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내 혀가 아직 있소? 없소?”-소진과 장의 고사

운학처사 2009. 9. 7. 12:53

소진과 장의

“내 혀가 아직 있소? 없소?”

우리는 흔히 “말 잘하기는 소진장의 같다”라고 한다. 소진과 장의는 어떠한 사람인가 일부나마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일화를 읽어봄이 어떤가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열국지에 실려있는 내용임.


초여왕 말년 때 일이었다. 초나라에 변화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형산에서 옥돌을 하나 주워 초여왕에게 바쳤다.

초여왕은 옥공을 불러 옥돌을 보였다.

옥공이 한 참 살펴보더니 아뢴다.

“이건 옥돌이 아니라 보통 돌입니다.”

초여왕은 격노하여 즉시 변화를 잡아들였다.

“네 이놈! 임금에게 보통 돌을 옥돌이라고 속였으니 어찌 그 죄를 면하랴! 당장 왼쪽 다리를 끊어라.”

이리하여 변화는 왼쪽 다리를 잃고 병신이 되었다.

그 후 초여왕이 죽고 초무왕이 왕위에 올랐다.

변화는 또 초무왕에게 그 옥돌을 바쳤다. 초무왕도 옥공을 불러 옥돌을 보였으나 이번에도 보통 돌이라고 했다. 이에 초무왕은 변화를 잡아들여 그의 오른쪽 다리마저 끊어버렸다.

그 후 초무왕은 죽고, 초문왕이 왕위에 올랐다. 변화는 또 초문왕에게 그 옥돌을 바치고 싶었으나 어찌하리오! 두 다리를 잃었으니, 움직이지 못했다.

이에 형산 아래에서 변화는 옥돌을 가슴에 품고 사흘 낮 사흘 밤을 통곡했다. 나중에 그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고 대신 피가 흘러내렸다.

후세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화씨지혈읍(和氏之血泣)이란 바로 이일을 가리키는 것이다.

친구 한 사람이 와서 변화에게 묻는다.

“그대는 두 번씩이나 그 옥돌을 바치려다 두 다리를 잃었잖나. 이제 아예 다시 갖다 바칠 생각은 말게, 까딱 잘못하다간 목숨마저 잃을 걸세, 그런데 와 자꾸 울기만 하는가? 그대는 아직도 그 옥돌을 바치고 많은 상을 타고 싶은가?

변화가 정색하고 대답한다.

“나는 상을 타기 위해서 이 옥돌을 바치려는 건 아니네. 다만 이렇듯 좋은 옥돌을 보고 보통 돌이라고 감정한 그들을 원망할 뿐이지 나는 원래 정직한 선비네. 그런데 그들은 나를 사기꾼으로 몰았지 않은가.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릇 것을 옳다고 하니 어찌 원통하지 않으리오. 나는 나의 옳음과 그들의 잘못을 밝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네.”

어느덧 초문왕은 변화가 피눈물을 흘린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그 옥돌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옥공을 불러들여 옥돌을 잘라 쪼개놓고 보니 흠 하나 없는 참으로 아름다운 옥이었다.

이에 초문왕은 옥공을 시켜 둥근 고리 옥(璧)을 만들게 하고,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고 명명했다.

오늘날도 양양부 남장현 형산 위에 올라가면 못이 있고 바로 그 곁에 석실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석실이 있는 바위를 포옥암이라고 한다. 이곳이 변화가 옥돌을 품에 안고 울면서 살았던 곳이다.

초문왕은 앉은뱅이가 된 변화의 정성에 감동했다. 이에 변화는 죽을 때까지 대부의 국록을 받았다.

이 화씨의 옥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천하의 보배였다. 그런데 초위왕은 소양이 위나라를 쳐서 이기자 그 공로로 화씨의 옥을 하사했던 것이다.

초나라 정승 소양은 출타할 때도 항상 화씨의 옥을 가지고 다니며 잠시도 떼놓지 않았다.

어느 날 소양은 적산에 놀러 갔다. 소양을 따라간 빈객과 수행인만 해도 100명이 넘었다.

원래 적산 아래는 깊은 못이 있었는데,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강태공이 그 못에서 낚시질을 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못가에 높은 누각이 서 있었다. 소양 일행은 그 누각에 올라가서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셨다.

모두가 술이 얼근히 취했을 때였다. 빈객들이 정승 소양에게 청한다.

“대감께선 잠깐이라도 화씨의 옥을 집에 두고서 출타하시는 일이 없으시다지요? 저희들은 늘 말만 들었지 그 화씨의 옥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습니다. 이 기회에 보여주십시오.”

소양은 심복 부하를 불러 화씨의 옥을 가지고 오게 했다. 그 심복 부하는 정승의 수레에 가서 칠이 된 상자를 소중히 들고 왔다. 소양은 열쇠를 꺼내어 그 상자를 열고 세 겹이나 씌워있는 비단을 손수 벗겼다.

마침내 화씨의 옥이 모습을 드러내자 지극히 순수한 옥빛이 구경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곱게 비춰주었다. 빈객들이 차례로 화씨의 옥을 감상하며 다 같이 극구 칭찬하는 중이었다.

시종배들이 와서 아뢴다.

“못에서 큰 고기가 뛰어 오르고 있습니다.”

소양은 일어나 빈객들과 더불어 난간을 의지하고 못물을 굽어보았다. 길이가 1장 남짓한 큰 고기 한 마리가 수면 위로 뛰어올라오고. 뒤를 따라 여러 마리 고기가 다투듯 뛰어올랐다.

이때 갑자기 동북쪽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니 댓줄기 같은 소나기가 쏟아졌다.

소양이 수행인들에게 분부한다.

“즉시 돌아가도록 준비하여라”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난간에 서서 뛰어오르는 고기를 구경하는 사이 화씨의 옥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모두가 아무리 찾아도 옥은 온데간데없어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결국 정승 소양은 화씨의 옥을 잃고 부중으로 돌아갔다.

소양이 즉시 모든 문객에게 분부한다.

“풀을 헤치고 돌을 들춰서라도 화씨의 옥을 훔쳐간 놈을 잡아들여라”

수일 후 한 문객이 정승 소양에게 고한다.

“그날 대감을 모시고 적산에 간 사람들 중에는 그런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 가운데 혹 수상한 자가 있다면 장의(張儀) 한 사람뿐일 것입니다. 장의는 몹시 가난합니다. 사람이 너무 가난하면 못할 짓이 없는 법입니다.”

소양은 의심을 품고 즉시 장의를 잡아들여 화씨의 옥을 내놓으라고 욱박질렀다.

그러나 장의에게 훔치지도 않은 옥이 있을 리 만무였다.

“저는 그날 화씨의 옥을 만지지도 않았습니다.”

소양이 호령한다.

“별수 없다. 저놈이 솔직히 자백할 때까지 사정을 두지 말고 매우 쳐라!”

이리하여 장의는 곤장 수백 대를 맞고 기절했다. 정승 소양은 장의가 거의 죽어가는 걸 보고서야 매질을 중지시켰다.

그날 친구 한 사람이 장의를 업어다가 그의 집에 데려다 주었다. 그날 밤중에야 장의는 겨우 의식을 회복했다.

아내가 눈물을 흘리면서 장의에게 말했다.

“당신이 오늘날 이렇게 곤욕을 당한 것은 그저 책만 읽으면서 그 빌어먹을 유세술인지 뭔지를 공부한 때문이오. 만일 일찌감치 시골구석에 편안히 들어박혀 농사나 지었더라면 어찌 이런 꼴을 당했으리오.”

장의가 입을 벌려 아내에게 입 안을 보이고 나서 묻는다.

“내 혀가 아직 있소? 없소?” 장의가 하는 꼴이 하도 우스워서 아내가 웃으며 대답한다. 

“아직 있긴 있군요”

장의가 엄숙히 말한다.

“혀는 나의 모든 밑천이오. 혀가 있어 말만 할 수 있다면야 무엇을 근심하리오!”

몇 달이 지나자 장의는 완쾌하여 아내를 데리고 초나라를 떠나 다시 위나라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소진의 심복 부하인 가사인이 위나라에 당도했을 때는 장의가 초나라에서 돌아온 지 약 반년 후였다.

이때 장의는 소진이 조나라에서 출세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그러잖아도 한번 찾아가볼 작정이었다.

어느날 장의는 집을 나오다가 우연히 문 앞에서 수레를 멈추고 서 있는 낯선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이 가까이 와서 장의에게 수작을 건다.

“선생은 원래 위나라 태생인가요?”

장의가 되문다.

“그렇소 그대는 누구시오?”

“저는 조나라에서 온 사람입니다.”

장의가 되묻는다.

“조나라에서 왔다면 소진이란 사람을 아시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소진이 조나라 정승이 되었다던데?‘

조나라에서 왔다는 그 사람은 바로 소진의 심북 부하인 가사인(賈舍人)이었다.

가사인이 천연스레 묻는다.

“선생은 누구십니까? 그럼 우리 조나라 정승 소진 대감과 안면이라도 있으신지요?

“소진은 지난날에 나와 함께 공부한 동학이지요, 정으로 말하면 형제간이나 진배없소.”

가사인이 슬며서 청한다.

“그러십니까? 그렇다면 선생은 왜 우리 조나라에 가서 소진 대감을 찾아보지 않습니까? 소정승은 반드시 우리나라 상감께 선생을 천거할 것입니다. 마침 잘 되었습니다. 저는 장사차 위나라에 왔다가 이제 물건을 다 팔고 조나라로 돌아가려던 참입니다. 선생이 저 같은 미천한 자를 싫다고 하지 않으신다면 제가 수레에 선생을 모시고 조나라로 가겠습니다. 저와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장의는 흔연히 수레에 올라 가사인과 함께 조나라로 떠났다. 며칠 후에 그들은 조나라 교외 가까이 당도했다.

가사인이 장의에게 말했다.

“저의 집이 바로 이 근처에 있는데 좀 긴한 일이 있어 여기서 선생과 작별해야겠습니다. 성안으로 들어가면 성문 주변에 여점들이 있는데 선생은 남문 바로 옆 첫 번째 여점에 드셔서 편히 쉬십시오. 저는 집안일을 대충 보살피고 수일 후에 선생을 찾아뵙겠습니다.

장의는 가사인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수레에서 내려 성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러고는 가사인이 시킨 대로 남문 옆 바로 첫 번째 여점에 거처를 정하고 편히 쉬었다.

이튿날 장의는 소부를 찾아가 문지기에게 자기 명자(명함)를 내주고 소대감에게 전하라고 했다. 그러나 소진은 장의가 찾아올 것을 미리 알고 문지기들에게 분부해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문지기들은 장의의 명자를 보고는, “안됩니다. 그냥 돌아가십시오. 소정승께서는 바깥사람과 전혀 만나지 않습니다. 하고 따 돌렸다.

장의는 하는 수 없이 여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장의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날마다 소부에 가서 명자를 들이밀었다.

장의는 닷새만에야 겨우 자기 명자를 소진에게 들여보냈다.

잠시후에 문지기가 나와서 장의에게 소진의 말을 전한다.

“대감께서 오늘은 바빠서 만날 수 없고, 언제고 사람을 보내어 직접 청할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장의는 별수 없이 여점으로 돌아갔다.

일주일이 지났다. 장의는 날마다 소진으로부터 무슨 소식이 있을까 기다렸으나 아무런 기별도 오지 않았다. 장의는 화가 났다.

장의가 여점 주인을 불러 말한다.

“소정승이 나를 부르겠다 하고서 여태껏 사람을 보내지 않으니 오늘 이곳을 떠나 위나라로 돌아가겠소.”

여점 주인이 장의를 극력 붙든다.

“그대가 소정승에게 명자까지 들이밀고서 이대로 가버리겠다니 그건 안 될 말이오. 내일이라도 소정승이 이 여점으로 사람을 보내어 그대를 초청한다면 뭐라고 대답하란 말이오? 나는 결콘 그대를 그냥 보낼 수 없소. 소정승에게서 기별이 올 때까지 반년이든 1년이든 우리 여점에서 기다리시오!”

이에 장의는 가사인이나 만나보려고 교외로 나갔다. 그러나 그도 허사였다. 동네로 돌아다니면서 알아봤으나 가사인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또 며칠이 지났다. 장의는 다시 소부에가 가서 명자를 들여보냈다. 들어갔던 문지기가 얼마후 나와서 말한다.

“소정승께서 내일 만나겠다고 하십니다.”

이에 장의는 여점에 돌아가서 여점 주인의 옷과 신발을 빌렸다. 이튿날 이른 새벽에 그는 빌린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서 소부로 갔다.

그때 소진은 장의가 일찍 올 것을 알고 이미 모든 차림새를 갖추고 있었다.

문지기가 들어와서 고한다.

“문밖에 장의가 왔습니다.”

소진이 분부한다.

“정문으로 들여보내지 말고 협문(정문 옆의 작은 문)으로 데리고 들어오너라.”

그리하여 장의는 안내하는 문지기를 따라 협문으로 들어갔다. 장의가 축대 위로 올라가려 하자 좌우 사람들이 붙든다.

“지금 대감께선 관속들의 아침 문안을 받으시는 중이오. 손님은 잠시 저 뜰 밑에 서서 기다리시오”

장의는 뜰 밑으로 내려서서 당위를 쳐다보았다. 아침 문안을 드리러 들어가는 자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권속들의 문안이 끝나자 이번엔 공사로 소정승을 찾아온 관리들이 끊임없이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에 해가 중천에 이르렀다.

그제야 당 위에서 부르는 소리가 난다.

“손님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소정승의 수하 사람들이 장의에게 말한다

“소정승께서 손님을 부르시오. 올라가보오.”

이에 장의는 옷깃을 여미고 당 위로 올라가면서,

“소진이 나를 영접하려고 곧 나오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진은 나오지 않았다. 장의가 당위에 올라가서 바라본 즉, 소진은 높은 자리 위에 떡 버티고 앉아 있었다.

장의는 분노를 참고서 소진 앞에 나아가 읍했다. 그제야 소진이 겨우 일어나 뻣뻣이 선 채로 손만 약간 들며 말한다.

“그후 그대는 별고 없었는가?”

장의는 더 이상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때 곁에서 시중드는 사람이 올라와서 소진에게 말한다.

“점심 식사를 들여오리까?”

“음 곧 올려오너라”

그런 후에 소진이 장의에게 말한다.

“내 공사에 바빠서 그대를 오래 기다리게 했구나, 그대도 시장할 테니 점심 식사나 하여라.”

소진이 다시 시중드는 사람에게 분부한다.

“저 아래 툇마루에다 손님 상을 차려 주어라”

당 위로 올라온 소진의 상은 진수성찬이었다. 그러나 툇마루 끝에 차려놓은 장의의 상엔 고기 한 접시와 채소 한 접시만이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

장의는 아니꼽고 치사스러워서 식사할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배가 고프니 어찌하겠는가. 더구나 여점 주인에게 외상 밥값을 잔뜩 지고 있는 신세다.

그런데 소진이 하는 꼴을 보니 조나라 임금에게 그를 천거해주기는 다 틀린 일이었다. 장의는 참으로 이렇듯 푸대접을 받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권력 앞에선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힘없는 자가 먼저 허리를 굽히게 마련이었다. 장의는 아니꼬운 생각을 꾹 참고 수저를 들어 식사를 했다.

장의가 본즉 소진은 식사를 마치자 시중드는 사람들에게 먹다 남은 반찬이 오히려 장의의 반찬보다 훨씬 나았다. 장의는 더욱 창피하기도 하고 화도 났다.

점식식사가 끝나자 소진이 다시 분부한다.

“저 손님 내 앞으로 불러오너라.”

이네 장의가 다시 당 정면으로 올라가는데 소진은 여전히 높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장의가 분노를 참고 몇 걸음 가까이 가다가 마침내 손을 들어 소진을 소리 질러 꾸짖는다.

“나는 네가 옛정을 잊지 않았을 줄 알고 먼 곳에서 찾아왔다! 그런데 나에게 이렇듯 망신을 주느냐! 이것이 동학에 대한 대접이냐?”

소진이 천천히 대답한다.

“그대의 재주가 나보다 뛰어났다면 그대 역시 좋은 임금을 만나 벌써 곤궁한 생활을 면했을 것이다. 내 조나라 임금께 그대를 천거해서 부귀를 누리도록 해주고 싶다만, 그대는 워낙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 공연히 무능한 사람을 천거했다가 나중에 나까지 책임을 질 순 없다.”

장의가 큰 소리로 대꾸한다.

 “대장부가 자기 힘으로 부귀를 누리면 누렸지, 어찌 너 같은 자에게 힘을 빌리겠나!”

소진이 말한다.

“그대 혼자서 부귀할 자신이 있었다면 무엇 때문에 나를 찾아왔느냐? 어쨌든 그대는 아무 데도 쓸모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옛 동악에 대한 정분으로 그냥 돌려보낼 수도 없구나, 내 그대에게 황금 1홀을 줄 테니 노자나 하여라.”

시중드는 사람은 소진의 분부를 받고 장의에게 황금 1홀을 갖다 주었다. 이것은 동학에 대한 대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동학을 모욕하는 짓이었다.

장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뜰 아래로 황금을 내던지고는 격분에 못 이겨 그냥 밖으로 나가버렸다. 소진은 장의를 만류하지 않았다. 장의가 여점으로 돌아가보니 거처하던 방 안의 물건이 다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어째서 방안 물건을 다 내놓았소?”

여점 주인이 대답한다.

“선생은 소정승과 만났으니 이제부터는 공관에서 사시게 될 것이고, 나라에서 선생을 잘 대우할 것입니다. 그래서 방을 치웠습니다.”

장의가 머리를 흔들면서,

“모든 것이 그저 원망스럽기만 하오. 이거나 도로 받으오.”

하고 옷과 신발을 벗어 주어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여점 주인이 묻는다.

“선생과 소정승은 동학한 사이라면서요? 그럼 오늘 무슨 잘못이라도 있었는지요?”

장의는 여점 주인에게 지난날 소진과 동학하던 시절의 정분과, 오늘 소진의 부중에서 가지가지로 창피당한 일을 말했다.

여점 주인이 언짢아한다.

“소정승이 비록 거만하게 굴었을지라도 원낙 지위가 높으니 혹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선생에게 황금 1홀을 주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인정이 아니겠소? 선생은 그거나마 받아서 그간 밀린 밥값이라도 치르고 돌아갈 노자나 하지 않고서 왜 내던졌소? 참 딱도 하시오.

“내 하도 분해서 분김에 황금을 내팽개쳤소. 그러나 이젠 수중에 돈 한푼없으니 어찌하리오.:”

장의가 여점 주인에게 한참 이런 말을 나누고 있던 참이었다. 바깥에서 어떤 사람이 장의를 찾아왔다.

장의가 본즉 바로 가사인이었다.

가사인이 장의 앞에 달려와서 극진히 인사를 한다.

“좀 바쁜 일이 있어서 그간 선생을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새 선생은 소정승과 만나보셨는지요?”

장의가 주먹으로 여점 마루에 놓여 있는 책상을 치며 소진을 저주한다.

“그놈은 인정도 의리도 없는 놈이오. 그놈에 대해선 아예 다시말하지 마오.”

가사인이 짐짓 놀라는 체하면서 묻는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선생은 어째서 이렇듯 역정을 내십니까?

곁에서 여점 주인이

“그러 수밖에 없지요. 내가 선생을 대신해서 자초지종을 모두 말해드리겠소.”

하고 소정승과 만나고 돌아온 장의의 처지를 다 설명하고 나서 말한다.

“지금 장의 선생은 우리 여점에 외상만 잔뜩 밀려 있소. 어디 그뿐입니까 돌아갈 노자도 없는 처지요. 그러니 어찌 속이 상하지 않겠소?”

가사인이 연방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한다.

“내가 선생을 조나라에 모시고 왔으니 내게도 책임이 전혀 없지 않소. 나는 선생을 생각해서 모시고 왔지, 이렇듯 곤욕을 당하실 줄은 몰랐소. 이보시오. 주인. 구간 선생의 외상이 얼마나 밀렸소? 내가 다 갚아 드리겠소. 그리고 선생이 위나라로 돌아가실 수 있도록 수레와 노자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선생의 의향은 어떠하신지오?”

장의가 대답한다.

“나는 이제 위나라로 돌아갈 면목도 없소. 이왕이면 진나라로 가봤으면 싶으나 수중에 노자가 없으니 한이오.”

가사인이 묻는다.

“선생이 진나라에 가시고 싶다니, 그럼 그곳에 혹 지난날의 동학이나 잘 아시는 분이라도 있습니까?

“진나라에 아는 사람이 없소. 그러나 지금 천하 일곱 나라 중에서 가장 강한 나라는 진나라요. 내 진나라에 가서 다행히 등용만 된다면 언제고 조나라를 쳐서 소진에게 이 분을 설욕할 작정이오.”

가사인이 기뻐한다.

“선생이 다른 나라로 가고 싶다는데 제가 어찌 그 뜻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잖아도 저는 친척을 만나러 진나라에 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왕이면 저와 함께 가시면 어떻겠습니까?”

장의도 기뻐한다.

“세상에 그대처럼 후덕한 사람도 있다는 걸 안다면 소진은 부끄러워서 마땅히 죽어야 할 것이오.

이에 장의는 자청해서 가사인과 의형제를 맺었다.

그날로 가사인은 장의의 외상값을 다 갚아주고, 함께 수레를 타고서 진나라를 향해 달렸다. 도중에 가사인은 좋은 의복과 종자까지 사서 장의에게 주었다. 가사인은 무엇이든 장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이리하여 그들은 진나라에 당도했다. 가사인은 진나라 고관들에게 많은 황금을 뇌물로 바치고 진혜문왕에게 장의를 천거해 달라고 모든 방법으로 애를 썼다.

이때 진혜문왕은 지난날 소진을 등용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고 있던 참이었다.

진나라 고관들은 가사인한테 많은 황금을 받았기 때문에 서로 다투다시피 하면서 진혜문왕에게 장의를 천거했다. 이에 진혜문왕은 장의를 궁으로 들게하여 접견했다. 이에 진혜문왕은 장의에게 객경벼슬을 주고, 장차 모든 나라에 어떤 정책을 써야 할지를 상의하기에 이르렀다.

어느날이었다.

가사인이 장의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이제 저는 조나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선생은 내내 안녕히 계십시오.”

장의가 가사인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다.

“내 원래 곤궁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오로지 그대의 힘을 입어 이제야 진나라에서 형편이 펴지게 되었소. 그래 장차 그대에게 그간의 은혜를 갚으려 하는데 갑자기 떠난다니 이게 웬말이오?”

그제야 가사인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전부터 제가 알지도 못하는 선생께 왜 선심을 썼겠습니까? 결국 선생을 도우신 분은 조나라 정승 소진 대감이십니다.”

이 말에 장의는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 하다가 한참 만에 묻는다.

“오늘날까지 그대가 나를 위해서 많은 황금을 썼는데 어째서 소정승을 내세우오?”

가사인이 대답한다.

“이제 처음부터 끝까지 그간 사정을 숨김없이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정승은 장차 육국을 합종시킬 작정입니다. 그런데 이런 때에 진나라가 조나라를 친다면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소정승은 선생이 진나라 정권을 꼭 잡아야만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이에 저는 소정승의 분부를 받아 장사꾼으로 가장하고 위나라에 가서 선생을 조나라로 모셔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정승은 선생이 조나라에서 조그만 지위에 안주하실까 봐 염려하시어 일부러 선생을 괄시한 것입니다. 과연 선생은 소정승의 태도에 격분하셨고, 마침내 진나라로 가야겠다는 뜻을 세웠습니다. 이에 소정승은 저를 불러 많은 황금을 주시면서 ‘너는 장의 선생을 모시고 진나라로 가거라. 장의 선생에게 필요한 것이 있거든 황금을 아끼지 말고 얼마든지 써라. 그러고서 장의 선생이 진나라 정권에 참여할 때까지 그 뒤를 돌봐드려야 한다’ 고 누누이 부탁하셨습니다. 이제 선생은 진나라 임금과 함께 앞날을 상의하시게끔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속히 조나라에 돌아가서 소정승께 그간 경과를 보고해야 합니다.”

장의가 길이 탄식한다.

“허허 그런 줄은 몰랐소. 그러니 내가 지금까지 소진의 계책에 빠져 있었던 게로구려. 참으로 소진은 그 재주가 나보다 월등하오. 그대는 돌아가거든 소진에게 조나라를 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내 말을 전하오.

가사인은 장의에게 하직하고 그날로 조나라를 향해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