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사 은행나무의 대화
고택의 석가래 길이는 같은데
인간의 수명은 왜 같지 않은가
석가래 길이는 사람이 만들고
사람의 수명은 조물주가 만들어서 그런가
저 곳에 서있는 은행나무 쌍으로 서 있어
외롭지 아니 하리다
수백 년을 동고동락하면서 살아온 지라
눈만 보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으리
만인이 잠든 조용한 밤에는
고요한 달빛에 마음 울적하여
자기들 곁을 지나간 수많은 사연을
가슴속에서 꺼내어 회상하겠지
『우리와 친하게 지내던
걸출한 영웅이 있어 풍전등화의 나라를
자기 목숨 내 던져 구하였지
조국과 백성을 사랑하는 충절은 가히 천하제일 이었을 걸세
사람들은 우리를 일컬어
400년 전 임진왜란 당시 구국의 명장을 길러낸 나무라고
모든 시름 우리 팔에 걸어두고 무술연마에 정진하였으니
주야로 말 발굽소리 그치지 않았었지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구부리니
활시위소리 나는 곳에 과녁을 꿰뚫었고
하늘을 나는 기러기 놀라 날개 짓소리 요란하였지
고택 우물 그 많은 세월 마른일 없으니
은근과 끈기의 원천이라
맑고 시원한 물에 청렴결백한 마음 비추어 보면서
뒷산의 송백 변함없는 충절을 길렀지
나라를 구한지 삼백년이 지나서 결국은 아예 먹혀버렸지
서로 집안 싸움하다가 망한 것이지
사람이란 갈수록 나아져야지 호부견식이란 말이 있던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얘기만 하고 있지
우리보다 미개한 민족이었다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지 좀 불쌍해
세월의 흐름 속에 남의 힘으로 광복을 하였지
남들의 꼬임에 넘어가 결국에는 남북으로 갈라져서
반백년동안 피비린내를 풍기면서 서로 싸우고 있지
그 반쪽가리도 그래 마음을 비우고
주위의 정세를 냉철히 살펴보아 판단한다면 결론은 다 같을 텐데
서로 나라를 위하는 의견이 그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
둘 중에 하나는 임진왜란 때 그 무엇과 다르지 않겠지
예나 지금이나 그 버릇은 변한 것이 없어
우리도 살 만큼 살았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이
더 추한 꼴 보기 전에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게 어디 맘대로 되는 일인가 - 다 조물주의 허락이 있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