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는 하나인데(1)
물 위와 아래를 보니
뿌리는 맞닿아 하나이나
가지와 몸통은
방향은 달리하나
모양은 서로 같다
나뭇가지에
가을이 오니
물아래에도 가을이 오고
단풍지니
물아래에도 단풍이 지고있다
양지로 뻗은 가지
햇빛을 많이 받아
가지도 풍성하고
잎도 많아
단풍 또한 아름답다
남북으로 뻗은 가지
뿌리는 같으나
방향이 다르다
땅은 둥근달과 같으니
언젠가는 만나게 되리
단풍에 고개 숙여(2)
도솔산 단풍은 붉다 못해
빨간 물감을 칠했나니
그 붉은 마음은
낙엽이 되어서도
암자 뜰을 붉게 단장하였다
오 가는 사람
발길을 조심스럽게 하고
오르고 내리는 사람
마음 붉게 하여
다정한 인사 나누니
먼 길 가는 그대
뒷모습이 아름답구나
잔설속에 피는
생명의 속삭임
봄볕아래 새싹을 틔운
희망의 나래
염천에 땀흘려 일하는
녹색의 사랑
열매에 생명을 담아주고
가는 모습
피멍들어 가련하나
숭고한 사랑에
절로 고개 숙여진다.
낙엽이 가는 곳(3)
온 산을 물들일 듯
울긋불긋
꿈을 불태우든 단풍잎
그 의욕도
그 아름다움도
세월의 흐름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한잎 두잎 - -
마음을 비우고
자의 반 타의 반
안식처 찾아가나
힘없는 잎나비 되어
미풍에 의지하니
명당을 가리지 않는구나
길손의 발 염려하거나
조각배 되어 흘러가거나
목마름에 자화상 그려 보거나
낙엽마다 천태만상이니
가지에 남은 단풍은
선배의 모습 보고
갈길 생각하게 되리라
길은 외롭지 않아 좋고
물은 흘러흘러 좋고
먼저 온 자
후에 온 자 마지하고
위로하니
자연은 사랑이어서
좋아라
미풍에 몸 실은 낙엽
이리 저리 날리고
물 아래든 위든
가리지 않는다.
그럴만한 능력도
없거니와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이 바다에 갈 때 쯤
육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새 생명을 키워내는
사랑의 힘이 되리라
어느 곳에 있다 한들
다른 점이 있으리오
종점은 다 같은 것을
산 사(4)
도솔산에 놓인 암자
난렵한 미는 천의무봉이라
기와들이 모여 이루었나니
예부터 목탁을 두드리고
염주알을 헤아려
사리 수는 늘어났으나
중생의 고단한 삶은
변화한 것이 없다
노을 속 홍시
하나는 외로우나
둘은 정다워
한 마리의 까치가
허기진 배 달래는 모습
냉수 한 그릇에 담아 본다면
스님 도력을 더 높게 하리라
하나면 두렵고
둘이면 이웃이다
순풍에 몸을 맡기니
대지에 수를 놓으며
마지막까지 아름답구나
자연에 순응하는 모습이
저리 아름다웁다니
낙엽 밟고 가는 스님아
낙엽 되어봄이 어떠하겠는가
선운사의 가을(5)
단풍나무 발담군 물에
낙엽도 함께 씻으니
길손의 눈길도
발길도 머물러
가을이 쉬어가는구나
단풍나무 가지 끝에
울긋불긋 가을이 매달리고
개울가 저편
여인의 칠칠한 허리같은 녹차밭
흰 꽃 가을이 가지에서 웃는다
도솔산 자락에 순풍이 이니
오색 단풍이 군무를 이룬다
오 가는 사람 눈은 황홀하나
보람과 허무가 교차하니
하나가 있으면 또 하나가 있으리라
낙엽은 길손에게 할 일 일깨우고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니
머지않아 겨울이 온다는 엽서인가
녹차와 꽃무릇의 짙푸른 녹색은
오 가는 길손에게 힘을 주는구나
뿌리(6)
저녘노을 단풍은
제 멋만 알고
나무가지는
오색 옷자락을
미풍에 날리며
뽐내는구나.
가지마다
제 공이라 하니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으리오
뿌리가 있다 해도
흙이 없다면
그 생명은 허공에
산산히 부서지리라
물이 없다면
흙이 있다 해도
먼지에 지나지 않나니
눈비를 이루는 구름이
이 또한 고맙구나
석양빛이라도
땅에 기를 주고
생명을 기르니
오고 가는 사람들아
해를 손으로 가리고
단풍만 보지 말자꾸나
선운사 단풍(7)
도솔천 흐르는 물
고인자리에
산천이 머무르고
미풍이 이는 곳에
생명을 얻는구나
오색빛 날리는
산자락이
선경인 듯 하여
발길 잡지 못하니
신선이 따로 없구나
서산에 지는 해는
구름도 붉게 물들이니
쉴곳 찾아 나는
기러기 들의 안도
사랑으로 붉어지리라
그림자(8)
단풍이 아름다우니
오솔길도 정다워
산천도 즐거운 소리라
암자가는 길 소호에
그려진 산수화
신선의 솜씨 뛰어나고
만산만엽이 오색이니
물속 그림 더욱 아름다워라
조석으로 계절마다
산천이 아름다우니
오가는 사람들아
산천의 변화만 보지 말고
내 안의 변화도 보자꾸나
단풍과 아내(9)
도솔산 단풍은
누구의 그림인가
내 그를 만나 한수 배우고자
선운산 산하를 헤매었으나
피곤한 다리만 이끌고
석양빛에 떼밀려 하산하였으니
내 허기진 눈동자는
선운사 후원에 있는
홍시에 머물더라.
붉게 물든 단풍나무 아래
아내가 서니
부끄럼 타는
새색시인양
두 볼이 붉어지더라
내 이런 아내의 모습을
보고자
내년 이맘때에
선운산 상사화를
찾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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