 간신을 자살하도록 궁지에 몰아넣어 적국의 인재를 없애버리는 것이며, 일곱째는 우리가 재물을 저축하고 군사를 조련해서 오나라를 무찌르는 것입니다.”

월왕 구천이 묻는다.

“좋도다. 그대 말이여! 그럼 당장 어떤 계책부터 실행해야 하겠소?”

문종이 대답한다.

“지금 오왕 부차가 고소대에다 다시 궁실을 지을 작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큰 산에 사람을 보내어 좋은 재목을 골라오게 해서 오나라로 보내십시오.”

월왕 구천은 목공 30여명을 산속으로 보내어 좋은 재목을 베어오도록 했다.



월왕 구천은 노래 잘하고 춤잘 추는 여자 둘(서시와 장단)을 뽑아서 오왕 부차에게 범려를 통해 보냈다.

오왕 부차가 굽어보니 보통 여자들이 아니었다. 마치 눈 앞에 선녀 한 쌍이 하강한 듯했다. 오왕 부차는 그만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넋을 빼앗겼다.

곁에서 오자서가 간한다.

“신이 듣건대 하나라는 말희 때문에 망했고, 은나라는 달기 때문에 망했고, 주나라는 포사 때문에 혼란했다고 합니다. 무릇 아름다운 여자는 나라를 망치는 요물입니다. 왕께선 저 두 여자를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오왕 부차가 오자서를 보고 말한다.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오. 그런데 구천은 저런 미인을 자기 곁에다 두지 않고 과인에게 바쳤으니 그 충성을 가히 짐작할 수 있소. 승상은 과도히 남을 의심하지 마오.”


오왕 부차가 정전에 오르자 문무백관은 일제히 절하고 승전(제나라와의 전쟁)을 축하했다. 그러나 오자서만은 종시 아무말도 없었다.

오왕 부차가 의기양양하여 오자서에게 말한다.

“지난날 그대는 과인에게 제나라를 치지 말라고 권했다. 그런데 과인은 이렇듯 크게 이기고 돌아왔다. 이제 그대만 아무런 공로가 없으니 오히려 부끄럽지 않느냐?”

오자서가 발끈하여 허리에 찬 칼을 풀어놓고 대답한다.

하늘이 장차 사람이나 나라를 망칠 때는 먼저 조그만 기쁨을 준 후에 큰 근심을 주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이긴 것은 조그만 기쁨에 불과합니다. 신은 곧 닥쳐올 큰 근심이 두렵습니다.“

“내 한동안 그대를 보지 않아서 정신이 상쾌하더니, 그대는 또 시끄럽게 나를 들볶느냐?”


괴외의 난에서 자로는 목숨을 잃었다.

위나라에 있는 공자에게 사자가 왔다.

“이번에 새로 군위에 오르신 임금께선 夫子를 매우 공경하고 사모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특별한 음식을 보내셨습니다. 받아주십시오.”

공자는 일어나 두 번 절하고 음식이 들어 있다는 단지를 받았다.

그 단지 뚜껑을 열어본 즉 젖으로 담근 고기가 가득 들어 있었다.

공자는 그 고기 젖을 보자마자,

‘속히 그 뚜껑을 덮어라.“

하고 제자에게 분부했다. 공자가 사자를 돌아보고 말한다.

“이것은 바로 나의 제자 자로의 살이구려!”

사자가 흠칫 놀라면서 묻는다.

“그렇습니다. 부자께서는 이것이 자로의 살이라는 걸 어찌 아셨나이까?”

공자가 초연히 말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위후가 나에게 보낼리 없지요.”

공자는 제자들을 시켜 산에다 그 단지를 잘 묻도록 하고 늙은 공자가 통곡한다.

“내 항상 자로가 제 명대로 살지 못할까 염려했더니 결국 비명에 죽었구나!”

사자는 공자에게 하직하고 돌아갔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자는 병을 앓다가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73세로 그 성스럽고 불행한 일생을 마쳤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날은 바로 주경왕 41년 여름 4월 기축일 이었다.

史臣이 시로써 大聖 공자를 찬한 것이 있다.


공자는 성인으로 탄생하사

노나라의 궐리 땅에 살면서 그 위대함을 나타내셨도다.

칠십평생을 학문과 덕으로 일관하셨고

모든 것에 이치를 밝히셨도다.

덕을 펴는 것과 처벌하는 것을 겸전하사

협곡 땅에서 이를 실천하셨도다.

봉황을 보지 못하사 탄식하셨고

죽은 기린을 보시고 우셨도다.

천하가 다 공자를 우러러 거울로 삼고

천추만세로 사람들이 모두 숭배하는도다.


제자들은 공자를 곡부땅에다 장사지냈다. 그 무덤의 크기가 1경(2만여평)이나 된다. 그 후 공자의 무덤 근방에 있는 나무에선 날짐승들도 집을 짓지 않았다.

역대로 나라에선 공자를 대성지성문선왕으로 봉했다. 그러다가 이젠 대성지성선사라고도 한다.

만천하 어디를 가도 공자를 모신 문묘가 서 있다. 그리고 해마다 봄가을로 두 번씩 제사를 지낸다. 그 자손은 대대로 연성공이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다.



초나라 백공 승의 가신인 석걸은 쫓기다가 목을 매 자살한 백공 승의 시체를 묻은 뒤 섭공 심제량의 군사에게 붙들렸다.

“백공은 이미 자결하셨소!”

“그럼 그 시체는 어디에 있느냐?”

“......”

석걸은 끝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섭공 심제량은 군사들에게 분부한다.

“가마솥에 물을 끓여라!”

이윽고 군사들은 물이 펄펄 끓는 큰 가마솥 앞으로 석걸을 끌고 갔다.

섭공 심제량이 호통을 친다.

“백공 승의 시체를 어디에 묻었는지 말하지 않으면 너를 삶아 죽이겠다!”

이에 석걸이 자진해서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껄껄 웃으며 대답한다.

“사내대장부가 일을 하다가 성공하면 상경벼슬에 오르는 것이며 실패하면 죽는 것이 당연하다. 내 어찌 죽은 사람의 시체를 팔아서 살기를 도모하겠느냐.”

말을 마치자마자 석걸은 가마솥으로 태연히 뛰어들어갔다. 석걸은 끓는 가마솥에서 온몸이 부옇게 익어서 죽었다. 비록 그는 생전에 옳지 못한 자를 따랐으나 당대의 쾌남아임은 틀림없었다.


월왕 구천이 잠시 모든 군사를 멈추게 하고 말한다.

“이중에 父子가 다 군인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거든 그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가거라. 또 형제가 다 군인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거든 그 형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라. 이중에 부모는 계시건만 형제가 없는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를 봉양하여라. 그리고 병이 있어 싸울 수 없는 자는 약품과 식량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가거라.”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월왕 구천의 말을 듣고서 모든 백성과 군사들은 천지가 진동하듯 환호성을 올렸다.


월왕 구천이 오성을 포위하였다.

이에 왕손 낙은 오왕 부차를 대신해서 웃옷을 벗고 성 밖으로 기어나가 화평을 청한다.

“지난 날에 孤臣부차는 회계땅에서 대왕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부차는 엎드려 대왕께 화평을 청합니다. 지난날 신이 대왕께 저지른 죄와 똑같은 벌을 내려주십시오. 그러면 신 부차는 죽을 때까지 대왕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월왕 구천은 그 말에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오나라의 청대로 화평을 허락하려고 했다.

곁에서 범려가 엄숙히 간한다.

“왕께선 오나라를 치기 위하여 20년간이나 밤낮없이 노심초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눈앞에 적을 두고서 왜 모든 걸 포기하려 하십니까? 천부당 만부당이십니다.”

그리하여 월왕 구천은 화평을 거절했다.

그 후 오나라 사자는 화평을 청하려고 여러 가지 조건을 가지고 일곱 번이나 월왕 구천을 찾아가서 교섭했다. 그러나 문종과 범려는 모든 조건을 거절하고 드디어 북을 울려 오성을 총 공격했다. 이제 오나라 사람들은 더 싸울 힘도 없었다.

문종과 범려는 장차 오나라 서문을 부수고 성안으로 처들어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날밤이었다.

보라!

캄캄한 오나라 남성위로 오자서의 머리가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를 바라보고 월나라 군사들은 자기 눈을 의심할 만큼 당황했다. 오자서의 얼굴은 크기가 꼭 병거 바퀴만 했다. 이윽고 오자서의 두 눈에서 번갯불이 번쩍 일어났다. 동시에 산발한 머리털과 수염이 일시에 사방으로 꼿꼿이 일어섰다. 오자서의 두 눈에서 발하는 빛이 10리를 비추었다.

이를 바라보던 월나라 모든 장수와 군사들은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밤이 더욱 깊어지자 천둥소리가 진동하고 연방 번쩍였다.

일순 모래가 온천지를 뒤덮고 급기야는 큰 돌멩이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마구 떨어지기 시작햇다. 월나라 군사 중에 바람에 날려가버리거나 떨어지는 돌에 얻어맞은 군사는 죽지 않으면 부상을 당했다. 강변에 매어둔 큰 배도 낱낱이 줄이 끊어져서 제각기 강 한가운데로 떠내려갔다.

이에 범려와 문종은 당황하고 초조했다. 마침내 두 장수는 웃옷을 벗어던지고 반 발가숭이가 된 채로 무섭게 쏟아지는 빗발 속을 기어나갔다. 그리고 남문쪽을 향해 꿇어 엎드려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그저 우리들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하고 절했다.

얼마 후에야 바람과 비가 그쳤다.

그제야 범려와 문종은 장막으로 돌아가서 쓰러지듯 자리에 누웠다.


월나라 군사 1000명이 오왕 부차가 숨어 있는 근방 일대를 겹겹이 포위했다.

오왕 부차는 글을 써서 화살에 꽂아 월나라 군사가 있는 곳으로 쏘아 보냈다.


범려와 문종이 종이를 뽑아 펴 본즉


영리한 토끼를 잡고 나면 그 다음은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뜻을 아오? 이와 마찬가지로 부려먹을 대로 부려먹고 나서 쓸모가 없어지면 죽이는 것이 인간 세상이오. 이제 오나라가 망하면 다음은 범려와 문종 두 대부가 망할 차례요. 그러니 두 대부께서는 우리 오나라에 약간의 은혜를 베풀어주오. 그러는 것이 또한 두 대부가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길인가 하오?


이에 문종은 답장을 써서 역시 화살에 꽂아 오왕 부차가 숨어 있는 쪽으로 쏘아 보냈다.

그 글에 하였으되,


오나라가 저지른 큰 잘못이 여섯가지나 있는데 그것을 알겠는가? 충신 오자서를 죽였으니 그 잘못이 하나이며, 바른말을 한 공손성을 죽였으니 그 잘못이 둘이며, 간신 태재 백비의 망령된 말만 들었으니 그 잘못이 셋이며, 아무 허물도 없는 제나라와 晋나라를 누차 쳤으니 그 잘못이 넷이며, 이웃인 우리 월나라를 쳤으니 그 잘못이 다섯이며, 우리 월나라는 너의 아버지를 죽였건만 너는 아버지의 원수는 갚지 않고 우리나라 왕을 용서해 준 결과 이제 이 지경을 하게 되었으니 그 잘못이 여섯이라. 이런 여섯가지 잘못을 저질르고도 너는 살기를 바라느냐! 지난날 하늘은 오나라에 우리 월나라를 내주었건만 너는 받지 않았다. 이젠 하늘이 우리 월나라에 오나라를 주시니 우리가 어찌 하늘의 뜻을 어길 수 있겠느냐?


오왕 부차는 이 여섯가지 잘못을 읽고 하염없이 울었다.

“과인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않고 월왕 구천을 살려 주었기 때문에 하늘이 이 불효자식을 미워하시고 우리 오나라를 버리심이로다.”


“이 세상에 만세를 누리는 임금은 없습니다. 누구나 결국 한번은 죽게 마련입니다. 하필이면 왕은 꼭 우리 월나라 군사의 칼을 받아야만 하겠습니까?”

월나라 장수의 소리가 온 산속에 울려 퍼졌다. 곧 맞아죽기 전에 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재촉이었다.

오왕 부차가 거듭거듭 한숨을 몰아쉬고 사방을 돌아보며 흐느껴 운다.

“내가 충신 오자서와 공손성을 죽였으니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나는 벌써 죽었어야만 했다.”

오왕 부차는 눈물을 닦고 좌우 사람에게 유언한다.

“만일 죽어서도 이승에서처럼 아는 것이 있다면 내 저승에 사가서 무슨 면목으로 오자서와 공손성을 대하리오! 내가 죽은 후에 비단으로 나의 얼굴을 세겹만 싸다오.”

오왕 부차는 말을 마치자 드디어 칼을 뽑아 스스로 자기 목을 치고 쓰러져 죽었다. 왕손 낙은 곧 옷을 벗어 오왕 부차의 시체를 덮었다. 그런 후에 그도 부차의 시체 곁에서 가죽띠를 풀어 목을 옭아매고 자살했다.

이에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를 왕후에 대한 예로써 양산에다 장사지냈다. 군인 한사람마다 흙 한 지게씩을 지어다 붓자 즉시 큰 무덤이 되었다.


범려가 월왕 구천을 떠나면서 문종에게 보낸 친필


그대는 지난날 오왕 부차가 한 말을 기억하시는가? 오왕 부차는 죽기 전에 우리에게 보낸 글에서,  ‘영리한 토끼를 잡고 나면 그 다음은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뜻을 아오? 이와 마찬가지로 부려먹을 대로 부려먹고 나서 쓸모가 없어지면 죽이는 것이 인간 세상이오. 이제 오나라가 망하면 다음은 범려와 문종 두 대부가 망할 차례요.‘ 하고 말했소. 이제야 말하지만 월왕의 상호를 보건대 그는 목이 길고 입이 새의 부리처럼 뾰죽해서 욕심이 많고 질투심이 강하오. 특히 욕되는 것을 참아내는 힘만은 대단한 사람이오. 그러므로 환난은 함께 할 수 있으나 함께 안락을 누릴 인물은 못 되오. 그대가 지금 벼슬을 버리고 떠나지 않으면 반드시 불행을 면치 못하리이다.


월왕 구천은 범려의 공로를 생각하여 그 아내와 아들에게 100리의 땅을 주었다. 그리고 솜씨 좋은 장인을 불러 조그만 범려의 동상을 만들게 하여 항상 자기 곁에다 두고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대하듯 했다.

한편, 범려는 오호에서 노닐다가 바다로 나갔다. 그 후 그는 월나라로 사람을 보내어 아내와 아들을 데려갔다.

범려는 처자를 데리고 제나라에 가서 치이자피(치이鴟夷-말가죽으로 만든 술부대, 오자서가 치이에 싸여 강에 던져진 걸 잊지 못하고 자기를 또한 오자서에 비유해서 지은 이름)라고 이름을 고치고 상경 벼슬을 살다가 얼마후에 벼슬을 버리고 다시 도산(陶山)에 들어가 목축을 했다. 그는 가축을 길러 번식시켜서 천금을 벌었다.

그런 후 범려는 스스로를 陶주공이라고 자칭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부자되는 법을 기록한 책을 말할 때 ‘도주공이 남긴 술법’이라고도 한다.

그 후 오나라 사람들은 오강에다 범려의 사당을 짓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냈다.



오왕 부차는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승전을 한 뒤 잔치를 베풀고 좌중을 굽어보고 말한다.

“과인이 듣건대 임금은 공을 세운 신하를 잊지 않으며 아버지는 그러한 자식을 잊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간 태재 백비는 과인을 위해 군사를 지휘하고 많은 공로를 세웠으니 그에게 상경벼슬을 줄까 하노라. 또 월왕 구천은 시종일관 과인에게 극진히 충성을 다했으니 이제 과인은 그에게 영토를 더 주고 그 공로를 표창할까 하노라. 모든 대부의 뜻은 어떠하오?”

모든 신하가 대답한다.

“공훈 있는 신하에게 상을 내리는 것은 자고로 모든 패왕이 해 온 일입니다.”

그 때 오자서가 꿇어 엎드려 울면서 탄식한다.

“아아, 애달프다! 충신은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데 간신들이 곁에서 버티고 있구나. 간신들은 그른 것을 옳다고 하며 멀쩡한 사람마저 간신으로 만드는 구나. 이러고서야 어찌 오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장차 이 나라 종묘사직은 폐허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 궁전도 다 쑥대밭이 될 것이다.”

오왕 부차가 노기를 주체하지 못한다.

“저 늙은 도적이 이젠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지금까지 전왕에게 끼친 공로를 생각해서 죽이지 않고 참아왔다만 이제부터는 결코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오자서가 벌떡 일어서서

“老臣에게 충성과 신의가 없다면 이미 전왕께서 저를 신하로 삼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은 마치 옛 충신용봉이 폭군 걸왕을 만나고 비간이 주왕을 만난 것과 같습니다. 왕께서 비록 신을 죽이실지라도 머지 않아 왕도 저를 따라 죽게 될 것입니다. 이제 왕께 영이별을 고하고 다시는 오지 않겠습니다.”

하고 궁성 밖으로 뛰어 나갔다.

이에 오왕 부차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곁에서 태재 백비가 아뢴다.

“전번에 오자서는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자기 아들을 포씨에게 맡기고 왔습니다. 오자서는 장차 왕께 반역할 생각입니다. 왕께선 그를 철저히 감시하십시오.”

오왕 부차는 마침내 사람을 시켜 오자서에게 촉루검(囑鏤劍)을 보냈다.

오자서가 칼을 받고 길이 탄식한다.

“왕이 나에게 자결하라는 것이구나!”

오자서는 신도 신지 않고 섬돌 밑으로 내려갔다. 오자서가 들 한가운데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부르짖는다.

“하늘이여, 아늘이여! 지난날 선왕은 부차에게 나라를 맡기려 하지 않았건만 부차는 나의 힘을 빌려 오왕이 되었으며, 또 나는 부차를 위해 초나라와 월나라를 쳐서 천하에 그의 위엄을 떨치게 했다. 그런데 이제 부차는 나의 충고를 듣지 않고 도리어 나에게 죽으라 하는구나! 나는 오늘 죽는다만 내일이면 월나라 군사가 쳐들어와서 너의 사직을 파헤칠 것이다!”

오자서가 집안 식구들에게 유언한다.

“내가 죽은 후에 두 눈을 뽑아 저 동문에 걸어두어라! 나는 월나라 군사가 오나라에 쳐들어오는 것을 보리라.”

오자서는 말을 마치자 촉루검으로 자기 목을 찌르고 쓰러져 죽었다. 사자는 즉시 오자서의 목에서 촉루검을 뽑아 돌아갔다. 사자는 오왕 부차에게 오자서가 죽으면서 한 말을 그대로 보고했다.

이에 오왕 부차는 수레를 타고 오자서의 집으로 갔다. 오왕 부차가 오자서의 시체를 굽어보며 꾸짖는다.

“오자서야! 죽은 후에도 아직 아는 것이 있느냐?”

오왕 부차는 친히 칼을 뽑아 죽은 오자서의 목을 끊었다. 오왕 부차가 다시 분부한다.

“이 목을 반문 성루 위에 걸어두어라. 그리고 시체를 술담는 치이(鴟夷-말가죽부대)에 넣어 전당강에 던져버려라.”

무사들은 머리없는 오자서의 시체를 술담는 치이에 넣었다.

오왕 부차가 오자서의 목과 시체 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소리 높여 저주한다.

“해와 달이 너의 뼈를 녹여버릴 것이며, 물고기와 자라가 너의 살을 뜯어먹을 것이다. 그러하거늘 네가 다시 무엇을 본단 말이냐!”

강물 속에 버림받은 오자서의 시체는 물결을 따라 떠돌아다니다가 수일 후에 한 언덕에 닿았다. 그 지방 사람들은 몰래 그 말가죽 부대를 건져 올려 비밀히 吳山(오늘날 항주에 있음)에다 장사를 지냈다. 후세 사람들은 그 산을 서산(胥山)이라고 했다. 지금도 산위엔 오자서를 모신 사당이 있다.


월왕 구천은 오나라를 멸망시켰건만 공로있는 신하에게 한 치의 땅도 상으로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난날의 신하들을 敬遠했다. 그래서 옛 신하들은 월왕 구천을 만나보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이에 많은 신하들이 병이나 늙었음을 핑계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그럴 때마다 문종은 범려가 떠나면서 자기에게 보낸 그 서신을 생각하곤 했다. 드디어 문종도 병들었다는 핑계를 대고 궁에 들어가지 않았다.

월왕 구천은 문종의 뛰어난 재주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젠 오나라를 무찔러 버렸으니 문종을 이용할 데가 없었다. 게다가 문종의 재주가 두렵기만 했다. 그는 출중한 인물이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막아낼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마침내 월왕 구천은 문종을 없애버리기로 작정을 했다. 그러나 명목이 있어야 죽일 수 있지 않은가?

어느날, 월왕 구천은 문종을 문병하러 그의 집을 행차하였다. 문종은 일부러 앓는 시늉을 하면서 구천을 방으로 영접해 들였다.

월왕 구천은 허리에 찬 칼을 끌러놓고 자리에 앉아 문종에게 묻는다.

“과인이 듣기에 지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만 자기 신념이 이루어지지 않을까만을 근심한다 하오. 그대에겐 일곱가지 재주가 있는데 과인이 그중 세가지를 써서 이미 오나라를 무찔렀음이라. 그러니 그대는 나머지 네가지 재주를 어디다 쓸 생각이오?”

문종이 대답한다.

“신은 쓸 곳을 모르겠습니다.”

“바라건대 그대는 나를 위해 그 나머지 네가지 재주를 저 세상으로 가버린 오나라 사람에게 써주오.”

월왕 구천은 말을 마치자 곧 일어나 연을 타고 궁으로 돌아갔다.

월왕 구천이 앉아 있던 자리엔 칼 한자루만 덩그렇게 남아 잇었다. 문종이 그 칼을 들어보니 칼집에 촉루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지난날 오왕 부차가 오자서에게 보낸 바로 그 칼이었다.

문종이 하늘을 우러러 길이 탄식한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참으로 어진 사람은 보복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내 범려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오늘날 월왕 구천에게 죽음을 당하는구나! 참으로 나는 어리석었다.”

문종이 다시 웃으며 중얼거린다.

“100년 후에 사람들은 반드시 나와 오자서를 충신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 무엇을 탄식하리오.”

문종은 칼을 입에 물고 엎어졌다. 참으로 비참한 죽음이었다.

월왕 구천은 문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 사람들은 문종을 臥龍산에다 장사지냈다. 후세 사람들은 臥龍산을 種山이라고 고쳐 불렀다.

와룡산에 문종을 묻은 지도 1년이 지났다.

어느 날이었다.

해일이 넘쳐들어와 와룡산을 뚫고 마을을 휩쓸었다. 안전한 지대로 피해간 촌사람들은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빠져나가는 해일을 따라 오자서와 문종이 앞 뒤로 물결을 타고 어디론지 가고 있었다.

오늘날도 전당강에 조수가 밀려들 때면 사람들은 ‘앞의 물결은 오자서요, 뒤따라가는 물결은 문종이다.‘라고 말한다.


晋나라의 예양은 조양자에게 칼을 받으며

“충신은 자기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진 임금은 다른 사람의 의리를 무시하지 않는 법이오. 지난 날에 장군이 한 번 살려 준 것만 해도 나는 만족하오. 어찌 다시 살려주기를 바라오. 그러나 두 번씩이나 장군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하고 나니 이 원통한 심정을 풀 길이 없소. 청컨대 장군은 지금 입고 있는 그 옷을 벗어 나에게 주오. 나는 원수를 갚듯이 이 칼로 장군의 옷이나마 치고서 죽는다면 죽어도 눈을 감겠소.”

조양자가 예양을 측은히 생각하고 비단 도포를 벗어 곁에 있는 사람에게 내주며 분부한다.

“이것을 예양에게 주어라.”

예양은 칼을 바로 잡고 성난 눈으로 조양자의 도포를 노려 보았다. 그것은 원수를 직접 노려보는 표정이었다.

“아얏!”

예양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칼을 높이 들고 세 번을 뛰어 오르면서 비단 도포를 세 번 내리쳤다.

그런 후에 예양이 조양자에게 말한다.

“내 이젠 지하에 돌아가서 지백을 모시겠소.”

그러고는 그 칼로 자기 배를 찌르고 쓰러져 죽었다.

지금도 예양이 자살했던 그 다리가 남아있다. 후에 사람들은 적교를 예양교라고 고쳐 불렀다.

조양자는 눈 앞에서 예양이 처절하게 죽어가는 것을 보고 매우 슬퍼했다.

“곧 시체를 염하고 따뜻한 곳에 묻어주어라.”

좌우 사람들은 비단 도포를 주워 조양자에게 바쳤다. 조양자가 비단 도포를 받아보니 칼에 맞아 찢어진 곳마다 피가 벌겋게 번져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예양의 지극한 복수심이 얼마나 철저했던가를 알 수 있었다.

비단 도포에 번져 있는 피를 보고 조양자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이 때부터 조양자는 병이 들어 앓기 시작했다.

 


위 문후는 중산국을 치기로 결심하고 모든 신하와 함께 상의를 하였다.

위성이 아뢴다.

“중산국은 서쪽 조나라와 가깝고 남쪽에 있는 우리 위나라와는 거리가 멉니다. 만일 우리가 중산국을 쳐서 얻는다 할지라도 그 곳을 지키기는 어렵습니다.”

위문후가 대답한다.

“그러나 조나라가 중산국을 차지하는 날이면 우리는 북쪽 세력을 견제할 도리가 없소.”

책황이 아뢴다.

“신이 한 사람을 천거하겠습니다. 그 사람의 성은 樂이며 이름은 羊이라고 합니다. 악양은 우리나라 곡구땅 출신으로 문무를 겸비한 사람입니다. 그를 대장으로 삼으십시오.”

위문후가 대답한다.

“어째서 그가 대장감이라고 생각하오?”

책황이 설명한다.

“언젠가 악양은 길을 가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황금을 주워 집으로 돌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악양의 아내는 그 황금에다 침을 뱉으며 말했습니다. ‘志士는 남몰래 샘물도 마시지 않으며, 염치 있는 사람은 아니꼬운 음식이면 받지를 않는다고 합디다. 누구 것인지 내력도 알 수 없는 이런 황금을 무엇하러 주워 와서 그대의 고결한 인격을 더럽히십니까?’ 악양은 아내의 말에 감격하여 즉시 그 황금을 들고 나가서 들에 버렸습니다. 그 후 그는 아내와 이별하고 노나라와 위나라로 가서 학문에 정진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베틀로 베를 짜던 아내가 악양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배움의 길을 성취하셨습니까?’ 악양은 ‘아직 성취하지 못했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즉석에서 칼을 뽑아 베틀의 실을 모조리 끊어버렸습니다. 악양은 놀라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그 때 아내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사내대장부는 학문을 성취한 후라야만 가히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비단을 다 짠 후라야만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대가 중도에서 학문을 폐하고 돌아왔으니 첩이 칼로 끊어버린 이 베틀의 비단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악양은 아내의 말에 감복하고 다시 집을 떠났습니다. 그 후 7년이 지났건만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 악양이 지금 우리 위나라에 있습니다. 그는 뜻이 높아 조그만 벼슬을 마다하고 외로이 세월을 보내는 중입니다. 그러니 상감께선 악양을 불러서 쓰십시오.”

위문후가 즉시 책황에게 분부한다.

“그대는 곧 가서 노거(임금님이 타는 수레)로 악양을 모셔오오.”

좌우에서 신하들이 반대한다.

“신들이 듣건대 악양의 큰 아들 악서는 지금 중산국에서 벼슬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악양을 어찌 대장으로 삼을 수 있습니까?”

책황이 말한다.

“악양은 功名을 소중히 생각하는 선비입니다. 한번은 중산국에서 벼슬을 살고 있는 악서가 그 임금에게 자기 아버지를 천거하고 사람을 보내어 부른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양은 중산국 임금이 무도한 사람이라 해서 거절하고 아들 악서에게 가지 않았습니다. 주공께서 그러한 악양에게 대장의 책임을 맡기신다면 어찌 성공하지 못할 리 있겠습니까?”

위문후는 악양을 부르기로 결심했다.

이튿날 책황은 악양을 데리고 궁으로 들어갔다.

위문후가 악양에게 묻는다.

“과인은 그대에게 중산국 칠 일을 맡기고자 하오. 그러나 그대의 아들이 중산국에서 벼슬을 살고 있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악양이 대답한다.

“원래 대장부는 공을 세우고 업적을 남기며 각기 그 임금을 위해서 힘쓸 뿐이지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어찌 公事를 폐할 수가 있겠습니까? 신이 중산국을 격파하지 못할 경우엔 군법을 달게 받겠습니다.”

위문후가 감격한다.


악양을 대장으로 중산국을 치니

중산국의 왕 희굴은 공손초의 계책대로 악서를 비끄러맨 높은 장대에 매달아 큰소리로 애걸을 했다.

“아버지여 이몸을 살려주소서. 아버지께서 물러가지 않으시면 소자는 죽습니다!”

악양이 머리를 번쩍 들어 아들을 쳐다보고는 큰 소리로 꾸짖기 시작한다.

“너는 참으로 불초한 자식이다. 이 아비의 말을 자세히 듣거라. 너는 벼슬을 살면서도 그 나라를 위해서 기이한 계책을 세우지 못했고 적과 싸워서 이기지도 못했으니 스스로 부끄럽지 않느냐? 또 나라가 망하게 되었으면 목숨을 걸고라도 임금에게 화평을 청하도록 권하고 우선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해야 할 것이거늘 그것마저 못했으니 스스로 부끄럽지 않느냐! 그러고도 젖비린내 나는 아이처럼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니 차마 그 꼴을 볼 수가 없구나! 너같은 놈을 살려두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죽여버려야겠다.”

악양의 말을 마치자마자 활을 들어 아들을 쏘려고 했다.

이에 중산국 군사는 급히 장대를 눕혀 성위로 악서를 내려놓았다.

악서가 임금 희굴에게 아뢴다.

“신의 아버지는 위나라를 섬길 뿐 자식을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니 상감께선 성을 지킬 도리를 새로이 강구하십시오. 신은 상감께 죽음을 청함으로써  위나라 군사를 물리치지 못한 죄를 씻겠습니다.”

곁에서 공손초가 아뢴다.

“그 아비가 우리의 성을 치니 자식에게도 죄가 없지 않습니다. 상감께선 악서에게 죽음을 내리십시오.”

임금 희굴이 비통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러나 이것이 악서의 죄는 아니다!”

공손초가 아뢴다.

“악서만 죽으면 신에게 또 위나라 군사를 물리칠 계책이 서 있습니다.”

드디어 임금 희굴은 허리에서 칼을 뽑아 악서에게 주었다. 악서는 그 칼을 받아 그 자리에서 자기 목을 찌르고 죽었다.

공손초가 그 계책을 아뢴다.

“이 세상에서 자식을 생각하는 아비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 악서의 시체로 국을 끓여서 악양에게 보내십시오. 악양이 자식을 끓인 그 국을 보면 틀림없이 슬픔을 참지 못하고 통곡할 것입니다. 슬픔이 지나치면 넋을 잃게 되고, 넋을 잃으면 싸울 생각도 없어집니다. 바로 이때 상감께선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서 위나라 군사를 무찌르십시오. 다행히 이기게 되면 다음 계책을 쓸 수 있습니다.”

임금 희굴은 하는 수 없이 공손초가 시키는 대로 했다. 이에 중산국 사자는 악서의 시체로 끓인 국과 그 머리를 가지고 위나라 군영에 가서 악양에게 바쳤다.

“우리 상감께선 위나라 군사를 물러가도록 하지 못한 죄를 물어 악서장군을 죽이고 그 시체로 국을 끓였습니다. 이제 그 국을 가지고 왔습니다. 지금 중산성에는 악서장군의 처자가 남아 있습니다. 만일 원수께서 중산성을 다시 치기만 하면 우리 상감께선 즉시 악서장군의 유족을 다 죽여버릴 작정이십니다. 그러니 원수께선 며느리와 손자를 위해서라도 곧 물러가십시오.”

악양이 아들 악서의 머리를 보고 큰 소리로 꾸짖는다.

“이 변변치 못한 놈! 너는 무도한 임금을 섬겼으니 누구를 원망하리오. 네가 스스로 죽음을 청한거나 다름없다.”

악양이 중산국의 사자가 보는 앞에서 그 국 한 그릇을 다 먹고는 말한다.

“너의 임금이 국을 보내주어서 잘 먹었다. 중산성을 함락하는 날에 내 너의 임금을 직접 만나 감사하리라. 우선 너의 임금에게 돌아가서 우리 군중에도 가마솥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라!”

사자는 돌아가서 임금 희굴에게 일일이 보고했다.

임금 희굴은 악양이 죽은 자식을 보고도 전혀 슬퍼하지 않더라는 보고를 듣고 도리어 큰 근심에 잠겼다.

이튿날부터 위나라 군사의 공격은 더욱더 치열해졌다. 이제 중산성의 함락은 시간문제였다. 위나라 군사가 성 안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임금 희굴은 어떤 무서운 곤욕과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에 임금 희굴은 후궁으로 들어가 목을 졸라매고 자살했다.

임금이 죽자 만사는 끝났다. 마침내 공손초는 성문을 열고 위나라 군사앞에 나아가서 항복했다.

악양은 일일이 죄목을 들어 공손초를 꾸짖고 그 자리에서 쳐죽이고 난 후 중산국 백성들을 위로했다.

위문후는 악양이 중산국을 무찌르고 개선해 돌아온다는 보고를 받고 친히 성문 밖까지 나가서 그들을 영접했다.

위문후가 악양을 위로한다.

“이번에 장군이 국가를 위해서 아들을 잃었으니 이는 다 과인의 허물인가 하오.”

악양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담한다.

“상감의 분부를 받은 신이 어찌 私的인 情을 돌볼 수 있겠습니까?”

악양은 위문후와 함께 수레를 타고 백성들의 환호성에 싸여 궁으로 들어갔다. 그는 위문후에게 정식으로 중산국의 지도와 가지고 온 보물을 바쳤다. 이에 모든 신하는 만세를 부르며 승리를 축하했다.

위문후는 내대에서 잔치를 베풀고 친히 악양에게 술을 권했다. 악양은 임금이 주는 술잔을 받아 마사고 자못 의기양양했다.

잔치가 끝났을 때 위문후가 좌우 시신에게 분부한다.

“두 개의 큰 상자를 이리 내오너라.”

이윽고 좌우 시신이 큰 상자 두 개를 들고 나왔다. 그 상자들은 단단히 봉해져 있었다.

위문후가 다시 분부한다.

“그것을 악양의 집까지 갖다드려라.”

이에 악양은 속으로 생각했다.

‘필시 저 상자 속에는 금은 보화가 가득 들어 있을 것이다. 임금은 모든 신하가 혹 질투할까 염려하여 저렇듯 단단히 봉해서 나의 집까지 보내주는 것이구나.’

악양이 집에 돌아가서 집안 사람에게 분부한다.

“두 상자를 중당 안에 들여놓고 물러가거라.”

그러고는 혼자서 그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러나 천만 뜻밖에도 그 상자 안에는 금은 보화가 아니라 모든 신하의 상소장이 가득 들어 잇었다.

그 상소장 전부가 악양이 상감을 배반할 생각이란 것과 그러니 악양을 속히 죽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악양은 심히 놀랐다.

“음, 내가 없는 동안에 모든 대신이 이렇듯 나를 참소했구나! 만일 상감께서 나를 깊이 신임하지 않았다면 내 어찌 이번에 성공할 수 있으리오!”

 이튿날 악양은 궁에 들어가서 위문후에게 깊이 감사드렸다. 위문후는 악양의 공로를 논하여 최고의 상을 주었다.

악양이 두 번 절하고 사양한다.

“이번에 중산국을 쳐서 이긴 것은 오로지 국내에서 상감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신은 그저 싸움터에 서서 견마지성(犬馬之誠-임금이나 나라에 바치는 정성으로 자기 정성을 개나 말처럼 낮추어 말함)을 다한데 불과합니다. 그러한 신이 무슨 공로가 있다고 상을 받겠습니까?”

위문후가 대답한다.

“과인이기에 장군을 그만큼 신임한 것도 사실이지만, 장군이기에 과인의 소원을 이렇듯 성취시켜준 것도 사실이오. 이번에 장군은 너무나 수고가 많았소. 앞으론 아무 걱정 말고 편안히 살도록 하오.”

이에 위문후는 악양을 영수군에 봉하고 그 대신 모든 병권을 가두어 들였다.

책황이 나아가 위문후에게 묻는다.

“상감께선 악양이 위대한 장수란 걸 잘 아시면서도 어찌하여 그의 병권을 모두 거둬들이셨습니까? 그에게 군사를 맡기면 우리나라를 튼튼히 방비할 수 있습니다. 그런 유망한 인재를 편안히 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에 위문후는 그저 웃기만 하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책황은 궁에서 나오다가 이극을 만나 방금 전에 자기가 위문후에게 말 한 뜻을 다시 되풀이 했다.

이극이 조금 전에 위문후가 웃음짓던 그런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한다.

“악양은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아니한 사람이오. 자기 자식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하물며 타인에게야 무슨 짓인들 못하겠소. 옛날에 역아가 자식을 죽여서 요리를 만들어 제환공에게 먹인 일이 있었소. 그러나 당시에 관중이 역아를 믿을 사람이 못된다고 단정한 것도 다 그 때문이었지요.”

이 말을 듣고서야 책황은 그 뜻을 크게 깨달았다.

위문후의 아들 세자 격이 중산군으로 봉하여 중산국을 다스리기 위해 가는 도중 다 낡은 수레를 타고 가는 전자방을 만나게 되어 세자 격은 수레에서 내려 전자방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전자방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버렸다.

세자 격이 화가 나서 시종배에게 분부한다.

“저 수레를 붙들어 세워라.”

시종배가 쫓아가서 전자방의 수레를 붙들어왔다.

세자 격이 묻는다.

“내 그대에게 물어볼 말이 있소. 대저 부귀한자가 사람에게 교만스레 굽디까, 아니면 빈천한 자가 교만하게 굽디까? 자 어느 쪽이오?”

전자방이 웃으며 대답한다.

“자고로 빈천한 자가 남에게 교만하지, 어찌 부귀한 사람이 교만할 리 있겠소. 대저 일국의 임금이 백성에게 교만히 굴면 사직을 보존하지 못하며, 대부가 수하사람들에게 교만하게 굴면 종묘를 받들지 못하오. 옛날에 초영왕은 교만히 굴다가 나라를 망쳤으며, 근자에 지백은 교만히 굴다가 집안을 망쳤소. 이만하면 부귀는 족히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것을 알 수 있소. 반대로 가난한 선비는 어떤고 하니, 먹는 것은 잡곡밥에 불과하고 입을 것은 거친 베옷에 불과하지만 누구에게도 요구할 것이 없기 때문에 세상에도 아무 욕심이 없소. 그저 선비를 좋아하는 임금이 있으면 그 곳에 가서 벼슬을 살기도 하고 또 뜻이 맞으면 그 임금을 위해서 노력도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벼슬을 버리고 유유히 떠나가오. 그러니 누가 그를 막겠소? 그러기에 周武王은 萬乘 天子 주왕(紂王)을 잡아 죽일 수 있었지만 首陽山의 백이 숙제만은 굴복시키지 못했소. 그러기에 비천한 사람에게도 이런 귀중한 것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세자 격은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르며 전자방에게 정중히 사죄하고 떠나갔다.

위문후는 전자방이 세자에게도 굴복하지 않았다는 소문을 듣고 그 뒤로 그를 더욱 존경했다.


10권 - 상앙의 살을 다투어 씹다 p70

발을 잘린 손빈

주나라 양성땅에 귀곡이란 곳이 있었는데 산은 깊고 수목이 울창했다. 어찌나 깊숙한지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되어서 귀곡이라 했다.

그런데 그 산속에 은자 隱者가 살고 있었다. 그는 鬼谷子 라고 자칭했다. 그러나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의 성은 왕 王이고 이름은 허 栩라고 한다. 왕허는 진평공 시절에 출생한 사람으로 가히 불사신이었다.

왕허는 지난날 송나라 사람인 묵적 墨翟과 함께 운몽산에 들어가서 약초를 캐며 수도한 일이 있엇다.

묵적은 평생동안 독신으로 지냈다. 그는 인간을 구제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고, 이 세상의 모든 괴로움과 액난 厄難을 일소해버리겠다는 큰 뜻을 품고서 구름처럼 천하를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왕허는 묵적과는 달리 세상을 등지고 깊은 귀곡에 들어가서 자취를 감추고 살았다. 그래서 세상사람들도 그를 말할 때면 귀곡선생이라고 했다.

귀곡선생은 위로는 천문에 통달하고, 밑으론 지리를 꿰뚫어보는 안목이 있었다. 뿐만아니라 보통사람으로서 따를 수 없는 여러 가지 학문을 알고 있었다.

그 여러 가지 학문이란 첫째로 수학이었다. 그는 일월성신의 갖가지 현상과 변화하는 경위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과거를 증명하고 미래를 예언할 때면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둘째로 그는 병학에 통달했다. 그가 만일 변화무궁한 육도삼략 六韜三略으로써 진을 펴고 군사를 쓴다면 귀신도 그 뜻을 측량하지 못했을 것이다.

셋째로 그는 유세법 遊說法에 통달했다. 그는 워낙 기억력이 대단하고 보고들은 바가 많아서 이치를 밝히고 대세를 판단하는 데 정확했다. 그가 한번 말을 시작하면 아무도 당적할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누구나 그의 변설 辨說을 듣기만 하면 다 감동했다.

넷째로 그는 출세학 出世學에 정통했다. 그는 항상 진리에 안주하고 많은 수양을 쌓았기 때문에 병이 없었고 늙어갈수록 원기가 왕성했다.

이렇듯 귀곡선생은 선가 仙家의 비법까지 정통했으니 어찌 혼탁한 세상에 몸을 굽힐 필요가 있었으리오. 그는 다만 총명한 제자나 몇사람 길러서 함께 신선이 되어 선경 仙境으로갈까 하고 잠시 귀곡 땅에 몸을 붙이고 있는데 불과했다.

귀곡선생은 처음에 우연히 시정에 나갔다가 어떤 딱한 사람을 만나 점을 쳐준 일이 있었다. 귀곡 선생이 그 사람에게 말해준 길흉화복 吉凶禍福은 틀림없이 다 들어맞았다.

그런 후로 선생의 學術을 사모하여 찾아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런데 선생은 배우러 오는 사람에게 자기가 아는 모든 학술을 다 가르치지는 않았다.

선생은 그 사람의 소질과 성격에 맞는 한가지 학술만을 가르쳤다. 또 제자들을 가르치는데도 반 班을 두 패로 나누었다.

그리하여 한 패에겐 장차 七國(연, 제, 초, 위, 진, 한, 조)에  유용할 인재를 양성시켰고, 다를 한 패에겐 신선이 되어 세상을 초탈하는 법을 지도했다.

선생은 항상 오는 자를 거절하지도 않았고 떠나는 자를 만류하지도 않았다.

그 제자들 중에 유명한 몇사람만 소개하면 제나라 사람인 손빈 孫賓, 위나라 사람인 방연 龐涓과 장의 張儀, 낙양 사람인 소진 蘇秦은 특히 출중한 인재였다.

손빈은 방연과 결의형제를 맺고 함께 귀곡선생 밑에서 유세법을 배웠다. 그들은 각각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우선 방연의 이야기를 한다면

방연이 귀곡선생의 문하에서 병법을 배운지 3년이 지난 어느날 물을 길러 갔다가 우연히 산밑에서 길가는 나그네를 만났다. 그 나그네는 방연에게 지금 위나라에서 많은 재물을 쓰면서 널리 천하의 인재를 구하고 있다고 했다. 이말을 듣고 방연은 은근히 위나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방연은 귀곡선생에게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주저했다.

그런데 귀곡선생께서 방연의 마음을 알고 먼저

“네게 운이 열렸는데 왜 부귀를 위해서 산을 떠나지 않느냐?”

고 하면서 산 속에서 꽃을 하나 꺾어오라고 하여 점을 쳐주었다. 귀곡선생은 꽃을 보더니 말한다.

“너는 이 꽃의 이름을 아느냐? 이것은 마두령 馬兜鈴이라는 꽃이다. 보다시피 이렇게 한 번에 열두 송이가 피는 꽃이다. 곧 네가 대운을 누리는 햇수도 바로 이 12에 있다. 이 꽃을 귀곡에서 캤고 또 햇빛에 시들었으니 시들 위 萎자는 委자와 상통하는 글자인즉, 위 委자 곁에다 귀곡이라는 귀신 귀 鬼자를 붙이면 바로 위 魏자가 된다. 네가 장차 출세할 곳은 바로 위나라인가 하노라.”

방연은 감탄하고 귀곡은 계속해서 다음날 남을 속이면 반드시 남에게 속는다는 걸 알고 항상 조심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연소를 만나면 영화롭고(우양이영 遇羊而榮) 말을 만나면 탈이난다(우마이 遇馬而졸)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방연은 하직하고 길을 떠났다. 이 때 손빈은 산 아래까지 가서 전송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작별했다. 떠나는 방연이 손빈에게 말한다.

“우리는 의형제를 맺을 때 평생 부귀를 함께하자고 맹세했소. 내 이번에 가서 입신출세하게 되면 반드시 형을 임금에게 천거하겠소. 우리 장차 함께 천하에 공적을 세웁시다.”

손빈이 묻는다.

“동생의 말이 진정이오?”

방연이 결연히 대답한다.

“내가 만일 형에게 거짓말을 했다면 장차 온 몸에 화살을 맞고 죽을 것이오!”

하면서 떠나니 손빈은 방연을 굳게 믿고 임금께 천거해줄 날을 기다렸다.

방연이 떠난 뒤 귀곡선생은 손빈에게 조부인 손무가 지은 병법 13편을 내놓았다. 그리고 귀곡선생은 이 책이 당시 오왕 합려에게 바친 책인데 오왕 합려는 세상에 전하기가 싫어서 쇠로만든 궤속에 넣어 고소대 姑蘇臺의 대들보 밑에다 감추어 두었다가 월나라군사들이 쳐들어와 불질렀을 때 타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귀곡선생은 손무와 친구로 사귀었기 때문에 한 벌 얻어두었다가 상세한 주해를 붙였다고 하며 무릇 고금과 미래를 막론하고 군사를 쓰는 모든 비법이 다 이 책 속이 들어 있고 했다.

손빈은 왜 방연에겐 보이시지 않고 자기에게만 전하느냐고 하니까 이 책을 잘 이용하면 천하를 이롭게 할 수도 있고 잘 못 쓰는 날엔 큰 해를 끼치기 때문이라고 하며 방연은 이 책을 가질 만 한 인물이 못된다고 하였다.

손빈은 이 책을 받아다가 3밤낮없이 연구하고 외웠다. 사흘이 지나자 귀곡선생은 다시 그 책을 내놓으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 책의 내용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이 때 손빈은 막힘없이 대답하여 매우 기뻐하였다. 그리고

“너는 앞으로도 모든 일을 성심껏 하여라. 그러면 너의 조부 손무는 비록 죽었지만 살아 있는 거나 다름없으리라.”

하고 손빈을 격려했다.

 

한편 방연은 위나라에 도착하여 정승 왕착을 찾아가서 병법을 논하고 천거를 받아 위혜왕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이 때 포인 疱人(궁중 요리사)이 위혜왕에게 찐 염소 고기를 바쳤다. 방연은 속으로 무척 기뻐했다.

위혜왕은 방연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 염소고기를 먹다 말고 일어나서 방연을 영접했다.

방연은 위혜왕에게 그동안 귀곡선생의 문하에서 병법을 깊히 연구하였다고 하며 만일 대장으로 써준다면 반드시 싸워서 이기고 동서남북의 제, 진, 한조연, 초나라에 대한 근심을 없애준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위혜왕은 매우 흡족해 하며 방연을 원수로 삼아 모든 병권을 맡겼다. 그 후 아들 방영, 조카뻘인 방총, 방모도 장수급으로 등용되었다.

그 후 방연은 衛, 송나라를 쳐서 이기고 제나라 군사가 쳐들어왔을 때 역시 물리쳤다.


한편 묵적은 그간 유유히 명산대천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귀곡땅을 지나게 되었다. 이 때 옛 친구인 귀곡선생을 찾았다. 그리고 손빈과 여러가지 담론을 한 결과 그 재주를 사랑하게 되었다. 묵적은 손빈에게 묻는다.

“그대는 학업을 다 이루었는데 이제 세상에 나가서 공명을 세우지 않고 어째서 이렇듯 산속에만 묻혀있는가?”

이에 손빈은 방연이 떠날 때 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기다린다고 대답하였다.

그랬더니 묵적은 방연이 위나라 장수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으니 위나라에 가서 방연의 뜻을 살펴보고 통지해 주겠다고 하며 위나라로 갔다.

묵적이 위나라에 가서 방연을 만나본 즉 염치없이 자기자랑만 늘어놓을 뿐 손빈을 이끌어줄 뜻은 조금도 없어보였다. 그래서 묵적은 葛巾野服차림으로 직접 위혜왕을 찾아갔다.

위헤왕은 이미 묵적의 높은 명성을 알고 있는지라 반갑게 영접하고 묵적에게 관직을 주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귀곡땅에 있는 병가의 祖宗 손무의 손자로 손빈이란 사람이 있는데 참으로 대장의 인품과 실력을 갖춘 사람이 있으니 그를 불러들이라고 천거하였다.

위혜왕이 방연과 손반이 누가 더 나으냐고 하였다. 이 때 손빈이 비록 방연과 同學이긴 하나 손무의 비법을 통달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당적할 사람이 없다고 하고 떠나버렸다.

위혜왕은 방연을 불러 왜 그렇게 훌륭한 손빈을 천거하지 않았느냐고 하였다.

그랬더니 방연은 손빈이 제나라사람으로 그 일가친척이 제나라에 살기 때문에 위나라보다 제나라에 더 이롭게 하고 위나라에 충성을 다하지 않을 것이라 천거하지 않았다고 했다.

위혜왕은 단호히 말한다.

“자고로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오. 어찌 반드시 자기나라 출신만 써야 한다는 법이 있겠소!”

이 말을 듣고 방연은 속으로 혼자서 쥐고 있는 병권과 임금의 총애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으나 임금의 분부를 거역할 수 없어 후일에 가지가지 모략을 써서 방해하기로 하고 손빈에게 보내는 편지 한통을 썼다. 편지의 내용인 즉

염려해준 덕으로 지금 높은 벼슬을 살고 있고 지난날 약속대로 특별히 왕에게 천거하였으니 위나라로 와서 함께 천하에 큰 공을 세우자고 했다.

이에 위나라 신하는 황금과 백옥 방연의 편지를 가지고 네 마리 말이 이끄는 높은 수레를 거느리고 손빈을 모시러 갔다.


손빈은 귀곡선생에게 방연의 서신을 보였다. 편지에 스승에 대한 문안인사는 한마디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귀곡선생은 방연의 천성이 오만하고 질투심이 많아 손빈과 兩立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으나 손빈도 가고 싶어해서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꽃 한송이를 꺾어오라고 하며 꽃점을 쳐 주겠다고 하였다. 손빈은 선생의 책상위에 있는 꽃병에서 국화 한 송이를 바쳤다가 다시 받아 꽃병에 꽂았다.

귀곡선생이 판단을 내린다.

“너는 모든 걸 사랑할 줄 알고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다. 저 꽃병은 쇠로 만든 것이다. 곧 종과 솥도 만들 수 있는 그런 쇠다. 장차 너는 霜雪처럼 천하에 위엄을 떨칠 것이며 너의 이름은 후세에 길이 전해지리라. 대저 꽃병에 꽂힌 꽃이란 한번 뽑히기만 하면 대개 버림을 받기 때문에 시들고 만다. 그런데 네가 꽃병에 도로 갖다 꽂은데 대해 특히 한 가지 더 일러줄 말이 있다. 장차 네 공명을 이룰 수 있는 곳은 결국 너의 고국일 것이다. 내 이제 너를 위해 이름을 약간 고쳐주마. 너는 이 곳을 떠나 장차 너의 앞길을 열어라.”

귀곡선생은 마침내 손빈의 이름자인 빈 賓자 곁에다 고기육[月]변을 붙여 서 빈 臏자로 고쳐주었다.

臏자는 刖자와 같은 뜻이니, 곧 발을 끊는 형벌이란 뜻이다.

귀곡선생은 손빈이 떠날 때 비단 주머니 하나를 내주었다.

“위급한 경우가 아니거든 열어보지 말아라.”

소진과 장의는 손빈이 떠나는 것을 보고 매우 부러워 했다.

“저희도 선생 곁을 떠나 세상에 나가서 공명을 세울까 합니다.

귀곡선생이 대답한다.

“천하에 가장 얻기 어려운 것은 총명한 선비다. 너희 두 사람의 소질로 만일 성심껏 道 를 배운다면 가히 신선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티끌세상에 나가서 허무한 名利를 위해서 갖은 고생을 할 필요가 있느냐?”

소진과 장의는 그래도 세상에 나가고 싶다고 하니 붙들어둘 수 없는 노릇이라 귀곡선생은 탄식한다.

“신선이 될 만한 인재를 얻기가 이렇듯 어렵구나!”

이에 귀곡선생은 소진과 장의를 위해 점을 쳐 보고 말한다.

“소진은 먼저 출세할 것이니 처음에 길하고 뒤가 좋지 못하며, 장의는 늦게야 출세할 격이니 차음엔 불행하나 뒤가 길하리라. 내가 보건대 손빈과 방연은 서로 헐뜯고 잡아먹지 못해서 으르렁거릴 것이다. 너희 두 사람은 그들처럼 싸우지 말고 협력하여 함께 공명을 이루어라. 내가 너희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同學 간에 서로 의좋게 지내라는 말이다.”

소진과 장의는 머리를 조아리며 간곡한 교훈을 받았다. 그리고 귀곡선생은 소진과 장의에게 『태공음부편』이라는 책을 각각 주고 두고두고 연구하라고 하면서 귀곡선생도 귀곡 땅을 떠났다. 그 후 귀곡선생인 바다에 떠서 봉래도 봉래도로 갔다는 말도 잇고 신선이 되어 갔다는 말도 있다.


위나라에 도착한 손빈은 즉시 방연의 부중을 찾아가 임금에게 천거해 줘서 고맙다고 하니 방연이 생색을 내며 여간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방연을 따라 위헤왕을 뵈었다. 위혜왕은 층계아래까지 내려와 손빈을 영접하고 지난날 묵자의 이야기를 하며 무척 기다렸다는 이야기와 모든 걱정을 놓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고서 방연을 돌아보며 손빈을 부원수로 삼고 병권을 함께 맡아보도록 하였다.

하지만 방연은 형님뻘인 손빈을 부원수로 삼아 자기가 더 높은 벼슬을 가질 수 없다고 하면서 당분간 객경(융숭한 대접인 듯 하나 실권이 없는 벼슬)으로 모시겠다고 하였다. 실제는 손빈에게 병권을 나눠주기 싫어서 꾸민 수작이었다.

이리하여 손빈과 방연은 자주 접촉하게 되었다. 방연은 술상을 차려놓고 술을 마시며 병법에 관해 궁금한 것을 물었다. 손빈은 막힘없이 대답을 해주고 손빈도 방연에게 몇가지 물어보았다. 그럴 때마다 그것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이야기다 하며 대충 넘어가서 손빈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방연은 『손자병법』이란 책을 빌려달라고 하였다. 손빈은 그 책을 사흘간만 본 뒤에 다시 돌려주어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고 하니까 방연은 그걸 다 기억하고 있느냐고 하며 그냥 넘어갔다.

어느날 위혜왕이 손빈의 재주를 보려고 교장에서 군사를 사열하도록 하였는데 거기에서 전도팔문진이란 진법을 써서 흐뭇하게 하였다. 방연은 이 모습을 보고 그대로 가다가는 나의 지위가 흔들릴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며 손빈을 없애버리려는 계책을 꾸미게 되었다.

방연은 손빈의 부중으로 가서 손빈을 끔찍이 생각해 주는 것처럼 하며 손빈의 고국인 제나라에 일가친척을 데려와 함께 부귀를 누리라고 하였다. 손빈은 울면서

자기는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숙부에게 의지하였는데 숙부마저 田씨의 모반으로 벼슬자리도 잃고 추방되어 종형인 손평, 손탁과 함께 지내다가 남의 집 머슴을 지내게 되었고 나중에 귀곡선생의 도학이 높다는 소문을 듣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방연은 다시 묻는다.

“그럼 형님은 고국에 못가본지도 오래 되었겠구려. 형님은 고향에 있는 부모님 산소가 그립지도 않으시오?”

손빈이 초연히 대답한다.

“사람이 목석이 아닌 바에야 어찌 근본을 잊을 수 있겠소. 그렇지 않아도 전번에 내가 귀곡 땅을 떠날 때 선생께서 ‘네가 결국 성공할 곳은 너의 고국인 제나라다.’라고 말씀하십디다. 내가 지금 위나라 신하로 있기 때문에 이제껏 이런 말을 하지 않은 것이오.”

방연이 손빈의 속마음을 다 떠보고 나서 태연히 격려한다.

“형님 말씀이 지당하오. 대장부가 어디에 간들 功業을 성취하지 못하겠소. 하필 고국이라야만 된다는 법은 없지요.”

그 후 약 반년이 지났다.

손빈도 방연에게 한 말을 다 잊었을 때였다.

어느날 산동지방 방언을 하며 손빈의 부중 앞을 기웃거리며 손빈을 찾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제나라 도읍 임치 사람으로 이름은 정을이고 주나라에서 객점(여관0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사람은 손빈의 종형인 손탁과 손평의 부탁으로 편지를 가지고 귀곡땅에 갔다가 다시 위나라에 가있다는 말을 듣고 이 곳까지 왔다고 하며 편지 한 통을 내 놓았다.

편지의 내용은 서로 헤어진 후에 남의 집 농사를 지어주며 어렵게 살다가 숙부는 돌아가시고 고생을 하던 중 제나라 왕께서 다시 불러주셨다고 했다. 그리고 장차 동생도 불러다가 높은 벼슬으 줄 생각이니 편지를 받는 즉시 고국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편지를 받고 너무 반가운 나머지 대성통곡을 하였다.

손빈은 정을을 잘 대접하고 종형에게 보내는 답장을 썼다.

고국산천이 그립다는 내용과 지금은 위나라에서 벼슬을 살고 있으니 돌아갈 수 없고 앞으로 약간의 공로를 세우면 그 때 형님을 뵈오러 가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정을은 타국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방연의 심복 부하인 서갑이었던 것이다. 원래 손빈은 두 종형과 어려서 헤어졌기 때문에 그 필적을 알지 못했기에 가짜 서신을 진짜로 믿게 되었다. 이렇듯 방연은 간특한 수단을 써서 손빈의 답장을 받아냈고 그 필적을 모방해서 그 답장의 마지막 구절을 슬쩍 고쳤다.

‘동생은 지금 위나라에서 벼슬을 살고 있지만 생각만은 잠시도 고국을 잊지않고 있습니다. 되도록 속히 돌아가서 형님들을 뵈옵겠습니다. 만일 제왕이 나를 버리지 않고 등용해주신다면 마땅히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할 결심입니다.’

이런 답장을 가지고 궁으로 들어가 위혜왕에게 청하여 가짜 편지를 바친다.

“손빈이 우리 위나라를 배반하고 요즘 제나라 사자와 내통하고 있습니다. 신이 교외에서 그 제나라 사자를 잡았는데, 취조해 본 즉 이런 편지가 나왔습니다.”

위혜왕은 편지를 읽고 손빈이 최고의 벼슬을 주지 않아 충성을 다하지 못하고 고국을 그리워 하는게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방연은

손빈의 조부인 손무가 오나라의 대장이 되었다가 나중에 제나라로 돌아갔다고 하며 손빈도 최고의 벼슬을 준다고 하여도 결국은 자기나라로 돌아가 우리나라와 패권을 다투려고 할 것이니 닥쳐올 근심을 막기 위해 손빈을 아주 죽여버리라고 하였다.

위혜왕은 내가 초청해온 사람을 죄목도 뚜렷하지 않은데 그를 죽인다면 모든 나라가 선비를 대우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을 게 아니냐고 하였다.

이에 방연은 손빈에게 가서 제나라로 가지 말라고 권하겠다고 하며 궁에서 나와 손빈에게로 갔다. 그리고 손빈에게 종형의 편지도 받고 고향이 그리울 것이니 위왕에게 가서 말미를 얻어 제나라에 다녀오라고 권했다.


손빈은 조금도 의심치 않고 방연의 말대로 위혜왕에게 두달동안의 말미를 달라는 표장을 올리게 되었고 방연은 표장이 올라오거든 그걸 증거로 제나라 사자와 내통한 죄목을 들어 처벌하라고 하였다.

다음날 방연의 계책대로 손빈이 쓴 표장이 위왕에게 올라왔다.  위왕은 분이 솟았고 즉시 붓을 들어 표장의 끝에다 비답 批答을 써서 내렸다.


손빈은 비밀히 제나라 사자와 내통하더니 이젠 자기나라로 돌아가겠다고 표장까지 올렸구나! 손빈은 과인의 부탁을 져버리고 위나라를 배반하였으니 삭탈관직하고 군사부 軍師府에 내려 그 죄를 밝히고 처벌하여라!


위혜왕의 분부를 받은 군정 軍政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가서 손빈을 결박하여 군사부의 방연에게로 갔다. 방연은 짐짓 놀라튼 체 하며 손빈을 위로하엿다. 그리고 위;왕에게 최선을 다하여 변명하겟다고 하며 궁으로 들어갔다.

방연은 위왕에게 제나라 사자와 내통한 죄가 있긴 하지만 죽이지는 말고 발을 끊는 형벌을 내리고 먹으로 얼굴을 떠서 폐인을 만들어 자기나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대왕께 해도 끼치지 못하게 하면 어떠냐고 아뢰러 왔다고 하였다.

위왕은 방연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였다.

방연은 손빈에게 와서 생색을 내며 위왕이 형님을 죽이라고 하였으나 거듭 간청하여 목숨만은 살려주고 그 대신 손빈의 발을 월 刖하고 , 얼굴을 먹으로 뜨게 된 곳이 국법이라고 하며 동생을 원망하지 말라고 하였다.

손빈은 죽음 면하게 해준 방연에게 오히려 은혜로 알고 고마워 했다.

이리하여 손빈은 도부수들의 날카로운 칼에 발이 잘리고 얼굴엔 ‘사통외국 私通外國(비밀히 외국과 내통한 자)’이라는 넉자를 바늘로 새기고 먹칠을 하여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 문면이 되었다.

방연은 손빈의 흉악한 얼굴과 병신이 된 다리를 보고 능청스레 통곡하며 약을 발라주고 비단을 감아주며 서관 書館에서 치료하게 해주었다.


그 후 방연은 날마다 진수성찬을 보내 손빈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손빈은 이 모든 걸 방연의 은혜로 알고 감격했다.

그러던 어느날 방연은 손빈을 찾아가 귀곡선생이 주해를 붙인 『손자병법』을 한 권 써달라고 하였다. 손빈은 쾌히 응낙하고 방연에게 필묵과 목간을 받았다.

손지병법을 1/10쯤 썼을 때 서관에서 시중을 드는 심부름꾼(방연이 보낸 감시자) 성아는 손빈을 옆에서 보며 훌륭한 인물임을 알고 동정을 하다가 존경을 하게되었다.

어느날 방연은 성아를 비밀히 불러 손빈이 글을 얼마나 열심히 쓰는지 물어보았다. 성아는 손장군이 다리를 쓰지 못하기 때문에 앉아있기가 어려워 하루에 두서너줄밖에 쓰지 못한다고 하니 몹시 노하며 속히 쓰라고 독촉하도록 하였다.

성아가 방연을 만나고 나오다가 전에 방연을 모시던 지난날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방연이 손장군에게 글을 빨리 쓰게 하라고 독촉을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성아에게 방연이 겉으론 손장군을 끔찍하게 위하는 체하지만 속으론 매우시기하면서 『손자병법』을 다 쓰기만 하면 음식도 보내지 않고 굶겨죽일 작정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성아는 의분을 참을 수 없어 서관에 돌아가는 즉시 손빈에게 그 내막을 다 고해바쳤다. 그말을 듣고 손빈은 몹시 놀라 몸서리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듯 간악한 방연에게 『손자병법』을 전하고 싶지 않았지만 베껴주지 않으면 노발대발하며 언제 죽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걱정이 되었다.

그때 문득 지난날 귀곡땅을 떠날 때 선생께서 위급할 때 끌러 보라고 했던 비단주머니가 생각났다.  주머니 속에서 노란 명주 한 폭이 나왔다 거기에는 ‘사풍마 詐瘋魔’란 석자가 적혀있었다. 즉 정신병자처럼 행동하면서 상대방에게 속임수를 쓰라는 것이다.

‘선생의 뜻을 알겠다! 마땅히 그렇게 하리라.’

그날 저녁부터 손빈은 밥상이 들어오면 숟가락을 떨어뜨리고 고꾸라져서 토하기도 하고 벌벌 떨며 큰소리치기도 하고 밥상의 음식을 마구 집어던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써둔 『손자병법』의 목간을 휩쓸어 불속에 던지고 벌렁 나자빠지기도 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을 끊임없이 씨부렁거렸다.

이에 성아는 군사부에 있는 방연에게 이 사실을 고했다. 이튿날 방연이 서관에 가보니 손빈이 땅바닥에 엎드려 침을 질질 흘리다가 ‘이히히히히.....히히히히...’하며 웃기도 하고 ‘아이고 아이이고 아아아이고....’하며 이상한 소리를 하며 방성통곡하기도 하였다

또 눈을 부릅뜨고 방연을 노려보다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하고 벌벌 떨리는 손으로 방연에게 매달리기도 하니 방연은 손빈이 징그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였다.

마침내 방연은 손빈의 병이 진짜인지 꾀병인지 시험해보기로 결심하고 손빈을 수하사람에게 시켜 돼지우리에 넣었다. 그 속에서도 머리를 풀고 돼지 똥구덩이 속에 벌렁 누워 태연히 코를 골았다. 그리고 개가 먹다가 남긴 음식에 흙을 섞어 주어도 맛있게 먹었다.

그 때부터 손빈에게 감시를 풀고 마음대로 바깥출입을 하도록 하니 돼지우리에서 자기도 하고 황당무계한 말만 늘어놓기도 하였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손빈이 진짜 미친줄로만 알고 불쌍히 여겼다.


이 때 묵적이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제나라에 이르렀을 때 대부 전기의 집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때마침 위나라에서 제자 금활이 와서 손빈의 근황을 물어보니 손빈의 상황을 묵적에게 소상히 이야기 했다. 묵적은 크게 탄식하고 대부 전기에게 손빈의 뛰어난 재주를 이야기 하며 방연의 질투로 병신이 되어 곤욕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부는 제왕에게 아뢰어 비밀히 손빈을 데려올 계책을 세웠다.

다음날 제위왕은 객경 순우곤을 불러 위나라 왕에게 차를 보낸다고 하며 손빈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순우곤은 차를 실은 수레를 거느리고 위나라로 떠났다. 그 일행 중에는 묵적의 제자 금활도 수행인으로 따라갔다.

위나라에 당도한 순우곤이 왕에게 차를 바치는 동안 금활은 손빈을 찾아 보고 밤을 이용해 제왕의 분부를 전하며 온거 溫車(누워서 갈 수 있도록 만든 수레)에 재빨리 눕혔다.

그리고 미쳐있는 손빈이 있던 자리에는 순우곤의 심복 부하인 왕의가 손빈과 옷을 바꿔입고 얼굴에 온통 진흙칠을 하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평소의 손빈처럼 앉아있었다.

순우곤의 일행도 위왕과 방연의 전송을 받고 먼저 간 손빈의 뒤를 따라 제나라로 갔다. 그 후 손빈의 자리에 있던 왕의도 제나라로 달아났다. 그 뒤 손빈이 없어진 것을 발견한 방연은 위혜왕의 책망을 들을까 겁이 나서 허위로 우물에 빠져 죽었다고 보고하였다.

제나라에 도착한 손빈은 대부 전기의 영접을 받으며 궁으로 들어갔다. 제위왕은 전기의 집에 거처하도록 하고 전기는 상객을 대하는 예로 극진히 대우했다.

그 후 사람을 시켜 종형을 찾았으나 소식을 알아내지 못하고 지난날 위나라에서 받은 종형의 편지도 방연이 만들어낸 가짜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제위왕이 여가만 있으면 모든 종족과 공자를 거느리고 활터에서 활 쏘는 것이 취미였는데 그의 종족인 전기는 늘 지기만 하였다. 어느날 전기가 손빈을 데리고 활터에서 내기광경을 보여준 뒤 손빈은 내기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주어 전기가 이기게 해주었다. 이에 전기는 모두 손빈의 덕이라고 하여 제위왕은 손빈을 더 신임하게 되었다. 그 후 손빈의 지혜와 식견을 존경하고 기회있을 때마다 무수한 상을 내렸다.


어느날 손빈을 버린 위혜왕이 방연을 궁으로 불러 책망하고 중산땅을 찾아오라고 하였다. 이에 방연은 가까이에 있는 조나라의 한단땅을 빼앗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병거 500승을 거느리고 한단땅을 포위 함락시켰다. 이에 조나라는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제위왕은 손빈을 대장으로 하고싶었으나 손빈이 사양한 후 계책만 세워주고 전기가 대장이 되도록 하였다.

이에 전기는 한단땅으로 출발하려고 하였으나 손빈이 한단땅으로 가지 말고 위나라의 양릉땅으로 치러간다고 소문을 내고 계릉땅에서 기다리다가 돌아오는 위나라 군사와 만나서 전도팔문진으로 방연을 무찔렀다. 이 싸움에서 위나라는 2만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방연은 크게 낙담하였다. 이 때 방연은 제나라 진영에 ‘軍師 손빈’이라는 깃발을 보고 대경실색하였다.

하지만 위왕은 한단땅을 함몰한 공로로 계릉땅에서 패한 죄를 용서해주었다.

전도팔문진-머리를 치면 꼬리가 와서 휘감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와서 휘감으며, 그 중간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와서 휘감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격하기가 매우 어렵고 쉽게 장사형으로 바뀌며 장사형은 머리와 꼬리가 서로 응하지 못하면 자연히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이리하여 제위왕은 전기와 손빈을 신임하여 오로지 그 두 사람에게 모든 병권을 맡겼다. 그래서 제나라 정승 추기는 전기나 손빈에게 정승자리를 뺏길까봐 천금을 써서 점쟁이를 매수하고 전기가 역적질을 한다고 고해 바치며 제위왕이 의심하도록 하였다. 이에 전기는 병을 핑계삼아 벼슬을 내놓고 시골로 내려갔다. 그리고 손빈도 군사의 직위를 내놓고 시골로 갔다. 이 소식을 듣고 방연은

 ‘내 이제야 마음대로 천하를 뒤흔들 수 있겠구나!’

하며 기뻐했다.

하지만 제위왕이 죽고 그 아들 벽강이 왕위를 계승 한 뒤 제선왕은 전기가 원통하게 중상모략을 당했다는 사실과 손빈의 뛰어난 실력을 알기에 다시 불러들여 지난날의 벼슬자리에 복직시켰다.

한편 한나라 정소후는 정나라를 쳐서 없애고 조나라는 한소후에게 위나라를 빼앗아 반씩 나누어 갖자고 하며 다음해에 군사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p130 상앙의 살을 다투어 씹다

이 소식을 들은 방연은 먼저 한나라를 치자고 하여 군사를 일으켰다.

위나라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소후는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제나라의 전기는 도와줘야한다고 하고 전승 추기는 둘 중 싸우다가 하나가 망하도록 내버려두자고 하였다. 

하지만 손빈은 대왕께 계책을 쓰라고 하며 우선은 한나라를 구원해준다고 안심시키고 그들끼리  힘겹게 싸우다가 지칠 때쯤 천천히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를 쳐서 이겨야한다고 하였다.

제선왕은 감탄하면서 손빈의 말대로 했다. 사자를 시켜 한소후에게 한나라를 돕겠다고 하니 한소후는 좋아하며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위나라를 물리치려고 하였다. 하지만 위나라 군사가 강하기에 싸울 때마다 패하였다. 한소후는 다시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여  그 때 손빈을 군사로 삼아 병거 500승을 내주었다. 전기는 군사를 거느리고 한나라로 출발하려고 하였다. 손빈은 말린다.

 “한나라를 도와주려면 위나라의 급소를 찔러야 합니다. 우리는 위나라 도읍을 쳐야합니다.”

마침내 전기는 삼군을 거느리고 위나라 도읍으로 떠났다.

한편 방연은 한나라 군사와 싸워서 연달아 이기자 신이 나서 한나라 도읍까지 쳐들어갔다. 승리가 눈앞에 있을 때 본국에서 급한 소식을 가지고 보발군이 왔다. 제나라가 쳐들어오고 있으니 속히 회군하여 막아달라는 것이다. 방연은 황급히 공격을 중지하고 본국으로 왔다.

손빈은 머지 않아 돌아올 방연에 대해 알고 전기에게 말한다.

“위나라 군사는 원래 용맹하기 때문에 우리 제나라 군사를 깔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싸움이란 용맹만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싸울 줄 아는 자는 형편에 따라서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형세를 만듭니다. 그러므로 병법에 이르기를 ‘용맹만 믿고서 하루에 100리를 강행군하면 장수도 적에게 사로잡히며, 이익만 믿고서 하루에 50리를 강행군하면 낙오병이 반이나 생긴다’고 했습니다.우리는 이미 위나라 경내에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군사는 매우 약한 체하면서 용맹한 위나라 군사를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유인해들여야 합니다.”

전기가 묻는다.

“그럼 어떻게 적을 끌어들여야만 유리하겠습니까?”

이에 손빈은 행군을 하면서 밥짓는 부엌을 110만개  만들고 또 행군하다가 5만개 만들고 다음엔 3만개를 만들어 위나라군사가 볼 때 제나라의 도망명이 많은 걸로 알고 교만하게 뒤쫓아 올 때 기회를 보아 무찌르라고 하였다.

방연이 뒤쫓아오며 보니 불과 사흘 만에 군사가 반으로 줄은 걸로 알고 이제 이긴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계릉 땅에서 당한 분풀이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한편 손빈은 마릉 땅 가장 험준한 사록산 울창한 계곡에 군사를 매복시키고 군사를 시켜 큰 나무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나무를 모조리 베어 위나라군사가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그 나무는 껍질을 벗겨 허옇게 한 다음 붓을 들어 여섯글자를 썼다.

방연사 차 수하 龐涓死 此 樹下

그 위에 횡서로 넉자를 더 썼다.

軍師 孫臏

그리고 궁노수 5,000명씩을 거느리고 좌우에 매복했다가 나무 밑에 불빛이 일거든 일제히 활을 쏘도록 하였다.

지칠대로 지친 위나라 군사를 이끌고 사방이 어두워졌을 때 사록산에 도착한 방연은 벗겨진 나무를 발견하고 무슨 글씨가 씌어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군졸을 시켜 횃불을 켠 순간 대경실색했다.

“내가 그 다리 병신 놈에게 속았구나!”

군사들을 둘러보고 황급히 후퇴하라고 소리치는 순간 1만명의 궁노수가 화살을 쏘니 방연은 피투성이가 되어 차고 있던 칼로 목을 찌르고 죽었고 아들 방영은 화살에 맞아 죽었으며 많은 군사들이 죽었다.

지난날 방연이 귀곡선생에게 하직하고 산을 떠날 때

“너는 장차 남을 속이지 마라. 남을 속이면 너도 반드시 남에게 속을 때가 있을 것이다.”

하고 주의를 주었었다.

과연 방연은 가짜편지를 만들어 손빈을 속였고 그의 발까지 끊어서 병신이 되게 했다.

그 결과 방연은 오히려 손빈의 계책에 떨어지고 말았다.

또 귀곡선생은 방연에게

“말을 만나면 탈이 난다.”

하고 말했다.

과연 방연은 말마자가 들어있는 마릉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방연은 죽기까지 12년동안 권세를 누렸다.

지난날 방연이 꺾어온 마두령이란 꽃을 보고

“이 꽃은 보다시피 한번에 12송이가 핀다. 곧 네가 대운을 누리는 햇수도 바로 이 열둘이란 수에 있다.”

참으로 귀곡선생의 예언은 신묘했다.


방연이 이끌고 간 전대가 대패하지 세자 신이 이끄는 후대는 경황망조 驚惶罔措하여 나아가지 못했다. 그 때 제나라 장수 전영이 군사를 거느리고 후대의 뒷덜미를 치자 군사는 모두 혼비백산하여 우왕좌왕하고 세자 신은 사로잡혔다. 전영은 사로잡은 세자 신을, 원달과 독고진은 방연과 방영 부자의 시체를 손빈에게 바쳤다. 이에 손빈은 칼을 뽑아 방연의 목을 끊고 병거위에 높이 매달았다. 대승을 거둔 제나라 군사는 승전가를 부르며 돌아가고 그날 밤 세자 신은 제나라 군사에게 당할 곤욕이 무서워 칼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세자 신을 죽일 생각이 없었던 손빈은 그날 밤 거듭 거듭 탄식했다. 후속부대를 거느리고 오는 방총은 방연의 목을 보자 꼼짝 못하고 손빈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린다.

“그저 살려만 주십시오.”

전기가 손빈에게 속삭인다.

“살려주면 뭐합니까? 죽여버립시다.”

손빈이 처연히 대답한다.

“나쁜 짓을 한 것은 방연 한사람 뿐이었소. 방연의 아들 방영도 죄없이 죽었거늘, 더구나 그 조카인 방총이야 무슨 죄가 있겠소.”

전기가 손빈의 뜻에 동의한다.

“군사 軍師의 말씀은 참 인자하오.”

이에 손빈이 방총에게 위나라 세자 신과 방영의 시체를 내주고 호령한다.

“너는 돌아가서 위왕에게 나의 말을 전하라. ‘위왕은 속히 우리 제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충성을 맹세하라. 만일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엔 우리 제나라 대군이 다시 위나라를 칠 것이다. 그 때엔 너희 나라가 종묘사직을 보존하지 못할 줄 알아라.’ 방총아! 내 말을 분명히 들었느냐? 그럼 속히 돌아가거라!”

방총은 손빈에게 거듭 절하고 군사를 거느리고 달아나듯이 떠났다.

전기와 손빈은 군사를 거느리고 제나라로 돌아갔다.

제선왕은 큰 잔치를 베풀고 전기와 손빈의 노고를 위로했다.

정승 추기는 전기와 손빈을 몰아내려다가 실패한 생각을 할 때 낯을 들고 더 이상 조정이 있을 수 없어 병들었다 핑계대고 정승의 인 印을 제선왕에게 바치고 사임하였다.

제선왕은 추기의 사의를 받아들이고 전기를 정승으로 삼고 전영이 대장이 되었다. 손빈에게는 특별히 고을을 주었으나 사영하고 받지 않았다.

그 후 손빈은 조부 손무의 저서이며 귀곡선생에게서 전해 받은『손자병법』13편을 기록하여 제선왕에게 바치고 청한다.

“신은 이렇게 걸어다니지도 못하고, 얼굴은 온통 글자로 떠서 보기 흉한 페인입니다. 그렇건만 신은 대왕의 은덕으로 그간 높은 벼슬자리를 누렸습니다. 이제야 위로는 대왕의 은덕을 갚았고 아래론 신의 원수를 갚았습니다. 신은 마침내 모든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신이 귀곡선생에게서 배운 바가 이 『손자병법』13편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선 신을 더 데리고 있어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선 신에게 한적한 산이나 하나 내려주셔서 고요히 일생을 마치게 해주십시오.”

제선왕은 여러모로 손빈을 만류했으나 손빈의 뜻을 굽힐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손빈에게 석려산(오늘날 진안주에 있다)을 하사했다.

마침내 손빈은 제선왕에게 하직하고 석려산으로 떠났다. 그 후 1년 쯤 지났을 때 어느날 저녁 행방불명이 되었다. 

세상사람들은 

“귀곡선생이 와서 손빈 장군을 데리고 갔다. 손빈장군은 신선이 되어 갔다.”

하고 말하곤 했다.

제선왕은 국문에 방연의 목을 높이 걸고 제나라의 위신을 떨쳤다. 그리고 모든 나라 제후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번 승리를 널리 알렷다.  한 조나라의 왕은 친히 승리를 축하하엿으나 마땅히 사과해야 할 위혜왕은 끝내 가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제선왕은 한, 조나라와 연합하여 위나라를 치기로 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그제야 위혜왕은 조공을 비치고 화평을 청하였다. 그리하여 한, 조, 위 3진은 박망성에서 충성을 맹세하고 제선왕은 천하에 위엄을 떨쳤다. 

그 후부터 제선왕은 제나라가 강하다는 것 만 믿고 술과 여색에 빠져 설궁 雪宮이라는 화려한 궁실을 짓고 풍악을 즐겼다. 또 40리나 되는 수렵장을 만들고 떠돌아다니는 유세객을 불러들여 황당무계한 토론만을 일삼았다.

이에 정승 전기는 다방면으로 간하였으나 충직한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아 울화병이 나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날 제선왕이 설궁에서 잔치를 베풀고 있는 중에 종리춘이라는 매우 억세보이고 못난 여인이 찾아왔다. 그리고 자기는 은어를 잘한다고 하며 눈을 치뜨고 입술사이로 이를 내보이며 두 손을 들더니 무릎을 탁탁 치면서 외친다.

“위태롭고 위태롭구나!”

제선왕이 그 뜻을 알 수 없어 설명해달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자기를 죽이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대답한다고 하며 말하였다.

“첩은 죽더라도 대왕의 네가지 잘못을 다 말하고 죽겠습니다. 진나라는 위앙을 등용하여 재정과 군사를 증강시킨다고 하는데 대왕께선 좋은 장수도 양성하지 않고 변방의 방비도 관심이 없으십니다. 또 첩이 듣건대 임금과 시비를 따지는 신하가 있는 한 그 나라는 망하지 않으며, 아버지와 시비를 따지는 자식이 있는 한 그 집안은 망하지 않는다고 하옵니다. 그런데 대왕께선 안으로 여색만 즐기시고 시비 흑백을 따져서 간하는 충신의 말을 듣지 않고 계십니다. 그리고 어진 사람이 앉아야 할 벼슬자리에 아첨을 일삼는 간신 왕환이 자리잡고 황당무계한 말만 일삼는 추연이 아무 실속도 없이 아는 체만 하는 말만 듣고 큰 궁실에 넓은 동산 아름다운 못을 만들어 백성은 지칠대로 지치고 재정은 탕진되었습니다. 대왕과 우리 제나라는 지금 누란지위 累卵之危에 놓였습니다. 어찌 눈앞의 편안한 것만 아시고 앞날의 우환을 내다보지 않으십니까? 첩은 죽기를 각오하고 감히 대왕께 아뢰는 것입니다.”

제선왕이 찬탄한다.

“종리씨가 말하지 않았다면 어찌 나의 허물을 들을 수 있었으리오!”

즉시 잔치를 파하고 종리춘을 수레에 태워 정궁으로 들어가 왕후로 삼았다.  그 후 어진선비를 초청하고 나라를 잘 다스리려고 전영을 정승으로, 추땅 출신의 맹가(맹자)를 상빈으로 삼았다. 그리고 종리춘의 고향인 무염땅을 종리춘에게 봉했다. 그 후 사람들은 종리춘을 무염군이라 하였다.


진나라 정승 위앙은 위나라 방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진효공에게 위나라를 치자고 하여 위앙이 대장이 되고 공자 소관이 부장이 되어 5만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로 쳐들어갔다.

이에 위나라 공자 앙은 위왕에게 지난날 위앙이 위나라에 있을 때 서로 친한 사이였으니 화평을 청해보자고 하며 그래도 안 될 때 한나라와 조나라의 구원을 청하자고 아뢰었다.

위왕과 신하의 찬동으로 5만군사를 이끌고 오성에 주둔하며 편지를 보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 때 위앙이 보낸 사지가 편지를 기지고 왔다. 편지의 내용은 서오 섬기는 임금과 나라는 다르나 예 우정은 잊지 않고 잇으니 무기와 군사를 버리고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하며 날짜를 정해달라고 하였다.

공자 앙은 기다리던 터라 반갑게 답장을 보냈다. 내용인즉 지난날의 친분을 잊지 않고 먼저 편지를 주어 고맙다는 내용와 3일이내에 회견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위앙은 공자 앙의 편지를 보며 자기의 계책이 실천단계에 이름을 알고 웃으며 연근(몸에 좋다.)과 사향(귀신을 물리친다)을 정표로까지 보내며 5일 뒤 회견하자고 답장을 보냈다.

한편 위앙은 진나라 공자 소관에게 호기산과 백작산에 매복하고 공자 앙과 회견하는 날 산위에서 포성이 울리면 일시에 위나라사람을 사로잡으라고 하였다.

닷새 뒤 옥천산에서 위앙은 오획(천균의 무게를 들어 올리는 장사), 임비(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 눕히는 장사)을 포함한 300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위나라 공자 앙은 술과 음식을 가득 실은 수레와 악공들을 포한한 300명의 수행원을 데리고 화평을 청하기 위한 회견을 하였다

이에 공자 앙이 먼저 술 석잔을 권하고 다음엔 위앙의 장사 오획과 임비가 술을 따르는 순간 위앙은 술을 마시는 척하다가 눈짓을 하미 한사람이 산위로 올라가고 즉시 산위에서 포성이 일어났다.

공자 앙이 깜짝놀라니 위앙이 웃으며 속인 것을 용서하라고 하며 장사로 하여금 공자 앙을 결박하고 수행원을 모조리 사로잡도록 하였다.

다음엔 수행원들에게 술을 먹이고 진정시킨 뒤 거짓으로 오획을 공자 앙으로 가장하여 화평을 마치고 돌아오는 행렬로 보이세 수행인들과 함께 오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성의 문을 열게 한 뒤 위앙의 대군이 위나라 군사를 종횡무진으로 무찌르고 오성을 완전히 점령하였다.

한편 서하땅을 지키던 주창도 오성의 함락을 알고 달아났다. 그리하여 위혜왕은 대부 용가로하여금 화평을 청하게 하였다.

위앙이 대답한다.

“지난날 위왕은 나를 등용하지 않았소. 그래서 나는 진나라에 가서 벼슬을 살게 되었소. 나는 다행히 진왕의 신을 얻어 이제 벼슬은 정승에 이르렀고, 만종 萬鍾의 녹 祿(매우 많은 祿) 든 병권을 잡고 있소. 이러한 내가 이번에 위나라를 아주 없애리지 않는다면 이는 하늘의 뜻을 져버리는 것이 되오.”

대부 용가가 사정한다.

“듣건대 새도 옛날에 살던 숲을 그리워한다고 하며, 신하는 옛주인을 잊지 않는다고 합디다. 지난날에 위왕이 비록 그대를 등용하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그대가 어찌 부모의 나라를 아주 없애버린단 말이오? 너무나 무정한 말씀인가 하오.”

위앙은 한동안 생각하다가 서하땅을 모조리 내준다면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가겟다고 햇다. 그리하여 위나라는 어쩔 수 없이 서하땅을 진나라에 빼앗기고 진나라의 국경에서 먼 대량땅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래서 위나라는 한 때 국호를 양 梁이라고도 하고 위혜왕을 양혜왕이라고도 하였다.


진효공은 위앙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후작으로 봉하고 위나라로부터 빼앗은 열다섯 고을을 식읍 食邑으로 내주고 상군 商君이란 칭호까지 내렸다. 그래서 후세사람들은 위앙을 상앙 商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오늘날 전하는 『商子』는 상앙이 남긴 저서이다.

상앙은 진효공에게 감사의 절을 올리고 나와 상앙의 부귀영화는 최고조에 달했다.

상앙은 자기자랑만 하고 가신과 빈객들은 아첨하며 축하만 하는 가운데 조양이란 빈객이 바른말로 충고한다.

백리해는 그 옛날 秦목공때의 정승으로 晉나라 임금을 세 번씩이나 정해 주었고 오랑캐 스무나라를 합병해서 진목공을 서융 일대의 패후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런 큰 공로가 있었건만 백리해의 사생활은 아무리 더워도 포장을 치지 않았으며 아무리 피곤해도 수레를 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백리해가 죽었을 때 진나라 백성들은 마치 부모가 죽었을 때처럼 슬피 울었고 모두 상복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제 대감께선 정승이 된지 8년이 되었지만 무서운 형벌만 내리고 위엄만 보였지 덕을 보이지 않아 아버지나 동생, 형을 잃은 백성들이 대감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임금께서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난다면 대감의 운명도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속히 임금에게 어진 사람을 천거하고 모든 국록과 벼슬을 내놓고 시골에 가서 밭이나 갈며 무사히 여생을 보내십시오.“

상앙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마침내 진효공은 병들어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모든 진나라 신하는 세자 사 駟를 받들어 임금자리에 모셨다. 그가 바로 진혜문공이다.

오늘날 상앙이 그만한 공적과 부귀를 누리기까지는 남에게 못할 짓도 많이 했다.

지난날 상앙은 진혜문공이 세자로 있었을 때 지신이 선포한 법령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세자 대신 太傅 공자 건 虔을 잡아다가 코를 베고, 太師 공손가를 붙들어다가 먹으로 온통 얼굴을 뜨게 했다.

그 때문에 코를 잃은 공자 건과, 먹으로 떠서 얼굴이 흉측해진 공손가는 그동안 상앙에게 하늘에까지 사무친 원한(徹天之恨)을 품고 있었다.

이제 진효공이 세상을 떠났고 세자가 임금자리에 올라 세상은 바뀌었다.

공자 건과 공손가가 진혜문공에게 아뢴다.

“신들이 듣건대 大臣의 권세가 너무 크면 나라가 위태롭고 자기를 모시는 좌우 사람들의 권세가 너무 크면 자기신세를 망친다고 합니다. 상앙이 법을 세워 비록 우리 진나라를 다스렸습니다만 백성들이 그를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부녀자와 어린아이들까지도 ‘우리 진나라엔 商君의 법이 있을 뿐 국법은 없다’고 말합니다. 지금 상앙은 열다섯 성의 식읍까지 받게 되어 그 벼슬과 권세를 따를 자가 없습니다. 상감께선 조심하고 또 조심하십시오. 머지 않아서 상앙은 반란을 일으키고야 말 것입니다.”

진혜문공이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나는 그 놈에 대한 원한을 풀지 못한지가 오래요. 다만 그놈이 지난날 先王의 신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참고 있었소.“

이튿날 진혜문공은 신하를 시켜 상앙의 정승인은 가져오라고 하고 商於땅으로 물러가 있으라고 전하였다. 그리하여 상앙은 정승인을 임금에게 바치고 호화찬란한 수레를 타고 거창한 행력과 함께 상어땅으로 갔다.

공자건과 공손가가 감용과 두지를 데리고 궁으로 들어갔다. 상군이 모든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일국의 왕처럼 위엄을 갖추고 떠나며 상어땅에 가서 반란을 일으킬 작정이라고 하며 감용과 두지에게 물어보라고 하였다. 감용과 두지도 상앙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고 하였다.

마침내 진혜문공이 노여움에 떨며 공손가에게 군사 3,000명을 거느리고 상앙의 목을 끊어 오라고 하였다.

백성들도 거리마다 모여 떠나간 상앙을 원망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다가 공손가가 군사를 거느리고 상앙을 치러간다는 소식을 듣고 몇천의 백성들도 합세하였다.

상앙은 한 수행인으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조정에서 자기를 치라고 하였다고 하니 황급히 호화로운 옷을 벗어버리고 졸병으로 가장하여 단독으로 달아났다.

상앙이 홀로 도망쳐 함곡관에 이르렀을 때 해가 저물어 旅店으로 들어갔다.

여점 주인을 조신첩 照身帖(오늘날의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깜박 잊고 가져오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여점 주인은 수상하다는 듯이 상앙을 쳐다보며

“너는 商君의 법을 아느냐? 조신첩이 없는 자를 재우면 재워준 사람까지 참형을 당하게 되어있다. 어서 이 곳을 떠나게. 까딱하다간 자네 때문에 나까지 죽네!”

하니 상앙은 발길을 걸으며 길이 탄식한다.

“허허! 내가 만든 법에 내가 걸려들 줄이야 어찌 알았으리오!”

상앙은 밤을 틈타 관문을 벗어나 위나라로 달아났다. 위혜왕은 공자 앙을 유인하여 서하땅을 빼앗아간 그 놈을 체포하여 囚車에 실어 돌려보내라고 하였다. 상앙은 다시 상어땅으로 달아나 군사를 모집하여 秦나라를 치려고 하였다. 군사를 다 모집하기도 전에 공손가의 군사에게 붙들려 진나라 도읍 함양으로 압송되었다.

진혜문공은 상앙의 죄목을 들어 五牛分屍 형을 받아 무참한 죽음을 당하였다.

이를 구경하던 백성들은 아우성을 치면서 달려들어 상앙의 시체를 질근질근 씹었다.  참으로 무섭고 끔찍한 광경이었다. 이날 상앙의 일족도 다 죽음을 당하였다.

상앙이 죽은 뒤 거리마다 백성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무거운 압제 밑에서 해방된 것을 기뻐하고 축하했다. 천하의 모든 나라도 이 소문을 듣고 다 기뻐했다.

지난날 상앙에게 삭탈관직 당했던 감용과 두지 두 사람도 다시 복직되었다.

 

협객남매의 죽음

열국지에 나오는 조나라에 협누라는 정승에 관하 얘기이다.

협누가 미천한 신분이어었을 때 일이다. 협누는 복양땅 사람인 엄수와 지극한 우정을 맺고 있었다. 세상에선 엄수를 엄중자라고도 했다.

그때 협누는 몹시 가난했고 엄수는 큰 부자였다. 그래서 엄수는 협누의 생활비를 모두 대주었다.

그후 협누는 엄수에게서 천금을 얻어 한나라 도읍 평양성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 돈을 밑천으로 출세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마침내 정승까지 된 것이었다. 협누는 정승이 되자 그 위세가 대단했다.

협누를 만나러 가는 사람은 한결같이 대문간에서 쫓겨났다. 협누는 그렇듯 유세를 부렸다.

엄수는 협누가 정승이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한나라로 갔다. 그는 직접 승상부로 협누를 찾아갔다.

그러나 협누는 문지기가 들어와서 엄수란 사람이 찾아왔다고 하는 말을 듣고도,

“엄수라? 어떤 놈인지 모르겠는 걸! 여러 말 말고 대문 밖으로 몰아내어라!” 하고 추상같이 분부했다.

이튿날부터는 엄수는 날마다 승상부에 가서 편지를 바쳤다. 그 내용은 옛 우정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만 만나주기 바란다는 것과,  일국의 정승이 되었으니 자기를 벼슬길로 좀 끌어달라는 청이었다.

날마다 편지를 바치는 동안에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협누는 시치미를 딱 떼고 엄수와 만나주지 주지 않았다.

이에 엄수는 자기 재산을 풀어 한나라 한열후의 시신들에게 뇌물을 썼다. 그 시신들의 주선으로 마침내 엄수는 궁에 들어가서 직접 한열후를 배알하게 되었다.

그날 엄수는 한열후에게 많은 황금늘 바쳤다. 한열후는 대단히 좋아하면서 엄수에게 좋은 벼슬자리를 주기로 약속했다.

이 소문을 듣고 협누는 한열후에게 엄수의 여러 가지 단점을 들어 고하고 등용하지 말도록 권했다.

에 엄수는 이를 갈며 협누를 저주했다.

“이놈! 어디 두고 보자!”

마침내 엄수는 한나라를 떠나 모근 나라를 두루 돌아다녔다. 그는 용사를 구해서 협누를  죽여 원한을 풀 작정이었다.

엄수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제나라에 이르렀다.

어느날 그는 도살장 앞을 지나다가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한 사나이가 큰 도끼를 들어 소를 죽이는데 별로 힘들이지도 않고 단번에 쳐서 소뼈를 으스러뜨렸다. 그 도끼는 무게가 30근 이상은 되어 보였다. 참을 보기 드문 장사였다.

엄수가 그 장사를 유심히 살펴보니 키가 8척이고, 눈은 고리눈에다 수염응 이무기 같고, 얼굴엔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으며, 말투는 제나라 사람 같지 않았다.

엄수는 조용한 곳으로  그 장사르 초청하여 인사를 나누었다.

“장사의 존함은 어찌 되시면 고향은 어디신지요?”

그 장사가 대답한다.

“나의 성은 섭이며 이름은 정이라고 하오. 원래 나는 위나라 사람입니다. 바로 지 땅 심정리 란 곳에 집이 있지요”

“그렇다면 어째서 고국을 버리고 이곳 제나라에 와 계시오? ”

“원래 타고난 천성이 지나치게 솔직하고 거칠어서 좀 말하기 곤란한 죄를 저질렀지요. 그래서 늙은 어머님과 단 한 분뿐인 누님을 모시고 고향을 떠나 이곳에 피해와서 산답니다. 이렇게 하는 수 없이 백정이 되어 생계를 꾸려가며 어머님을 봉양하고 있소. 이야기는 그만하고 그대의 존함은 어찌 되시오 ”

엄수는 자기 성자만 알려주고  곧 섭정과 작별한 후 숙소로 돌아갔다.

이튿날 아침, 엄수는 의관을 단정히 갖추고 도살장에가서 섭정에게 정중히 절을 했다.

“잠시 여가를 내어 나와 함께 주점으로 가십시다. ”

엄수는 섭정을 데리고 주점으로 가서는 주인과 손님 사이의 예로써 극진하게 대접했다.

서로 술 석 잔으 fryghks했을 때였다. 엄수가 섭정 앞에황금 100일을 내놓고 받기를 청한다.

섭정이 많은 황금을 보고 의아해서 묻는다.

“이게 웬일이오? ”

엄수가 대답한다.

“ 그대가 늙은 어머님을 모시고 있다기에 드리는 것이오. 이걸로 부족한 것이 없도록 어머님을 봉양해 주면 고맙겠소.”

섭정이 한참 만에 말한다.

“그대가 나의 어머님을 잘 봉양하라고 이렇듯 많은 황금을 주니 이는 필시 나에게 무슨 청이 있어서인 것 같구려. 그대가 모든 걸 말하지 않는 한 나는 결코 받을 수 없소. ”

이이ㅔ 엄수는 한나라 정승 협누가 지난날 자기에게 많은 신세르 fwuTrjs만 이제 와서 배은망덕하게 구는 사실을 낱낱이 말하고,

“반드시 그놈을 죽여 원수를 갚을 작정이오. ”

하고 자기의 속 뜻을 털어놓았다.

섭정이 대답한다.

“옛날에 오나라 전제는 오자서에게 말하기를, ‘늙은 어머님께서 생존해 계시니 함부로 남에게 몸을 맡길 수 없다’고 말했소. 그대의 사정을 들어본즉, 나 또한 그대의 원수를 갚아드릴 처지가 못 되오. 내 어찌 그대의 귀중한 재물만 허비할 수 있으리오.”

엄수가 다시 받기를 권한다.

“난ㄴ 그대의 높은 의기를 존경하여 그대와 결의형제가 되기를 원할 뿐이오. 어찌 그대에게 효도를 버리고  내 개인의 사정만 봐달라고 강요할 리 있겠소.”

섭정은 엄수의 은근한 권유에 못 이겨 그 황금을 받았다.

섭정은 우선 황금 반을 써서 과년한 누님 앵을 고향인 위나라 지 땅으로 출가시켰다. 그리고 나머지 황금 반을 아낌없이 써서 좋은 의복과 맛있는 음식으로 늙은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그런지 1년 반 만에 섭정의 어머니는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엄수는 섭정의 집에 가서 곡하고 조상한 뒤에 초상과 장례비용까지 다 대주었다.

장사를 성대히 마친 다음 날이었다.

섭정이 엄수에게 말한다.

“오늘부터 이 몸은 그대의 것이오. 나를 쓰시려거든 마음대로 쓰시오. 그대 덕분에 누님은 출가했고 어머님에 대한 효도도 끝났다으니 이젠 이 세상에 아무런 미련이 없소”

이에 엄수가 묻는다.

“그럼 한나라 정승 협누를 어떻게 죽여야겠소? 많은 무기와 장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섭정이 조용히 머리를 흔들면서 말한다.

“협누가 정승이라면 지극히 귀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오. 그가 출입할 때엔 으레 호위하는 병정들이 많을 것이오. 그러니 꾀로써 그를 죽여야지 힘으로 싸워서는 이기지 못하오. 내가 이 날카로운 비수를 품고 가서 기회를 보아 일을 도모하리다. 나는 오늘 중으로 그대와 작별하고 제나라를 떠나겠소. 이제 우리는 이 세상에선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오. 그대는 내가 장차 할 일에 대해서 더 이상 묻지 마오.”

그날 저녁 무렵에 섭정은 엄수와 작별하고 표연히 한나라로 떠났다. 한나라에 당도한 섭정은 우성 평양서 교외에다 숙소를 정했다. 그는 여점에서 이틀 동안 묵으면서 조용히 정신을 통일했다.

나흘째 되는 날, 섭정은 일직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궁중에서 나오는 정승 협누의 행차를 지켜보았다.

협누는 네 마라의 말이 끄는 높은 수레에 앉아 있었다. 무장한 군사들이 창을 들고 협누가 탄 수레를 호위하고 지나가는데 빠르기가 나는 듯 했다.

섭정은 그 행차를 뒤따라 승상부까지 가보았다. 정승 협누가 수레에서 내려 부중으로 들어가는데, 대문에서 중당 섬돌에 이르기까지 무기를 든 군사들이 늘어서 있었다.

섭정은 대문 밖에서 멀리 당상을 들여다보았다. 협누가 안상을 의지하여 두툼한 의자에 앉아 있는데, 첩서를 들고 결재를 받는자가 매우 많았다.

한식경이 지나자 결재를 다 맡았는지 좌우 사람들은 모두 물러가고 협누만이 피곤하지 의자 뒤에 등을 기대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섭정이 기회는 이때다 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부중으로 달려 들어가면서 황급히 부르짖는다.

“승상은 어디 계시오! 나는 급한 일이 있어 모 대감의 분부를 받고 심부름 온 사람이오!”

섬돌 밑에 늘어선 군사들이 갑자기 달려들어오는 섭정의 앞을 가로막으려고 덤벼들었다.

그러나 군사들이 어찌 천하장사 섭정을 막을 수 있겠는가. 섭정이 한바탕 뿌리치자 나동그라졌다.

섭정은 나는 듯이 대청 위로 뛰어올라갔다. 동시에 그의 손에서 싸느란 비수가 빛을 발했다.

섭정은 한 걸음 썩 내딛더니 의자에 앉아 있는 협누를 냅다 찔렀다. 협누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으나 가슴엔 이미 비수가 꽃혀 있었다.

정승 협누는 걷지 못하고.

“으으으음!”

하고 무서운 신음 소리를 내지르면서 의자 밑에 쓰러져 바들바들 떨다가 숨을 거두었다.

부중은 곧 수라장으로 변했다. 군사들은 섭정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대문을 걸어 잠갔다.

섭정은 덤벼드는 군사 몇 사람을 쳐죽였으나 도저히 부중에서 벗어나지 못할 걸 알았다. 그는 죽은 후에도 남에게 얼굴을 알려 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협누의 가슴에서 비수를 뽑아 들어 자기의 얼굴을 도려내어 손으로 가죽을 확 벗겼다. 순간 섭정의 얼굴은 시뻘건 살덩어리로 변했다.

군사들은 그 무서운 광경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섭정은 다시 자기 두 눈알을 뽑아 던지고는 비수로 목을 찌르고 쓰러져 죽었다.

정승 협누가 피살되었다는 소식은 즉시 한열후에게 전해졌다.

한열후가 놀란 기색으로 묻는다.

“그 범인이 누구냐 ”

승상부에서 온 자가 아뢴다.

“스스로 낮가죽을 벗기고 눈 눈을 뽑아버렸기 때문에 얼굴이라기보다 고깃덩어리요, 핏덩어리여서 그가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날로 섭정의 시체는 시정에 전시되었다. 그 곁엔 다음과 같은 게시가 나붙었다.

이 도적의 이름과 경력을 고하는 자가 있어 정승 협누의 원수를 갚게 되면 그 자에게 상으로 천금을 주어라.

그 후 7일에 지났다.

그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시체를 보고 게시를 읽었지만 아무도 섭정을 알아보는 자가 없었다. 이 소문은 바로 위나라 지 땅까지 퍼졌다. 지 땅에 출가해 살전 섭정의 누이 앵은 이 소문을 듣고서 방성통곡하며 생각했다. 

“그는 틀림없이 나의동생 섭정이리라”

그 날로 앵은 흰 비단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나라로 갔다. 한나라 평양성에 당도한 앵은 바로 시정으로 갔다. 그녀는 널판때기위에 있는 시체를 쓰다듬으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시리가 달려와서 울고 있는 그녀를 붙들고 묻는다.

“그대는 이 죽은 사람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

앵이 대답한다.

“이 사람은 나의 동생이며, 나는 바로 그의 누이 앵이라. 내 동생 섭정의 고향은 원래 위나라 지 땅 심정리란 곳인데, 그는 일찍이 의를 좋아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용사로서 널리 알려진 사람이오. 동생은 이 나라 정승의 불의를 미워했기 때문에 그를 죽였을 것이오. 그러나 동생은 혹 이 누이에게 까지 화가 미치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자기 얼굴을 못 알아보게 하고, 그 이름마저 숨겼구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tkdarmamdf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의기 높은 동생의 이름을 세상에 밝히기 위함이라”

시리가 다시 문초한다.

“이 시체가 그대의 동생이라면 왜 정승을 죽였는지 그 이유도 알 것이다. 그대 동생에게 정승을 죽이도록 시킨자가 누군가? 그 배후 인물을 말하라! 그러면 상감께 여쭈어 그대를 살려주겠다.”

“내가 죽는 것을 두려워했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오. 내 동생은 목숨을 던져 한나라 정승을 죽이고 남의 원수를 갚아주었소. 내 동생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 후세에 그 이름을 전할 수 없으며, 만일 내가 동생이 정승을 죽인 이유를 밝힌다면 이는 죽은 동생의 위기를 저버림이라! 내 어찌 그 배후 인물을 말할 수 있으리오”

섭정의 누이 앵은 곧 일어나 시정 정자의 기둥에 머리를 지찧고 죽었다. 시리는 이 사실을 한열후에게 보고한 바 할 열후는 길이 탄식하고 섭정 남매의 시신을 잘 수습해서 잘 묻엊주라고 분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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